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호][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12 :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2020-05-04 오후 12:58:35
230 0
기간 4월 

 

[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12

: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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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글은 황두영 작가의 <외롭지 않을 권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인가구와 독신주의, 혼밥 등은 독립적 개인이 자유와 성취를 추구하는 힙(hip)한 생활방식 따위로 포장됐다. 동성애자들은 방어적인 전략을 짜기 수월해진 측면이 있다. ‘너 왜 결혼 안 하니’같은 부모님의 질문에 비혼이 신념인 척, 결혼이 사랑의 무덤인 척 이야기하면 ‘쟤 뭐야’ 싶으시다가도 ‘요새 저런 애들이 있다더라’고 납득들 하시니까. 그러나 방어는 방어에 그칠 뿐이었다. 아끼는 누군가를 찾아 세상에 인정받고 행복해지려면 보다 적극적이어야 할 테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살면 행복해진다’는 낭만을 때때로, 실은 꽤 자주 배신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행복의 모델을 갖는 것은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즐겁고 행복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는 사람들이 지루한 노동을 버티고 구차한 현실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로부터 서로에 대한 예의와 윤리가 나오고, 성실한 노동이 나오며, 사회에 대한 애정이 나온다. (163쪽)

 

 

다행히도(?) 힘 있는 분들의 편협한 사고는 동성애자들만 벼랑끝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존재가 많음을 이번 책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됐다. 혼자가 된 노인들도, 가부장적 사회를 거부하는 여성들도, 집 살 돈이 없는 이성애자들도 모두 ‘결혼 밖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담아낼 그릇을 어떻게 만들지 궁리했던 이번 모임은 특별히 작가 초청모임으로 이뤄졌다. 아래는 주요 발언 정리.

 


-다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크리스: 한 사람의 외로운 사람으로서, 많이 접하던 주제인 생활동반자법이 책으로 정리돼서 나온 것이 좋았다. 작년에 크게 아프고 나서부터 인생의 화두가 외로움이었다.

 

상호: 가족이란 게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게됐다. 가족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삶 전반 모든 것에 얽혀있고 시스템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더불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관계도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게 됐다.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있으신지?
 

호세: 최근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지 않나. 다른 가족의 마스크를 대신 사 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계된 제도를 보면서 소외감을 느꼈다. 동성 애인을 둔 사람들 등은 사랑하는 이의 생존수단을 대신 구해다줄 수 없겠구나 생각 들면서. 생존권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점이 체감됐다.

 

을기: 혼자 잘 때 몸이 안좋아서 한번씩 온 몸이 젖은 채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럴 때 불안감을 느낀다. 그럴 때 누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절감한다. 주변 친구들 결혼할 때도 그렇고.

 

신민: 혼자 밤에 아파서 편의점에 약을 사러 갈 때. 같이 사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편 혼자 사는 게 익숙해져서 좋을 때도 있다. 혼자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어도 될 때. 깔끔하지 않게 잠을 자도 될 때는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주용: 공동체가 꼭 가족일 필요는 없고, 친구사이 같은 모임도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나는 온라인으로 HIV 환자임을 잘 드러내지만 외려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숨기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 내가 나를 드러내도 좋은 안전한 공간에 속하고 싶다. 

 


- “서로 미안해하고 원망하며 그러다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지금 한국 가족의 모습”(36p)이라는 진단이 인상깊었다. 가족이 ‘부담스러운 관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진: 개인주의가 발달한 외국의 경우 자녀들이 빨리 독립을 한다. 그렇게 부모 자식간 경제적인 문제들도 많이 분리가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식에 대한 지원 때문에 노후자금도 많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있다. 자녀들은 경쟁과 취업난 속에 힘들고, 부모들은 부모대로 ‘이만큼 쏟아부었는데 왜 이것밖에 못하냐’ 하는 불만이 있다.

