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2] 게이의 여성성, '끼'와 '여성성'의 간극 : 미쿠님 인터뷰
2017-03-24 오후 13: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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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커버스토리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2]

게이의 여성성, '끼'와 '여성성'의 간극 - 미쿠님 인터뷰

 

 

 

 

1. 학창 시절 : "뭘 이해해 네가. 넌 너고 난 난데."
2. 대학 시절 :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내 일틱 연기를 싫어했어요"
3. 군대 생활 : "나도 너 터치 안할 테니 너도 나 터치하지 마"
4.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 1 : ""너를 소개시켜주게 되면, 나는 잃어버릴 게 너무 많다"
5.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 2 : "지금 커밍아웃한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조심해달라구요"
6. 게이 커뮤니티 내 여성성의 위치 : "끼와 여성성은 달라요"
7. "터치"하면서 관계맺는 방법 1 : "저에게 섹스란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이에요"
8. "터치"하면서 관계맺는 방법 2 : "게이여도 괜찮은 세상인데 왜 너는 그렇게 살아?" 

 

 

 

 


터울 :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쿠 : 올해 31살이고, 모 대학 내 I연구소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어요. 국제법규 관련해서 제품에 유해물질이 들어가면 안되는데, 그런 유해물질 관련 서류 검토, 검사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터울 :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미쿠님이 꽤 여성스런 게이이신데, 본인이 겪는 게이의 여성성에 대해서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이성애자 여성이 겪는 여성성의 문제나, 이성애자 남성이 겪는 남성성의 문제는 논의가 좀 되는데, 게이가 겪는 여성성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에서 과장되고 희화화된, 끼스럽게 연출되는 경우는 있지만, 실제로 본인의 삶 속에서 여성스러움이 밀접하게 관계해있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많이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 점에 대해 여쭤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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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창 시절 : "뭘 이해해 네가. 넌 너고 난 난데."

 


터울 : 어린 시절은 어디에서 보냈나요. 

 

미쿠 : 중구 쪽에서 태어나서, 외가가 대조동 쪽이어서 대조동에 살다가, 흑석동에 있다가 청파동, 중림동쪽으로 이사온 것이 6살 때였을 거예요.

 

터울 : 중고등학교 다녔을 때, 한참 2차 성징이 일어나고 성에 대해 궁금해할 나이 때쯤의 기억이 어땠을까요.

 

미쿠 : 지금도 목소리 톤이 높고 해서 2차 성징이 느렸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2차 성징이 생각보다 빠른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도 그렇고 중학교 때도 그렇고, 그 때부터 제가 여성스러웠었나봐요. 그래서 애들이 "야 미쿠양, 커피 좀 타와", 이러고 놀렸어요. 중2때였나 중3때, 운동장을 뛰고 나면 숨이 차니까 헉헉대잖아요. 어떤 애가 그 소리가 좋았나봐요. 그래서 MP3로 녹음해달라고 한 아이도 있었어요. 그리고 일본어도 배웠었는데, 일본어로 "이따이", "야메떼구다사이", 이런 걸 녹음해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터울 :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남자애들 중에?

 

미쿠 : 네, 저 남중 남고 나왔어요.

 

터울 : 그럴 때 싫지 않았어요??

 

미쿠 : 싫진 않았어요. 오히려 그런 애들이 좋았죠. 차라리 뒤에서 호박씨 까거나, "괜찮아, 이해해" 이런 친구들이 더 싫었지. 남자들 혈기 왕성한 거, 좋잖아요. (웃음)

 

터울 : (웃음) 미쿠님이 게이라는 건 언제 알았나요.

 

미쿠 : 게이인 걸 안 건, 중1 때라고 봐야 될 거예요. 그 때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여자랑 못 자니까, (웃음) 걔도 좀 빨랐어요. 그 동네 애들이, 부모님들이 다 일 나가시고, 마주칠 시간이 없는 애들이었어요. 부모님 한 분이 안 계시거나. 내가 살았던 동네는 슬럼이거나, 정말 빡세게 사는 중하층 위주의 동네였죠.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IMF 터지고 난 직후였어요. 그래서 좀 힘들게 살아가던 그런 때였는데, 그러다보니까 집에 부모님이 없으니까, 외로우니까 그냥 살 부대끼고, 이런 거 좋아하고 하잖아요. 남중 남고니까 여자애들이랑 그럴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그랬던 친구가 있었는데, 저는 되게 좋았어요.

 

터울 : 자연스럽게 성경험도 하게 되었나요?

 

미쿠 : 그 때 애널 섹스까지는 성공했다고 보긴 어려워요. 그냥 살 부비고, 서로 막 안고,

 

터울 :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웃음)

 

미쿠 : 그게 아무렇지 않았고, 좋았죠. 또 하고 싶었고. 

 

터울 : 그럼 합의 하에 첫 섹스를 한 건 언제였나요.

 

미쿠 : 합의 하에서 한 첫경험은 늦어요. 고등학생 때로 봐야 겠죠. 사실 그 중1 때 그 친구도 찌르려고 했는데, 걔는 나를 안좋아했던 거였거든요. 나도 이쪽이고, 너도 이쪽인 걸 알고, 서로 번개로 만나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건 고등학교 때예요. 고1 때였나, 고2 때였나. 

 

터울 : 그럼 그 이전에는 합의가 아니라,

 

미쿠 : 합의는 맞아요. 합의는 맞는데, 그 쪽이 날 안 좋아했던 거지. 그냥 심심풀이로 나를 여겼던 애였어요. 그래도 난 걔가 좋았어요, 솔직했으니까. 되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남자를 좋아해요.

 

터울 : 호박씨 까거나, "이해해"라고 말하는 게 더 부적절하게 여겨진다는 건가요. 

 

미쿠 : 그렇죠. 뭘 이해해 네가. 넌 너고 난 난데. 이런 거죠. 

 

터울 : 그러면 학창 시절 때 좋았던 경험 하나랑 싫었던 경험을 각각 하나씩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스스로가 좀 여성스런 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난 후의 학창 시절 경험이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은데,

 

미쿠 : 인정한다기보다, 여성스럽다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들었어요. 1,2학년? 그 때부터 죽 들어왔던 얘기예요. 게이라고 생각한 건 중학생 때니까, 그냥 그 때부터 여성스런 게이였던 거죠. 여성스런 게이여서 좋았던 점은, (잠시 침묵)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언니가 있다는 것? 그냥 터울 언니~ 라고 하거나, 술취해서 언니~ 라고 하는 경우는 있는데, 그런 재미로 하는 것 말고 진짜 언니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터울 : 유사하게 여성스러움이 드러나는 게이들을 만나게 되는 것?

