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호][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6 :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03-03 오후 16:13:30
288 0
기간 2월 

 

[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6

: 코로나 시대의 사랑

 

 

 

 

1. 

 

종태원이 텅 비었다. 거의 모든 회의와 총회와 행사와 공연이 모두 취소되었다. 주말 게이바가 이렇게 텅빈 것도, 주말 게이클럽이 아예 문을 안 연 것도 처음이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라는 수칙이라니, 주말에라도 동류로 북적이던 종태원과 그 북적임으로 입에 풀칠하던 가게들과, 그곳에서 무어라도 말하고 꿈꾸던 사람들은 당장 뭘 어째야 할지 난감하다. 

 

사람으로 들어차던 공간이 휑하니 비고 나서야, 새삼 이곳에 북적이던 풍경에 스스로 마음을 많이 기대고 있었단 생각이 든다. 끼를 떨든 머리채를 잡든, 플러팅을 하든 싸대길 맞든, 나와 비스무리한 욕망과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저기에 한움큼 모여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 놓이곤 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마스크를 겹겹이 두르고 나온 자리에, 익숙한 대로 사람이 꽉 들어찬 광경에 위로가 되는 걸 보니, 이 중 하나가 혹시 확진자일 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유별난 것이 된다. 따지고 보면 그런 건 이번 코로나로 새삼스레 처음 생긴 것도 아니다. 

 

있던 풍경이 없어지고 나서야, 내가 이곳에서 가졌던 만남과 인간관계가 새삼 다른 맥락을 갖고 있었단 게 떠오른다. 그건 바깥에서 맺는 그냥 일반과의 관계와는 어쨌든 다른 것이었다. 더 각별하든지 더 성적이든지 더 진절머리나든지, 거기엔 애초에 바깥 세상과는 다른 어떤 응축이 자리하고 있었다. 흔히 종심력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 거기 있는 사람들이 만들었는지 바깥 세상이 거기에 이름써놨는지 모를 희한한 의미들, 다른 하고많은 동네를 놔두고 구태여 여기 들어와 술을 먹고 돈을 쓰게 만드는 그 어떤 것.

 

거기서 나는 게이임에도 이렇게 멀쩡하다고, 이렇게 멀쩡한 표정과 멀쩡한 정서와 멀쩡한 몸매와 멀쩡한 건강으로 너와 어울릴 준비가 되었다고, 따지고 보면 밑도 끝도 없는 안부를 서로에게 묻는 것이 여기 이곳의 일상인 셈이다. 코로나든 무엇이든 나는 병이 없고, 술에 취할 만큼 건강하며, 나는 괜찮다는 끊임없는 신호가 누군가를 안심시키고, 또 누군가는 절망에 빠뜨리는 곳. 그건 단순히 의도된 은폐라기에도 뭣하다. 멀쩡하고 괜찮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이니까. 그런 낙이라도 바라는 게 큰 잘못이라 하기는 그렇다. 때론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방패일 때가 있다. 가는 비 한 자락에도 뚫리고 말, 더없이 유약한 방패.

 

-

 

내가 사랑하고 걱정하던 세상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나날이다. 동경하든 미워하든, 그리 정붙이고 깔 집단이 눈에 잡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밑도 끝도 없는 것에 한번도 온몸을 기대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유약한 방패라도 그걸 꺼내들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덧없어뵈고 부질없어 보이더라도 그게 그 자리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내가 태어나 사랑한 곳, 이 눈부신 세상이 내게 주는 의미가 그러하다.*

 

이 거지같은 전염과 낙인의 시절을 다 쇠고 나면, 언젠간 또 좋은 날이 올 거다. 아무 사람의 비말을 섞고 맨몸을 나누어도 죄가 되지 않고 아프지 않을 그 날이. 내 밑천을 보이지 않아도 되고 네 건강을 검열당하지 않아도 좋고, 멀쩡한 안부로 서로의 내면을 속아넘겨도 되는 태연한 그 날이 결국은 오고 말 거다. 그 때까지, 부디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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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0년 2월 23일,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였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튿날인 24일 행동수칙을 공표하였는데, 이 수칙에서 '일반국민'과 '고위험군(임신부, 65세 이상, 만성질환자)'의 대응 요령을 서로 분리해 표기하였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 중 사망 사례는 평소 기저질환을 앓던 고령에 집중되었고, 코로나19 확진자 중 80%는 가벼운 증상을 보인 경증 환자에 해당되었다. 이에 전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강양구는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를 나누어 관리하는 한편, 다수 경증 환자의 완쾌 사례에 보다 주목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이는 "바이러스의 공포에 짓눌린 공동체의 심리 방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더불어 1993년 조직된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내가 하려던 일을 '해도 되는가, 하면 안되는가' 매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우리 모두가 재난 중에 있"는 것이며, 코로나19의 유행에 맞서 "우리의 삶과 일상이 어떻게 지속가능하도록 만들 것인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2006년 출범한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19 감염증 관련 논평에서, 정보 취득의 목적을 제외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잦은 중계방송 시청을 줄일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오랜 시간 실내에서 밀접하게 접촉하는" 활동을 최대한 피하는 것만큼이나, "경제적 약자"인 사람들이 "안전한 범위 안에서" "생활의 물질적 토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사회적 경제 주체’가 되"는 일이 동시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북 청도대남병원 내 정신병동 입원환자 103명 중 10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2020년 3월 3일 기준으로 확진자 중 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의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 423개소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이 사건에 대해 정신장애인문화예술단체 안티카의 활동가 목우는, "사회적 재난은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던 사회의 구조", 즉 "약자들에게 더 가혹한 시스템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또한 시민건강연구소는 위 사례를 들어 "바이러스와 감염은 공평하지 않"으며,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된 우리 주변의 "빈 곳"을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더불어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은 폐쇄명동에서 사망한 확진자의 소식을 들은 그날 밤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아팠"으며, "맨 끝자리에서 봐야 사회가 나아갈 길이 제대로 보"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 조동진의 곡 <눈부신 세상>에서 원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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