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잘 될 수 있지 않을까-이송희일씨의 문제제기에 대한 반론 (자인파워)
2003-10-07 오전 01: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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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 이송희일씨의 문제제기에 대한 반론 >   - SeinPower

이글은 이송희일씨의 문제제기에 대한 자인파워님의 답변입니다.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있으므로 함께 옮겨 봅니다.




한국에서 동성애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득력있게 묘사한 이송희일씨의 주장 전부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사실 누가 과연 반박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신문에 게이 얼굴 보여주기', '동성애전문잡지 창간하기','대학학생회 주최로 세미나하기' 같은 일들로 동성애 인권지표가 쑥쑥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일들이 게이인권운동의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러한 생각에 적극 찬동을 하는 편이다. 문제는 오히려 그러한 모든 활동들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동성애자들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요즘 들어서는 그러한 동성애자들의 대외적 활동 등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개인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_-;;

더 솔직히 말하면 요즘의 나는 온라인에서의 홈페이지 운영과 몇몇 친한 게이들과의 간만의 수다를 제외하곤 동성애 커뮤니티에 별로 참여하고 있지도 않고, 또 커뮤니티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약간의 흥미만 느낄 뿐 깊은 고민 등도 하지 않는다.(그렇다고 한때 뭐 대단히 무언가를 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서두에 늘어놓는 것은 사실 지금의 내 모습이 이송희일씨의 고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만한 자격도 없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토론에 끼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고, 또 이희송일씨가 '인권운동도 하지 않는 게이는 토론에 끼지도 마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번 적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러한 토론을 통해 지금까지 자의반, 타의반 게이로서의 나와 사회에 대한 멈추었던 고민들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1. 이희송일씨의 문제제기 요약

한국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이유에 대한 이송희일씨의 주장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이 느끼는 억압에 대해 대단히 무신경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극렬한 정치,경제,사회적 억압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도 충분히 동성애 커뮤니티에서 놀고, 성적만족을 취하고, 때론 정신적 만족까지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 한국의 동성애자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일반적 게이인 김게이는 학생이다.(또는 젊은 직장인이다) 그는 자신의 공적활동공간(학교, 직장)에 별무리없이 잘 다니고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동성애자 친구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숨겨진 성향을 발설하고 싶은 욕구(일명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적 욕망"이라고 한다)를 충족시킨다. 좀더 발전된 욕구로서의 섹스욕구는 인터넷에 무수히 깔린 동성애 채팅방에서의 벙개나 다른 공간(술집, 극장, 친구소개로 미팅)에서 충족시킬 수 있다.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 소위 '사랑'이라는 고차원적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땐 첫눈에 호감을 주는 게이 한명과 (비록 이런 사람 만나기가 꽤 어렵다고들 하지만) 학교 파한 후에(또는 직장 퇴근 후에) 만나 술마시고 노래방가고 영화보고 가끔 놀러가고 여관가고 하루에 한번씩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끔 전화기에 대고 내꿈 꿔라고 말하면서 즐겁게 연애한다. 항상 같이 있다고 싶다고 느껴지면 동거를 한다. 한국에선 이 정도 나이에 남자끼리 동거를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결국 정리해보면 김게이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충족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요즘에는 다양한 게이커뮤니티의 발달로 인해 욕구 충족과정도 이성애자들만큼이나 편리하고 간단하다. 다만 욕구충족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불이익(모진 놈 만난 고생하기, 에이즈 옮기, 잦은 벙개로 지갑 얇아지기 등)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을 뿐이다. 김게이 생각에는 이러한 불이익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한국 게이들의 가치관이 정립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바른 게이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고 인권운동처럼 생각된다.

2. 탄압을 안받아서 안싸운다?

먼저 이송희일씨가 말하는 한국 동성애자들에겐 가시적인 억압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의 태반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여파가 너무나 두렵고 끔찍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면 자신이 커다란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또 그러하다.(아무리 인권운동가들이 커밍아웃 후 더 살기좋은 세상이 펼쳐진다고 말해도 대부분의 직장인 동성애자들은 만약 커밍아웃을 하면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도 변하고 승진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은 조금 덜하겠지만..)