 

미쿠 : 네. 언니들을 만났을 때 기댈 수 있다는 것. 

 

터울 : 그러니까 여기서의 언니는 "끼"가 드러나는 언니를 얘기하는 건가요.

 

미쿠 : 그 느낌 차이가 있는데, "끼스럽다"와 "여성스럽다"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약간 끼스럽거나, 목소리가 여성스럽거나, 행동이 여성스러워도, 그냥 "언니"의 느낌이 안 나는 사람이 있어요. 반면 "언니"라고 불러도 아무렇지 않은 느낌의 사람이 있구요.

 

터울 : 어쨌든 성별 표현이, 완전히 일반 남자 같지는 않은 요소가 들어가있는 분들을 가리키는 거죠?

 

미쿠 : 네. 그리고 형이라고 부를 때랑, 오빠라고 부를 때랑 다 느낌이 다르고, 상황이 달라요. 보통 이성애자들은 1:1 관계에서 형·오빠·누나·언니란 네 가지 표현을 다 활용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여성스런 게이라서 좋은 점은, 저 호칭을 다 사용할 수 있어요, 상황별로. 

 

터울 : 오히려 그게 재밌기도 하고, 

 

미쿠 : 표현력이 더 넓달까, 그리고 실제 주고받는 느낌도 더 풍부하죠.

 

터울 : 그럼 학창 시절 경험 중 힘들거나 싫었던 건,

 

미쿠 : 싫었던 건, 아무래도 친구가 없죠.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고, 거리감을 두고 싶어하고, 선입견도 많고. 또래 게이들 중에 친했던 친구들은 있는데, 거쳐갔던 친구들. 그들은 대개 탈반했거나, 삶을 버렸거나 했어요. 아니면 자기임을 포기했든지. 그런 경우는 자살했다는 게 아니라, 자기 성격을 포기했다고 해야 되나. 그러니까 게이 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땍스럽게 행동하고, 그렇게 가면을 쓴 게 자기가 돼버린 경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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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학 시절 :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내 일틱 연기를 싫어했어요"

 


터울 : 대학에 가게 되면, 어쨌든 남중 남고를 떠났으니 여성도 보게 되고 남성도 보게 됐을 텐데요.

 

미쿠 : 비슷했어요. 제가 들어간 학교의 학과는 남자가 많았고, 여자 학생이 거의 없었어요. K대 화공과에 들어갔는데, 남자가 많고 술을 자주 마셨어요.

 

터울 :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미쿠 : 군대 가기 전 대학이 진짜 재밌었어요. 대학 가서 잘 못 지냈을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터울 : 왜 그렇게들 생각할까요. (웃음)

 

미쿠 : 완전 잘 지냈고, 지금 하는 행동 그대로 했어요. 2학년 때, 재수한 형에게 "형 이제 나 끼 안 떨고 땍 떨 거야" 그러고 놀았어요. 

 

터울 : 일반한테 그런 얘기를 할 정도로 터놓고 지낸 건가요.

 

미쿠 : 그렇죠. 아무 생각 없이, 일반들 이반들 상관없이 제가 먼저 그런 말을 써요. "어 안녕~ 반가워요, 잘생겼네요." 그러고.

 

터울 :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관계 안에서 묻어나도록,

 

미쿠 : 네. 굳이 커밍아웃을 하고 그런 게 아니었고. 

 

터울 : 사실 게이들 중에, 끼를 떤다고 해도, 평소에는 일반 남자랑 구별이 안되는 게이들이 많잖아요. 

 

미쿠 : 많죠. 대부분이 그렇죠.

 

터울 : 거의가 그런데, 미쿠님같은 경우는 일반 남자와 혼동되지 않을 수 있는 여지가 좀더 많은 것 같아요.

 

미쿠 : 그래서 지금 일하는 데서는 저를 트랜스젠더로 생각해요. (웃음)

 

터울 : 그러니까 게이들이 어떤 의미에선 일반 남자들 사이에서 숨어 지낼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미쿠님은 그런 입장이 아니었던 것 같고, 그럼에도 뭔가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숨겼던 게 아니고, 어쨌든 다 까고 다니고 터놓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처럼 들려요.

 

미쿠 : 네. 물론 저도 일반 남자인 척해본 적이 있죠. 그럼 오히려 상대방이 불쾌해했어요. 목소리를 억지로 깔고 말하면, 그게 가식적으로 보인다는 거예요, 위선 떠는 것 같고, 그래서 상대방이 더 거리를 두더라구요. 이쪽(게이)에서는 오히려 그런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내가 대학에서 만났던 일반 친구들은 그런 걸 싫어했어요. 가식적이라고.

 

터울 : 그럼 대학 다니시면서 다른 게이들을 만날 일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 

 

미쿠 : 대학 다닐 때 성소수자 모임이 잠깐 생겼었는데, 조금 활동하다가 유야무야됐어요. 그들과 마주쳐봤는데, 오히려 이쪽 애들이 저를 더 피하더라구요.

 

터울 : 그 피하는 게, 짐작해보면 옆에서 있으면 아웃팅이 될까봐 그랬던 것일까요.

 

미쿠 : 대학교 2학년 때 마주쳤던 게이는, 자기 친구도 이쪽이고 나도 이쪽이긴 한데, 내가 부담스럽다고 문자로 보냈었어요.  

 

터울 : 여성스러운 게 티가 나서?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되게 불쾌했을 것 같아요.

 

미쿠 : 불쾌했죠. 자기는 개끼순이면서 나한테 지랄하는 게. 그런데 이해는 됐어요. 

 

터울 : 어쨌든 그 사람 입장에선, 미쿠님과 같이 있을 때 자기를 더 들키기 쉬운 처지라는 게 이해가 되긴 했다는 건가요. 

 

미쿠 :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게, 고등학생 때 고백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내가 식도 안되고 해서 걔를 찼는데, (웃음) 그런데 문제는, 이후에 오히려 제가 고백을 한 것처럼 소문이 났어요. 그렇게 소문이 와전되더라구요. 고백한 상대는 되게 평범해보이는 애였고, 저는 조용조용하긴 해도 목소리가 딱 튀는 케이스였거든요. 

 

터울 : 그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보다 잘 가시화된다는 걸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요.

 

미쿠 : 이미 알고 있었죠, 충분히. 

 

터울 : 그럼 주로 남성과 지냈던 기간이 무척 길었던 셈이네요.. 군대를 포함하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쿠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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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대 생활 : "나도 너 터치 안할 테니 너도 나 터치하지 마"

 


터울 :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된 건데, 훈련소 들어가서는 어땠나요.

 

미쿠 : 특별히 나쁘지는 않았어요. 중고등학교를 남중·남고를 나와서 그런지, 그런 데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았달까요. 대학교도 거의 남자가 대부분이었고. 

