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호][커버스토리 '게이코러스의 공연기획' #2] 종로를 노래하는 법 : 2019 지보이스 정기공연 '선게이서울'
2020-08-03 오전 09: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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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7월 

 

[커버스토리 '게이코러스의 공연기획' #2]

종로를 노래하는 법 : 2019 지보이스 정기공연 '선게이서울'

 

 

 

1. 처음 경험한 지보이스
2. 지보이스 단장이 되기까지
3. 기억에 남는 지보이스 활동
4. 지보이스의 연대공연 
5. 아는언니들, 일곱빛깔무지개, 지구인의 노래
6. 2018 지보이스 공연연습 '폭풍전야'
7. 인간관계란 원래 조금은 어려운 것
8. "꼴페미, PL, 약쟁이, 술꾼"
9. 남은진 남역배우와의 인연
10. 소수자와 친구가 된다는 것 
11. 연대의 의미, 안전망 바깥의 안전망

12. '폭풍공감'에서 '선게이서울'로 
13. 커밍아웃하고 무대에 선다는 일의 의미
14. 개인의 커밍아웃과 지보이스의 커밍아웃
15. 지보이스 스토리북 '선게이서울'
16. 지보이스 간담회 'G'story : 게이 게토의 역사와 의미' 
17. 가볍지만 납작하지 않은 공연 기획
18. 지보이스 정기공연 상영회
19. 종로, 낮고 투명하고 유연한 울타리
20. 코로나 시대의 지보이스
21. 지보이스와 게이커뮤니티에게 바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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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폭풍공감'에서 '선게이서울'로 

 

 

터울 : 이제 인터뷰의 2부로 2019년 지보이스 정기공연 '선게이서울' 이야기를 할 거예요. 1부 마지막에 게이커뮤니티의 안전망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우리의 사랑스러운 게토이자 보금자리인 종로를 다룬 공연 기획이었죠.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던 게, 그 전해에 연대를 내건 2018년 기획공연을 했다가, 이듬해에 우리의 지근거리에 있는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셈이잖아요. 1년 상간으로 어떤 의미에선 상반된 컨셉의 공연 기획을 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거든요.

 

석 : 2018년 즈음에 익선동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나왔었고, 그 때 나온 이야기 때문에 친구사이 내에서 화두가 됐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보이스 공연 기획회의를 할 때도 당연히 그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거기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작년에 했었던 공연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해야 되나? 

 

오웬 : 2018년의 '폭풍공감'이 수평적 연대체들의 공연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좀 수직적으로 세워서 우리의 역사를 한번 보자, 종로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사실 게이들 중에서도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친구사이 활동을 해야 그나마 좀 알게 되는 거고. 그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있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게 2019년의 정기공연 기획이었죠. 

 

석 : 확장하는 걸 해봤으니까, 이번엔 한번 파보자는 기획이었죠.

 

터울 : 어떤 의미에서 전해 공연 기획과의 연속성이 그 안에서 발견되는 셈인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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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커밍아웃하고 무대에 선다는 일의 의미

 


터울 : 본격적인 공연 얘기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종로에 게이커뮤니티의 역사가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달리 보면 단순한 지역의 역사나 우리의 과거 이야기를 넘어서서, 지역으로서 커밍아웃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거든요. 종로에 숨어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익선동이 이렇게 뜬 마당에, 나름대로 여기에 게이의 레떼르가 붙는 지역이라는, 지역 차원의 커밍아웃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여쭤보는 건데, 지보이스의 무대는 늘 커밍아웃을 전제로 하잖아요. 그것이 중요한 원칙이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대가 가능한 형태의 공연에 끊임없이 설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하잖아요. 이게 뜻은 굉장히 좋고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사실 개개인에게 부담이 될 때도 있고 무섭기도 하고, 내지는 보람이나 긍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지보이스 내에서 커밍아웃하고 무대에 선다는 자각이 있으셨을 때, 그 때의 어떤 경험이나 소회가 궁금하거든요. 내가 게이라는 걸 까고 무대에 올라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또 그 무대에 섰을 때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해요.

 

석 : 약간… "May the best woman win(최고의 여성이 승리할 것입니다)", 그런 느낌? 

 

오웬 : 루폴의 드랙 레이스(RuPaul's Drag Race) 얘기야? (웃음)

 

석 : 농담이고요. (웃음) 사실 딱히 게이로서 커밍아웃을 하고 무대에 선다는 느낌을 지보이스 안에서 받기는 힘들어요. 왜냐하면, 커밍아웃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닥. 저는 좀 그렇게 느꼈어요. 커밍아웃이라기 보다는, 

 

터울 : 그냥 무대의 느낌이군요. 

 

