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 > - 이송희일
2003-10-07 오전 0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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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 > - 이송희일

이 글은 현재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들과 운동가들 사이에 놓여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들과 한계를 지적해 보고자했으며, 또한 그러한 문제점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공동으로 고민해 보자는 내용의 발제라는 생각에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아래는 99년 6월 한동협 1주년 기념식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의 일부분과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라는 테제 식의 짧은 시론을 엮어 놓은 글입니다.



간과하고 있는 것들

솔직히 말해, 우리는(여기에서 '우리'란 동성애자 인권운동 활동가들과 그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생각하면서 종종 정작 중요한 사실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정리하는 커뮤니티에 관한 내용들은 인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거나 이미 구성되어진 서구 모델에 뜯어 맞추어진 정형화된 어떤 것들입니다. 실제로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또 커뮤니티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레즈비언-게이들의 경험 양식들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커뮤니티의 경계를 윤곽짓는 척도가 술집 중심으로 구성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벗어난 다른 여타의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권운동과 그 전망에 앞서, 커뮤니티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해봐야 합니다.

㉠ 게이 커뮤니티와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억압의 질이 다른 까닭에 시간을 두고 다르게 구성되어졌다는 점,

㉡ 한국 게이 커뮤니티는 60년대부터 시작해서 고작 40여년의 역사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

㉢ 그리고 이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기혼 레즈비언-게이의 존속, PC통신이라는 가상 공간의 확대, 급격한 세대적 단절 등과 같은 현상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구 동성애자 커뮤니티와는 현격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

㉣ 또 커뮤니티에 관한 정보(AIDS에 관한 정보까지 포함해서)에 접근하는 수단들(호모에 관한 농담들과 싸구려 황색저널에서 인터넷까지)에 따라 계급적-지방적-세대적 차이가 엄격하게 존재하는 사실.

㉤ 5년 여 정도의 역사를 지닌 인권운동 단체들과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는 것.

㉥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커뮤니티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커뮤니티에 관한 내용들을 이렇게 자꾸 열거하는 이유는,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어디에 놓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권운동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레즈비언-게이 해방입니까? 그렇다면 해방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의 자유가 존중되는 지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 그래서 우리는 동성애 억압적인 사회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까? 일견 우리에겐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군요.

하지만 이와 같은 당위론은 1920년대 독일 히르쉬펠트가 이끌었던 '과학적 인도주의자 위원회'와 '혁명의 아이'가 나찌즘의 출현과 함께 몰락했듯이, 그리고 70년대 미국 동성애자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게이해방전선이 베트남전쟁 종식과 함께 분열되었듯이 언제나 현실 경험과 괴뢰될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대중과 함께 하는 운동으로서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레즈비언-게이 인권운동의 준거집단은 바로 GAY 커뮤니티이고, 그래서 커뮤니티의 움직임과 그 속에 있는 동성애자들의 실제적 경험 양식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공론空論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지지가 없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이란 어떤 것입니까?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 성격을 모델링할 수 있다고 쉽게 단정하지는 맙시다. 그렇게 쉽게 단정지은 대부분의 운동들은 이제까지 그들의 준거 집단이 강에서 살고 있는지 산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분명 동성애자 커뮤니티 안에 천착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주의깊게 참여할 때, 동성애자들의 직접적인 삶의 고민, 기쁨, 성찰과 같은 것들 속에서 인권운동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는 그러한 실마리를 얻기 위한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관한 시론적인 분석이 될 것입니다. 가장 커다랗게 문제시되고 중요하게 부각되는 내용들만을 상정했습니다.



