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0호][커버스토리 'ILGA ASIA 2019' #3] 젠더·섹슈얼리티의 다양한 전선들, 욕망 지도와 성소수자 가정폭력
기간 8월 

[커버스토리 'ILGA ASIA 2019' #3]

젠더·섹슈얼리티의 다양한 전선들, 욕망 지도와 성소수자 가정폭력

 

 

 

 

욕망 지도 그리기 Mapping your desire

 

 

아시아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모여 세미나와 토론이 이루어지는 일가 아시아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인상깊었던 것은 한 공간 앞에 붙은 문구였다. Gender-neutral Restroom, 바로 성중립 화장실이다. 기존 호텔의 이분법적인 남/여 화장실의 표기를 없앴고, 각 대변기 칸에 들어가 개인의 용무를 볼 수 있는 독립적인 구조로 행사 동안 운영되었다. 국내의 성소수자 행사에서 경험했던 성중립 화장실 중에 가장 잘 운영되었던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화장실이 사소하고 작은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성소수자에게 화장실이란 공간은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 안에서 배제와 차별을 받는 공간이다. 다양한 퀴어들을 위해 성중립 화장실을 세세하게 준비해준 무지개행동과 일가 아시아 측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컨퍼런스 중 생각나는 세션 중 하나는 바로 ‘Mapping your desire’ 워크숍이었다. ‘욕망 지도 작성하기‘? 내 이목을 한번에 끌었다. 평소 친구사이나 타 단체 활동가,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섹스에 대해, 섹슈얼리티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사실 솔직한 대화를 나눈 적은 몇 번 없었기에 세션에 들어가기 앞서 어떤 워크숍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세션에 들어가자마자 큰 보드판에 섹스,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세계 각국의 단어가 쓰여 있었다. 활동가 한분이 오셔서 설명하기를, 본인의 명찰 뒤에 평소 욕망하거나 궁금했던, 혹은 좋아하는 욕망 단어를 세 가지 적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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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ping your desire : how living into our authentic sexualities can fuel our justice work’ 세션은 제이미 M. 그랜트 박사, 그녀와 함께 활동하는 팀이 진행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이라 소개해주었다. 욕망 지도는 참가자들이 본인의 섹슈얼리티, 욕망을 이야기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의 워크숍이라고 했다. 일련의 질문, 명상, 연습, 그리고 제안들을 통해, 참가자들은 본인의 섹스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과 관계를 돌이켜보고 반성함으로써, 보다 진실한 섹스, 섹슈얼리티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과 전략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녀는 2008년 대학 캠퍼스에 욕망 지도 워크숍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Great Sex: Mapping Your Desire> 워크북을 만들었으며, 2015년부터 3000부 이상이 개인, 운동 단체, 도서 클럽, 청소년, 노동자, 성 센터, 성교육 담당자에게 판매되어 성 자기 결정과 성 건강을 위한 길을 만들고 공동체를 건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HIV 관련 단체에서도 장기적인 건강을 위한 인식과 협상,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이러한 훈련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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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들의 워크숍 코치로서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는데, 워크숍에 처음 임하는 참가자들은 주로 욕망에 대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크숍 과정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예전 참가자들 중 일부 여성은, 일상 생활에서 평등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섹스 시 주도권을 잡으려는 압도적인 욕망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해고, 거칠고 고된 훈련에 임하는 미식 축구 선수들 중에서는, 섹스 시 순종하거나 수동적으로 행동하려는 욕망을 어렵게 이야기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그처럼 우리 퀴어들도 개인에게나 공동체 안에서 섹스에 대해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이후 나의 욕망 지도 작성을 위한 질문지를 작성했다.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나의 섹스와 욕망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 질문지

