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8호] 진정 아름다운 인생을 원한다면...
2010-12-08 오전 02: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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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게이다] 진정 아름다운 인생을 원한다면...

 

 

 

천정남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고문) 

 


20년 전의 이야기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하고야 말았고 우리 집은 포탄을 맞은듯 혼란에 휩싸였다. 태섭의 폭탄선언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눈물과 위로, 긍정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었지만 나의 폭탄선언에 대한 당시 가족들의 반응은 폭력과 폭언이 전부였다. 드라마와 닮은 점이 있었다면 가족들의 판결을 기다리며 태섭이처럼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SBS의 주말 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가 끝이 났다. 지난 몇 달 동안 이 드라마로 인해 나는 행복했고 뿌듯했었다. 지금껏 나의 삶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라마를 통해 투영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10년째 같이 살고 있는 연인과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회를 보는 내내 우린 감동과 회한의 눈물을 훔쳤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를 둘러싼 우리 가족의 삶은 드라마 못지않게 아름답게 변해왔으며 드라마 속 그들의 인생도 아름답게 끝이 났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들의 인생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것 같다. 동성애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방송횟수가 거듭될수록 노골적인 적대감정을 드러내며 동성애와 우리들의 삶을 왜곡시키는데 힘을 모으고 있으며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도 드라마 속 게이커플을 보며 불편해했었다. 내가 아는 게이들도 가족들이 이 드라마를 볼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으며 그중 몇은 부모님이 드라마를 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고도 했다. 완전 “세상에 이런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드라마 속 게이의 모습이 실제 본인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에 이 드라마로 인하여 자신도 게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불안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게이의 이미지는 그동안 미디어에서 주로 보여줬던 특정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흔히 접하는 너무도 평범한 이미지였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그들로서는 많이 불편했을수도 있겠다.

게이커뮤니티에서 연예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을 둘러싸고 아직도 불거져 나오는 얘기중의 하나가 “왜 장동건처럼 멀쩡하게 잘생긴 사람이 아니고 끼스러운 홍석천의 커밍아웃인가”이다. 그들의 주장은 홍석천의 커밍아웃으로 인하여 게이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덩달아 자신의 이미지도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의 이미지는 무엇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게이의 이미지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홍석천이 방송에서 연기한 의상디자이너 쁘아종의 이미지, 아니면 태섭과 경수로 나온 의사와 사진작가의 이미지?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는 후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들은 끼스러운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멀쩡한 외모의 의사와 사진작가가 커밍아웃을 하고 연애를 하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불편해한다. 이 모순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드라마 속 경수는 일찍이 커밍아웃을 했지만 아직은 가족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단란한 대가족의 장남인 태섭은 완벽하게 벽장속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겁이 많고 소극적이던 태섭이 커밍아웃을 감행한다. 본인을 비롯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고 스스로 당당해지고 싶어서였다. 20년 전의 나는 인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것이 요즘말로 커밍아웃이었다.
커밍아웃 이후 태섭의 생활은 180도 달라진다. 불가능할거라 여겼던 생활이 현실이 되고 자신을 둘러싼 오해도 풀리게 되며 그의 연인까지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방송에 나오는 커밍아웃한 누구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왜곡되거나 커밍아웃 이후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들이 바라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은 태섭과 경수이며 그들의 모습이 동성애자의 모습인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은 아름다워>를 놓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비현실적으로 동성애를 미화한다고도 하고 많은 동성애자들은 너무도 이상적인 상황이라 자신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고 미리 선을 그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분명한 현실이기도 하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영원히 자신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이상적인 상황일 뿐이겠지만 커밍아웃을 하고 나면 분명 누구에게나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인생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두꺼운 벽은 사회의 벽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벽일뿐이다. 언제까지 그 속에서 눈치보고 한탄하며 남의 탓만 할 것인가. 진정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면 내가 만든 벽장속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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