석 : 왜냐하면 커밍아웃은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떤 면에선 전제로 하는 작업이잖아요. 그게 없으면 사실 커밍아웃일까?라는 생각은 들어요. 커밍아웃이라는 말 자체의 전제에 그걸 안받아줄 수도 있고 받아줄 수도 있다는 수용의 문제, 인정의 문제, 이런 것들이 들어가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지보이스 무대에 설 때는 당연히 너네는 좋아하겠지, 여기 우리를 인정하겠지, 이런 마음인 것 같아요. (웃음) 관객들은 우리를 좋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터울 : 그게 흥미롭기는 해요. 마치 내가 을의 위치에 서서 커밍아웃을 하면 너의 간택을 기다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이런데 뭘 어쩔 거냐, 늬들이 받아들여야지, 이런 관계 주도권의 역전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제가 이 질문을 재차 드리는 이유는, 사실 지보이스 말고 커밍아웃을 전제로 공연에 서는 팀이 퀴어연극제 정도 말고는 아직까지 없단 말이에요. 지보이스 내에서는 그것이 호흡하듯이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바깥의 다른 게이커뮤니티 그룹들에게는 여전히 너무나 큰 장벽인 현실들이 있고, 단원들 중에서도 처음에 커밍아웃이 쉽지 않았다가 점점 나아지거나 했던 경험이 없지 않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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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 저는 지보이스가 가지고 있는 커밍아웃에 대한 감각이, 다른 공연단체가 하고 있는 커밍아웃의 형태와는 별개로, 게이커뮤니티라든가 성소수자들이 전반적으로 사회 안에서 가지고 있는 커밍아웃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해요, 시기적으로. 왜냐하면 지보이스가 활동한지 17년이 됐는데, 그 사이에 커밍아웃에 대한 인식이 되게 많이 바뀌었잖아요,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최근에는 되게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커밍아웃을,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이미 딱 깔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고요.

 

오웬 : 굳이 종로에 나오지 않고도 나 게이야, 이러고 다니는 사람 너무 많고. 

 

석 : 그런데 그 전에는 사실 나 게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같은 게이들끼리도 말하는 게 쉽지 않았잖아요, 옛날에는. 지보이스도 비슷한 수순을 밟아온 것 같아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왜냐하면 아까 오웬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단체는 수평적인 단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단원들이 싫다고 하면 안하는 경우가 많고,

 

오웬 : 그래서 단장이 속이 터지는 거야. (웃음)

 

석 : 그렇기 때문에 <위켄즈>(2016) 찍을 때 당시만 해도 굉장히 그 과정이 복잡했었죠. 커밍아웃의 수준까지 세밀히 나눠서, 나는 공중파 TV엔 나올 수 있다, 나는 케이블 TV까지만 나올 수 있다, 

 

오웬 : 그건 올해도 그래. 

 

석 : 그 때 당시에는 모자이크를 하냐 마냐, 모자이크는 어느 수준으로 들어가느냐, 공연 장면에는 나올 수 있지만 일상 생활은 못 나오겠다, 이런 되게 다양한 수준을 안배하셨었어요, 감독님께서. 왜냐하면 그 때 당시에 게이들이 요구했던 커밍아웃에 대한 복잡성이 그랬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죠. 덜해졌다가 아니라, 커밍아웃에 대한 감각이 많이 달라졌고, 처음 지보이스 나올 때부터 커밍아웃을 하는 공연을 하는 단체인데 너 괜찮냐고 물어보는 단계가 이제는 의미가 없는,

 

터울 : 그걸 이미 알고 전제한 채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진 거군요. 

 

오웬 : 제 때도 그런 질문은 없었어요. 괜찮냐는 그런 질문 없었어요. (웃음)

 

석 : 제가 들어올 때는, 들어와서 노래는 하는데 공연은 못 서는 사람도 꽤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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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개인의 커밍아웃과 지보이스의 커밍아웃

 


터울 : 두 가지 맥락이 있는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전제로 했던 공연 뿐만 아니라, <위켄즈>의 공연 합창 장면 때 단원 중에 누구도 모자이크가 안돼있던 게 되게 큰 감동이었고 하나의 이정표였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거쳐오면서 지보이스가 어떤 곳인지를 사람들이 알게 시작한 게 하나가 있었던 것 같고, 두번째는 사회가 이미 변해왔던 것들이 지보이스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지보이스가 바꿔놓은 지분도 분명히 있겠죠. 

 

석 : 그럼 좋죠. (웃음) 왜냐하면 얼굴이 실린 사진이나 영상조차 그 이면에는 엄청난 개인의 고통이나 고민이 있는 거니까요. 어디에 얼굴이 올라갔을 때 어떤 걸 겪어야 되며, 이런 것들을 다들 고민하고 이겨내고, 아니면 무시하기로 결심하고, (웃음) 아니면 실제로 그런 일을 겪기도 하고요. 그 사진으로 인해 본인이 원하지 않은 사람에게 정체성이 알려진다거나, 아니면 외부 공연에 서는데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알려진다거나,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터울 : 그럴 경우에 지보이스에서 실제로 어떻게 대처하나요?

 

석 : 사진은 당연히 본인이 요구하면 항상 내렸던 것 같고요. 그런 부분들은 항상 복잡하게 여겨왔던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그 사진에 모자이크가 들어가는 순간 의미가 없어지는 사진도 꽤 있고. 어떤 드러냄의 의미 자체가 훼손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건 개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거잖아요. 그걸 더 중요하게 여겨야 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실제로 잘 됐는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누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단체의 분위기 때문에 말을 못했을 수도 있죠. 이 사진을 내리면 우리가 했던 공연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거라는 걸 알고 말을 못했거나, 이런 일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까요.

 

오웬 : 그래서 지보이스 공연 사진을 스탭이 찍고 나면 여태까지 늘 스탭 개인 게이스북 계정으로 올렸던 거잖아요. 

 

터울 : 그렇죠, 재작년까지는 그랬었죠. 그러다 작년부터는, 저는 그게 굉장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게북의 일개 스탭의 계정이 아니라, 전체공개된 지보이스 페북 계정으로 공연사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게, 저는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보거든요. 

 

석 : 그런데 이 변화는 사실 되게 보수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보이스 내부에서는 그걸 그렇게 바꿔도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것도 모든 사람이 그랬던 건 아니니까요. 