 

소피아: 모든 공적 지원이 가족들을 겨냥해 만들어졌다. 전세대출 이런 것들도 이성애자 가족들이 돈을 세이브할 수 있게끔 설계된 게 많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지 않고는 지원을 받지 못하니 결국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지원에서 배제된다. 결국 다시 원래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플로우: 자녀가 사회에서 살아남게 하도록 하기 위해 자원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사회가 문제 아니려나. 그런 사회에선 생활과 생존에 있어서도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아이를 대충 키워도 되는 사회’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녀에게 자원을 덜 투자하고. 애가 저절로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이 돼있다면 부모님도 아이도 커가면서 어떻게든 되는구나. 자녀들도 나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구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석: 동남아쪽에는 광범위한 구성원들이 큰 집에 모여 사는 가족형태가 있다. 굉장히 큰 집에서 어느 방에는 레즈비언 부부가 살고, 어디는 또 다른 부부가 살고 이런 식이다.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아이를 키우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한국 사람들이 자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족단위가 (위 동남아 형태와 다르게) 계속 줄고 1인가구는 늘어감에도 육아든 경제적 문제든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동반자도 결국 한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양한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방법도 지금 한국에는 많이 부족하다.

 


-<외롭지 않을 권리>를 소개하는 포스팅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악플 읽기’ 해보자. (악플 내용은 생략)

 

일곰: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친구가 파트너십을 맺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랑도 하고 미래도 그려가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서류를 준비해서 하더라. 부양의무가 생기면 서로 책임감도 느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권리만 누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의무를 지워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저런 댓글은 오해다)

 

우석: 법에서 권리를 누리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이 사람(댓글쓴이)의 생각엔 ‘어떤 국민이 권리를 누릴 수 있고 누가 아니냐’ 라는 개념이 전제돼 있다. 그 테두리 안에 동성애자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혐오를 어떻게 돌파할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결혼제도에서 불합리를 경험하는 것은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단지 성소수자 이슈만 아니라 노인·장애인 같은 계층들을 계속 끄집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

 

제롬: 법이라는 것이 잘 지키면 보호를 받지만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해당 댓글은 보호의 측면에만 집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측면에 대해서는 우리 역시 더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주저함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 한국 국민은 함께 사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를 포기하고, 삶을 포기한다. 그렇게 국민 개인의 삶은 손에 쥔 모래처럼 국가의 손에서 벗어난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개인의 사정과 감정을 더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 내 감정, 내 사연, 내 사람, 내 시간, 내 결정, 내 욕망을 존중해 정책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285쪽)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생활동반자법이 채택한 2인의 결합방식은 기존 혼인제도를 베낀 것 혹은 따라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예 동성결혼 도입을 주장해도 되는 것이고, 다른 민법상 절차들로 보완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음에도 굳이 생활동반자법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동법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 외에 무슨 효용이 있나, 이런 질문에 답을 한다면? (싸이러스)
 

▶ 1인가구 급증과 고령화 등으로 사회시스템은 실패하고 있다. 수조원대 사회복지 재정이 투입돼도 변화가 없다. 이렇다보니 시장경제를 떠받드는 조선일보나 매일경제에서도 외국의 시민결합제도 사례를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냈다. ‘지금의 문제가 자본시장 입장에서도 급박한 문제가 되었구나, 동거의 권리까지 아주 낮은 차원에서는 동의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급진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음) 돌볼 수 있는 의무나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는 가족에 부여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기존에는 혈연이나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로 이루어져왔다면, 앞으로는 개인들끼리 일상적으로 돌보려는 의지를 국가가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주장하게 됐다.

 

 

Q. 성소수자 단체가 이 법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진구)
 

▶ 더 많은 당사자들과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성애자 중심 결혼제도에 대한 의문이 불거지고 그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위기가 지금처럼 심각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따라 우리의 입장도 복잡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Q.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셨다. 우리가 작가님의 의도를 놓친 부분이 있다면? (주용)
 

▶ 결혼제도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 동성애자뿐은 아니다, 라는 부분을 더 알아주셨으면 한다. 생활동반자법이 동성애자로서는 완벽히 만족스러운 제도는 아닐 거다. 동성결혼과 100% 동치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국가와 가족의 관계, 가족의 권리 등을 설명하는 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넓은 시야에서도 책을 한 번 감상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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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당 총재 /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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