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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01> - 성소수자 인권운동, 문을 열다
2014-04-18 오후 14:13:28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01>

 

성소수자 인권운동, 문을 열다 - 1994~1997 친구사이 발족 및 초기 활동

 

 

 

소식지1호.jpg

▲1994년 1월 25일 발간된 소식지 제1호. ‘초동회’에선 제일 먼저 소식지 발간을 서둘렀다.

 

 

 

’따르릉, 따르릉’

 

1993년 12월 23일, 미국에서 날아온 장진석씨가 세 명의 남성 동성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성애자 인권모임의 필요성과 계획을 말하고 싶으니 나흘 뒤인 27일 팔래스호텔 커피숍에서 보자는 얘기였다. 다른 세 명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당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모여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고, 이듬해 1월 7일 3명의 레즈비언과 4명의 게이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 ‘초동회’가 탄생했다. 하지만 여성 동성애자들과의 의견 차이로 인해 남성 동성애자들은 새로운 단체를 위해 다시 모였고, 한 달 후 7명의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인 첫 총회에서 초대 대표로 이후명(가명)씨가 선출됐다. 장진석씨가 가져온 동성애, 에이즈 관련 자료를 활용하고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무실도 화곡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발족한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 굴곡진 세월을 지나 이제는 일간지 커버스토리에 등장해 축하까지 받게 된 친구사이.[i] 그 궤적을 모두 들춰내어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의미 있는 성과들을 사례 위주로 알리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연재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하지만 알고 싶고 알 필요가 있는 역사 바라보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 첫 순서는 ‘친구사이 발족 및 초기 활동(1994~1997)’이다.

 

 

어려웠던 문 열기, 하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1980년대 후반에만 해도 술집은 ‘영업금지’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에 게이바를 대상으로 공개적인 활동은 쉽지 않았다. 밤 12시만 넘어도 벨을 누르고 암호를 대가면서 들어갈 수 있었던 게이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발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고 에이즈 예방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초동회’의 탄생을 주도한 장진석씨. 1994년 연남동 시대 때 데뷔해 1997년 대표를 역임한 김기현씨와 함께 20년 전으로 돌아가 시작의 순간을 꺼냈다.

 

김기현씨가 먼저 운을 뗐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처음 친구사이는 종로를 선뜻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온 곳이었어요. ‘종로에 나가면 호모가 있더라’라는 소문 때문에 대놓고 놀지는 못하면서, 그나마 인권단체라는 얘기를 듣고 문을 두드리게 된 거죠.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낮에 아니면 저녁때 전화해서 얘기할 수 있는 단체가 친구사이 밖에 없었던 거예요.” 주말 포장마차 거리에 사람들이 꽉 차고 게이바가 들썩거리는 지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다. 그때는 종로 안에서 친구사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고 한다. 주로 나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머리에 든 것만 있고, 심지어 자기들끼리 관계를 가진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사이는 동성애 관련 세미나 개최, 야유회 및 영화의 밤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한 발짝씩 다가갔다. 장진석씨가 그때를 추억했다. “초기에 같이 활동했던 친구 중에 제가 국내 게이커뮤니티 출신 중 처음 만난 초대 부대표 오준수씨가 있었어요. 도곡동 초동회 시절 그 친구가 활동하던 출판사 책상 한 켠에서 같이 활동했죠.그 친구는 처음으로 친구사이에 상주하면서 소식지에 글도 쓰고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김기현씨도 친구사이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오준수씨라고 한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지만 준수 형이 죽은 뒤 천주교와 연계해서HIV/AIDS 관련 쉼터도 처음 만들었고, 2000년대 중반까지 그 형 기일 행사도 함께 했죠.”

 

1995년 6월 26일에  4개 단체(친구사이,끼리끼리,컴투게더,마음001)가 모여 결성된 ‘동인협(동성애자 인권운동 협의회)’ 소속으로는 여름인권학교, 바자회, 결의대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여름인권학교는 전국에서 모인 100명 이상의 동성애자들이 분임토의, 퀴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성황리에 치러졌다. 김철종씨가 대표였던 1996년 5월 1일에 개설된 전화사서함 ‘153’의 인기 또한 대단했다. “밤에는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해방구 역할을 했죠. 그 때 홍석천 씨도 친구사이에 처음 나왔어요.” 김기현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1997년은 대표 선출부터 사무실 이전, 최초 대외 집회까지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다채로운 활동이 이어진 해였다.첫 투표에서 과반수를 못 넘겨 재투표까지 한 끝에 대표가 된 김기현씨.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문제를 놓고 끝장을 볼 때까지 밤새 회의하자며 새벽 3시에 감자탕을 먹은 일, 12월 1일 에이즈의 날을 맞이해 콘돔회사로부터 받은 콘돔 2만개를 탑골공원 앞에서 배포했는데 불티나게 나간 일 등이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김기현씨에게 대표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한 번은 소식지에 제가 드렉한 모습을 CG로 만든 게 나갔는데, 이태원 클럽 ‘스파르타쿠스’에서 누군가가 구겨진 그 소식지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혹시 본인 아니냐고 어렵게 물어봤었어요. 왠지 기분이 묘하고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같은 해 6월 28일은 친구사이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동성애자 차별 교과서 개정 촉구를 위해 처음으로 탑골공원(구 파고다공원) 앞에서 집회를 하기로 추진한 것이다. 김기현씨는 당시 만장 일치가 아니면 안 된다는 회원들 때문에 투표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처음 대외적인 활동을 하게 된 상황이라 아웃팅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열린 집회에는 많은 기자들이 모여 주목을 받았고, 그러한 경험은 이후 친구사이가 활동하는 데 엄청난 원동력이 되었다. (그 당시 용기 있게 사회를 본 사람이 현재 친구사이의 천정남 고문이다.)