 

터울 : 서울퀴어문화축제도 생각해보면 언론의 촬영이 100% 허가되는 데까지 10년 가까이 걸린 셈인데, 지보이스도 사실은 전체공개로 공연 사진이 올라가기까지 비슷한 시간이 걸렸던 셈인 거죠.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 것 같아요.

 

오웬 : 제 얘기를 하면, 지보이스는 커밍아웃을 해야 들어올 수 있는 단체라고 하는데, 저는 아니거든요. 저는 지금도 오픈리 게이는 아니에요. 

 

터울 : 그런데 이 인터뷰에 사진은 올라갈 거예요. (웃음)

 

오웬 : 사진은 올라가는데, 그러니까 나는 그런 거예요. 지보이스가 커밍아웃하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내가 커밍아웃하는 건 아녜요. 무대에 올라갈 때도, 지보이스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커밍아웃했다고 생각하지, 내가 커밍아웃한 상태로 올라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지보이스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은 나가도 괜찮아요, 얼마든지.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가는 건 부담이 되는 거죠. 

 

석 : 저도 사실은 비슷해요. 제가 무대에 서는 건 제 자신의 선언이 아니고 지보이스로서의 선언이죠. 커밍아웃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 무대에 게이로서 올라간다는 건. 

 

터울 : 그런데 그렇게 분리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걸 보고 내가 원치 않는 사람에게 게이임이 드러난다는 건 어쨌든 개인이 받아안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잖아요. 만약 그런 상황이 왔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실지 궁금해요.

 

 

 

 

 

오웬 : 한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위켄즈>가 한참 개봉 중일 때, 그 때 한번 닷페이스에서 인터뷰 영상을 찍은 적이 있어요. 저랑 클라라랑 나미푸랑 같이 찍은 영상이었는데, 

 

터울 : 그것도 전체공개로 다 나가는 거였잖아요.

 

오웬 : 네, 닷페이스가 구독자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요. (웃음) 그런데 그 계정에 대학교 동창 여자애가 멋있다고 댓글을 단 거예요. 나라고 콕 집어서 말은 안했는데, 댓글 봤는데 걔예요. (웃음)

 

터울 : 어떠셨어요?

 

오웬 : 봤을 때 그냥, 아마 예전같으면 그랬을 거예요. 예전같으면 이거 다 내려야지, 내가 미쳤지, 이걸 왜 찍었지, 그랬을 텐데. 이미 찍을 때부터 나는 지금과 같은 생각이었고, 그래서 별로 상관없었어요. 그냥 너한테 자연스럽게, 내가 굳이 피곤하게 커밍아웃 안해도 자연스럽게 일어난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는 않고. 그런데 만약에 그걸 엄마가 봤다고 하면 좀 그럴 수 있겠죠. (웃음) 근데 뭐 가족들이 봤어도 나는 그냥, 내가 굳이 피곤하게 해야 될 일을 안하고도 넘어가는 그런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지금은.

 

석 : 욕구가 다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커밍아웃의 욕구랑, 지보이스에서 하는 커밍아웃의 욕구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들켰다든가 할 때 할 수 있는 대처도 다른 것 같고. 그런데 저는 여태 그런 경험은 없어요, 얼굴 너무 많이 나갔었는데.

 

오웬 : 나도 사실 그런 경험은 그거 한번밖에 없어. 

 

석 : 그만큼 사람들이 지보이스를 안봐. (웃음)

 

오웬 : 관심이 없어. (웃음)

 

터울 : 지보이스뿐만 아니라, 원래 인간은 인간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어요. (웃음)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내 얘기가 정말 신실하게 상대의 귀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많은 커밍아웃 상황에서는 '어 그래?' 뭐 이런 심드렁한 경우가 적지 않죠. (웃음)

 

오웬 : 올해는 지보이스를 다루는 성소수자 관련 KBS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데요. 지보이스만 찍는 건 아니지만 성소수자 다큐멘터리에 지보이스가 들어가는데, 그래서 지금 팔로업을 하고 있는데 저는 거기에 얼굴이 나오면 안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게 좀 다른 거예요. 가령 닷페이스나 유튜브에 올라가는 건 상관없는데 KBS 공영방송에 나오는 건, 

 

터울 : 정말 부모님들이 보실 가능성이 있는,

 

오웬 : 저녁 9시에 방영이 되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저는 부담이 되는 거죠. 그래서 거기까지는 안된다고 한 거죠. 그러니 아직도 사실 전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지 지보이스를 한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석 : 약간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유튜브나 닷페이스나 이런 영상은 본인이 찾아서 봐야 볼 수 있는 건데, KBS는 그냥 설거지하다가 마주칠 수 있는, 

 

오웬 : 쨍그랑, (웃음) 우리 아들이, (웃음)

 

터울 : 이 모든 게 커밍아웃의 다음과 같은 면을 드러내주는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어떤 라이센스나 단계로서 한번 지나치고 끝나는 걸로 사고하는 형태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고 뭔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복잡하고, 다양한 결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 맥락들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오웬 : 네, 그리고 그 모든 맥락에도 불구하고 지보이스는 커밍아웃하는 합창단이 맞다고 생각해요.