 

터울 : 남자랑 지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좀더 설명을 듣고 싶어요. 자기가 여성스럽다는 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었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관계가 자연스러워질까요.

 

미쿠 : 그냥 솔직하게 가요. 일부러 안되는 땍 안 떨고. 물론 그게 되는 애들은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게 사는 데 이로우니까. 그런데 저는 어차피 해봤자 안될 거니까 안 해요. 그러니까 "나는 너의 영역엔 침범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의 영역에 침범하지 마세요", 그게 일반 남자애들과 가장 잘 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너 터치 안할 테니 너도 나 터치하지 마", 그런 거죠.

 

터울 : 그럼 훈련소 때 그렇게 지내서 특별히 나빴던 기억은 없었나요.

 

미쿠 : 나빴던 기억은 없고, 오히려 애들이 잘해줬어요. 힘쓰는 일 별로 안 시키고. (웃음) 희롱 같은 건 좀 있었는데, 조교같은 사람이 밤에 와서 노래 불러보라거나 하는 일은 있었어요. 그런데 불쾌하지는 않았어요. 노래 한번 불러준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지는 건 아니니까, 너넨 너네 방식을 따르렴, 나는 안 참견할게, 그런 식이었어요. 

 

터울 : 그런데 그런 경우에 "터치"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을 텐데,

 

미쿠 : 있죠, 소위 아버지 군번이라고 하는, 

 

터울 : 그러니까 자대 배치 받고 난 후에, 

 

미쿠 : 그 사람이 장난을 많이 치는 성격이었어요. 부대 특성상 여군 장교가 많았고, 보급장교도 여자였는데. 그러다보니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야 되나? 부대 내에서 좀 애매한 위치였어요. "터치"라는 것이, 와서는 "너 목소리 깔아봐", 이런 식이었어요. 그럴 때 저는 거기에 응하지를 않았어요. 그런 "터치"를 해오면 나는 입 닥치고 있는 거죠. 네가 욕을 하든 때리든 난 안한다, "너 왜 그래, 장난치지 말고 (남자답게)다시 말해봐", 그러는데 꿋꿋하게 응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부대 사람들이 그 "터치"를 이틀만에 포기했어요. 제가 무시하니까. 하란 대로 하질 않으니까. 

 

터울 : 그럴 때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구요?

 

미쿠 : 안 맞으면서 무시하는 방법을 체득했다고 봐야죠. (웃음)

 

터울 : 어떻게 하면 안 맞을 수 있나요. (웃음)

 

미쿠 : "목소리 깔아봐"라고 했을 때, (여전히 여성스런 톤으로)"아,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거죠. (웃음) 그러니까 속으로는 '너의 말은 인정하겠지만, 나는 일단 들어는 줄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할 마음이 없거든.' 이런 걸 엄청 돌려 말하는 거?

 

터울 : 사실 그렇게 되면 초반부터, 저 친구는 좀 그냥 특이한 사람이구나, 그런 낙인이 찍히게 되겠군요. 

 

미쿠 : 낙인이 찍히는 거죠. 그런데 낙인이 찍히는 게 제 입장에선 싫지 않았던 거예요. 나도 너 "터치" 안할 테니까 너도 나 "터치"하지 마, 낙인을 찍든 뭐하든 상관없으니까, 그런 식이었어요. 

 

터울 : 오히려 그게 편했던 건가요. 거리를 두고 대해 주는 게.

 

미쿠 :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죠. (웃음) 그 방법으로 살아남았어요.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게, 제가 자대배치 받고 한달인가 두달만에, 저와 상관없는 폭력 사건이 부대 내에서 터졌어요. 그래서 선임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안 그래도 풀린 군번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두 달만에 갔던 훈련에서, 제가 군번이 세 번째로 빠르게 돼버렸어요. 이등병인데도. 

 

터울 : 선임이 전부 사라진 셈인데, 그럼 군생활하기에 좀 편했을 수 있겠어요.

 

미쿠 : 아니죠, 오히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죠. 차라리 위의 선임들이 (나에게)더 조심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선입견이 있으니까, 나는 여성스럽고 하니까, 누군가가 날 괴롭힐 거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지켜주려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선임들도 걱정했던 게, 넌 분명 밑의 애들이 100퍼센트 치고 올라올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정말 100퍼센트였어요.

 

터울 : 후임 대하기가 더 힘들었던 셈이군요.

 

미쿠 : 후임들이 저를 대하는 게, "너가 뭔데?" 이런 식이었어요.

 

터울 : 여성스런 선임의 존재가, 뭔가 말이 안 먹히고 명이 안 서는 그런 거였군요. 차라리 선임이 있으면 기강을 잡아줄 텐데, 그럴 수 없어서 더 힘들었고,

 

미쿠 : 그렇죠. 그리고 그건 사회생활에도 좀 연장되는 부분이에요. 가령 후임에게 "이거 좀 해줘요" 이러면, 그냥 쌩까고. "너가 뭔데?" 이런 식이었어요. 6-7개월 이상 차이나는 후임이 나를 부르는 명칭이 "너"였어요. 가령 군대에 그런 친구들 있잖아요, 군인의 자녀로 들어온 애들. 그런 애가 처음에 개기기 시작했어요. 외국물 먹고 와서, 집에서 돈은 부었는데 영어만 대충 배우고 온 애들. 아무 것도 못 배우니까 집에서 빨리 군대나 보내자 해서 들어온 친구가 왔는데, 걔가 개기기 시작했어요. 다른 애들도 개기기 시작했고. 그걸 맞후임이 좀 보호해줬죠.

 

터울 : 맞후임이랑 친하게 지냈나요?

 

미쿠 : 걔랑 그렇게 친하진 않았어요. 그냥 너무 안쓰러웠나봐요. (웃음) 

 

터울 : 물론 군대는 후임 대하는 게 더 힘들긴 하지만, 그 정도의 대우는 사실 군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미쿠 : 둘이 있거나, 동기가 없거나, 나를 지켜주는 애들이 없을 때 주로 그렇게 대했어요. 후임들이 단체로 와서 놀리기도 했고. 

 

터울 : 힘들었을 것 같아요.

 

미쿠 : 그런데 예상했었고, 예상대로 된 거예요. 제가 살아올 때 죽 그렇게 살아왔었으니까. 아까 말했잖아요. "나도 너 터치 안할 테니까 너도 나 터치하지 마"가 제 전략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뭘 시켜야 되는 건 그들에게 "터치"가 되는 거잖아요. "내가 널 터치할게", 이렇게 되니까 그쪽에서도 절 "터치"하는 식인 거죠. "왜 너같은 애한테 터치를 받아야 돼?" 이렇게 되는.

