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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평] 청소년 성소수자를 자살로 몰고 간 집단폭력에 대해

               학교 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에 관한 논평

 

청소년 성소수자를 자살로 몰고 간 폭력에 대해 학교 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은 집단괴롭힘에 대한 무지와 동성애 혐오를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지난 8월 5일,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009년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한 학생 A군의 부모가 "학생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부산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군이 성적지향과 성별비순응(Gender-nonconformity)으로 인해서 반 학생들 중 일부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인정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에게 가해진 조롱, 비난, 장난, 소외 등의 집단 괴롭힘은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보기 어렵고 교사 등이 집단 괴롭힘을 예견할 수 있었더라도 이것만으로 피해 학생의 자살에 대한 예견이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없어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망 당시 A(15세)군은 2009년 부산 모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는 동성애적 감정과 성별비순응(Gender-nonconformity)을 주변에 표현을 했지만,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의하면 자기 생활 관리를 잘 하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학 후 성정체성에 대한 같은 반 친구들의 집단적 괴롭힘이 시작되었고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끝에 결국 고통스러운 삶을 자살로써 마감했다. 이에 A의 부모는 자녀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며 같은 반 친구 일부 및 담임교사를 경찰에 진정하는 한편 부산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1심과 2심은 담임교사와 부산시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빈발함에 따라 집단폭력과 괴롭힘을 사소한 학내문제로 볼 수 없으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일관되게 왕따와 같은 집단 괴롭힘을 ‘인간에 대한 공격의 최고형태,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07) 연구에서는 6,160명의 학생 가운데 5.8%가 동성애 성향이 있다고 응답했고, 김경준 등(2006)의 연구에서는 중고등학생 1,309명 중 9.4%가 성소수자라고 응답한 바 있다. 강병철.김지혜 등이 2006년 시행한 연구에 의하면 성소수자 청소년 130명 중 51.5%가 언어적 모욕을, 13.8%가 구타를 경험했다고 한다. 또한 성소수자 청소년 133명 중 77.4%가 자살을 생각하고, 47.4%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강병철·김지혜, 2006). 이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학교 내 괴롭힘과 폭력이 매우 심각하며 그들의 정신 건강이 학교 내 폭력으로 중대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본 사건의 경우 성정체성을 이유로 교실 내에서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교사는 피해자,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집단적 괴롭힘이 매우 심각한 폭력이고 누구도 타인을 혐오할 권리가 없음을 명백히 교육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교사는 학기 초 A군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이후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가해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과 침묵으로 동조를 하고 있는 급우들에게 자신들이 가담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 살펴보고 성찰할 기회를 한 번도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중재자로서 교사의 역할 중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A군의 신체적.정신적 안전이었다. 그렇다면 부모 등 가족들의 지지형태와 내용, 지지하는 친구들의 존재 등 피해 학생을 방어할 수 있는 요인들이 충분한 사건의 전 과정을 통해서 피해학생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방어요인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했다. 담임교사가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면서 위기에 개입하고 방어요인을 강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점은 집단 괴롭힘에 동조하는 가해 학생의 수가 늘어나는 한편 괴롭힘의 형태와 정도도 점점 심해져서 신체적 폭력으로 진화하고 있는 동안 피해학생이 상담과 경위서 등을 통해서 가해 학생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뿐 아니라 자살에 대한 사고를 분명히 표현했음에도 추가적인 위기개입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6월과 7월에 시행한 청소년 정신건강 및 문제 행동 선별설문과 BDI(우울척도검사), SSI-BECK(자살생각척도검사), BAI(불안척도검사) 등의 객관적 지표를 통해 피해학생이 심한 우울상태, 자살충동, 극심한 불안 상태에 있다는 것을 교사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또한 자살위험행동이 반복되었음에도 이런 사실을 부모에게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던 점, 부모가 납득하기 힘들 경우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과 부모가 자녀의 성정체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의 대처에 대해 전문가의 조력을 구하는 등의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위와 같이 본 사건에서 당사자가 느꼈던 고통과 절박함에 비해 교사 및 학교 측의 처신은 교육 및 보호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강병철 등의 연구에서 시사하듯 성소수자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은 일반적인 학교 폭력과 비교해서 더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며 이런 부분에 대해 교사들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에 자문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1, 2심의 판결을 뒤엎은 대법원의 주요 논지인 ‘괴롭힘의 빈도와 정도가 중대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해석 또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폭력이 중대한 수준이 아니라면 어떠한 폭력이 중대하단 말인가. 이는 성소수자에게 사회가 가할 수 있는 폭력을 눈감겠다는 판결 혹은 대법원의 비논리적인 동성애혐오를 그대로 드러낸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 또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침해에 대한 최악의 판결이자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로서 판례집과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부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계와 법원의 합리적인 대응과 깊은 자성, 그리고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13년 8월 12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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