동성애자 자긍심의 퇴락

전부가 그렇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일부분 젊은 레즈비언-게이들은 과감히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거나 게이로서의 자신의 삶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그것을 기초로 자신의 삶을 형상화하는 과정까지는 아직 턱도 없이 모자라는 판국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경험 양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가시적 억압의 부재

아직 한국은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직접적으로 공격받은 예가 없습니다. 또, 호모포비안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폭력을 당하는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든 형편입니다. 게이런던감시 그룹이 자신의 나라에서 게이의 40%, 레즈비언의 25%가 호모포비안들에 의해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힐 정도로 서유럽의 게이 커뮤니티는 지금까지 가시적인 폭력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시 '반폭력', '증오 범죄 방지법'에 관련해서 수많은 동성애자 단체들이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한국의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아직 '가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한국 동성애자들이 아직 폭력 세례에 놓여 있지 않는 상황을 결코 설명해낼 수 없습니다. 가족 안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얻어맞은 '주먹' 역시 그러한 폭력 범주에 집어넣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 80년대 후반 이후 게이 커뮤니티의 노출과 발전된 시민사회간의 관계, 잔여적인 공동체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 한국의 친교 문화 등의 영향이 복잡하게 꼬여 있습니다.

실은 이러한 이유를 분석하려는 것이 그 단락의 주제가 아닙니다.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대한 가시적 억압의 부재 때문에 빚어지는 '확연하지 않은' 동성애자 정체성에 관한 것이 이 단락의 테마입니다. 1969년 경찰 습격에 항의해 '스톤월 인'을 불지르고 경찰 차를 때려부수었던 2,000명 가량의 레즈비언-게이들, 그들에겐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켜내고 구축해야 할 당면한 긴급성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침묵'만 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커뮤니티 안에서 파트너를 찾거나 그들의 반쪽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따금 동성애자들에 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의 음담패설과, AIDS에 얽힌 호모들에 대한 중상모략과, 일간지의 가십란들은 '무시와 외면, 그리고 약간의 참을성'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게이 커뮤니티 경험과 아주 커다란 차이입니다.

2. 증대되는 커뮤니티의 상업화,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커뮤니티가 상업지구화되고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것은 레즈비언-게이들이 원만하게(공개적인 탄압의 부재 때문에) 파트너를 찾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물리적 공간이 확장됨을 의미합니다. 서울의 동성애자들은 이태원, 종로, 신촌 등지의 이반 바를 경제적 능력이 허락하는 한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습니다. 지방도시에서도 커뮤니티의 크기만 작을 뿐 사정은 이와 비슷합니다. 현재 한국의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양적으로나 그곳에 들낙거리는 사람들 숫자로나 그리고 영업자들의 보다 치밀한 맥락(연령층, 기호에 따른 분화들)에 따른 게이 바들의 분화로 보나 점점 증대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체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요?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서라도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습니다. 보다 원활히 성장하고 있는 게이 커뮤니티의 외양은, 한국 동성애자들의 공적인 삶과 사적 삶의 분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노동, 직업, 친교, 가족, 결혼 등……과 같은 공개적이고 공적인 삶과 자신의 내밀한 성정체성의 완연한 분리. 레즈비언-게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욕망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곳은 커뮤니티 안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의 뜻은, 서구 커뮤니티의 경우처럼 외부 압력과 그에 맞선 투쟁에 의해 정치적-성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적인 삶과 동성애자 자신들의 사적 삶이 점점 더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태원이나 종로에 가면 쉽게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왜 결혼이나 가정에서의 커밍아웃 문제 때문에 힘들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두 곳은 전혀 다른 세계다. 그리고 난 두 곳을 자유롭게 이월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라고.

그리고 PC 통신을 이용한 동성애자들의 대화와 만남들은 이러한 분리선들을 더욱 확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익명을 전제로 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접속과 이후로 연결되는 만남들은, 설령 그 만남이 지속적인 것이 되어서 커뮤니티의 공간들을 이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보다 사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교감을 형성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로부터도 그리고 공적인 삶으로부터도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히 말한다면, 그것은 사적 개인들이 만나 형성하는 '오르가즘의 시장이고 연애 알선소'입니다(이렇게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에 상당히 무리가 뒤따른다고 하는 점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나마 인권운동 촉발과 함께 시작되면서 공동체적인 대화를 구성했던 PC통신망이 점차 사적인 만남의 장으로 변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이유있는 근거 때문에 보다 단순화시켜 표현했습니다).