 

터울 : 사실 인간관계는 "터치"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는데, "터치"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관계를 맺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 아닌가요.

 

미쿠 : 되게 힘들죠. 되게 힘들고, 친해졌던 애들을 보면, 내가 얘랑 친해지면 좋겠다 해서 접근한 애들 중에 실제로 친해진 경우는 없어요. 나중에 친해지는 경우는, 원래 친했던 애의 친구라든지. 그런 경우는 어중간하게 붕 뜬 상태에서 계속 마주치고, 그러다 그냥 친해지는 식이죠. 그리고 제가 먼저 친해지자는 제스쳐를 취해서 친해진 경우는 없어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우리집 놀러와, 너랑 친해지고 싶어", 이런 식으로 말했던 이들이랑 친해졌지, 제가 선택한 경우는 드물어요. 그건 애정관계에서도 그렇고, 친구관계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제가 늘 그렇게 얘기해요, 나 늘 고백받아서 사귀었다고. (웃음) 왜냐하면 고백하면 다 까였으니까.

 

터울 : 그럼 부대 내의 다른 여성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미쿠 : 부대에 보수적인 여성 군무원이 있었는데, 그 아줌마가 나를 진짜 싫어했어요. 마치 더러운 새끼 보듯이 싫어했어요. 되게 보수적이고, 뭔가 꽉 막힌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여성들은, 부대 특성상 여성 장교들이 많았는데, 한 장교가 당시 임신 중이었어요. 그 장교는 나랑 얘기하는 걸 좋아했어요. 보통 여성 장교가 남자 사병이랑 한 방에 같이 있게 되면 문을 열어놓는데, 저랑 있으면 문을 닫고 이야기했어요. 

 

터울 : 일반적으로 왜 열어놓는 건가요.

 

미쿠 : 군대에서 원래 남녀가 있으면 으레 열어놓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 장교가 문을 닫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다른 애들 뒷담 까려고. (웃음) 원래부터 저랑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뒷담 아니면, "쟤 어떄?" 이러면서 남자 품평 같이 하고. 가령 "쟤 어때?" 이러면 "쟤 좀 실해요" 이러고. 전 어쨌든 같이 씻으니까. (웃음) 

 

터울 : 죽 들어보니까 그런 느낌이 있어요. 숨겨지지 않는 여성스러움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삶에서, 생활 안에서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스킬이 살다보니 익혀진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미쿠 :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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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 1 : ""너를 소개시켜주게 되면, 나는 잃어버릴 게 너무 많다"

 


터울 : 궁금한 게, 사실 게이커뮤니티 안에서 여성스러운 게이, 티가 잘나는 여성스러운 게이랑, 얼핏 보면 일반인 것 같은 게이랑, 사회적인 신분이 같다고 생각되지 않거든요. 처지가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군대 갔다와서 게이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미쿠 : 게이쪽 영어회화 모임이나, 학교에서 이쪽 모임 나갔을 때, 일틱한 게이들이 좀 나와 '격' 차이를 두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딱 그렇게 말하는 거죠, "쟤는 오바해서 끼떨고 되게 여성스러운데, 나는 그냥 여기 나와서 재미로 끼떠는 거지, 나는 평소에 저렇게까지 하진 않아", 이런 식으로 격 차이를 벌리더라구요.

 

터울 : 그러니까 끼를 원할 때 떨거나 안 떨 수 있는 게 자기들이고, 미쿠님은 그냥 원래 숨길 수 없는 여성성을 가졌다, 그런 차원의 이야기를 한 건가요.

 

미쿠 : 네. 자연뽕, 자연뽕 이러면서. 

 

터울 : 그렇게 얘기하면서 본인들이 더 격이 높다고 생각한 건가요.

 

미쿠 : 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사회적 격이 더 높아요. 더 잘 살고. 

 

터울 : 이성애자 남성으로 "패싱"이 잘되는,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 

 

미쿠 : 더 잘 살죠.

 

터울 : 그들과의 관계에서 피곤한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미쿠 : 그들에게 서빙을 해줘야 해요. 사적으로 만나든, 알바하는 데서 만나든, 나는 그냥 서빙하는 사람인 거예요. 옆에서 그냥 "아 너무 재밌어요~" 이러고 끼떠는 위치인 거죠. 서비스하는 사람. 끼를 서빙하는 사람. (웃음) 

 

터울 : 사실 게이의 여성성과 여성의 여성성이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이 있는데, 어떤 여성을 '서빙하는 입장'으로만 두는 것도 여성이 으레 겪는 전형적인 경험이잖아요. 직업 선택에 있어서도 여성이 훨씬 서비스업에 많이 가고. 그래서 자신의 여성성과 관련해서 미쿠님이 알바나 직업 선택을 했을 때 겪었던 얘기를 좀더 듣고 싶어요.

 

미쿠 : 만났던 남자가 한 명 있는데, 지금은 지방대 교수가 됐어요. 거의 2년 만났고, 섹스파트너보다는 좀더 깊고, 연애라기엔 애매한 관계였죠. 그래도 애정은 분명 있었고. 제 가정사정을 알아서, 지낼 데 없으면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하고, 저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 형이 당시에 사업체를 하고 있었는데, 제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터울 : 그 제안에 어떻게 답했나요.

 

미쿠 :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자였고, 운이 좋아서 만나게 된 거였는데, 제가 대학 졸업하고 일자리가 변변찮으니까, 그 형이 그러더라구요. 자기 주위의 게이 동생에게 일자리 소개 시켜주고 했었고, 자기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입장인데, 저는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너를 소개시켜주게 되면, 나는 잃어버릴 게 너무 많다"고 말했어요.

 

터울 : 미쿠님 같은 사람을 추천하게 되면 자기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미쿠 : 네. 그리고 평소에 저와 일반 가게나 와인바 등에도 가고 싶은데, 저랑 같이 가는 게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었어요. 주로 거의 집에서 데이트를 했고, 아니면 완전 떨어진 도시의 처음 가는 가게로 가곤 했어요. 아무도 둘을 못 알아보는 곳으로.

 

터울 : 그럼 결국 그 제안이란 게, 정말로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다른 게이들은 해줬는데 미쿠님은 안될 것 같단 식의 얘기를 한 건가요?