그리고 외국에서처럼 증오범죄의 형태로 표출되는 동성애자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과 국가적 탄압이 없기 때문에 억압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은 한국의 동성애자들에겐 아주 좋은 일이다. 또 이는 외국 같았으면 증오범죄의 대상에 낄 만한 다양한 소수집단들이 한국에선 그나마 직접적인 폭력 아래에 놓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한국은 아직 증오범죄가 없는 나라인 것이다.(한국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은 일본인들인데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공공연하게 폭행당한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동성애자들이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로서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가 안받는가하는 것은 사실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없다. 물론 항시적으로 탄압을 받는다면 보다 전투적으로 싸우는 동성애자들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보단 오히려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탄압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사람들이 전투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운동의 논리에서만큼은 별로 지켜지지 않는다.

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되는 나라들(이슬람계통의 나라들)에서 동성애자들의 거대한 폭동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

만약 운동의 논리로 이 문제를 설명한다면 "탄압을 받는자가 싸운다"는 논리보단 "싸워본 자가 싸운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미국의 게이들이 스톤월 봉기를 일으킨 것은 그들의 이미 10년동안 각종 억압에 맞선 싸움을 해왔었기 때문이다.(흑인억압에 대한 투쟁, 여성억압에 대한 , 베트남전쟁 반대 투쟁, 학생투쟁 등등) 10년동안 미국의 거의 모든 공식이데올로기와 싸워온 마당에 동성애투쟁을 못할껀 뭔가?

이는 한국의 동성애인원운동의 상황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송희일씨가 한탄했던 '동성애활동가들의 명맥이 단절되고" 있는 이유는 예전의 활동가들은 이미 10여년 넘게 지속되온 한국민주화운동이 목표를 잡지 못해 방황할 때 인원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이었고 기본적으로 싸우는데 익숙한 동성애자들이었던 반면에 요즘의 동성애자들은 이러한 투쟁의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계몽주의와 투쟁정신을 몸에 익힌 학생과 노동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어디서 동성애인원운동가들을 수혈해 올 수 있을까?

정리하자면 억압을 안받기 때문에 또는 덜 받아서 투쟁을 안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억압은 충분히 존재한다. 정말 꼬투리 잡을려면 끝도 없을만큼 동성애자들은 이 한국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그냥 투쟁 경험도 없는 파편화된 개인일 뿐이다. 동성애에 대해 여전히 굳건히 닫혀있는 사회적 벽은 그들 개개인에겐 너무나 버겁고 힘든 것이다.

3. 숨어서도 할 것 다하기 때문에 안싸운다?

이송희일씨는 통신모임, 인터넷, 술집, 동성애자 카페 등이 증가하는 것과 그들의 역할이 한국의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공적인 삶과 동성애자로서의 사적인 삶을 간편하게 나눠 버리도록 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즉 인권문제에 신경쓰지 않아도 할 것 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이 인권문제에 더더욱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분석인 것이다.

"이태원이나 종로에 가면 쉽게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왜 결혼이나 가정에서의 커밍아웃 문제 때문에 힘들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두 곳은 전혀 다른 세계다. 그리고 난 두 곳을 자유롭게 이월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이송희일씨의 글 중에서)

일단 나는 이러한 분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숨어서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누가 일부러 힘든 길을 가려하겠는가?(오히려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할 길 같은데...)

하지만 일부러 힘든 길을 가지 않겠다는 동성애자들의 선택이 비난받거나 인권운동이 몰락하는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마치 요즘 한국노동자들이 등따숩고 배불러서 예전처럼 투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느 노조간부의 얘기랑 똑같이 들린다.

또한 마치 동성애자들이 맘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야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질테니 그런 공간들은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솔직히 동성애라는 것이 동성애자에게 무엇인가? 하나의 성지향일 뿐이지 않은가?