 

석 : 그리고 지보이스는 앞으로도 계속 커밍아웃을 새로 하게 되겠죠. 우리가 2009년에 지보이스는 게이 합창단이라고 얘기했던 거랑, 2020년에 지보이스는 게이 합창단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거랑 의미가 굉장히 다른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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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보이스 스토리북 '선게이서울'

 


터울 : 자연스럽게 '선게이서울' 이야기로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2019년 지보이스 정기공연의 표제가 '선게이서울'이었는데, 이 때 동명의 스토리북을 만드셨잖아요. 이 책에도 여기 계신 한 분께서 당당하게 표지모델로 실리게 됐죠. 개인적 커밍아웃과 조직적 커밍아웃이 분리된다고 하셨지만 어쨌든 얼굴이 나가는 책이 제작되게 됐는데, 꽤 묵직한 분량과 주제의식을 담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주위에서 누가 좀 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공연 기획과 별개로 2013년 사진 위주로 구성된 스토리북에 이어, 충실한 내용의 스토리북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오웬 : 아까랑 똑같아요 이것도, (웃음)

 

석 : 이것도 외재적인 이유로, (웃음) 저희가 한다고 했고요. 더 멋있는 기획을 하기 위해서 저희가 한다고 기획서에 썼던 내용이었어요.

 

오웬 : 그런데 이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게 나온 기획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석 : 회의를 진행하면서 계속 빡세게 밀게 되는 거죠. 이번 '선게이서울' 스토리북의 경우에도, 기획 중에는 그런 얘기까지 나왔어요. 그냥 지보이스 단원들의 수필을 모아서 그것만 내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건 한 꼭지로 빠지게 됐고, 그러면서 여러가지가 잘 물려들어갔어요. 종로 술집 사장님 인터뷰도 못 들어갈 뻔하다가, 음악감독님과 광훈이가 엄청 푸쉬를 해주셔서 들어가게 됐고. 

 

터울 :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1970년대 종로의 게이 문화에 대해 증언해주신 굉장히 드문 기록이에요.

 

석 : 안타깝게도 원문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일종의 편집을 거치게 됐지만, 그 자체로도 이 스토리북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돼요.

 

터울 : 저는 '선게이서울'이라는 이름을 보고 굉장히 과감하다고 생각했어요. '선데이서울'이라는 이름의 도색잡지, 통속잡지를 비튼 건데, 거기에는 지금의 맥락으로 여혐이 완연한 기사들도 많고, 그런데 그 잡지의 제목과 형식을 받아안는다고 했을 때에 진짜 게이커뮤니티의 역사를 탄실하게 구성해내지 않으면, 굉장히 불미스러운 패러디처럼 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석 : 맞아요. 사실 이 제목이 뽑힌 건 재밌어서죠.

 

오웬 : 제목이 먼저 뽑히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게 이런 기획이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실제로 당시 '선데이서울'에 게이를 포함한 성소수자 얘기들이 많이 나왔으니까요.

 

석 : 그런 전복적인 재미라든가, 지보이스가 항상 추구하는 쌔시(sassy)한 재미, 이런 것들 때문에 뽑힌 건데, 말씀대로 그런 고민은 있는 거죠. '선데이서울' 자체가 가진 여혐적인 내포라든가, 그런 걸 우리가 어떻게 잘 뒤집어서 넣을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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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 표지 모델을 지보이스 단원인 게이 남성으로 했는데, 남성스런 게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끼스러운 듯하면서도 경계에 놓인 듯한 표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석 : 저도 표지에서 재밌게 느낀 지점은, 뭔가 시선을 의식하는 사진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웃음) 좀 그런 요상스런 느낌이었거든요. 

 

터울 : 이것도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발행했던 거죠?

 

오웬 : 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으로 만들었죠. 

 

터울 : 그래서 이 책이 각 시군 도서관에 깔리게 됐잖아요? 

 

석 : 그것도 저희가 한다고 해서 한 거였죠. (웃음) 

 

오웬 : 이 책도 그럼 ISBN 받았었나요? 

 

터울 : 네, 받았었어요. 

 

석 : 한다고 해서 고통을 초래했고요. (웃음) 저희가 고통을 초래해드린 분들은 서울문화재단 담당자분들이었는데, 왜냐하면 이걸로 인해서 엄청난 항의 전화를 받으셨대요. 

 

터울 : 애들 드나드는 도서관에 어떻게 이런 걸 까느냐는,

 

석 : 네, 그래서 책 뒤를 딱 봤는데 서울문화재단 후원, 이렇게 돼있으니 전화를 한 거죠. 그런데 감동받았던 지점은, 재단 쪽에서도 무대응으로 대처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비슷한 사례가 있을 때 모든 사회단체에서 이래야 되는데, 안 그러니까 문제다, (웃음)

 

터울 : 저는 그 대처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공공기관을 통해, 종로가 게이들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이 그 사진과 함께 시군구 도서관에 뿌려진 셈이잖아요. 그게 어떤 의미에서 공연은 현장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보는 거지만, 공립도서관에 그 책이 꽂혀있다는 것의 함의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석 : 네, 저희가 그 책에서 쓴 패스티쉬(pastiche)들 있잖아요. 표지의 선정성이라든가, 아니면 내지에 디자인 요소로 사용한 사람찾기 섹션, 그런 것들을 보고 연락을 하셨다고들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선정적인 내용의 책을 넣을 수 있느냐, 그런데 사실 뭐 내용은 안 읽으셨겠죠. 우리가 그걸 디자인 요소로 쓴 의도를 아마 내용을 읽으셨으면 보셨을 텐데. 