- 나의 성 생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두드러지는 만남이나 관계는 어떤 것이었나?
- 나의 성 경험이나 나의 욕망에 대한 경험 중에서 나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게 느껴진 것은 어느 것이었나? 그 이유는?
- 내가 가장 강렬한 신체적, 정서적 반응을 보인 성 경험이나 나의 욕망에 대한 경험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 그 이유는?
- 그것이 설령 내가 절대로 알고 싶지 않았던 점이더라도, 나 자신에 대해 중요한 점을 알게 된 것은 언제였나? 내가 그 때 알게 된 점은 무엇이었나?
- 가장 그리운 애인(들)이나 짝사랑 상대(들)은 누구이며, 내가 그 사람(들)에 대해 그리워하는 점은 무엇인가?
- 내가 언제나 성적으로 하고 싶어했지만 자제해온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나의 욕망을 탐색할 기회를 크게 놓친 경우로는 어떤 것이 두드러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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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의 짧은 워크숍이 많은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섹스,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시작으로 내가, 또 우리가 각자 어떤 섹스를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곧 나를, 우리를 형성하게 만든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30여명의 사람들이 무작위로 걸어다니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이 적었던 명찰 뒤편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어를 잘 구사하지도 못하는데 날더러 나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그런 두려움과는 달리,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욕망에 대한 대화는 바디 랭귀지와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인도의 트랜스젠더 활동가 언니와 이야기하며 친해진 후에는 엉덩이를 서로 치는 제스쳐를 나누기도 하며 웃음 속에 프로그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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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각이 나는 세션은 ‘Criminalization of consensual same sex activity in the military’이었다. 이 세션은 한국 군대의 군형법 제92조의6, 군대 내 남성 간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조항의 철폐를 요구하는 자리였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팀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한가람 변호사,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이종걸 사무국장이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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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연구에 제작한 ‘침묵 속의 복무’ 자료집이 배포되었고, 다수의 운동가들이 투쟁해온 역사를 공유하였다. 발제가 끝난 후에는 군형법 제92조의6을 철폐하기 위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그간 활동하면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활동가분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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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아시아 컨퍼런스의 마지막 폐막식 행사에 장애여성공감의 일곱빛깔무지개, 언니네트워크의 아는언니들, 그리고 친구사이의 지보이스가 연대 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지보이스 단원으로서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이 오면‘ 노래를 부르며 그간 서울에 올라와 활동했던 5년 동안을 생각해 보았다. 5년 전만 해도 지방에 퀴어 커뮤니티가 없어 서울에 올라오고 싶었던 나였다. 생각해보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5년 전 그 때보다 2019년 지금 좀더 나아가지 않았을까? 성소수자 부모모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전국 각지의 퀴어문화축제 등을 통해 우리의 결은 좀 더 다양해졌고, 공감과 연대 또한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날‘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는 다짐과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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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이스 단원 / 광훈

 

 

 

 

 

 

아시아 각국의 성소수자 가정폭력(DV)·파트너폭력(IPV) 사례

 

 

1. 

 

꿈 같은 시간이었다. 

 

원래 이런 삐까뻔쩍한 국제회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행사는 주로 내실있는 논의보다는 이런 휘황한 자리에 참석한 각자의 사회자본을 뽐내는 '의전'이 주가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학과 출신이 모여서 떠드는 여느 국제학술회의의 경우, 전문 용어 번역 문제로 동시통역 서비스가 유의미했던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한 탓도 크다. 

 