더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성적욕구와 그에 수반되는 정신적 욕구(사랑)을 같은 동성과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이 동성애자들의 바램아닌가?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그런한 문제를 평생 자기만의 해결할 수 없는 고민으로만 삼고 살았거나 아주 제한된 공간(극장, 술집, 화장실 등)에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일시적으로 해결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주의력과 판단력과 약간의 경험만 있으면 누구나 굴욕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같은 동성애자들을 만나서 놀 수도 있고 동호회도 만들 수 있고, 친구도 될 수 있고, 섹스도 할 수 있으며 연애도 할 수 있다.

또한 별스러운 가족관계만 아니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동고동락도 할 수 있다.

즉, 동성애자로서의 사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공간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기 때문에 요즘의 동성애자들은 그들의 선배들보단 훨씬 유리하고 풍부한 사적인(주로 게이친구영역, 섹스영역, 사랑영역)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또한 그동안 지속되어왔던 동성애인권운동이 가져온 하나의 긍정적인 결과물이다.

때문에 이를 마치 "하나의 가죽술집을 더 만들기 위해 우리가 싸웠나?"라는 식의 비관적인 스톤월평가와 동일시하면 안된다. 왜냐면 통신모임과 인터넷의 역할은 절대로 미국 게이들의 가죽술집의 역할과 동일하지도 않을뿐더러 술집과 다른 상업공간들같은 가죽술집도 이나라에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지역적 편중은 둘째치고)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동성애자들이 더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의 사적 삶을 누리는 것은 인권의 하락이 아닌 인권신장의 지표이다. 동성애인권운동이 만약 그들에게 자신들의 지지기반과 청중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수많은 오류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4. 동성애자들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동성애는 하나의 성지향일 뿐이고,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지향의 문제를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체성이론가들에겐 그들의 의식이 답답해보이겠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지향이 가리키는 바에 충실하기 위해 통신과 인터넷, 그리고 술집을 찾는다. 거기서 그들은 남들에게는 숨겨하는 하는 자신의 사적인 삶(사랑과 섹스)의 갈증을 해결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존재하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것들을 공적인 영역(정치문제)으로 일반화하지 않고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재수' (재수 옴 붙었다의 그 재수)문제로 환원해서 생각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성애자들 포함)이 살면서 자신에게 닥치는 각종 불편함과 억울함, 무당함에 대해 보이는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장에게 쉬지도 않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남편에게 얻어맞고 직장에서 성희롱 당하면서 사는 여성들, 순전히 대학에 가기 위해 6년 내내 젊음을 낭비해대는 학생들, 기타 세상에 불만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해결책들을 내놓고 각개약진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그들도 자신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부당함과 억울함을 보통 자신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거나 '이눔의 더러븐 세상'의 탓으로 돌리고 산다. 임금인상을 해주지 않는 사장을 욕하면서 소주로 위안을 삼는 노동자나 자신의 성지향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을 욕하면서 테크노 춤을 추는 동성애자나 모두 다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요컨데 동성애자들이라고 별다른 사람들이 아니란 얘기다. 그들이 자신이 느끼는 억압에 대해 즉각적으로 맞서싸우지 않는 이유는 게이빠가 넘쳐나고 수천명의 섹스할 대상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가 온라인에 그득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맞서 싸울 만한 자심감과 투쟁경험, 그리고 중요하게는 싸워야 할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세/전략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몇 년간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도대체가 억압에 맞선 싸움이란 것이 제대로 있지도 않았고, 모든 기존 운동이론을 해체시켜 앞으론 각개약진하자는 식의 포스트모더니즘이 판을 친데다가, 소위 동성애인권운동의 지원군이라고 할 만한 각종 인권운동들이 하나같이 죽을 쓰고 있는 마당에 동성애인권운동만이라도 활발하게 전개되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어불성설로 취급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정세결정론이라고 욕하지 마시길...주변 여건이 나빴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5. 그렇다면 왜 몰락하고 있지?

