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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둔 사이의 터울 #9 : 강제적 동성애
2017-11-30 오후 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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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칼럼] 은둔 사이의 터울 #9

: 강제적 동성애

 

 

 

1. 

 

동성애자란 같은 성의 사람을 사랑하고 성적으로 이끌리는 이를 일컫는다. 따라서 가뜩이나 사회의 억압을 받는 동성애자에게 '연애'란 종종 지고의 가치가 된다. 게이인 내가 이렇게 핍박받고 사는 이유가 뭔가, 다 남자 좀 맘놓고 사귀려고 이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애의 중심이란 의외로 텅 비어있을 때가 많다. 동성애자라고 누구나 즐거운 연애를 누리고 있는 건 아니니까. 실은 그러지 못한 경우와 때가 더 많다. 

 

먼저 많은 수의 게이들은 그들의 연애와 섹스를 보통 온라인과 어플에서 먼저 시작한다. 비밀리에 가지고 있던 내 성적 지향의 비밀을 뚫어줄 통로를 발견했으니, 그곳을 통한 연애와 섹스의 욕망은 한층 간절해진다. 그런데 섹스면 몰라도, 그런 어플을 통한 1:1 만남으로 연애가 잘 풀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애하고픈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을 둘러싼 친구와,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서 그가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살펴봐야 하는데, 온라인 번개로 만난 사람은 그런 검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같이 어플 지울 사람 찾는단 소개글의 바람과는 달리, 1:1로 비밀리에 만나길 바란 후에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연애 사기가 판친다. 

 

다행히 오프라인 게이 커뮤니티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연애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한 번 나오면 그곳으로부터 얻는 위안과 친교의 정이 각별해진다. 눈치보며 몰래 만나던 사람들을 종태원에서 나와 당당히 만나고 있으면 묘한 해방감도 든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 하나 그룹들 하나하나가 소중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연애란 본래 어떤 경우에도 기존의 인간관계에 대한 변형을 제물로 삼는다. 기존에 존재했던 사람과 그룹과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깨지지 않는 연애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이걸 굳이 내 욕심으로 깰 필요가 있을까. 내가 괜히 욕심을 부려서, 성공할지 알 수도 없는 대쉬로 이 관계들이 깨지면 어떡하나. 물론 사람들은 보통 그걸 깨는 편을 택하고, 안타깝게도 그걸 치르고도 그 연애가 성공할 확률은 반반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애가 시작되고, 비로소 둘은 단꿈과 같은 연애 초반을 보낸다. 그러나 연애한다고 막상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섹스란 따뜻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 섹스가 테크니컬한 의미로도 최고의 섹스일 가능성은 낮다. 원래 이 시대의 완벽한 섹스란 죄다 모니터 속에 있는 법이니까. 물론 감각적으로 하이를 치는 섹스 이외에도, 연애에는 마음을 나눔으로써 생기는 많은 복락들이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나눈다는 게 또 문제다. 그 말은 내 마음이 내 것만이 아니게 된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안 하면 '마음껏' 불행할 수 있지만, 연애를 한다 해도 '마음껏' 행복할 수 없다. 그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도 모르는, 내 것인 줄만 알았던 그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여러 트러블이 생기고, 그걸 조정하는 과정은 예민하고 늘 신경이 소요된다. 지고의 가치이자 이 바닥 생활의 한줄기 희망이었던 연애는, 실전으로 갈수록 또 하나의 엄연한 협상이자 행정이 된다. 

 

그러다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사랑이, 연애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인가. 물론,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개소리가 만연한 까닭에, 사랑이 누려야 할 제 수명도 채 다 누리지 못하는 때가 많은 것이다. 그래도 더 힘들게 쟁취한 만큼, 더 달콤한 연애일 줄 알았는데. 혐오보다 마땅히 강하다던 그 사랑이 별안간 왜 이리 작아보이는 것일까. 사랑이 혐오보다 강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짐짓 오래 안정적인 연애 관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나는 어째서 지난날 연애를 그토록 지고의 가치로 삼고 살았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본래 사랑의 깜냥보다 턱없이 부풀려진 그 간절한 '동성애'의 환상은 과연 어디로부터 왔던 것일까. '동성애자'로 살며 사랑하기 위해, 연애 외에 앞으로 정작 내가 필요하게 될 것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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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3년 11월, 13년간 같이 살았던 한 이성애자 부부 중 한 쪽이 별안간 이별을 통보했다. 통보받은 쪽은 이유를 물었고, 그는 "그는 사랑이라는 말에 모든 걸 다 걸고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그 ‘사랑’이 싫다"고 대답했다. 배우자는 처음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후 13년간의 부부생활을 되짚어보면서 "사랑"이라 굳이 명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충분히 좋은 관계의 단초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관계에서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되"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의 핵심"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지속하기로 한다. 

 

소설가 배수아는 2009년 그의 소설 『북쪽 거실』에서,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랑은 불가능하고, 나 자신이란 존재는 사랑을 더욱 불가능하게 몰고 가요.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사랑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의 부재가 필요해요."1) 나아가 소설가 김경욱은 2007년 장편 『천년의 왕국』에서, "사랑이야말로 삶 속의 죽음"이며, "삶이 죽음에 의해 완성되듯이 사랑은 순간순간 죽음의 민얼굴을 향해 육박"한다고 설명했다.2) 그리고 소설가, 평론가이자 시인인 이장욱은 2006년 발표한 그의 시 「근하신년」을 다음의 싯귀로 마무리짓는다.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3)

 

한편 소설가 정찬은 1999년 그의 단편 「로뎀나무 아래서」에서, 등산을 좋아하는 작중 화자에게 등산을 왜 하는지 묻는 질문에, "무의미함"이야말로 "등산의 참된 존재 이유"이며, "덧없음, 무의미함" 속에 삶의 "큰 위안"이 있다고 언급했다.4) 더불어 철학자 박이문은, 참다운 삶의 의미는 "모든 것의 궁극적 공허를 느꼈을 때"에만 찾을 수 있으며,5) 2014년 한 인터뷰의 말미에서 "모든 것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이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3월 26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 배수아, 『북쪽거실』, 문학과지성사, 2009, 68쪽.
2) 김경욱, 『천년의 왕국』, 문학과지성사, 2007, 336쪽. 

3) 이장욱, 「근하신년 - 코끼리군의 엽서」,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 2006, 23쪽.
4) 정찬, 『로뎀나무 아래서』, 문학과지성사, 1999, 238쪽.
5) 박이문, 『철학의 여백』, 문학과지성사, 1997,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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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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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 2017-11-30 오후 19:49

연애란 뭘까요, 사랑이란 뭘까요. 정말 행복할까요? ㅎㅎ 우리가 항상 갖는 물음들인거 같네요. 항상 데이고 힘들어하면서도 결국 또 찾게 되는게 사랑할 누군가...

암튼, 공감가는 부분이 연애를 시작하려면 알고 지내던 관계들의 변형이 당연하다. 는 부분 그걸 깨지 못하는 쫄보가 여기 있네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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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7-12-01 오전 11:48

터울 글에 익숙해 지나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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