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호][활동스케치 #2] 오픈테이블 후기 - 배제당한 존재로 산다는 건…
2020-09-04 오후 16: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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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배제당한 존재로 산다는 건…

- 오픈테이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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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테이블 2019년 마지막 모임 中 - 2019년 3월부터 10월까지 오픈테이블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11월에 함께 모여 오픈테이블 초대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와 가족, 나와 친구, 나와 커뮤니티, 나와 사회, 나와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내가 내 스스로와 맺는 관계가 내 삶을 지탱해준다고 생각한다. HIV에 감염되고 PL(People Living with HIV/AIDS)이 되면, 이 모든 관계가 흔들린다. 우선, 대부분의 PL은 본인의 감염 사실을 숨기기 때문에,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가 외적으론 바뀌는게 없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온전한 나일 수 없음으로 인해,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타자와의 모든 관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

 

PL임을 커밍아웃 했다면? 여기부터가 내 얘기이다. 그러니까, 지난 1년 반 동안 오픈테이블에 PL 당사자로서 참여해오면서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남기고자 한다.

좀 더 적나라한 후기를 위해, HIV에 감염되고, 오픈테이블을 시작하기까지, 그리고, 오픈테이블을 통해서 느낀 점을 순서대로 이야기하려 한다.

 

 

1. 확정되기까지의 과정

 

2014년 11월에 심한 독감에 걸렸다고 생각해서 병원을 찾아갔다. 용산에 위치한 ** 이비인후과에서 나의 동의 없이 HIV검사를 실시했고, 양성이 나왔다. 감염된지 아주 초기였을 것이다. 왜냐면 9월~10월에 실시한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었으니까. ** 이비인후과에서 나에게 했던 말이, “용산에 게이들이 많이 살고, 그래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봤다. 안 좋은 케이스는, 설사 많이 하고, 결국 살 많이 빠지고, 죽는거다. 감기약 처방했으니, 일단, 먹고, 큰 병원을 가라.”였다. 지금 같았으면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그 순간엔 대응할 만한 힘이 없었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절망적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냥, 힘이 없었다.

어쨌든, 친구사이 회원이 운영하는 무**의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고, 우여곡절을 거쳐서, 첫 양성 판정을 받고 6개월 후에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2. 감염 초기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친구사이 언니들에게는 말했고, 차근차근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이유는, 나에 대해서 무언가를 숨겨야 하는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감염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가끔은 울면서, 가끔은 농담으로, 가끔은 푸념처럼, 가끔은 당연하다는 듯이. 친구사이 언니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편지로, 노래로, 가슴으로, 눈물로, 그렇게 내게 위로를 건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던, 뭔지 모를 이 두려움과 자괴감을 활동으로 풀고 싶었던 것 같고, 친구사이 내부든, 외부든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을 만들었고, HIV/AIDS 관련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

 

3. 오픈테이블을 하면서,

 

오픈테이블에 참여하기 전 몇 년 동안은, 나와 커뮤니티가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HIV 운동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면 좋을지만 고민했지, 커뮤니티 개개인과 마주하고, 얘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오픈테이블을 통해, 커뮤니티 개개인의 솔직한 얘기를 들으면서, 데자부처럼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I am not into Asians.”

 

나는 청소년/청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내 성적지향을 인정하고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시아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처음엔 그냥 식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날 안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내 자존감과 자아를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니고,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이 문제인 거니까… 아시아인으로서의 내 정체성과 자아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아시아인”을 향한 어떤 취향은 집단을 향한 것이고,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차별의 문제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지난 1년 반 동안 오픈테이블에 참여해온 분들은 친구사이 멤버이거나, 커뮤니티에서도 이 이슈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었다. 처음엔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여자의 수가 누적될수록, 그리고, 그 분들이 HIV/AIDS에 대해 가진 정말 솔직한 얘기를 들을수록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 내가 아시아인으로서 누군가에게 성적인 존재, 또는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처럼, 내가 속한 커뮤니티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PL인 나는, 또 다시 배제되겠구나. 결국 난 누군가에게 근본적인 타자겠구나…

 

나는 우리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내 삶 전체를 부인하거나 배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미소, 내 친절, 내 유머, 내 커뮤니티 활동, 이런 걸 배제하거나, 미워할 이유는 없다. 더 나아가, 난, 우리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HIV/AIDS의 이슈를 무조건 다른 사람의 이슈로 여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HIV를 가진 나는 그들에게 타자로 여겨질 것 같다.

 

내 혀가 그의 몸에 닿을 때, 내 정액이 그의 살을 스칠 때, 그의 가장 본능적인 순간에, 나는 배제당한다. PL과 섹스할 수 있을까? PL과 열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응답해야 할 때, 난 배제당한다.

그게 더 기분 나쁘다. 이게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차별과 낙인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누군가에게 PL은 근본적인 타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얘기 나누고 싶다.

 

그렇다. 얘기 나누고 싶다. 나의 이런 얘기가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HIV/AIDS가 우리 커뮤니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의 누군가는, 이 바이러스를 몸 안에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균열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에 공감한다면, 얘기 나누고 싶다.

 

내 존재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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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테이블 코-리더, 보조진행자 / 나미푸

 

 

 

 

오픈테이블은 게이커뮤니티 동호회 운영자 분들을 초대합니다.

(신청방법 및 문의 - 카카오 ID smu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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