 

미쿠 : 아뇨, 그 형이 너무 해주고는 싶어했어요. 그러면서 그 형은 제가 조금 더 일반적으로 살면 안되냐,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포기 못할 것 같다고 대답하니까, 그 형이 그랬어요. "네가 선택한 길 자체가, 너의 모습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나도 너에게 조언을 해줄 수가 없고 도와줄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나랑 사귈 수도 없을 것 같다고 한 거죠. 그래도 어쨌든 인연이 있었으니까 제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 말이 되게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더 솔직하게 들렸어요. “나는 너에게 해줄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나는 너랑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네가 잘 못 지내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렇지만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너의 선택이니까”, 그런 뜻이잖아요. 그 뜻으로 말한 거고, 아무것도 돌려 말한 게 없으니까. 그게 솔직하고 좋았어요.

 

터울 : 그럼 직업소개와 관련되어 다른 분들은 어떘나요.


미쿠 : 대학 졸업할 때 주위의 교수님이나 선배들도 뭔가 소개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자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제안해도, 자기가 직접 소개하는 건 힘들 것 같다는 반응이었어요. “넌 너무 좋은 애인데, 내 이름을 걸고 소개시켜줄 수는 없어”, 이런 식이었어요. 그러다 게이 가라오케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됐는데, 그 분들 중 한명이 소식을 접하더니 "너한테도 그게 어울리는 길일 수 있겠다"라고 말하더라구요.

 

터울 : 그럼 주로 어떤 일을 했었나요. 
 

미쿠 : 사실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했어요. 장애인 하우스메이트 활동보조 일도 했었고. 공장에서도 일하고, 서비스일도 하고, 이것저것 했었어요. 판매직도 하고. 한번은 전공을 살려서 화학분석과 가장 관련있는 기술원에서도 일했었어요. 그곳에서는 사람들과 정말 잘 지냈었죠. 
그런데 오히려 장애·사회복지·사회학 배웠다는 사람들의 경우는, 대개 저한테 너무 무례하게 대했어요.

 

터울 : 그런 걸 배운 사람이 오히려?

 

미쿠 : 네, 차라리 그 외 나머지 인텔리들은, 그냥 그거였어요, 너도 나의 필드 터치하지 말고, 나도 너의 필드 터치하지 않는다, 그게 먹히는 사람들이었고, 저에 대해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겪은 사회복지하는 사람들은, "이해해" 이러면서, 은근슬쩍 "자기는 남자친구 있어요, 여자친구 있어요?" 이런 식으로 물어봐요. 말이야 방구야. "저는 다 이해해요~"라니. 

 

터울 : "이해한다"는 말이 미쿠님에게 되게 민감한 말인 것 같아요. 

 

미쿠 : “내가 왜 너한테 이해를 받아야 돼?” 이런 거죠.

 

터울 : 그러니까 그런 말이, 그 말을 하는 자신이 미쿠님을 동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연한 증거처럼 보이는 건가요.

 

미쿠 : 그렇죠. 넌 나랑 급이 달라, 이런 얘기잖아요. 물론 나도 알아요, 내가 그들과 급이 다르다는 건. 그런데 그걸 왜 굳이 자기들이 강조하는 거죠?

 

터울 : 그런 맥락에서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는 거군요.

 

미쿠 : 그런 사람들은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는 미리 내가 할 일을 없애버리기도 해요. "아 그러면 ‘이해’하고요, 그럼 이런 일은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러면서 나를 애초에 어떤 일을 못하는 애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터울 : 그건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라기보다는, 미쿠님이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랬다는 건가요.

 

미쿠 : 거의가 그랬어요. 

 

터울 : 그럼 일을 많이 하다보면 면접을 많이 하러 다녔을 텐데, 드러나는 여성성 때문에 피해를 본 경험은 있었나요.

 

미쿠 : 우선 지원할 때, 전화면접을 할 경우엔 거기서 이미 걸러져요. 원서의 얼굴과 목소리가 매치가 안되니까. (웃음) "저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오죠. 그리고 목소리를 듣고도 OK하는 곳은,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직장이고, 그다지 좋은 직장은 아닌 경우가 많아요. 들어가는 문턱이 낮은 곳이 많고, 아니면 사람이 잘 안 오는 직장에 주로 들어가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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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만나 본 많은 국제결혼 여성들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나친 개입과 관심이 때로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이주여성들이 흔히 하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은 한국 사회가 편협하게 범주화한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의 이미지와 다른 것으로 개별화되고, 지속적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자아를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에 대한 표현이다. 또한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은 본국에서처럼 일도 하고 친구도 사귀면서 평범한 존재로 살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외국인이라는 표식 때문에 이질적이고 결핍된 존재로 대상화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자주 표현한다. 

 

- 김현미, 「누가 '모범적'인 이주자인가? : 한국사회 이주민 제작 영화와 정동적 인격의 구성」, 서울시립미술관 『'아프리카 나우 : POLITICAL PATTERNS' 전시연계 콜로퀴움 자료집』, 2015.1.23. 68-69쪽.

 

 

 

 

 

 

5.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 2 :

"지금 커밍아웃한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조심해달라구요"

 


터울 : 학교 다닐 때 이과대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 활동하다가, 드러나는 여성성의 문제 때문에 채용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럼 지금 일하는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미쿠 : 지금은 파견직이고, 연구소라지만 연구소의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처음엔 다른 일을 했는데, 지금은 서류를 보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이것도 하네? 이것도 할 줄 아네? 이러면서 뭘 계속 시키는 식이에요. 원래 시키려고 했던 건, 주야장천 단순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연구소 과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나한테 단순업무만 시킬 수도 있는데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여기서도 후임과의 문제가 여전히 있어요. 나는 후임에게 '저'라고 하는데, 후임은 선임에게 '나'라고 해요.

 

터울 : 이건 군대에서부터 매번 반복되는 문제 같네요. 남성 후임이 미쿠님을 선임으로 대접해주지 않는 문제는.

 

미쿠 : 네. 그리고 여성 후임의 경우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어쨌든 과장님이 요새 저한테 일 잘한다고 칭찬해줘요. 그런데 사실 말이 안되는 거긴 해요. 나는 파견직이고 알바생인데, 전문적인 업무를 시키고 제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한다는 게. 

 

터울 : 그러니까 훨씬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사실 할 필요가 없는, 정규직이 할 법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만약 미쿠님이 만약에 여성스럽지만 않았더라면, 정규직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이 부당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쿠 : 이제는 별로 부당하게 여겨지지 않아요. 대학원 잠깐 다닐 땐 몹시 그게 부당하게 느껴졌어요. 채용 과정에서의 장벽 뿐만 아니라, 막상 일하게 될 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인간취급 안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들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터울 : 그래서 이후로부턴 그런 걸 체념하고 살게 된 건가요.