위에서 대단히 일반적인 사실(요즘같은 시기엔 사람들이 잘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급한 이유는 이송희일씨가 제기한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최근 몇 년간 다른 모든 운동들(시민운동 빼고)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이유로 죽을 쑤어왔다. 즉, 사람들이 더 이상 운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과 활동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송희일씨는 그 이유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원인을 제시했지만 - 탄압이 적어서라는 이유와 숨어서 사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커뮤니티의 발전 - 난 그것에 동의하지 않음을 위에서 밝혔다.

하지만 몰락을 얘기할 정도면 문제가 심각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긴 있을 것이다.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거대한 운동(스톤월같은)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시기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커다란 전제를 깔고 나서 동성애인권운동 내부의 문제를 얘기하자면, 사실 난 이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어야겠다. 첫머리에서 말했디만 최근까지 나는 동성애인권운동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동성애인권운동 내부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고 어떠한 논의들이 있었는지는 피상적으만 알고 있다.

따라서 이송희일씨가 주장한 동성애인권운동 내부의 문제들만 가지고 얘기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송희일씨는 위에서 내가 반박한 인권운동 몰락 원인의 두가지 이유 말고도 인권운동 단체들의 무능력과 활동가들의 명맥이 단절되고 있다(동성애자들이 인권단체를 이지메하고 있다는 얘기는 첨듣는 얘기라...-_-;;;;)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는 똑같은 원인의 두가지 측면임으로 같이 뭉뜽그려 얘기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활동가들이 수혈되지 않는 정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을 했었다)

이런 말하면 참으로 나쁜 놈처럼 보이겠지만 나도 한국의 동성애인권운동단체들이 무능력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정말 나쁜놈 같다..-_-)

물론 난 요즘 어떤 인물들이 동성애인권운동에 투신하고 활동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이송희일씨 빼곤) 활동가 개개인들이 무능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난 지금같은 나쁜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인권운동을 하시는 분들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인권단체들이 잘나가던(?) 때 간혹 기웃거렸던 사람들은(나같은) 끊임없이 외부를 향해 목소리만 키우면 되었지만 지금의 활동가들은 훨씬 더 많은 장벽(게이사회 외부와 내부 동시에 막혀져 있는)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다 알 듯이 항상 내부의 장벽이 더 두텁고 깨뜨리기 어려운 법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 동성애인권단체들은 이제 더 이상 동성애자들 내부에서 매력적인 단체들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나처럼 인권운동에 대한 관심이 조금 남아있는 사람들 조차도 인권단체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왜일까?

내생각엔 현존하는 동성애인권단체들이 예전에 동성애자들에게 주었던 매력의 상당부분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를들어 이송희일씨가 시니컬하게 보는 게이들의 사랑방은 예전에는 인권단체들의 주요한 역할이었다.(한때 인권운동 우선이냐 사랑방 우선이냐는 인권단체들 마다의 고질적인 논쟁꺼리였다)

지금은 이러한 역할을 통신모임과 인터넷에서 담당하고 있다.어떻게보면 이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분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예전의 인권단체들은 그곳에서만 편안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동성애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굴복해 자신의 단체의 색깔을 대단히 모호하게 표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단체들을 방문하고 그 와중에서 인권교육들이 조잡하게 이루어지긴 했었지만.......

하지만 어찌됐건 인권단체들이 사랑방 역할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 발전적인 방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름만 인권단체가 아니라면 정말 동성애인권문제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각종 사업들을 진행해 나가야 할텐데 예전엔 친목도모 압력에 짓눌려 사업다운 사업을 입안해보지도 못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상황은 인권단체들이 보다 전문적인 활동들을 해나갈 수 있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난 모른다.(갑자기 꼬리를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몇가지 추측을 할 수는 있겠다.

사랑방 역할을 통신모음에 뺏긴(?) 후 인권단체들은 급속한 회원감소를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몇몇 활동가들 조차 늘어난 사적 공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인권단체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모두 추측이다.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확실하고 내 생각엔 기 이유의 태반이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의 고객(?)을 다시 불러모을 만한 각종프로그램과 전문적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송희일씨가 자신의 글 첫머리에 현재의 한국인권운동단체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는 커뮤니티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은 것을 보면 현재의 인권운동단체들이 여전히 예전과는 구분된 자신들의 활동 프로그램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문제가 그러하다면 이는 인권단체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정말 수 없이 많은 각종 인권단체들(인권을 가장하는 이익단체까지 포함하면 정말 수백개도 넘는다)중 극소수의 몇 단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자신들이 대변한다는 인권적 약자들에게 별다른 매력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전문성에 기반하지 못한 주먹구구식 사업과 막연한 연대감에만 호소하기 때문이다.

