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호][칼럼] 내 불필요한 경험들 #1 : 형과 헤어지는 일, K팝 노래가사 같았어
2019-09-30 오후 15: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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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칼럼]

내 불필요한 경험들 #1

: 형과 헤어지는 일, K팝 노래가사 같았어

 

 

헤어지고 원더걸스 노바디 같은 걸 부르는 나도 어이없었지만, 가사들이 왠지 낯설지가 않더라니. 그게 카톡으로 헤어지면서 형이 보내왔던 꼭 그 말들이었어. 날 위해 그렇단 그 말, 넌 부족하다는 그 말. 헤어진 마당에 날 위한다는 건 무슨 소용인지, ‘부족한 나’ 운운하며 많이 배웠고 고맙다는 데, 도대체 뭘 배웠다는 건지... 물어보려는데, 엄마 생각이 나더라.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리는 노래에, 꼭 왜, 누가, 왜 그랬대, 이러고 반응하는 우리 엄마. 그제서야 아, 나도 그냥 니가 없이 어떻게 행복하냐고 답장이나 하고 말았어야 됐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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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게이가 된 거라고 했다. 나는 게이가 되기로 선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게이됨”은 대체로 이성애중심사회로 대변되는 주류사회와 갈등하는 가운데, 내 “모난 부분”들을 탐색하는 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동안 내 모난 부분을 숨기거나 창피해하는 법을 잘 익히지 못했다. 아버지가 없이 자랐어도 남들 앞에서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며, 엄마는 일부러 날 자꾸 남들 앞에 세웠다. 학창시절 만났던 국어선생님들은 대안학교 국어교사들답게, 남들과 다른 경험(당시 청소년기의 언어로는 ‘상처’라고 하는 것)을 글로 쓰는 것을 몹시 가치 있게 여겨주었다. 창피한 줄을 몰랐던 나는, 아무데나 가서 아버지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좀 더 크고 나서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술자리 예절에 빠삭하지 못했던 것, 향수나 선글라스 같은 것들을 제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는 것, 당구나 볼링, 컴퓨터 게임 같은 놀이들에 능하지 못한 것. 형이 왜 날보고 고등학생 같다고 이야기했는지 생각해본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단백질을 챙겨먹어도 내가 충분히 “남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를. 퀴어 퍼레이드에 가겠다고 집을 나서는 내게 형은 “나는 그런 거 싫다”고 했다. 함께 클럽에 간 날은 드랙퀸에 환호하는 나와 친구들을 의아하게 쳐다보았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에서는 결국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이고야 말았다. 형은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했고, 불편한 건 불편하게 여겼다. 헬스장에 가서 애써 땀을 흘리는 건 나인데, 우리 관계에서 형이 “남자다움”의 담지자가 되어버린 건 그 때문이었다.

 

형은 내 첫 한국인 애인이었다. 바비와 요한이와 두 차례 긴 연애를 하고, 나는 한국 남자를 만나겠다고 다짐했고 형을 만났다. 바비와 요한이를 만나는 일은 내 적성에 잘 맞는 일이었다. 서로를 손쉽게 이해할 공통의 경험이 부족했고, 각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서로 앞에서 무용한 생각이 되었다. 이들과의 관계를 구성할 때, 우리는 그 근거를 우리 자신 이외의 것에 둘 수 없었다. 원래 이런 거니까, 라고 할 것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헤어짐 후에 친구가 되기도 했고, 사귀는 동안 열린 관계Open relationship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성애중심독점연애의 관념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재미였다. 그럼에도 이후에 굳이 한국인을 만나겠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한이와 친구로 지내기로 결정한 이후에, 난 더 이상 ‘다름’을 축복해주는 환경에 있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대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는 교육환경에 있지도 않았거니와, 얼떨결에 한 커밍아웃으로 어머니는 내 ‘다름’에 아주 질려버리셨다. (어머니께서 그동안 날 남들 앞에 세운 것은 다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숨기기 위한 전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쩌다가 유튜브에 추천영상으로 뜨는 레이디 가가 콘서트 영상 정도로는 나 자신을 붙들어놓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이제 열린 관계라는 건, 그저 허울 좋은 ‘바람’에 불과했고, 헤어지고 친구가 되는 건 ‘관계를 똑바로 정리하지 않는 매너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어디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요한이와의 장거리 연애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몇 달에 한 번씩 만났는지를 꼭 물었고, 기어이 그 모든 시간을 압축해, “뭐야, 그럼 실제로 만난 건 별로 안 되네?” 라며, 외국인과의 연애, 장거리 연애를 어딘가 모자란 연애로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이 사회에서 연애를 하지 않음이 연애를 하지 못 하는 하자로 비약되듯,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같은 한국인을 만나지 못하는 하자로 비춰졌다. 어쩐지 내가 이 공간을 겉도는 이방인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 공간의 주인이 되지 못함은 내가 충분히 남자답지 못하다고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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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굳이 ‘형’이라고 적고 있는 건, 형이 자신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형이 연락할게’라든지, ‘형은 노래듣는 거 좋아해’라든지. 형이 자신을 ‘형’이라고 호명하는 건 단순한 호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형은 관계 속에서 ‘형’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려 노력했다. 데이트 후에는 집에 데려다주거나, 그러지 못하는 날에는 버스라도 기다려줬다. 밥값은 되도록 형이 내려 했으며, 그 와중에 커피 값 정도는 내가 내게끔 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촌스러운 건 알겠는데, 때때로 설렌 것도 사실이다. 형은 많이들 쓰는 커플메신저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런 것까지? 싶었지만, 결국 어플을 깔았고, 기념일을 저장했다. 어플 덕에 난 처음으로 연애 날짜를 세보는 경험을 했다. 나도 이토록 일틱할 수 있다니! 