 

터울 : 그러니까 실제로 '선데이서울'이라는 잡지는 공립도서관에 꽂혀있지 않고,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처럼 의무적으로 잡지사로부터 납본을 받는 곳에서나 읽을 수 있는 통속잡지인 거죠. 그것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지보이스가 전복의 의미로 담아낸, 이런 것들을 꺼내어 논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함의를 담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오웬 : 나 이 표지 찍던 날 술만 안먹었어도 찍는 거였는데. (웃음) 원래 찍기로 했는데, 전날 술마시고 '저 못가요' 그랬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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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지보이스 간담회 'G'story : 게이 게토의 역사와 의미' 

 


터울 : 그리고 이 해에도 사전행사를 했었죠. 한달 전에 간담회를 했었죠, 'G'story : 게이 게토의 역사와 의미'. 제가 글을 써서 발표도 하고 했었는데, 이것도 궁금했어요. 지보이스는 보통 무대나 음악을 통해 뭔가를 얘기하는 곳인데, 저는 지보이스 단원들을 앉혀놓고 세미나를 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지보이스의 오랜 역사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행사를 어떻게 짜게 되셨는지 궁금했어요. 

 

석 : 결국에는 기획의도랑 맞닿아있는 거죠. 기획의도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파기로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판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이것에 대해 더 잘 알아야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실 당사자성만으로 극복이 안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익선동 젠트리피케이션 얘기가 나왔을 때도 의견들이 되게 많이 갈렸었고요.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있을 때 나오는 즉각적인 반응과, 알고 나왔을 때 갈리는 반응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그래서 일단은 이걸 알아야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왜 들었었냐면, 우리가 회의를 하다보면 이야기가 복잡해지잖아요. 서로 생각하는 '종로가 젠트리피케이션 된다, 종로가 게토다' 이런 의미가 서로 다 다른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가 배우자, 라는 기획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터울 : 저도 저 글을 쓰면서, 2018년부터 이어졌던 고민이 '보갈'이라는 말이었는데요. 게이가 어떻게 '보갈'이란 말을 감히 쓰느냐, 여혐 단어를, 그러니까 '보갈'이라는 말을 쓰는 게이는 곧 여혐 집단이라는 서사가 얼마나 얄팍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논점들을 망가뜨리는 것인지에 대한 대응으로서 고민이 깊었던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내용들을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계기였던 것 같아요. 따로 강의 슬라이드를 준비한 게 아니라 준비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했었는데, 지보이스 단원이 글과 그렇게 친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웃음) 이걸 좀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행사를 진행했던 게 생각나네요. 

 

 

 

"성매매여성과 비규범적 성애·성별 실천과의 상관관계를 드러내는 증거들은 많다. 가령 ‘갈보’는 성매매여성을 비하하는 은어로 사용된 말인데, 빈대 갈(蝎)에서 딴 단어라는 설과, 당시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여성 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에서 딴 말이라는 설 등이 있다. 헌데 오늘날의 게이·트랜스젠더 여성에 해당하는 은어는 다름아닌 ‘보갈’로, 이는 ‘갈보’를 뒤집은 말이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보다도 동성애자임을 나타내기가 더 어려웠던 시절 성적 관계의 상대자가 몇몇으로 한정된 상태에서 성관계가 복잡한 사람들을 일컬어 장난스레 쓰던 말로 추정”된다는 설과, “공인되지 못한 性의 외로움, 빈번한 섹스, 게토화된 공간의 축축함”을 의미했다는 설로 미루어, 성매매여성과 비규범적 성애·성별 실천 당사자를 아우르는 ‘비규범적 성’의 공통점 위에서 위 은어들이 혼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게이·트랜스젠더 여성들 또한 다름아닌 '여성성'과 그에 따른 억압을 경험한 당사자였음을 보여준다."

 

- 김대현, 「독점기고 1 : 종로3가 게이 게토의 역사와 게이커뮤니티의 형성」, 『선게이서울 : 지보이스 스토리북 창단 17주년 특별판』, 2019.9, 27쪽.

 

 

오웬 : 저는 비슷한 내용의 강의를 그 때 말고도 그 전에 운동모임 '운교'의 교양 시간 때도 한번 들었었어요. (웃음)

 

터울 : 조금 달랐죠. 같지는 않았고, 운교 때의 강의안은 훨씬 축약된 버전이었죠. 정민우 선생님도 그 때 같이 발표하셨는데, 외국 게이커뮤니티 사례를 말씀해주셨잖아요.

 

석 : 네, 그 분은 음악감독님이 추천을 받아 섭외해주셨죠. 

 

터울 : 네, 외국의 게이코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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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가볍지만 납작하지 않은 공연 기획

 


터울 : 2019년 정기공연의 노래선정이나 창작과정은 어땠나요.

 

석 : 가장 차이가 있었던 부분은, 우리가 종로를 다루자는 걸 1월부터 이미 결정했다는 거죠.

 

오웬 : 그 기획이 진짜 빨리 나왔어요. 작년이 특히나 유독.

 

석 : 이번엔 정하고 가보자, 해서 빨리 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리허설곡 레파토리로 그걸 염두에 둔 노래를 연습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주제에 닿은 노래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기존에는 좀 하다가 맞춰갔던 부분이 있죠. 하고 싶은 노래들을 연습한 다음에, 

 

오웬 : 정기공연 기획이 나오기 전까지의 연습기간에는 그냥 하고 싶은 노래, 좋은 노래를 추천받아서 하다가, 기획이 나오면 거기에 노래를 맞추는 그런 식으로 했었는데, 

 

터울 : 2019년엔 좀더 체계적으로 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거군요.

 

석 : 네, 그 해에는 더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죠.

