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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3 : 게토의 생식
2019-09-30 오후 15: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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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3

: 게토의 생식

 

 

1.

 

종태원의 주말은 대체로 즐겁다. 이성애 사회에 이리저리 치이고 난 주말 밤 종태원에서 게이들끼리 놀고 있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공간도 아닌 여기가 왜 구태여 즐거운지에 대해 거기 있는 사람들은 사실 대강 알고 있다. 그곳 바깥의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라면 딱히 이곳에 모여 있을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소수자가 어디로 도망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농축된 즐거움이 고인 곳일수록 그 안팎에는 농축된 억압이 있다. 더불어 그곳에는 그 즐겁고 비참한 공간이 조금더 아름다웠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기대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다. 

 

왜냐하면, 나도 좋은 것만 보고 살고 싶고, 나도 남 신경쓰고 싶지 않고, 나도 내 감정 챙기기에 벅차고, 나도 남 흉한 일은 별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 하나 이해받기도 이리 힘든 세상에서 남을 보아달라는 게 얼마나 허황될지, 나 이외의 현장을 보아달라는 말이 얼마나 버거울지, 공감의 폭을 넓혀달라는 말이 얼마나 가당찮을지가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의 억압을 피해 이곳에 모여 모처럼 즐거운 이들에게 그런 걸 끼얹어야 한다니, 좀처럼 입이 안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구조와 인권를 얘기하고 웰메이드를 얘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그걸 말하는 각자가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얘기를 하기 전에 스스로 늘상 싸우는 질문들일 테니까.

 

소수자로서 살아본 사람들은,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밑바닥을 보이는지, 얼마나 빠르게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폐기처분하는지 대강 알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대충 취급할 수 있는지, 하여 그들에게 뭘 보아달라고 기대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모르는 퀴어는 드물다. 자기 운을 탓하기 전에 애초에 인간이 얼마나 뜬금없는 존재인지, 겉으로 멀쩡해뵈는 인간의 삶이 실은 얼마나 끊어지기 쉬운 힘줄로 버텨지는지를 퀴어들은 안다. 그리고 그걸 안다는 사실이 가끔은 서글플 때가 있다. 인생에서 때론 모르고 속는 것이 알고 속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뭐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인간에게 매인 아름다운 것들을 이야기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한편으론 뭐가 없기 때문에, 뭐가 없는 그 자리에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와, 시민이 갖춰야 할 교양과, 눈앞의 사람이 전부인 명짧은 로맨스를 매번 애써 들이붓는다. 인생에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허무란 고통스러우니까. 말하자면 알고서도 속는 노역을 매번 감수하게 되는 거다. 알고 속는 건 힘들지만, 적어도 뭐가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 매캐한 허무가 실제로 어떤 빛깔인지, 살아있는 것이 헛되다는 생각이 때로는 사람 숨을 못쉬게 만든다는 게, 그게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퀴어들은 알고 있으니까.

 

-

 

마음 속으로 이미 박살이 나도 괜찮을 것 같은 세계를 부여잡고, 애정을 붓고 살갑게 비판하고 짐짓 타자에 대한 공감을 권유하는 일은 힘들다. 죽을 때까지 나를 설명해야 하는 스트레스 가운데, 삶 전체가 농담처럼 휴지통에 구겨넣어지는 가운데서도, 무언가 의미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말하는 일은 어렵다. 

 

내게 주어지지 않았던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너만은 꼭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수천년 동안 부모자식간에 대물림해온 흰소리다. 정이 떠나버린 세계가 그래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퀴어들은, 어쩌면 자기 자식을 한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한 부모를 닮았다. 자식이 결국은 내 삶을 건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자식이 생기기도 전에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부모를 닮았다.

 

자식이 있든 없든 삶은 헛되고, 그런 삶의 조건을 선별적으로 잊고 사는 게 인생의 숨은 요령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이미 그렇게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어렴풋이 알아버린 사람들이, 지나가는 하룻밤 먼지같은 자들에게도 부모 노릇을 감수하기 시작해 비로소 하나둘씩 만들어진 둥지가, 바로 오늘날의 이곳 종태원인 지도 모르겠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멀리 예감하고서도, 아낌없이 쏟아붓던 눈먼 정들의 거미줄이 그리도 자욱해서, 가끔은 그 공간이 시리도록 숨이 막힐 것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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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9년 7월 1일, 게이업소 정보지 <보릿자루>는 서울의 종로·이태원을 비롯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150여개 '이반업소'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업주들의 속마음을 담은 기사를 통권 9호의 지면에 게재했다. 발행인의 언급에 따르면 취재 당시 업주들이 부담을 느낄까 걱정했으나, 대부분의 업주들은 인터뷰에 진지하고 솔직하게 임했다고 한다. 

 

기사에서 적지 않은 업주들은, "술집에서 일한다"는 손가락질, "부킹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손님의 진상짓, "저급한 인간으로 치부당하고 무시당하는" 고충 등을 토로했다. 더불어 손님 중에 '이반업소'를 "기지촌"처럼 여기거나, "당신이 마음에 든다"면서 추근대는 행태들도 지적되었다. 또한 업주들은 스스로 "경멸감과 수치심"을 안고 있는 손님의 경우나, "너무 일찍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예 이쪽에만 죽치고 사는 젊은이"는 보기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단골이 되어 "특별한 날을 챙겨주기도 하는 고객", "이따금 고마웠다고 다시 찾아와주는 고객"을 만나면 흐뭇할 때도 많았다는 언급도 주목된다. 그들 중에는 "맨처음 이반사회 안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을 내디디는 이반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면서 이반으로 살아가야 할 노하우에 대해 도와주"었을 때, 그 손님이 "몇개월 혹은 1년 뒤에" "정말 고맙다고 꽃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며, 그럴 때 업주들은 "이런 손님들의 자그마한 성의에 크게 감동"하게 되었다고 전했다.1)

 

 

1) 「한국에서 이반업소 운영하기」, 『보릿자루』 9, 1999.7.1, 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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