 

미쿠 : 아무래도 그렇죠. 지금 다니는 직장은, 학력이 좋은 본사 사람이랑 상대적으로 학력이 안좋은 파견 사람이랑 나를 대우하는 게 차이가 나는 편이에요. 본사 사람의 경우에는, 회식 때 대리가 와서, 대학 때 성소수자에 대해 들었다고 하고, 그쪽이 어떤 정체성인지는 상관없고 일만 잘해주면 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아까 말한 과장님과는 기숙사도 챙겨주시고 해서 친해졌는데, 이 과장님이 나한테 "남자친구 있어, 여자친구 있어?"라고 물어봤었어요. 난 그래서 "말해도 돼요? 저 남자친구 있는데, 주말에 연락하셨을 때 저 성생활 중이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주말에는 연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썸남이 싫어해요." 이렇게 대답했어요.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웃음) 

 

터울 : (웃음) 그랬더니 뭐라시던가요.

 

미쿠 : "지금 커밍아웃한 거야?"라고 대답하시더라구요.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조심해달라구요" 라고 말했죠.

 

터울 : 커밍아웃은 아니고,

 

미쿠 : 커밍아웃은 아니고, 있었던 사실을 전달한 거예요.

 

터울 : 여기서 커밍아웃이 논점이 아닌 셈이군요.

 

미쿠 : 네. 그러니까 그렇게 말을 해도, 본사 사람들은 노터치인 거죠. 그 사람들에겐 내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일해주면 땡인 거니까. 

 

터울 : 그럼 파견직 사이에서는 어떤 트러블이 있었나요. 

 

미쿠 : 일단 저는 파견사 소속인데, 파견사 사람들과는 일하는 게 안 겹쳐요.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들은 제 앞에서 난데없이 "나 게이친구 있는데," 이렇게 들으라는 듯 이야기해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제가 옆에 있는데 옆사람에게 "미쿠씨한테 이거 좀 전해줘요"라고 한다든지. 그냥 그런 분위기예요. 또는 초면에 "어 되게 이태원에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시겠어요~" 이런 말을 건네는 식이죠. 나는 너랑 말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그렇게 말하지? "안녕하세요" 대신에 "종로나 이태원 잘 가시겠어요" 라니.

 

터울 : 그 말이 불편한 포인트가 어떤 부분일까요. 그들의 편을 들어보자면, 게이인 것 같으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미쿠 : 그들은 평소에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인사를 안받아요. 그러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와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배웠더라도, 차라리 사회복지 쪽이 아니라 이과 쪽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별로 그런 게 없었어요. 그런데 졸업 후에 일했던 데는, 제가 전공을 살려서 일했던 게 아니었고, 주로 서비스직을 했다보니까 아무래도. 반면에 학부 다닐 때 연구소에 있던 친구들은 저랑 되게 잘 지냈어요. 그 정도로 사적인 질문을 해도, 평소에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놓고 질문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알았던 거죠. 

 

터울 : 주위에 MTF 트랜스젠더분들이 계신다고 들었어요. 사실 MTF 트랜스젠더분들이 겪는 직업적 차별이 심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미쿠 : 주위에 몇 분 계세요. 그 중 한 분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친해졌는데, 그 언니는 강원도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일해요. 원래 이태원에서도 일했었는데, 그만두고 거기서 일하세요. 공장에서 일할 땐 자기가 남자라고 밝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놀림도 받는 것 같고, 관리자가 말도 안되게 하대한다고 들었어요. "야이 씨발년아" 이러면서,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애인데. 그런데 안좋은 일을 해도, 사실 그 언니는 애초에 언제 잘려도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는 막상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배운 것도 없고, 했던 일도 이렇고, 기술도 안 쌓였고. 미래가 불투명한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그렇고. 
또 한 명은 인천에 사는 친구가 있어요. '수술'을 준비중인 친구인데, 생긴 것이 되레 우람해요. 패싱이 잘 안될 법한 외모라 아쉽죠. 일하는 것도 힘쓰는 일이고.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런 애들 보면 되게 열심히 살아가요. 일하는 거 보면 주로 술집, 아니면 공장 같은 곳에서 위험한 일을 주로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정체성으로 인한 실질적 차별을 겪지 않은 것은 고용, 채용 및 근무 과정에서 언제나 정체성을 숨겼고, 웬만하면 혼자 또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으며, 동료가 있는 경우에도 근무 외 대면을 가급적 피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으로 인한 불이익을 우려해 고용 형태에 대한 선택이 사전에 제한되었다. (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 45세)

 

좋은 조건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서 이곳, 저곳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10군데 중 6곳은 대부분 외모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많이 들었던 말이 머리를 길러볼 생각이 없느냐(현재 단발보단 약간 짧은 머리), 옷을 여성스럽게 입을 생각이 없느냐, 또는 유니폼이 치마라서 꼭 입어야 한다 등이었다. 화장을 해서라도 여자답게 하라는 말도 들은 적이 많다. [...] (여성, 동성애자/양성애자, 26세)

 

채용 후 연락을 준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연락이 없어 사측에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는 안 받고 문자로 '내 주민번호를 조회 후 이상한 사람이라 판단하여 다른 사람 구한다'는 내용을 통보받았다. (FTM, 27세)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지만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고용 거부당한 적이 많다. (MTF, 38세)

 

- 국가인권위원회,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2014.12., 117-118,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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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게이 커뮤니티 내 여성성의 위치 : "끼와 여성성은 달라요"

 


터울 : 마지막 질문인데, 게이 커뮤니티 얘기를 하려고 해요. 게이 커뮤니티에서 여성성이라는 게 무슨 의미냐를 물어볼 건데,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소위 끼없는 게이 없다는 얘기가 있지만, 끼를 떨 수 있거나 안 떨 수 있는 이런 사람들과, 자연뽕이든지 뭐든지 여성성을 숨기기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 굉장히 큰 격차가 있는 것 같아요.  

 

미쿠 : 끼와 여성성은 다른 것 같아요. 계속 끼와 여성성을 동급으로 두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이상하게 들려요. 그래서 질문도 이상하게 느껴져요. 끼와 여성성을 말하자면, 오히려 여성스런 게이들 보면 되게 평범해요. 그냥 집에서 조용히 있거나 하고. 예전에 같이 지내던 형이 다른 사람에게 날 소개할 때 "얘 되게 평범하다"고 했었어요. 평소에 오버하면서 "와우 좋아요~" 이런 모습이 아니고, 손님 오니까 안주인처럼 (웃음) 편한 옷 입고 라면 끓여올리고, 그런 식이에요.

 

터울 : 그럼 끼는 일종의 과장인 건가요.

 

미쿠 : 과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것도 자기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끼와 여성성은 다른데, 끼는 화려한 모습인 거고, 평범하지 않은 모습인 거고. 반짝반짝 빛나는 화려함, 그런 모습인 거구요. 여성성의 경우는 오히려 그냥, "어 네 안녕하세요" 그러고 그냥, 어떻게 보면 내성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터울 : 액팅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미쿠 : 그러니까 그냥 '삶'인 거예요. 