 

터울 : 지보이스가 아까도 얘기나왔지만 게이커뮤니티에서 주변화된 요소들을 거침없이 재현하는 전통을 갖고 있는데, 2019년의 공연 때도 종로에서의 화장실 크루징 문화를 다뤘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내용들이 어떻게 담기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석 : 종로의 역사를 이야기한다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겠죠. 그걸 빼놓고 얘기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그리고 지보이스는 이런 걸 너무 잘해요.

 

오웬 : 그러니까 '아름답지 않은 건데 그냥 묻고 넘어가면 안돼?'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이게 우린데 뭐?' 약간 이런 느낌?

 

석 :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런 문화를 접해보지 못했고 새로 알게 될 사람들, 성소수자든 비성소수자든 상관없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쿠션을 제공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지보이스가. 

 

오웬 : 그래? 나는 그냥 너무 충격만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웃음)

 

석 : 아니, 이걸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예를 들어서 혐세(혐오세력)들이 이런 사진을 보여주면서 게이들이 이렇다고 했을 때 겪을 충격과, 지보이스가 이런 걸 꽁트 같은 걸로 보여준 다음에 그런 걸 봤을 때, 아 그 때 지보이스가 했던 거네, 뭐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죠. (웃음)

 

터울 : 우리 이미 알고 있어~ 이런 효과가 있는 거죠. (웃음) 그러니까 그런 걸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그걸 또 무겁게 하는 게 아니라 터치를 귀엽게 가져가잖아요. 그런데 사실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게이의 몸으로 가볍게 이야기할 때 나오게 되는 시너지나, 그럴 때 느껴지는 어떤 숭고함 같은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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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 그리고 가볍게 만들지만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은, 되게 지보이스의 여러 분들이 기획을 엄청나게 잘하시는 천재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터울 : 본인이 천재란 얘기인가요? (웃음)

 

석 : 저는 별로 그런 데에 참가 안해요.

 

오웬 : 나도 참여 안해. 나 그런 단장 아니야. 

 

터울 : 누가 대체 그럼, 가볍지만 납작하지 않게 하는 건 누구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예요? (웃음)

 

오웬 : 그런 것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석 : 대표적으로 저희의 종신 연출님이라든가, 

 

오웬 : 그 종신 연출님 올해가 마지막이에요. 

 

석 : 아 진짜요? 

 

터울 : 샌더님 얘기죠? 

 

오웬 : 네. 조형미술 전공하신.

 

터울 : 다음에 꼭 한번 모셔야겠네요. 저희 소식지팀에도 오랫동안 활동하셨는데. 

 

석 : 그만두시면 소회를 털어놓을 기회가 있겠군요. (웃음)

 

오웬 : 올해가 마지막이래. 나 스트레스 받아 미치겠어. 

 

터울 : '선게이서울' 당일 공연 무대에 섰던 경험이나 에피소드들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오웬 : 공연장이 저희 집이랑 너무 멀었어요. 

 

터울 : 여태 안해봤던 공연장이었죠?

 

오웬 : 네, 처음 했던 공연장이었어요. 왕십리의 소월아트홀이었는데, 예전부터 지휘자님이 여길 추천해주셨어요. 공연장은 500석 규모의 중공연장이었는데, 소리가 너무 잘 빠지는 곳이었어요.

 

터울 : 네, 소리가 되게 좋았던 기억이 나요. 로비 등 바깥 공간은 되게 좁은데, 안에 들어가면 소리가 만족스러웠던 공연이었죠. 

 

오웬 : 지보이스 공연은, 모든 공연이 그렇겠지만 정작 무대에 올라간 기억은 날아가요. 머리가 하얘져. 

 

석 : 오웬이랑 저거 했잖아. 커플이었잖아. 

 

오웬 : 그 문제의 크루징 장면에서 저희가 커플이었죠. 두 커플이 나왔는데, 석·오웬 커플이랑, 완야·재우 커플. 

 

터울 : 나름 체형을 안배한 거네요. 다양한 식들의 세계를. 

 

오웬 :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웃음) 그동안 지보이스에 슬림들밖에 없고, 큰 애들이 약간 천시받는 그런 게 있었어요. 입지가 좁아. 

 

석 : 딴 데 가면 절대 이런 대접 안받는데, (웃음)

 

오웬 : 어. (웃음) 지금 유행은 이거야. 트렌드인데, 지보이스는 너무 클래식했어. 

 

터울 : 지금 이 인터뷰 보시는 건장과 베어들은, 꼭 지보이스에 많이 들어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동 웃음)

 

오웬 : 심지어 전 단장 현 단장 체형이 이런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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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보이스 정기공연 상영회

 


터울 : 상영회 얘기를 잠깐 할 텐데요. 지보이스 뿐만 아니라 게이커뮤니티 공연의 공통점인 것 같더라고요.

 

오웬 : 상영회를 갖는 문화요?

 

터울 : 네, 당일 공연 무대도 중요한데, 그건 아까 얘기했듯이 당사자들에겐 쓱 지나가는 거고, 오신 분들에게 보여드는 자리인 거고. 그러니 당장 그 날에 단원들이 공연을 음미할 기회는 많지 않은 거잖아요. 그런데 게이커뮤니티의 공연팀들은 당일 공연무대 만큼이나 상영회를 공들여 기획하더라고요. 공연 영상을 같이 보면서 단원들끼리 웃고 서로 시상도 하고 그런 문화가 있는데, 지보이스도 그런 문화가 있잖아요. 상영회를 꾸리고, 공들여서 편집된 공연실황본을 같이 보고 소회를 나누는 게, 저는 게이커뮤니티의 중요한 공연문화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기획하시는지,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오웬 : 상영회는 언제부터 했어요?

