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일본행을 준비하던 이승엽의 귀고리가 화제 뉴스로 올라왔다.
'깜짝 변신'이라길래 얼마나 변했는지 두고 봤더니 감질맛 나게 한 옅은 염색과 귀고리가 전부다. 스포츠 뉴스야 뭐, 스포츠 스타들의 손톱 발톱까지 다 챙겨주는 어머니 같은 품성으로 장사를 하는 애들이니 그렇다 치지만, 방송 3사가 똑같이 이승엽의 '깜짝 대변신'이라는 타이틀로 소개하기엔 그의 조그만 귀고리는 너무 빈약한 변명거리 아닌가?
얼마 전에 영원한 인디애나 존스 해리슨 포드가 남성미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아들네미랑 함께 나란히 귀고리를 해서 메트로섹슈얼의 열풍이나 뭐네 해서 저쪽 미국에서 난리더니, 이젠 돋보기라도 동원해야 간신히 볼 것 같은 이승엽의 귀고리가 이쪽 나라에서 화제거리로 올라놓고, 내참 세상 돌아가는 풍경이 참 간사스럽기 그지없다.
요새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라운드에서는 거칠기 이를 데 없다가도 밖에서는 손톱에 매뉴키어를 칠하고 게이 잡지에 버젓이 웃통을 벗고 나가는 베컴이 이 메트로섹슈얼의 상징 아이콘이자 대표 선수다. 이쪽 나라에선 김재원과 함께 나란히 '누가 더 하얗지?'하고 볼때기를 맞대고 있는 안정환이 곧 요 메트로섹슈얼이란 아이콘의 영예를 접수했다.
메트로섹슈얼은 근육과 섬세한 패션 감각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왔던 미용과 패션에 열광하고, 자신을 미적으로 꾸미는데 시간과 돈을 들이는 도시 남성들을 지칭한다. '마초의 계절'은 가고, 유니섹스의 '세끈한' 기호만이 부유하고 있단다.
최근 등장한 이 메트로섹슈얼은 그 인기와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고 유럽이고 아시아고 할 것 없이 그 가치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 마케팅 산업 쪽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분야를 공략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 유럽 최대 광고대행사 유로RSCG 월드와이드는 ‘2004년도 10대 트렌드’를 발표하면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산업을 당당 4위에 올려놓을 정도다. 또 이미 한국에서도 그 상품성이 높이 평가되어 마케팅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했단다.
사태가 이쯤되면 왜 사람들이, 아니 남성들이 메트로섹슈얼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물을 것이다.
어떤 이는 메트로섹슈얼이 '꽃미남', '미소년', '얼짱' 등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는 여성 지위 향상에 따른 남성 심리의 변화 과정을 가리키는 키워드라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자본주의 상품화 과정의 귀결에 지나지 않으며 메트로섹슈얼은 광고와 패션에 종속된 도시 남성들을 지칭하는 것뿐이라고 가볍게 일축하기도 한다.
둘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와 근대성(혹은 개인화)의 심화 과정에서 쭉 뽑혀 나온 어떤 기호일 게다. '미적인 것'이 곧 경쟁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가치를 지니는 사회에서, 꾸미는 것이 곧 여성에게 인기를 얻는 새로운 사회에서, 주변의 모든 매체에서 잘 입고 얼굴을 가꾸는 것이 곧 남성의 으뜸 매력인 것처럼 홍보하는 사회에서 남성이 자신을 미적으로 무장하는 것이 하나의 윤리로 내면화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작 1994년 '메트로섹슈얼'이란 말을 처음 고안했던 마크 심프슨이 비판했던 대로, "마케팅 담당자와 남성잡지들이 옷을 비롯한 전통적으로 여성 품목에 대한 남성의 쇼핑 열기를 부추기기 위해 이같은 새로운 유형의 남성미를 조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패션 감각이 전무한 얼빵한 마초맨들을 다섯 명의 패셔너블한 게이들이 세끈한 메트로섹슈얼로 둔갑시키는 최근의 미국 텔레비젼 프로그램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는 '핑크 경제'가 이성애자 남성 영역으로 그 시장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메트로섹슈얼은 일종의 거짓말이다. 친여성적이고 친게이적 것처럼 굴지만 여전히 여성과 게이는 메트로섹슈얼로 위장한 이성애자 남성의 보충적인, 잔여적인 존재들일 뿐이다.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는 이성애자 남성의 '완전함'을 위해 게이들을 스테레오타입화시킬 뿐만 아니라 늘 이성애자 남성을 위해 베풀고 조언하는 보충자로써 게토화시키고 있다.
메트로섹슈얼은 여성성까지 갖춘 완전한 인간으로 표상되지만, 그 이미지 바깥으로 여성들은 멀찌기 튕겨져 나가 있다. 베컴의 아내 스파이스와 안정환의 아내는 이 아름답고 멋진 메트로섹슈얼을 보조하는 '이쁜 인형'으로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친여성적일 뿐만 아니라 친게이적으로 위장된 이 이성애자 남성들은 기존의 이성애자 남성의 권력을 그대로 고수한 채 이미지로 구성된 인공의 왕국의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이다.
참조 : http://www.gaytoday.com/people/092903pe.asp
더 심한 독설을 퍼붓는다면, 이 사회의 많은 남성들은 소수의 메트로섹슈얼 모델을 따라갈만큼의 지불 능력이 없다. 그들은 화장품을 살 돈이 없고, 성형할 돈이 없으며, 그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다. 공장은 바삐 돌아가고 청년 실업은 넘쳐난다.
핑크 경제에 놀아나는 게이들, 패션업계, 마케팅업계, 그리고 소수의 돈 있는 이성애자들이 벌이는 이런 이미지 게임에 놀아날 이유는 전혀 없다. 옷을 잘 입고 근육을 키우고 비싼 향수와 화장품을 사들이는 게 대체 게이 섹슈얼리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호모포비아가 없는, 여성과 동등한 이성애자 남성을 구성하는데 왜 고가의 양복과 화장품이 필요한가?
대체 왜 패션의 노예들이 필요한가? 마초의 근육과 여성적 미용의 이 기묘한 동거, 메트로섹슈얼은 상업적 기호의 변화이지 실제적인 섹슈얼리티의 변화가 아닌 것이다.
정말로 미적으로 자신을 윤리화하는데 필요한 건 명품 딱지가 붙은 고가의 미용품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에 대한 배려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신인류라는 이 소수의 메트로섹슈얼의 기여도는 가히 100%를 육박한다.
또한 신나고 즐거운 게이 커뮤니티, 그 쾌락의 퀴어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미용업계와 마케팅업계의 값비싼 입김까지 빌릴 필요도 없다. 필요한 건 언제나 유우머와 상상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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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초가 아닌 업무에 시달리는 경쟁사회의 화이트칼라들이 가끔씩 스스로를 꾸미고 (약간은 미소년같이) 하는 행동들은 스트레스 해소로 좋지 않을까요? 무언가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 등의 여성차별과 항시 동반되는 남성차별적인 상황에서의 강박관념에 의한 스트레스 해소 말입니다.
그리고, "핑크 경제에 놀아나는 게이들, 패션업계, 마케팅업계, 그리고 소수의 돈 있는 이성애자들이 벌이는 이런 이미지 게임에 놀아날 이유는 전혀 없다." 라고 하셨는데, 놀아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일깨우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매트로 섹슈얼을 빙자하는 쌔끈한 이성애자들과 진정한 남성 게이들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 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구요. 자, 우리 게이의 자부심을 지킵시다!
읽어주셔서,고맙습니다. ^^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