또 반대로 운영이 잘되는 인권단체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거기에 맞는 사업들을 알차게 꾸려가는 단체들이다.

요컨데 어떠한 대의명분을 내걸던 간에 무릇 단체라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이익(그것이 자긍심이라는 추상적인 형태건 간에)을 줄 수 있을 때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너무 일반적인 얘기는 하는 것인가?

당장에 억압받고 신음하는 동성애자들에게는 아무 단체나 있어주면 감지덕지고 그 단체가 전문성없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건 말건 무조건적 지지와 참여를 해야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인권단체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크게 지지받고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도덕적 프리미엄을 선사받는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런 단체들이 단지 "모이자!"라고만 외친다면 금방 외면을 받는 단체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인권단체도(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대의명분을 내거는 노동자조직이나 정치조직도) 저절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이 회원부족으로 허덕이고 몰락해나가고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공적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특이한 의식구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인권단체들이 더 이상 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5. 잠정적 결론

상당히 글이 길어졌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간만에 즐거운 글을 읽고 쓰는 글이라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써댔다.(언제나 그렇듯이 인권이란 말은 입에 올릴수록 행복해진다.) 이송희일씨의 문제제기가 그만큼 자극적이고 또 진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 작년 한동협 세미나에서 못다한 얘기를 다 한 것 같아 속이 좀 후련하기는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한국에서 동성애인권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주장하는 것은 별로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송희일씨도 정말 불가능을 상정하고 그 글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동성애인권운동의 제자리걸음(또는 후퇴)를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탄압을 받아야 정신차린다는 식의 얘기나(내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이야기) 노느라 바빠 운동할 관심도 안가진다는 얘기(이 또한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일반학우들을 바라보는 고질적인 시선이다), 늘어나는 동성애커뮤니티들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지적하며 인권단체와 경쟁관계로 바라보는 시선 등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동성애자들로부터 경원시되는 인권단체들의 내부 문제들 - 특히 활동가부분 : 사람이 있어야 단체도 있지 - 과 한국 동성애 운동의 특수성 - 글 초반에 언급한 ㄱ,ㄴ,ㄷ,ㄹ,ㅁ,ㅂ-에 대한 이야기들은 원론적인 동성애인권운동교과서들과는 다른 신선한 분석을 담고 있다. 만약 현재의 동성애인권운동의 이론들이 현실로부터 괴리되어 탁상공론에 그치고 있다면 이송희일씨가 지적한 부분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접근들을 통해 한국동성애자들의 특수성에 맞는 인권활동 프로그램 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물들이 동성애인권운동의 기본적인 이론들을 바로 세운다면 현재 각각 다른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동성애 사회를 바라보며 각개약진을 하고 있는 숨은 활동가들을 인권단체 네크워크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보다 폭넓은 합의인 것이다.

또한 각 인권운동단체들이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얻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다 전문화된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다가간다면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동성애자들 중엔 자신의 성취향과 세상과의 괴리감이 주는 간극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인터넷의 각 게이 사이트들을 돌아다녀도 매일 똑같은 사랑 타령에 똑같은 푸념을 듣는 것이 지겨워 죽겠다고 말하며 "동성애자라고 맨날 사랑만 하면서 살란 말인가!" 라고 쓴소리를 내뱉는 동성애자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송희일씨가 우려하는 각종 '날라리 커뮤니티'도 알고보면 그것이 제공할 수 있는 한계가 명백하게 보이는 서비스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고차원적이고 자긍심을 얻을 수 있는 질높은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문제는 그러한 서비스를 누가 제공해줄 것인가 하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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