 

석 : 상영회는 계속 해왔죠. 그런데 상영회를 극장 대관까지 해서 열게 된 건 <위켄즈>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터울 : 극장에서 공연 상영회를, 단원을 위해서 대관해서 한다는 게, 

 

석 : 사실 단원들만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안하죠. 우리 지보이스 공연을 만드는 데 스탭들도 엄청 많이 들어오시잖아요.

 

오웬 : 스탭분들과, 공연을 실제로 음미하지 못하시는,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 분들과, 정말 보고 싶었는데 못봤던 친구들, 

 

석 : 그리고 또 보고 싶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어하시니까요. 

 

오웬 : 그리고 남는 건 사실 상영회 영상밖에 없어요.

 

석 : 극장에서 해야지 그나마 잘한 것처럼 들리고, (웃음)

 

터울 : 이 기회를 빌어서 매 해마다 영상촬영이나 녹음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소개해주시죠. 

 

석 : 사실 매해마다 조금씩 바뀌기는 해요. 대체로 자주 참여하시는 분들은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님이나 이동하 감독님을 꼽을 수 있고, 편집은 엄윤주 감독님이 되게 많이 도와주셨죠. 

 

오웬 : 최근 들어선 거의 계속 해주셨던 것 같아요. 

 

터울 : 대학 강의하시는 분인데, 엄청 고급인력이시잖아요. 

 

석 : 무지개집 거주자이시죠. (웃음)

 

터울 : 사실 지보이스가 굉장히 고퀄리티 스탭과 함께 공연하는 것 같아요.

 

오웬 : 네, 그런 것 같아요.

 

터울 : 게이커뮤니티의 공연 그룹들, 코드지나 뮤직세이나 포튠즈도 상영회를 하는데, 거기선 거기 나름의 네임드 스탭들이 의기투합해서 준비하는 거잖아요. 지보이스도 어찌보면 그런 흐름의 원류격으로, 입봉한 영화감독님이나 강의하는 편집감독님들이 오셔서 지보이스의 스탭으로 활동해주신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오웬 : 지보이스 옆에 좋은 분들이 너무 많이 계시죠. (웃음) 

 

터울 : 그런 상영회를 할 때 스탭분들도 그렇고 단원들도 좋아하시죠?

 

석 : 그렇죠. 

 

오웬 : 너무 좋아하죠.

 

석 : 자기가 공연하는 걸 거기에서야 처음 보게 되는 거니까요. 스탭분들은 소리는 들었는데 뭘 하는지 전혀 못 보신 분들도 많고.

 

오웬 : 내가 살면서 무대에 오른 흔적이 남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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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종로, 낮고 투명하고 유연한 울타리

 


터울 : '선게이서울' 공연 때 상영된 영상물에서, 종로를 두고 "낮고 투명하고 유연한 울타리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인상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을 담고 싶으셨는지 궁금해요.

 

석 : 이건 음악감독님이 만드신 표현이에요. 이건 게이커뮤니티가 낮고 투명하고 유연한 울타리라는 당위의 표현이 아니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표현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배타적이고 배제적인 형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소망인 거죠. 

 

터울 : '래디컬'해지면 안된다는, (웃음) '래디컬'이 어쩌다 이런 의미가 돼가지고, (웃음)

 

석 : 왜냐하면 우리 커뮤니티는 게이커뮤니티다-라고 말하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당위가 아닌데 당위라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많잖아요. 예를 들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게이이다-라든가, 아니면 남성스러워야 남자다-라든가, 이런 당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게이커뮤니티가 낮고 투명하고 유연하지 않다면, 배제적인 공간이 되겠죠.

 

터울 : 그런데 한편으로 그건 이렇게도 새겨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그래도 울타리는 필요하다,

 

석 : 그렇죠.

 

터울 : 그러니까 여기에 게이가 없었던 공간처럼, 그냥 광장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어찌보면 이성애 사회에서 게이의 존재가 배제되는 셈일 텐데, 반대로 그 울타리가 너무도 강고해서 아무도 들어오거나 굽어볼 수 없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는 이중의 문제의식을 담은 것 같아서, 그 구절이 굉장히 지보이스스럽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석 : 네, 그런 내용까지 포괄하는 표현이었던 것 같고요.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 저희가 기획할 때 확실히 다같이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분명히 그 존재를 느끼고 있고, 종로 안에서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그런 경계가 있다는 건 우리가 분명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도 말하는 문장이죠.

 

터울 : 두 분에게 종로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오웬 : 종로는 마음의 고향이죠. 말해 뭐해. (웃음) 정말 그런데 저는 명절 때, 고향 갔다온 당일에 꼭 종로에서 술자리를 가져요.

 

터울 : 저도 그래요. 종로 아니면 이태원에 가죠.

 

오웬 : 정말 마음이 편해져요. 

 

터울 : 그렇죠. 그런 게 울타리가 있다는 증거죠.

 

오웬 : 정말 마음이 편하고, 여기에 종로가 있으니까 내가 다른 데 가서도 편하게 게이로서 어깨를 펴고 다니는 것 같아요. 내가 거기서 상처받아도 여기서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터울 : 그런 감각이 종로를 만든 거죠. 석님은 어떠세요?