 

 

 

 

크기변환_소식지18호.jpg

 
▲1997년 대표였던 김기현씨가 실린 소식지 제18호. 지금 봐도 참 뭉클한 글이다.
 
 
 
미국에도 ‘친구사이’가 있었다?!

미국에도 ‘친구사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회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우리보다 20년 이상 앞선 1969년 스톤월 항쟁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본격화되었는데, 한인 동성애자 모임도 한국보다 먼저 미국 뉴욕에서 1990년(구 ‘동한회’), LA에서 1993년(구 ‘한인 동성애자 협회’)에 생성되었다. 두 모임은 이후 한국 친구사이의 활동 소식을 들으며 자연스레 ‘친구사이’로 단체 이름을 바꾸게 된다.
 
“어머 크리스, 얼굴 보니 누군지 알겠네~ 반가워.” 1995년부터 뉴욕 친구사이에서 활동한 한동진씨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필자를 맞이했다. (필자는 사실 그와 구면이다. 그는 필자가 4년 전 활동했던 영어회화모임의 운영자였다.) 20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게 된 자리에서 당시 활동 자료를 살펴보며 그는 감회에 젖어들었다.
 
“한국 친구사이가 초창기라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펀드레이징 파티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지인들, 인권단체들 위주로 홍보를 하고 ‘The Web’이라는 클럽에서 한 장당 10불에 티켓을 팔았는데 홀이 꽉 찼어요. 그냥 파티만 할 수는 없으니까 고고보이 쇼도 준비하고, 한국 최신가요 틀어놓고 드렉 쇼도 하고 그랬죠.”
 
뉴욕 친구사이는 이후에도 몇 차례 한국 친구사이 활동을 위해 기부금 마련 파티를 열었다. 1995년 6월 2일자 <한국일보 시카고판>은 “뉴욕의 한인 동성애 인권운동 네트워크인 『친구사이』는 올해 여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될 동성애 인권 바자회 후원을 위해 5천 달러를 모금했다. 기부금은 한국 내에서 구할 수 없는 동성애 인권운동의 역사 및 이론 학술서나 선진국의 합법적 동성애 동등권의 다큐멘타리 자료수집에 사용된다.”라고 기부 소식을 전했다. 1995년 8월 11일에는 클럽 ‘58’에서 동인협 주최 바자회 기부금 마련 축제의 밤이 열렸고, 600여 명이 참가해 약 2천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크기변환_미국 친구사이1.jpg

 ▲뉴욕 스톤월 항쟁 26주년 기념 퍼레이드에 처음 참여한 뉴욕 친구사이
 
 
 
1995년 6월 25일은 뉴욕 친구사이에게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스톤월 항쟁 26주년 기념 퍼레이드에 한인 동성애 인권단체로는 처음으로 참여한 것이다. 한동진씨가 그때의 소감을 전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당당하게 한국인으로서 나가보자고 해서 티셔츠에 ‘대한민국’이라고 써놓기도 하고, 태극부채도 들고 걸어갔죠. 사진도 엄청 많이 찍혔고 심지어 인터뷰도 하고 방송에도 나가고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그는 생전 처음으로 룸메이트에게 커밍아웃도 했다. 행진을 하기 위해 그의 기숙사에 모인 친구들의 복장이 누가 봐도 퀴어퍼레이드 차림이었던 것. 돌아온 룸메이트의 대답은 ‘I don’t care’였다고 한다.
 
퍼레이드 참여를 계기로 힘을 얻은 뉴욕 친구사이는 다양한 활동을 계속 펼쳤다. MT를 통한 친목 도모, 공개토론회 개최 홍보 활성화 등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에이즈 예방 및 에이즈 환자 돕기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었다. ‘Friends & Foods’라는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에이즈 환자와 함께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LA 친구사이 또한 1996년 2월에 첫 정기모임을, 7월에는 소식지 발행을 진행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1997년 이후 주축 멤버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귀국해 자연스럽게 미국 친구사이 단체들은 해체 수순을 밟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활동 및 한국 친구사이와의 교류는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크기변환_미국 친구사이4.jpg

▲1996년 11월 뉴욕 친구사이에서 주최한 공개토론회.
한인사회에도 동성애 인권단체가 활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그리고 친구사이는…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기현씨는 성소수자 노동권과 관련해 계속 활동하고 있고, 한동진씨도 영어회화모임을 지속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김기현씨는‘실질적인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 저항을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커뮤니티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말 그 추운 겨울에 전단지를 돌렸고, 너무나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순간들을 버텼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친구사이 동생들을 보면 행복해요. 고맙고.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한 친구사이에게 장진석씨가 남긴 한 마디다. 때론 신기하고 그럼에도 가슴 벅찬 선배들의 고백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굳건히 나아가는 일은 이제 다분히 우리의 몫일 것이다.

 

 


[i]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42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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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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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14-05-08 오후 19:28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미주에도 그런 조직이 있었다는 것, 또 그렇게 힘을 모아주었던 것이 참 애틋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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