어찌보면 PC 통신망이라는 가상 공간 역시 엄연한 게이 커뮤니티입니다. 가상공간의 커뮤니티화는 분명 한국적인 특수성, 더 나아가 근대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된 제 3세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장소'로서의 커뮤니티가 미처 확장되지 못한 채 정보사회로 곧장 진입했을 때 게이-레즈비언들이 발견하고 구성해낸 또 다른 커뮤니티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격 자체가 익명을 전제로 하며, 은폐된 사적인 커밍아웃이라는 점에서, 그 공간은 레즈비언-게이의 정체성이 직접적인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위에서 한국 동성애자의 자긍심이 후퇴하는 것(그리고 확장되지 못하는 것)의 가장 큰 이유를 두 가지로 설정했습니다. 첫째는, 동성애자와 커뮤니티에 대한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압력이 직접적이지 않은 까닭에, 동성애자들이 공적인 영역으로 뛰쳐나와 싸움을 걸거나 자신을 표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 둘째는, 동성애자들의 공적 삶과 사적 삶을 분리시키는 기제로서 '상업화되는 커뮤니티와 사이버 공간'을 그 대표적 실례로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분명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경험 양식을 아우르는 커다란 틀거리입니다. 레즈비언-게이들이 자신과 사회를 인식하고, 그 인식한 바에 따라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데 긴밀하게 역작용하고 있는 것들이지요.



그럼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1. 모델들

과연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이러한 커뮤니티 경험에 대해 어떠한 식으로 대처해야 할까요?

형성 가능한 모델로 몇 가지를 간추려 봅시다.

1.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와 같은 급진파들

2. '친절하게 배려해 드립니다'와 같은 서비스 제공파

3. '문화적 시민권'을 존립 근거로 제시하는 동성애문화 상업파



1. 첫 번째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파는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꾀하면서 법률 투쟁을 비롯한 정치적 의제를 그 주요한 테마로 설정합니다. 그러나 '사적 삶'으로 후퇴하고 있는 게이 커뮤니티의 상황과는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요? '이기자'파와 실제적인 커뮤니티 경험을 통해 자신을 분리시키고 있는 동성애자와의 '그 깊은 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2. '친절하게 배려해 드립니다'파는 TV-언론 홍보를 통해 잠재적인 동성애자를 커뮤니티로 '안내'하고, 그들에게 AIDS를 비롯한 여러가지 동성애자 문제를 도운답시고 반복되는 일련의 사업 속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설혹 간간이 '정체성의 자긍심' 문제를 들쳐내더라도 그들 파는 공적인 삶을 장악하고 있는 이성애 사회와의 전선을 적절히 짚어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인권운동 활동가들을 꾸준하게 그 전선에 안배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3. '문화적 시민권'파는 좌충우돌하고 있는 문화적 흐름 속에 '동성애'라는 화두를 던짐으로써 여러가지 반향을 일으킵니다. 비록 이러한 반향들이 사람들의 일상의식 속에 충격 여파를 미침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 '충격 여파'는 곧 그것의 한계 속에 갇혀 버리게 마련입니다. 법률 투쟁을 이끌어내거나, 공적-사적 삶으로 분리된 한국 동성애자들의 그 커다란 심리적 분열을 깨드리는 데는 분명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그 말이지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상업화된 커뮤니티- 증대된 가상 공간이 적시해주고 있는 그 분열되고 정체된 상황에 대처할 만큼 인권운동의 역사가 길지도 그 시스템이 견고하지도 않은 까닭에, '인권운동 활동가 대가 벌써 끊겼다' 혹은 '결국엔 다 망하게 될 것이다'와 같은 우울한 예견들이 밤낮으로 출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



1. 동성애자에 대한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억압은 종종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저항을 보다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데 긴요한 반대 급부를 형성하곤 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적인 국가 동원력(사법 체계, 국가 조직의 말단 경찰들을 비롯한)의 개입이 없는 한국의 상황에선, 역설적으로 이러한 행운(?)이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차별화를 꾀하는 데 연막으로 작용하고 있다.