 

석 : 어렸을 때는 종로만 나오면 좋았었는데, 요새는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웃음)

 

터울 :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절 종로를 통해서 뭔가 해소되거나 충족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석 : 그렇죠. 그런데 그 때도 사실 종로 자체는 저에게 소속감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안의 사람들이 중요했던 거죠. 물론 이 공간이 사람들을 모으는 거지만, 위로를 주는 건 공간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인 것 같아요.

 

오웬 : 맞아, 나도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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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코로나 시대의 지보이스

 


터울 : 오웬님은 2020년 단장님이 되셨잖아요. 어떻게 단장이 되셨어요?

 

오웬 : 이번에도 처음에는 경선이었죠. 후보자가 3명이 있었는데, 두 분이 사퇴하시고 결국 단독으로, (웃음) 새로운 전통에 맞춰서 경선을 거쳐 올해 단장이 됐어요. 선출되었을 때 되게 기뻤어요. 살면서 어디의 장이 돼본 적이 없었거든요. 항상 하고 싶어했고, 여기에서 내가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다는 욕구들이 항상 있어서. 그런데 살면서 그런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는데, 그 이유가 저의 소수자성 때문이었던 거죠. 은둔게이였지만 은연중에 드러나는 여성스러움이라든가, 그런 부분들이 보통 사회에서 장에게 바라는 단단하고 강한 리더쉽과는 거리가 멀었던 거고, 저는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데. 지보이스에 와보니까 나도 여기선 할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살면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어요. 드디어 나도 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어서 되게 감격스러웠어요. 처음 단장이 되고 나서 이 얘기를 단원들 앞에서 그대로 했어요. 뭔가 항상 돼본 적이 없고 소외받는 사람이었는데, 처음 있는 일이다 나한테도, 부족하겠지만 단체를 잘 끌어가겠다는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항상 같은 생각이에요. 너무 복에 겨운 일이고 사실, 그렇습니다. 

 

터울 : 올해 코로나가 터졌잖아요. 지보이스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오웬 : 그렇게 힘들게 단장이 됐는데 코로나가 터졌죠 지금. (웃음) 원래 지보이스 뮤직캠프가 4월에 기획되어 있었는데, 뮤직캠프도 지보이스에 들어올 수 있는 좋은 기회 중 하나여서 나름의 준비를 하거든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서 올해 뮤직캠프가 취소돼버렸어요. 그래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힘들게 연습을 하고 있는데, 아무튼 저희는 올해 공연을 할 거고요. 지보이스 정기공연은 올해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안전 수칙을 준수하면서 진행할 예정이고, 공연의 날짜와 장소, 공연 기획도 확정됐어요. 9월 20일 일요일 소월아트홀, 작년이랑 같은 곳에서 진행될 거예요. 지금 생각으로는 정부 수칙상 공연 관람할 때 관객석을 한칸씩 띄워서 500석 규모에 250명의 관객을 모실 예정이고, 그래서 라이브 송출 병행이 예정돼있어요. 그 작업을 연분홍치마 측에서 고생해주시기로 했어요. 아무튼 코로나 때문에 지보이스도 다사다난해요. 

 

석 : 올해 원래 되게 바쁘고 엄청 뭐가 많은 해였었는데, 

 

오웬 : 그게 심지어 계속 바쁘다가, 다 준비하다가 마지막에 퍼진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엄청 지치더라고요.

 

터울 : 위로의 말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지금 현 상황에서 공연을 강행하는 것 자체가 귀한 일인 것 같아요. 지보이스를 제외한 어떤 게이 그룹들도 예정했던 공연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오웬 : 너무 슬프죠. 

 

터울 : 9월에 어쨌든 공연을 진행한다는 것에 일단 박수쳐드리고 싶어요. 준비가 잘 되었으면 좋겠고, 코로나 사태도 조속히 마무리됐으면 좋겠습니다.

 

오웬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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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보이스와 게이커뮤니티에게 바라는 점

 


터울 :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지보이스에게 바라는 점, 그리고 지보이스를 바라보는 게이커뮤니티의 일원들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 한마디씩 해주시죠.

 

석 : 지보이스에게 바라는 점은… 나중에 돌아가면 받아주세요. (웃음)

 

오웬 : 내년에 온다고 하셨죠?

 

석 :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오웬 : 내가 받아줄게.

 

석 : 오웬 단장님이 힘이 없으면 어떡하지? (웃음)

 

오웬 : 지금 지보이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밖에 없어요. 건강 관리 잘하라는 얘기.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누구 한명이 갑자기 건강이 안좋아졌다, 코로나 확진됐다 그러면 와장창 끝나는 거예요. 연습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하고. 그러니까 건강 관리 잘하고, 웃으면서 앞으로도 긍지를 잃지 않고 노래할 수 있는 단원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터울 : 그럼 지보이스를 바라보는 게이커뮤니티에게 얘기하고 싶은 점은 뭐가 있을까요.

 

오웬 : 지보이스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웃음)

 

석 : 지보이스 노래 들어주세요. (웃음) 공연도 보러와주세요. 저희가 노래를 기깔나게 잘하진 않아도, 

 

오웬 : 프로 팀이 아니니까,

 

석 : 그래도 공연이 제공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항상 주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오웬 : 지보이스에 많이 들어와주세요. 특히 덩치분들, (웃음)

 

터울 : (웃음) 제가 이 인터뷰를 하게 된 건 지보이스에 대한 존경심과 여러분들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은 적어도 제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신 분들입니다. 

 

오웬 : 오 선택당했어. (웃음) 지겹다 그런데. (일동 웃음) 

 

터울 :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석, 오웬 :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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