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섹슈얼리티’ #2] PL의 성적권리와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 KNP+ 회원 소리님 인터뷰
2016-12-23 오후 15: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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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커버스토리 ‘섹슈얼리티’ #2]

 

PL의 성적권리와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 KNP+ 회원 소리님 인터뷰

 

 

 

감염인 연합회 'KNP+' 홈페이지 이미지.jpg

감염인 커뮤니티 '알' 까페 이미지.jpg

‘KNP+’와 ‘알’ 홈페이지 이미지

 

 

 

 

이제 지금, PL의 성적권리를 이야기할 때

 

우선 이번 시간에 우리는 ‘PL의 성적권리와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그래서 간단한 소개와 함께, 혹시 관련된 주제로 매체에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신 적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 저는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에서 운영지기를 맡고 있고, 한국 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리’라고 합니다. 성적권리나 섹슈얼리티 관련해서 따로 얘기한 적은 없고, 그냥 PL의 인권과 관련된 내용으로 인터뷰는 여러 번 했었죠. 섹슈얼리티로 특정 지어서 했던 적은 없었어요.

 

네. 이번 기회에 당사자로서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먼저 본인이 PL임을 알게 된 때가 언제이고, 인지한 후의 반응이나 대응을 어떻게 하셨는지 해서요.

- 2011년에 군 휴학을 내고 취업 준비를 하던 때 여름에 확진을 받았고, 일단 충격이 컸죠. PL이 되기 전에 관련된 정보라든가 지식이 전혀 없었거든요. 주변 사람 중에도 없어서 좀 많이 당황스러웠고, 여러 가지 일이 좀 겹치더라구요. 일단 군대 문제도 걸리게 되고 주변 상황이라든가 대인관계 문제가 갑자기 걸리기 시작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오니까 되게 막 혼란스럽고 좌절감도 느끼고 슬프기도 하고 우울감도 느끼는 등 안 좋은 감정들은 다 느낀 것 같아요. 그러던 와중에 아는 지인에게 말을 했는데 다행히 그 분은 주위에 PL이 있어서 익숙했고, 저에게 많이 조언도 해주면서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 막 술벙개도 데리고 가고, (웃음) 같이 놀러다니며 밥도 먹고 하면서 오히려 그렇게 해주니까 금방 회복할 수 있었어요.

 

원래 두 분이 친한 사이셨어요?

- 네 원래부터 친한 형 동생 사이였는데, 감염 사실을 말하고 나서 행동으로 다독여주니까 오히려 금방 추스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한 6개월 안 되는 기간 내에 정신적으로 회복을 많이 했어요. 그러고 나서 친구들이랑도 점점 만나고 술도 먹으러 다니고, 지금은 친구들한테 얘기도 다 했구요. 암튼 그때 NFF라는 자조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 같아요. 온라인 까페로 가입해서 오프라인 정모도 나갔는데, 그때 좀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딱 갔는데 제 친구 2명이 앉아있는 거예요. (웃음)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이라 서로 막 놀라고는 밖에서 담배 피면서 “니가 왜 여기 있냐”고 그랬죠. 그러다가 그 중 한 명이 초창기 ‘알’ 운영지기인데, 저한테 ‘알’ 까페를 소개시켜줘서 가입하게 됐어요. 그렇게 또래들을 만나면서 좀 더 빠르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한 5년 되신 거네요. 더 자세히 듣고 싶지만 오늘은 주제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넘어갈게요. PL로서 경험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해, PL 이전과 이후의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으셨는지 여쭤보려구요.

-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별 생각 없어요.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고. (웃음) 뭐 혼자 하는 거 아니니까. 근데 초기 때는 좀 많이 조심스러웠죠.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왜 남자를 좋아하게 돼서 이런 병을 앓게 됐는가라는 생각.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못 만나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이렇게 홀로 그냥 거미줄 치다가 죽겠지… 내 기구한 운명… 막 이랬었는데 그것도 사람들 만나고 괜찮아지면서 요즘은 별 생각 없게 됐어요. 섹스란 건 좋은 거니까요. 특히 건강에 좋다니까 해야죠. (웃음) 지금은 병이 있어서 성적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든지 하는 건 없고, 오히려 관리를 더 많이 하니까 세이프한 것 같아요. 세이프하다는 기준이 다른 게 아니라 건강관리 잘 하고 있고, 성병 검사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고, 콘돔 사용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니 더 세이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네, 맞는 말씀 같아요. 이제 ‘성적권리’에 대해 좀 얘기해보려고 하는데, 저도 찾아보니까 1994년 홍콩에서 열린 제14차 세계 성 학술대회에서의 ‘성적권리 선언’이 두드러지는데요. 제4조 ‘성적으로 평등할 권리’에는 ‘성별, 연령, 인종, 종교, 학력, 장애유무, 성적 지향 및 사회경제 수준 등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으며 성적 다양성 또한 인정받아야 한다.’고 나오거든요. 또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성적권리’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어쨌든 성관계라는 게 일 대 일일 수도 있고 일 대 다수일 수도 있는데, 거기에 있어서 상하 관계가 없는 것,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라는 주종 관계가 없는 형태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게 되게 여러 가지가 있겠죠. 콘돔 사용부터 시작해서 포지션 위치, 상하 관계를 강조한 명령조의 대화들, — 그런 데에 페티시가 있는 분들은 그렇다고 쳐도 — 그러니까 일반적인 성 관계에서 상하 관계가 없는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이성애자들로 따지면 남녀 사이에 콘돔 결정권은 남자에게 있다든지 하는 건 성적권리에 있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거예요. 제일 쉽게 얘기하자면 그런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그걸 인지하면서 본인의 성적권리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요. 현실에서 성적권리 실천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음… 저는 크게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할 거 다 하고 다니고 사람들 만나는 데 있어서 막 제약을 거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냥 하고 싶을 때 알아서 찾아서 하기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래서 크게 성적권리에 있어서 내가 침해받았다는 느낌은 가져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물리적인 침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침해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성적권리를 침해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혐오조장세력들의 행동이 오히려 더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하는 게 큰 문제도 없고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런 혐오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안 좋아요. 지금까지 내가 해온 건 뭐가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럼 그럴 때 막 위축이 되시나요? 아니면 분노 같은 게 올라오시나요?