헌데 이번 일가 아시아 컨퍼런스는 무엇보다 학술이 아니라 '운동'이 중심인, 참으로 보기 드문 국제회의였고, 주요 용어 번역 용례를 사전에 전달받은 동시통역도 상대적으로 매끄로웠다. 무엇보다 아시아 각국이 구태여 왜 이곳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의 내실이 충분히 설득되는 자리였다. 비싼 등록비와 멋드러진 호텔, 훌륭했던 식사 이상으로, 각국의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자국의 사정에 웃고 우는 경험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내고 이곳에 온 활동가들 대부분이, 저마다 한 더미씩의 이야깃거리를 안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만 내 딸리는 언어 실력이 다소 원망스러웠는데,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순정한 마음이 든 것 역시 오랜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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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내용으로 진행된 각 세션의 내용은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행사장 로비에 비치되어있던 아시아 성소수자 단체들의 보고서와 유인물 또한 아주 유익했다. 당일 행사장에 와있던 활동가들을 다른 기회에 또 보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겠듯이, 외국에 직접 나가서나 집어올 수 있는 문서들을 바로 눈앞에서 읽어보고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또한 귀하디 귀한 기회였다. 바쁜 일정 중에 참가했던 것이라 둘째날은 사실 오후에 다른 곳으로 가려던 참이었지만, 막상 와보니 다른 건 제쳐두고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저녁까지 행사장을 지켰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행사를 왜 대중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이 역시 행사장에 와있다 보니 의문이 해결되었다. 먼저 서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처럼, 성소수자의 존재와 성적 실천이 공공연히 불법이어서 활동가들의 신원 노출이 극히 위험한 경우가 있었다. 더불어 한국의 HIV/AIDS 이슈처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의제 중에 혐오세력들의 선전에 악의적으로 이용되는 걸 의식해 내부의 이야기를 검열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이렇게 활동가들이 모인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현안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로 세션을 통해 운동과 커뮤니티의 아주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했는데, 이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시원한 구석이 있을 정도였다. 

 

더불어 이런 국제행사는 자칫 외국의 뛰어난 성취를 일방적으로 우러르고 부러워하는 식의 구도가 되기 쉬운데, 적어도 이번 컨퍼런스만큼은 상대적으로 그런 색채가 덜했다. 각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 나라의 운동이 앞서나가는 부분과 잘 안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활동가 스스로 자국의 운동 성과중 자랑할 부분은 자랑하고, 돌아볼 부분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여지껏 꽤 나쁘지 않은 길을 걸어왔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간 행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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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그램은 크게 전체회의(Plenary)와 메인 세션, 그리고 자율 조직(self-organized) 세션으로 나누어 운영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둘째날의 가정폭력(DV)·파트너폭력(IPV) 메인 세션은 따로 소개하기로 하고, 각 세 파트 중에 뇌리에 남았던 프로그램에 대해 기술해볼까 한다. 

 

우선 둘째날에 열린 아시아 성소수자 활동가 리더십(Re/Defining Leadership in Asian LGBTIQ advocacies) 세션이 인상깊었는데, 각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고단한 활동 중에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운동의 대의가 아무리 푸르더라도 그에 따른 실무 어디까지나 '일'이고, 활동가들 또한 자신의 삶 속에서 '워라밸'을 보장받아야 할 사람이다. 활동가 자조모임처럼 구성된 이 전체회의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잠깐 동안이라도 당면한 이슈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며, "활동가에게 요가 등 웰빙 관련 코스를 필수적으로 수강하도록 한다"는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연대해나갈 힘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전체회의 말미에 한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는데, 출신 국가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이 상대적으로 열악했기에 더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운동과 사회가 나아가는 상황에 자기가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일 수 있다.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얘기니까.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역경 속에서 자신을 다잡는 훈련과 수양 역시 자기를 돌보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이 요가나 다른 활동보다 위안이 될 때도 있다. 각자가 처한 운동적 상황이 자신에게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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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세션으로는 첫째날에 열린 아시아 지역 성소수자들, 특히 게이/퀴어 커뮤니티의 켐섹스(chemsex : 약물 사용) 세션이 단연 인상깊었다. HIV/AIDS 만큼이나 사회적 낙인이 몹시 심한 주제였기에, 각국 활동가들과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몹시 감격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 중에 특히 일본의 사례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2016년 LASH(Love life And Sexual Health)를 통해 MSM(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무엇보다 이런 조사를 일본 후생성이 보조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더불어 흥미로웠던 것은, 2013년 12월부터 한국에서 '신종마약'으로 규제된 포퍼(러쉬, 랏슈)가 일본에서는 더 이른 시기인 2005년부터 금지되었고, 한국에 비해 매우 강력히 그 사용을 처벌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를 기점으로 일본 내 MSM들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사용이 급증했다고 한다. 소수자 인권의 문제까지 갈 것도 없이, 공중보건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위해 경감'(harm reduction)의 관점이 배제된 약물 사용 처벌이 갖는 문제점을 환기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이 문제를 거의 유일하게 다루고 있는 연구모임POP의 타리님은 질의응답 때 다음과 같이 언급했는데, '인권'의 원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발언이었다. 