 

(사랑을 주제로 한 어느 철학서적에서는 사랑이란 타자를 경험하는 일이라고 했다. 보편의 언어에 포섭되지 않는, 나와 상대의 특수한 존재감을 감각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말 연애의 기쁨이 꼭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는 과정’에서만 오는 걸까. K-연애를 살피자니,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음을 승인받는 과정’으로의 연애의 기능 역시 무시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드디어 나도 K-연애에, 이 역할놀이에 동참할 수 있구나, 라는 기쁨이 역할놀이에의 몰입까지 보장하지는 않았다. 몰입할 수 있었다면 이 연애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것이 형의 마지막 요청이었다. 이유도 근사했는데, 그렇게 해야 내가 이 연애를 좋게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카톡으로 헤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남아, 마지막 인사 정도는 만나서, 아니면 전화통화로라도 하고 싶다는 데에 대한 대답이었다.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 잘 정리되지 않은 관계를 어떻게 좋게 기억하겠다는 걸까. 더군다나 관계를 좋게 기억하는 방식이 상대를 차단해내는 것이라니, 정말이지 이 연애는 나와 형의 관계가 아니라, 연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 불과했던 걸까. 때문에 연인으로의 감정이 소진되고 나면, 어떤 인간관계도 남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구는 짧은 연애일수록 원래 마음정리가 어렵다고 하던데, 형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 어려웠던 건, 형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헤어지면서 형이 늘어놓은 말들. 일이 바빠서 신경써줄 여력이 없다는 말, 보다 잘 챙겨줄 수 있는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 챙겨달라거나, 신경써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서로 마음이 식은 것을 눈치 채고 있었고, 형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처음엔 형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그러니 형에게, 언제까지 바쁠 것 같은지, 그래서 지금 연애가 힘들다는 말인지, 좋은 사람 만나라는 축복?은 왜인지, 묻고 싶어졌다. 구구절절 물었다면, 내가 엄마한테 하던 대답이 딱 어울렸을 거다. 그냥 노래가사가 그런 거야. 카톡을 가만히 읽으니, 그 말들은 헤어짐을 향해 달려가는 절차에 가까웠다. (형은 사람 만날 여유가 없지 않았다. 얼마 뒤 클럽에서 만난 눈치 없는 내 친구는, 어, 나 그 형 며칠 전에 어플에서 봤는데, 했다. 아무튼.) 그리고 헤어짐의 절차에 마련된 내 몫은 또 하나같이 내 것 같지 않았다. 헤어지는 순간에조차 나를 명쾌하게 드러낼 수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다니. 일틱함이라는 안정감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이 답답한 헤어짐이라고 생각하니, 개인적으론 그 안정감이 좀 덧없게 느껴졌다.

 

이 관계에 결단이 필요함을 감지한 것은 꽤 되었는데, 하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는 뭐에 홀린 듯 이야기를 꺼냈던 걸까. 생각하니, 하나 짚이는 게 있다. 그 날 노래 얘기를 잠깐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얘기가 나와서, 미국 십대 여자애들이 거진 우상으로 여기다시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형은, 그럼 달호도? 라고 했다. 형의 은근한 조롱이 어릴 적 들었던 여자같이 말하면 안 된다, 여자같이 걸으면 안 된다는 명령을 환기시켰다. 형에게 내 내밀한 이야기 몇 개 말하지 않았다고, 일틱함을, ‘사회와 갈등하지 않음’을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땀 좀 뺀다고 금방 남자다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숱한 일반 친구, 지인,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했고, 태어났을 때부터 확실했으므로 ‘정체성 혼란’을 겪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떠들고 다니며, 여전히 아버지가 없고, 또 남자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어렵지가 못하다. 앞으로도 ‘일틱함’이 쉽게 포기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뒤늦게 창피함을 학습하는 일이 내게는 어머니에게의 커밍아웃만큼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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