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05호][소모임] 읽은티 #2 - 에드윈 케머런, <헌법의 약속 :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by 황이 posted Mar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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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티"는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갖는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독서 모임 후기를

매월 친구사이 소식지에 기고하는 연재 기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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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랑"님의 감상

지난 날, 유치하고 치졸한 지적 우월감을 위해 들먹이곤 하던(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짜라투스트라가 곧 그리스식 발음으로 조로아스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왜인지 모를 민망함. 자기 확신을 가진 자가 보여주는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한 걸음 한 걸음을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느끼게 되는 수치심과 자기혐오의 더블 임팩트.

 

서문에서의 ‘평등은 우리 모두를 존엄하게 한다.’는 문장은 내게 이 책을 읽으면서 어째 몹시 부대끼게 되리라는 이유 없는 불길함을 안겨주었다. 이 책이 어떻다는 어설프고 섣부른 평가질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문제이자 내가 가진 두려움을 일깨우는 한 방울의 파문이었다.

 

에드윈 캐머런은 유려하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현실과 법의 역동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HIV와 자신의 경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민주주의와 에이즈의 이중주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임시 헌법의 평등 조항을 둘러싼 개인들의 투쟁의 역사가, 어떻게 모여 우리의 다양성을 지지하고 뒷받침할 수 있게끔 해주는지를 친절하게 일러준다. 다양한 재판, 그 지난하고도 고달픈 과정, 그러나 어쩌면 가장 빛나는 투쟁의 시간일지도 모를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에서 우리는 지난날을 기억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제안한 이 흥미롭고 경이로운 여정이, 내게는 왜 이렇게 버겁고 고통스러운 여정과도 같이 느껴지는 것일까. 이 여정의 끝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저자의 목소리가, 내게는 유독 입맛이 쓴 까닭은 어쩌면 내가 좀 글러먹은 인간이어서 인가보다.

 

 

 

"황이"님의 감상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입에서 낭랑하게도 펴져 나온 그 말이 우리나라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대부분은 환호였지만, 어디선가 큰 탄식도 있었습니다. 환호한 사람도 탄식한 사람도, 심지어 헌법재판소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까지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헌법과 헌법재판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저 흐르듯이 쓰인 것처럼 들렸던 선고문은, 사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법률적인 의미와 고민을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법에는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이 그 의미를 전부 알지 못하더라도, 마치 권선징악 드라마의 절정을 지켜보는 기분으로 숨을 죽이고 들었던 그 ‘주문’은 아직도 제 나름 큰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헌법의 약속”에서는 법과 양심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종식시키는데 일조한 일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헌법재판소가 내렸던 인상적인 판결들도 그에 못지않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어쩐지 남아프리카의 시민이 된 마음으로 이 책을 지켜보았는데, 몇 가지 판결은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몇 가지 판결은 마치 2017년 3월 10일의 그 순간을 다시 보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음베키 정부의 오만과 차별을 상대로 수백만의 인명을 구한 네비라핀 보급 판결, 일치성보다 다양성의 정신을 우선한다고 선언한 수날리 필라이 코걸이 판결, 과거의 차별도 보상하리라 선언한 공직자 연금 차별 판결은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놀라웠습니다.

다만, 어쩐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여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정말로 이 현실에 저런 정의로운 판사가 있단 말인가요? 부패하지 않은 사법부가 있단 말인가요? 지난날의 과오를 씻고자 양심 고백하는 의사들이 있단 말인가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최고 권력자가 법치주의를 신봉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건 무슨 법정 판타지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인 저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법부와 정치권력의 부정부패가 뉴스를 메웁니다. 그걸 다시 연예인 부정부패가 밀어내고, 그걸 다시 사법부 및 정치권력 부정부패가 밀어내는 일의 반복입니다. 책의 저자인 에드윈 캐머런도 책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많이 걱정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책에 적을 때가 2013년이라는데, 지금 구글링을 잠깐 해보니 남아공의 부정부패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것인가 봐요.

 

그나마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사건이 긴 시간을 통해 어떤 결과로 이어지고 다시 그 결과가 다른 일에 영향을 주는 연쇄를 반복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 꼭 아름다운 모습만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겁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은 그 아름답지 못한 어떤 과정 중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믿으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2017년 3월 10일 이후 헌법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시기적절하게 그 즈음 책읽당에서 대한민국 헌법과 관련한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우리나라 헌법을 대충이나마 훑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어지간한 건 다 있는 것 같더라고요. 다만, 헌법이라는 것이 법 중에 법인지라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어서, 정치권에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개헌을 머지않아 진행한다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헌법이 새로 만들어질 때처럼 성소수자의 입장도 반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인권 변호사였던 대통령이 동성애를 공식 석상에서 반대하고,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겨 조직의 내실을 다지려는 종교가 득세하는 나라입니다. 희망적으로 보기 도저히 쉽지 않지만, 그래도 저는 언젠가 먼 훗날에 이 아름답지 않은 나라의 헌법에도 성적 지향에 의해 차별받지 말아야 함이 명시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성소수자 재판관에 의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결혼제도가 헌법을 위배한다는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 선고문이 읽혀지는 날이 올 거라고 고대해 봅니다. 물론, 제가 죽기 전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 거 같아요. 아무리 희망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책읽당 활동 관련 문의 : 7942bookpar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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