 

 

"이 문제를 대할 때 인권활동가들조차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도 안하는 게 좋지 않냐'고. 그러나 인권은 근절론과 화해할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걸 없애기만 하면 된다는 게 인권운동의 방법론은 아닐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를 폭로하고, 거기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쩌면 그것이 활동가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일 것이다. 가령 약을 먹지 않는 HIV 감염인이 있다. 물론 자신의 건강에도 좋지 않고, 보건당국이 보면 공중보건에 위협이 된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인권운동은 그를 격리하고 강제로 치료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약물 이슈도 이러한 곳에서 참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회복은 과연 무엇일까. 성폭력 피해 당사자에게 회복이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를 사는 힘을 갖추는 것이다. 그처럼 약물 사용자에게 있어 '회복'이란 개념도 앞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중요한 질문은 '합의 하에' 하는 켐섹스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약물 사용 당사자에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도록 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유포하는 과정에서 '약물 사용을 권장한다'는 식의 오해가 일정하게 따라붙을 수밖에 없을 테지만, 감수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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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컨퍼런스에는 일과 시간 이후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세션을 조직하여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율 조직 세션도 운영되었다. 물론 동시통역이 안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평소에 관심있던 주제였기에 ‘Sex worker’(난 이 단어의 한국어 번역어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관련 세션에 참석했다. 자기 소개 시간 때 이상한 영어로, 친구 중에 성노동자도 있고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도 있는 게이 활동가라고 나를 소개했다. 여러 가지로 첨예한 논쟁점이 있는 의제라 좌중이 잠시 웅성거리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발제자는 일본 태생으로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Sex worker’였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 컨퍼런스의 등록비를 댄 분이었다. 발제의 주요 내용은 일반음식점에서의 성매매(Brothel that operate as restaurant)에 관한 것이다. 성매매 비범죄화를 시행하는 뉴질랜드에서도 저런 사각지대의 성산업이 만연하는 상황이고, 이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가 세션의 핵심 의제였다. 성매매를 범죄화하여 당사자를 체포하든, 혹은 비범죄화를 통해 성매매여성을 노동자로 등록하든, 양자 모두에서 그 법정치의 예봉이 성산업 현장을 매우 뭉툭하게 건드린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일본에서 ‘Sex worker’ 온라인 가시화 운동이 발생했을 때 사용했던 해쉬태그가 "Life with Shitty Clients(#クソ客のいる生活)"였다는 것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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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 가정폭력(DV)·파트너폭력(IPV) 세션

(Domestic Violence and Intimate Partner Violence againtst LGBT persons in Asia)

 

(왼쪽부터) Mandy Chng(싱가포르, Sayoni)

Leo Pang(대만, Taiwan Tongzhi Hotline)
Justine Zhang(중국, Rainbow Anti-GBV Center)

Ging Cristobal(필리핀, OutRight Action International)


3.

 

컨퍼런스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둘째날 열린 가정폭력(DV)·파트너폭력(IPV) 세션이었다. 이 때 필기했던 내용은 사람들과 널리 나눌 만하다고 판단되어, 아래에 주요 발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성소수자의 가정폭력의 경우 당사자가 피해자인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파트너폭력은 (당연한 얘기지만)성소수자가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 이러한 사례의 경우 피해자의 육체적·심리적 양상이 어떻고 어떤 개입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운동적·제도적 지원이 뭐가 있을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측 패널이 발제를 했다. 흥미로웠던 것이, 중국 패널의 출신 단체가 Rainbow Anti-GBV[GBV : 젠더 기반 폭력] Center였다는 것이다. 젠더 기반 폭력이라고 하면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주로 대응하고 있는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인데, 위 센터는 중국 내 다른 젠더 기반 폭력 대응 단체인 Common Language과도 일정한 연계가 있다고 한다. 여성 가폭과 성소수자 가폭이 같은 용어로 설명되는 점이 반갑기도 했고, 다소 이채롭기도 했던 순간이다.

