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15호] 잡년행진(Slut walk)에 다녀온 이야기
2011-08-10 오후 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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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참관기] 슬럿워크 참여기

 

 

샌더 (소식지 팀)  

 

 

 

 

비 때문에 고생스러운 날들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7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는 '잡년 행진'이라고 이름 붙인, 슬럿워크(Slut Walk) 행사가 열렸다. 시간에 맞춰 행사 장소에 도착하니, 날씨에 아랑곳 않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상을 입고 모여 있었다. 속옷들이 당당하게 걸려있는 부스가 있고, 사람들은 모여 노래를 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원하는 말을 적은 피켓을 만들기도 했다.
아참. 이쯤에서 헐벗은 이들이 비를 맞아가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적자면. 슬럿워크는 캐나다 토론토의 한 경찰관이 "여성이 성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Slut)같은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 데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캐나다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런 행사가 한국에서도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내가 그 자리에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저항은 좋은데 꼭 야하게 입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깊은 생각 없이 아무데나 던져 놓은 것처럼 한동안은 들여다 보질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날짜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슬럿워크의 참석의사를 묻기에, 마땅히 다른 약속도 없고 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했고, 자연스럽게 나도 7월 16일에는 광화문 한 가운데에 비를 맞으며 서있게 되었다.

행사에 관한 여러가지 발언을 듣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마음이야 누구보다 여성이라지만,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내가 얼마나 그들의 편에 서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 몰려든 취재진들의 카메라들이 가지고 있는 시선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함께 뭉쳐있지 않은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어떤가. 이것은 여성들 뿐 만 아니라 사회의 소수자들 모두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단지 그들에게 듣게만 하는 일에도 이슈가 필요하다는 데에 지쳤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기사들의 포커스는 야한 옷차림에 맞춰져 있었다.

누군가는 야하게 입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가해자들이 말하는 성폭력의 이유는 무수히 많다.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 여성들은 누군가의 헤어진 여자친구와 단순히 닮아서도 안 되며, 누군가의 친절에 미소로 답해서도 안 되며, 어떤 경우에는 특정 색상의 옷을 입어도 안 되고, 큰 목소리로 시선을 끌어서도 안 되고… 등등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나열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많다. 모든 것은 이유가 될 수 있고, 가해자의 해석으로는 언제든 예스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야하게 입지 말라고 당부하는 그 시선과 믿음 자체가 이미 가해자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제 메인 행사인 잡년행진이 시작되었다. 선두가 걷기 시작하고 대오를 갖추지 않은 무리들이 자유롭게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행사에 참여한 이유를 찾는 것을 멈추는 대신 함께 걸음을 시작했다.

성범죄에 관한 뉴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가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뉴스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는 건 분명 소름 끼치는 일이다. 여성들에게 이 사회는 이미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나는 그녀들이 당당하게 헤픈(?) 복장을 하고 걷기를 시작하는 일을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사실 정말 헤픈 복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세상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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