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3호][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4 : 오염된 슬픔
기간 11월 

 

세상 사이의 터울 #4

: 오염된 슬픔


 

1.

 

퀴어들의 낯빛은 보통 밝고 희망차다. 시청광장을 점유해 살결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신적인 숭고함이 있다. 그들이 왜 그토록 웃고 있고, 웃고 있는 그들이 어째서 운동에 갚하는 대단한 의미가 되는지는, 태양을 바라볼 때 눈이 아프듯 제대로 직면하기가 힘들다. 제대로 직면하기 어렵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썩 속편한 사람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세상에 힘든 것일랑 못 겪어본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 퀴어들의 뒷녘이 남김없이 들춰질 때는, 다름아닌 그들 중 하나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 퀴어의 경우, 그의 빈소는 함부로 생전 고인의 정체를 발설하지 말아야 할 함구의 장이 된다. 또는 석연찮은 이유로 목숨을 잃은 경우라면, 고인의 사인은 빈소에서조차 함부로 캐묻지 말아야 하는 침묵의 공동 속에 내버려진다. 그런 공간에서 고인의 죽음이 적확히 추모되기란 힘들다. 말하자면 그는 죽어서까지도 벽장 속 신세에 머무는 것이다. 

 

자살이나 에이즈 합병증, 약물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한 경우, 그 사인은 보통 다른 사인으로 대체되어 발표되기 일쑤고, 그런 상황에선 고인에게 가까운 지인일수록 고인의 죽음에 대해 주로 입을 다물게 된다. 또는 여느 평범한 죽음일지라도, 사려깊은 지인일수록 당사자의 죽음이 주위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감안해 그 죽음에 대해 되도록 말을 삼간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이 죽게 되면 퀴어들의 SNS엔 거대한 침묵의 결계가 드리워진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우가 그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애써 환하던 퀴어들의 그늘은 제 본 빛깔을 드러낸다. 

 

한 사람의 죽음에 이리도 많은 염려가 필요한 것이야말로, 주말마다 게토에 모여 밝게 웃는 퀴어들이 실은 뼈저린 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증거다. 퀴어 커뮤니티는 서로가 소수자임을 눈치없이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꼭 그만큼, 누군가의 죽음에 섣불리 슬퍼해선 안되는 묵계가 흐르는 곳이다. 섣불리 슬퍼해서는 안되는 슬픔이라니, 그 슬픔은 꼭 소수자의 삶처럼 어딘가 하나 나사가 빠진 모양새다. 

 

_

 

남이 죽을 때, 나는 종종 깨끗한 슬픔이 그립다. 그리고 깨끗이 슬퍼할 수 있도록 잘 정돈된 죽음은 드물다. 어딘가 멎었거나 어딘가 비밀이었거나, 그런 죽음들 앞에 서면 우선은 입을 다물고, 눈앞의 상황에 맞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상황은 언제나 더럽고, 내 슬픔은 언제나 딴 것들에 조금씩 오염돼 있다. 

 

아주 고전적인 슬픔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있는 소외 없는 소외 다 겪어도, 눈앞에 선명한 제 슬픔에서만큼은 소외받고 싶지 않기에.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비로소 참은 눈물이 터지듯이, 무언가를 깨끗이 슬퍼하기 전에 치러야 할 것이 세상엔 너무 많다. 지금보다 완전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보다 사람답게 추모할 수 있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침묵을 깨고 내 슬픔을 마음껏 목놓아 울 수 있는 그 날이, 언젠가는 도둑처럼 해방처럼 여기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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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8년 9월 13일,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부회장으로 활동했던 故 오준수님이 에이즈 합병증에 따른 간성혼수로 사망했다. 그는 1992년 9월 HIV 감염사실을 확인하고, 1993년 3월 <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수기집을 발간했다. 2000년 2월 11일, 친구사이는 생전 그의 글들을 모아 <오준수를 추모追慕함>이라는 유고집을 자비 출판했다. 

 

유고집 발간 당시 친구사이 회장이었던 신정한은, 발간사를 통해 "우리 동성애자들은 어떤 이상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시기에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처럼 동성애자들은 "일반과는 다른 또 다른 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되며, "그 짐의 무게가 좀더 가벼워질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고 전했다.1) 더불어 친구사이 회원 김상백은 생전 고인의 HIV 감염 사실 고백을 들은 후에, "특유의 밝고 명랑하고자 하던 그의 의지"를 새로운 의미로 "다시 보게 되"었다고 술회했다.2)

 

이후 친구사이는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故 오준수님을 비롯하여 유명을 달리한 회원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2019년에는 '재회의 밤'이라는 이름의 정례화된 행사로 승격되어 9월 11일 개최되었다. 또한 2018년 11월 22일부터 한달동안, 故 오준수님의 유고와 사진, 유품들이 포함된 이강승 작가의 전시 <Garden>이 가회동의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진행되었다.3) 더불어 2019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故 오준수님의 수기집과 그의 유품인 묵주반지를 영구 수증(受贈)하기로 결정했다. 

 


1)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1쪽.
2)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11쪽.
3) 「HIV 감염인 故 오준수 님이 남긴 흔적과 흔적-없음 : 이강승 작가 전시, <Garden>」, 『친구사이 소식지』 101,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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