2. 90년대 이후 한국의 게이 커뮤니티는 통신망, 즉 호출기, 전화사서함, 핸드폰, 잡지, 인터넷을 정점으로 하는 pc통신망 등의 통신 테크놀로지에 의해 보다 큰 규모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은 익명을 전제로 하는, 게이 오르가즘 시장의 확대로 기울어져 있는 형편이다. 94년 친구사이를 필두로 이루어진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촉발과 가시화 과정, 동성애자 정체성 형성은 통신 테크놀로지로 무장된 게이 커뮤니티 속에서, 점점 확대되는 시장의 외연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스톤월 봉기의 교훈 : 우리가 가죽술집을 하나 더 늘리기 위해 혁명을 했는가!



3.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들의 무능력 : 점점 익명의 시장으로 확장되어 가는 동성애자 커뮤니티 속에서, 왜 인권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조차 소멸해가는 자긍심 퇴락의 풍조 속에서 인권운동 단체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싸움은 동성애자들 내부에서 그리고 우리들 전체가 나서서 하는 것이지 몇 개의 정치적 팜플렛과 구호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은 점점 더 동성애자에 대해 우호적으로 되어가는 시민사회와 점점 더 동성애자들이 개별화되고 몰주체화되는 게이 커뮤니티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민사회에서의 연대와 환호, 반면 동성애자 대중들에게서의 따돌림.



4. 한국 동성애자들의 이지메 : 왜 인권운동 단체들은 그 실질적 주체인 동성애자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가? 가시적 억압의 부재 상황, 반면 별다른 노력없이 성적 만족을 취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게이 커뮤니티. 이 양 갈래 속에서 많은 동성애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어떠한 지표로 자신의 삶을 판단하고 있는가? 혹시 많은 동성애자들이 특별난 억압의 통증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성적 만족에 안위하면서 인권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동성애자로 밝힐 때 받는 스트레스보다 이성과 적당히 결혼하고 커뮤니티 안에서 동성의 애첩을 구할 때의 스트레스가 적다?

훌륭한 투자가들이 되어가는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동성 커플, 입양, 동거법 제정 따위의 동성애적 가족주의에 대한 투자보다 기존의 이성애적 가족주의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게이 시장 속에서, 망조가 든 인권 단체를 안주 삼아 씹기.

5. 인권운동 활동가 재생산 시스템의 교란 :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 7년사 동안 남아 있는 활동가는 누구인가? 그들이 침묵의 서쪽으로 간 까닭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권력 투쟁의 결과는 아닌 것 같고, 더더군다나 후배 양성에 기꺼이 자신을 내바쳐 은퇴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사라져버렸을까? 혹시 인권운동의 정체와 그만그만한 일의 지겨운 반복 속에서 나동그라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선배들은 그렇다 치고 후배들의 대기 번호 상황은 어떤가? 대기 번호 0!

게다가 초기에 인권운동 단체를 자처하고 나섰던 대부분의 단체들이 이제 떳떳이 계모임 혹은 수다방으로 간판을 바꿔 내거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치 지루한 뫼비우스 띠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1번에서 5번까지의 이유들은 계속 서로를 규정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무엇이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치명적인 적適인지 알 수 없다. 그것들은 서로를 다독거려주며 춤을 추는 마녀들의 숲속 집회이며, 우리의 현기증을 재촉하는 원형의 스크럼인 것이다.

분명 우리는 여기에 반론해, "한국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희망적인 다섯 가지 이유" 아니 " 열 가지 이유"를 대척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시되는 희망적인 이유들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위에 간략하게 제시된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가 꼭히 지금의 게이 커뮤니티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했다고는 볼 수 없다. 거기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희비의 그물을 형성하며 교차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다소 염세적인 뉘앙스로 이러한 사실들을 부각시켜 보는 것은 분명히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더듬거려 보는 촉수의 고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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