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5호, 참관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2010-08-26 오전 05: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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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창현(친구사이 소식지 팀)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아니 사무실 문을 여니 미국이었다. 분명 여기는 한국이고, 사람들의 얼굴도 한국인 특유의 그것이었는데 나오는 말은 꼬불꼬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통역이 제공된다는 낭보가 전해지기까지 담배를 연거푸 세 대나 피웠다.

 

8월 13일 금요일 오후 6시. 친구사이 사무실 사정전에서는 미국에 있는 한인 2-3세 활동가들과 무지개행동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열렸다. 재미교포 2~3세들은 재미청년현장체험단(korean exposures & education program, 이하 keep)이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왔는데, 항상 한국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방문하는 deep, 일본을 방문하는 jeep 등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한국에 온 것은 근 2~3년만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북한에 갔다 왔었다. 그러니까 미국 현지의 생생한 소식을 알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인 셈. keep은 한국에 서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들을 만나고, 교류를 지속하며, 서로에게 영감과 힘을 주고받기 위해서 왔다고 소개했다.

사실 별 상관없을 것 같은 두 단체가 왜 굳이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만났을까? 현재 keep을 통해 방한한 사람들이 대부분 ‘퀴어’이며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keep은 상록수, 노둣돌, 호박이라는 재미 한인 단체의 구성원들이 가입해 있는데, 각각 WTO 반대, 통일, 반전평화를 생각하고 있다. 세계화의 중심인 미국에서, 보수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인종적 차별을 겪으면서 살아온 무수한 경험이 그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모든 행사가 그렇듯이 이번에도 느즈막히 시작했다. 참가자가 20여명에 달했던 관계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우리말에는 두드러지지 않는 여성형/남성형 때문에 자신을 어떻게 불러줬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새롭게 느껴졌다. 보통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특정화시켰던 우리와는 달리, 참가자들의 대다수가 자신을 ‘퀴어’라고 말했다. 가볍게 지나갔지만 이것과 저것 사이에 얽혀있지 않는 그들의 깊은 생각과 유연함이 담겨 있었다.

행사는 keep과 무지개 행동의 활동을 돌아가면서 간단히 발제하는 형식을 취했다. keep은 파트너 폭력(partner violence), 에이즈(HIV/AIDs), 트랜스젠더 이슈(Transgender issue), LGBT 청소년 프로그램(LGBT youth)를 제기했고, 무지개행동은 군형법 92조의 위헌성(친구사이), 신촌공원에서 청소녀 이반 만나기 사업(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레즈비언활동소개(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 HIV/AIDs의 문제(동성애자인권연대)를 나눴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그만큼 발제들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성큼성큼 다가왔다. 파트너 폭력은 기존의 이성애적 가정 폭력 담론이 담을 수 없는 성소수자만의 특수성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폭력의 과정과 결과까지 이해하는 계기였다. 에이즈와 트랜스젠더라는 별개의 꼭지에서는, 이성애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가하는 차별 그대로 성소수자는 그 안에서 다시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양상을 반복한다는 새삼스런 통찰을 전해주었다. 스톤월이 단순히 게이바가 아니라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항쟁을 주도한 대표적인 사람 중에 푸에르토리코 출신 트랜스젠더가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어느새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어서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친구사이가 자주 가는 국수집에서 뒷풀이가 열렸다. 사람들을 술을 잘도 마셨다. 그리고 활달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영어였고, 사고방식도 상당히 미국적이었다. 그래도 얼굴이 불콰해지면 재밌게 노는 것은 똑같았다.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 겪는 아픔도 즐거움도 비슷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옆에 계신 한국인에게 ‘한국분이시죠?’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keep 사람들은 ‘우리도 한국사람이에요’라고 웃으면서 역정을 냈다. 영어를 쓰면 어떤가. 어쨌든 우리 모두 사람인데. 새삼스럽게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즐거우면서도 진지했고, 무거웠음에도 유쾌한.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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