 

대만 통즈 핫라인에서도 파트너폭력에 대한 상담을 받는데, 이에 대해 2009년부터 대만의 여성단체인 현대부녀기금회(Modern Women's Foundation, 1987년 설립)와 연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성단체의 가폭 사례 중 성소수자의 사례의 비율은 아주 낮은데, 2014년 0.39%에서 2018년 0.92%로 다소 증가하긴 했다고. 그럼에도 성소수자 인구비를 고려했을 때 보고율이 매우 낮은 편인데, 성소수자 전문 상담 단체가 아니라는 한계와, 폭력을 당해도 피해 보고를 꺼리는 점이 모두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고. 이 문제가 이 세션의 핵심 논제였다. 더불어 대만은 알다시피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었는데, 이는 자연히 부부와 관련된 가폭 법률이 동성커플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앞으로 사례 보고가 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가폭 사례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일단 성소수자가 피해자인, 그러니까 원가족 구성원에 의한 가폭 사례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가족 중심 문화와 가부장제 문제가 예상대로 지적되었다. 싱가포르는 35세 이전에 자가 독립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이런 문제가 더욱 가중된다고 한다. 더불어 필리핀의 한 사례의 경우, 트랜스젠더 여성이 13살 때 부친에 의해 옷을 벗긴 채로 집밖으로 쫓겨났는데, 그녀는 이에 대해 "트랜스젠더니까 이런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요소들이 파트너폭력으로 연결되는 방식인데,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커플 관계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니까 그 관계 내 폭력을 논의하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 원가족과 스트레스를 겪게 되면, 그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선택한 성소수자 파트너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집착하게 되고, 이것이 폭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한다. 폭력을 당하고도 "이 정도는 견뎌야 된다"는 정도로 넘겨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흔히 이성애자 커플 사이엔 폭력이 있지만 성소수자 커플 내에는 폭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성소수자 파트너폭력의 보고 사례가 태부족한데, 이에 대해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도 언급이 잘 안되는 점이 지적되었다. 대내외적으로 "존경받는 성소수자의 일원"이라는 인식 때문에 구성원을 고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례 보고가 적은 데엔 가폭에 대한 법률에서 성소수자 커플이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성소수자에게 특화된 상담 서비스가 없는 것도 한몫한다고 한다. 대만에서 동성커플간 폭력을 2012년에 조사했을 때, '상담해도 소용없을 거다'가 73%, '상담 시스템이 젠더 뉴트럴하거나 성소수자 친화적이지 않을 것 같다'가 62%, '상담 과정에서 아우팅이 우려된다'가 47%로 집계되었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는데, 민감한 언급이 많아서 패널을 특정하는 게 좋을 듯하다. 기본적으로 파트너폭력을 포함한 가폭이 '젠더 기반 폭력'인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성소수자 파트너폭력의 경우 이성애·이원 젠더 기준의 성별 관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건 중국측 패널의 언급이었는데, 가령 여성적인 성향의 사람이 폭력적인 경우도 있고, 남성성을 많이 띠는 사람이 폭력 피해자인 경우도 의외로 많이 보고된다고. 발제자는 이에 대해, 남성성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인내심이 더 강할 것 같고, 폭력으로부터 잘 견딜 것 같다는, 사회적 편견·고정관념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대만측 패널은, 커플간 언어/정서적 폭력이 이성애 커플보다 동성애 커플에 더 많이 나타났고, 게이 커플보다 레즈비언 커플에 이런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페미니즘이 이야기하는 이원 젠더 성차별이 퀴어 안에서도 당연히 작동하는데, 다만 그것이 이성애자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던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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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소식지팀장 /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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