 

터울 : 그냥 '삶'.

 

미쿠 : 물론 여성스러우면서 끼스러우면, 그 시너지 효과가 폭발하는 거구요. 안그래도 눈에 띄는 여성스런 애가 끼까지 떠네! 이렇게 되는 거고. 남성스러운데 끼스러운 애들도 있는데, 그런 애들은 좀 개그맨처럼 보이는 거고. 좀 다른 것 같아요. 게이 커뮤니티에서 끼는 어떤 의미로 좋아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끼 없는 친구를 싫어하니까. 

 

터울 : 그게 놀이의 방법이기도 하고, 문화 코드이기도 하고,

 

미쿠 : 문화적으로 뛰어나기도 하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조절할 수만 있다면. 일종의 게이 커뮤니티의 팔리는 연애 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스펙 중의 하나인 것 같은데, 여성성은.... 일종의 금물? 사람 만날 때, 자기는 남자를 좋아해서 여길 나온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나 우리나라 같이 남녀가 아예 다른 사회에서 자라다시피 하는 곳에서, 그런 "남자 좋아해서 나왔다"는 친구들한테 여성성을 대놓고 갖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가 될까... 만나던 남자 형들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나는 남자를 좋아해", 그런 말. 

 

터울 : 그 말인즉슨 미쿠님이 남자로 패싱이 안된다는 얘기인가요.

 

미쿠 : 직장의 본사 분들도 저를 트랜스젠더로 알아요. 그래서 되게 조심해주시기도 하고. 

 

터울 : 이를테면 끼를 떠는 게 여성성의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미쿠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끼와 여성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미쿠 : 근본적으로 다르고, 여성스러워서 눈에 띄는데 끼까지 떨면 포텐이 터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스런 사람들이 표현이나 제스처가 풍부하니까, 눈에 띄는 시너지 효과가 높은 것뿐이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터울 : 게이가 끼는 알아도 여성성은 잘 모르고, 실은 여성성 혐오가 더 심하고 그것을 회피하는 구석이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미쿠 : 네. 더불어 이성애자 여성 스스로도 여성성에 대한 혐오가 좀 있는 것 같아요.

 

터울 : 이성애자 여성 스스로도?

 

미쿠 : 네. 날더러 "너무 여성스러워요, 저 목소리 따라해보고 싶어요~" 라고 하는데, 뉘앙스가 명백히 놀리는 거잖아요. 평소에 인사도 제대로 안하던 애들이. 그러면서 그걸 내심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웃겨요. 그들이 가진 모습도 나쁜 게 아닌데, 왜 굳이 나한테까지 와서 용심을 부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드려요. "XX씨 모습도 그 자체로 이쁘고, 굳이 저랑 다른 영역이니까, 그런 식으로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고 말하거나, 그래도 말이 안통하면 1:1로 불러요. "그렇게 하면 재밌어요? 다시 한번 똑같이 말해보실래요?" 그렇게 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터울 : 그럴 경우 그 사람들은 미쿠님의 여성성을 끼로 만들고, 그걸 희화화시키는 셈인 건가요.

 

미쿠 :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도 여성성과 끼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여요. 오히려 게이나 이성애자 남자애들은 그런 구분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구분이 잘 되니까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는 게 되는? 그런데 걔네들은 그냥 따라해보거나, 제 사적인 삶의 요소를 끄집어내서 흔들고는 "너무 신기해~" 그러고 있는 거죠. 친하지도 않으면서. 
반면에 남자애들의 여성성 혐오는, 그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제가 여성스러운 게,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상황이 되면, 가령 제가 여성스런 모습으로 그들한테 일을 시켜, 그러면 침범한 거잖아요. 그런 게 자기 영역에 들어온 순간 남자들은 지랄하죠. 

 

터울 : 남성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미쿠 : 그러니까 여성스런 애가 와서 일을 시키면, "저 이상한 호모새끼같은 애가 와가지고 나한테 왜 이런 일을 시켜?" 이런 표현을 실제로 뒤에서 쓰더라구요. 그런데 반대로 그런 남자들은 자기 영역을 건들지만 않으면 또 OK예요. 

 

터울 : 그건 일반 남자 뿐만 아니라 게이여도 그런 건가요.

 

미쿠 : 거의 비슷해요. 자기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을 경우엔, 남자들은 도리어 재밌어해요. 일단 대하기에 부드러우니까. 

 

터울 : 다시 요약하면, 끼를 떠는/안 떨 수도 있는 게이와, 여성성을 흠씬 갖고 있는 게이 사이에, 아까 "이해한다"는 말이 싫다는 것처럼, 그 둘은 사실 철저히 다른 존재로 각인된다는 건가.

 

미쿠 : 그렇죠. 끼스러우면서 여성스러울 수도 있고, 끼가 없으면서 여성스러울 수도 있는 거고.

 

터울 : 그럼 그 두 부류가 어떻게 관계맺는 게 좋을까요. 이를테면 서로 "터치"한 이후가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건데,

 

미쿠 : 사실 제가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어느 게이 커뮤니티에 가면 저는 주로 끼 떨고 소프트한 것만 얘기할 권리가 있고, 하드하거나 정치 같은 깊은 얘기는 나누기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겨져요. 그러니까 보호받아야 되는 존재, 하드한 얘기는 못하는 존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일에 대한 부분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그 커뮤니티에서 마음이 떠나요. 아까 사회복지 전공자의 사례처럼, 내 권리를 줄이는 것 같아요. "얘는 이게 안될 것 같다"는 식으로. 그런 소리를 안들으려고 미친 듯이 일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돈을 덜 받더라도. 그리고 그건 일하는 장소 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해당되는 얘기예요. 

 

터울 : 저도 사석에서 미쿠님을 봤을 때는, 그냥 좀 개그스러운 얘기만 계속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얘기해보면 사실 되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그렇게 스스로도 개그스러운 얘기만 하는 건, 일부러 그렇게 배려하는 건가요.

 

미쿠 : 포기이자 배려죠. 아까 얘기했듯, "너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테니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줘", 사실 게이도 남자라서, 그게 게이 사회에서 제가 살아남는 방법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게이들이 오히려 더 남성스럽다고 생각해요, 훨씬.

 

터울 : 기대가 없으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관계 세팅을 한 게 있는 셈이군요.

 

미쿠 : 그 기대를 안 가지는 선입견이 생기니까, 사실 누굴 만나도 별로 기대하는 게 없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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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터치"하면서 관계맺는 방법 1

: "저에게 섹스란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이에요"

 


터울 : 그래도 그 기대없음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관계가 깊어질 때, 그럴 때는 언제인가요.

 

미쿠 : 그 계기는 다 성적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성적인 것에 많이 목매는 이유가, 섹스로 맺어진 관계는 제 남친이자 남편인 거예요. 물론 일반 남자친구들도 있고, 일반 여자친구도 있지만, 걔네한테 못하는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저랑 정말 같이 다닐 수도 있는 사람. 친구들은 다 바쁘니까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줄 수 있는.

 

터울 : 그건 애인 관계에서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섹스파트너나 썸일 때도 그런 건가요.

 

미쿠 : 애인이든 썸이든 뭐든, 저는 그런 걸 기대하고 만나요.

 

터울 : 그러니까 관계에 대한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인 거군요. 

 

미쿠 : 네. 그래서 제가 섹스를 많이 얘기하는 이유가, 저한테는 그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터울 : 관계의 회복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미쿠 : 네. 그리고 찜방에 갔을 때도 관계 회복에 대한 느낌을 느껴요. 그런 곳은 저에게는 힐링의 공간이에요. 내가 나일 수 있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고, 누군가 나를 끼떨고 서비스하는 애로 취급하지 않는, 내가 하나의 '인간'이 되는 공간이 찜방이에요. 

 

터울 : 이해가 되면서,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미쿠 : 저는 씁쓸하진 않아요. 그리고 여성스럽다는 사람들이 소위 남친이나 남편이 생기면, 보통 잠적해버리잖아요. 

 

터울 : 그건 그간 사람들 사이에서 미진했던 관계성을 그 사람에게 확 투사해서, 그 사람을 통해 그 관계성을 해소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그런 건가요.

 

미쿠 : 네. 이 사람이 떠나가지 않도록.

 

터울 : 그럼 이쯤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해볼게요. 

 

미쿠 : 도발해봐요. 얼마나 섹시한지 볼게요. (웃음) 

 

터울 : 그러니까 미쿠님 말에 따르면, 미쿠님의 인간관계 중에 1) "터치"하지 않는 관계가 있고, 2) 섹스와 연결이 되어서 자신의 관계성을 회복받는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저는 제3의 관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저의 경우, 사실 미쿠님의 문법에 따르면, 저는 그다지 여성스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끼를 떨긴 하지만. 그리고 미쿠님은 상대적으로 더 여성스런 사람이죠. 그런데 우리 둘이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섹스는 안했고, 그럼에도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터치"는 지금도 하고 있는 거잖아요.

 

미쿠 : 우리 키스했었어요. (웃음)

 

터울 : 아 언제요? 술 먹고? (웃음) 그럼 그것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거예요? (웃음)

 

미쿠 : 네. (웃음)

 

터울 : 알겠습니다. (웃음) 어쨌든 터치안함, 섹스, 그것 이외의 관계가 생겨나는 게 사실 좋지 않을까요. 힘들더라도. 

 

미쿠 : 그 외의 친한 사람들이 제겐 언니인 거죠. (웃음) 

 

터울 : 그럼 저는 언니인가요?

 

미쿠 : 아니에요. 키스했었다고 했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2)는 대충 그런 거예요. 얘랑 꼭 섹스는 안해도 되는데, 그냥 섹시한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

 

터울 : 그럼 저는 2)에 들어가는 건가요.

 

미쿠 : 맞아요. 터울 나쁘지 않아요. 물론 터울 애인이 더 좋지만. (웃음)

 

터울 : 잘 알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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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터치"하면서 관계맺는 방법 2

: "게이여도 괜찮은 세상인데 왜 너는 그렇게 살아?" 

 


터울 : 진짜 마지막 질문이에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언급했었는데, 그래도 꿈꾸는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쿠 : 잘 모르겠어요. 삶에 롤모델이 없는 것 같고, 죽음? 객사? 자살?의 위협에 늘 조금씩 시달려요. 그 때 그 형이 이런 말도 했어요. "네가 어릴 때는 어쨌든 누군가가 어린 맛에 너를 이리저리 쓰긴 했지만, 네가 좀더 나이가 들면, 일반이나 게이 중에 누가 너를 써줄까? 안 써줄 것 같다, 나이 들면 아무도 너를 써주지 않고 너를 찾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맞는 말이에요. 그 남자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관계적, 감정적으로도 저는 점점 더 결핍되어갈 것 같단 생각을 해요.

 

터울 : 그래도 같이 살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 방법이 어떤 것일지 모르겠고, 저도 사실 미쿠님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요. 오늘 인터뷰에서 제일 인상에 남고 중요한 말이, "이해한다"는 말이 너무 듣기 싫다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말은 굉장히 핵심적이고, 이 인터뷰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미쿠 :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웃음)

 

터울 : 그렇기 때문에, 이해가 잘 안되고 잘 모르지만, 그래도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서로 "터치 안함"의 관계에서, 그냥 아무 기대도 없는 관계에서, 물론 섹스도 좋지만, 조금 더 내가 인간의 관계를 갖는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조금씩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미쿠 : 그런 생각도 해요. 저처럼 여성스런 경우는, 무조건 (인생의 진로를)낮춰서는 가야 되니까, 진짜 잘 배울 걸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해요. 완전 높아야지 그 아래 낮춰서 갈 가짓수가 많아지는 거니까요.
그리고 게이 커뮤니티에서 하나 아쉬웠던 건, 소위 게이라는 게 괜찮다는 사회가 되면 될수록, "게이여도 괜찮은 세상인데 왜 너는 그렇게 살아?" 저는 살면서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받게 돼요. 맞는 얘기거든요. 게이여서 괜찮은 사회가 왔는데, 나는 왜 이러지? 

 

터울 : 스스로를 게이라고 생각하세요?

 

미쿠 : 저요?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요. 남들이 게이라고 하니까 게이인 거죠. 일단 트랜스젠더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누군가가 남자라면 남자고 여자라면 여자고, 난 별로 상관없어, 이런 식이에요. 

 

터울 : 젠더퀴어라든지, 다른 성정체성의 개념들도 있는데,

 

미쿠 : 표현할 방법이야 여러 가지일 텐데, 적어도 제 경우는, 어떻게 얘기해봤자 말만 길어질 거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터울 : 여기서 한 가지 더 드러나는 게, 미쿠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보다, 미쿠님이 지금 살아야 되는 삶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쿠 : 맞아요. 그러니까 그런 건 어차피 누군가 학술적으로 정해놓은 용어고, 우리나라 말 아니잖아요. 학술용어로 나를 뭐라 규정하든, 가령 제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불리든, 뭔 상관이겠어요. 나는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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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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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2017-05-01 오후 13:23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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