- 위축되지는 않고, 분노감이 들죠. ‘내가 하겠다는 데 자기네들이 뭔 상관이야’ 이런 느낌?

 

추가 질문 드리자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전파매개금지조항(19조)에 “PL들은 파트너에게 감염사실을 고지하지 않거나 '콘돔'을 쓰지 않는 섹스를 할 경우 처벌을 받도록” 되어있거든요. 이게 지금 인권단체에서는 실제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감염인의 성관계 방식과 가능성을 규제하기 때문에, PL들의 성적 권리에 대한 침해라고 보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왠지 질문하실 것 같았어요. (웃음) 저도 다른 분들이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이게 좀 되게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죠. 단 몇 줄밖에 안 되는 조항인데 거기에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요. 전파매개를 하는 행위로 인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 그 조항 자체에 처벌이 ‘3년 이하의 징역’만 있고 보통 벌금형은 아예 없거든요. 처벌도 센 데다가, 조항 자체도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조항이라 전파매개 행위 자체가 해석이 되게 많은 거죠. 콘돔을 사용했더라도 전파매개 행위 자체만 보고 처벌을 할 수도 있어서, 어디까지가 전파매개행위인지에 대한 구분을 지어야 해요. 사실 이게 우리나라만 있는 조항은 아닌데,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조항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는 거의 효용성이 없는 조항으로 바뀌었거든요. 다른 나라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상해를 입혔을 경우에만 처벌을 받게끔 하는데,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행위만으로 처벌한다는 게 어불성설인 거죠. 전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의를 가지고 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성인 간 합의를 통한 성관계를 가진 건데 말이죠.

사실 아까도 얘기한 게 성적자기결정권인데, 가령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도 서로 합의가 있어야겠죠.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자신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인지하고 하는 건데, 그럼에도 행위 자체만으로 PL에게 무조건 죄를 떠넘기는 조항은 상당히 성적권리를 침해하는 조항이라고 생각을 해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을 찍히는 조항이다보니 많은 문제가 되는 거죠.

 

정말 이 부분은 좀 군형법 폐지 같이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겠네요.

- 그러니까 조항을 바꾸던지 아니면 없애든지 둘 중의 하나여야 하는데 없애는 건 실질적으로 힘들 것 같고, 조항을 완화를 한다든지 다른 식으로 조항을 변경한다든지 등의 필요가 있겠죠. 행위를 구체화시키는 것도 의견이 갈려요. 구체적 행위를 명시하면 오히려 더 그 행위에 있어서 규제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또 그냥 두루뭉술하게 냅두자니 제가 아까 얘기한 것들이 문제가 되고. 그래서 고민이 많은 조항이죠. 문제가 많은 건 확실한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이 필요해요.

 

어떻게 좀 논의가 되고 있는 상황인가요?

- 근데 사실 이걸 논의하기에는 다른 문제가 많아서요. (웃음) 그래서 이걸 건드리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는 거죠. 이걸 건드리면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서 늪에 빠지는 느낌일 거예요.

 

 

 

캠페이너 교육장면.jpg

HIV/AIDS 감염인 인권을 위한 캠페이너 교육

 

 

 

 

혐오와 차별이 PL의 섹슈얼리티 실천에 미치는 영향

 

그렇군요. 나중에 언젠가는 꼭 보완이 됐으면 좋겠네요. 다음으로 넘어가서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 양성’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사실 그 동안 HIV/AIDS에 대한 담론은 치료 및 예방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PL들이 모이면 정말 그런 얘기만 하나요? 이 기회에 좀 알고 싶어서요.

- 어후,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웃음) PL들도 사람인데. 그냥 관심 있는 연예인 얘기하고 남자 얘기하고 누가 연애한다는 얘기 하죠. 그냥 똑같아요 만나서 술 먹으면 외롭다, 남자 만나고 싶다, 누구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그런 거요. 좀 다른 건 좋아하는 사람에게 얘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런 거에 대한 고민이 추가가 된다는 거? 아무래도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 뭔가 하나 숨기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요, 비 PL을 만나는 경우에는. 그런 고민이 하나 정도 추가가 되는 거지, 그거 말고는 ‘남자 만나고 싶어, 섹스하고 싶어’ 같은 얘기 하죠 뭐.

 

혹시 그런 섹스 관련 얘기할 때 어떻게 하면 조심스러울 수 있을까 이런 얘기도 하시나요?

- 아니요, 그건 어차피 자기 결정이니까. 저희가 뭐 할 때마다 서로 확인해줄 수도 없고요. (웃음) 본인이 결정할 사항이니까 문제가 안 되는 선에서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거죠. 문제가 되면 다시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평상시에 모여서 얘기하고 술 먹고 할 때는 크게 그런 얘기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에도 커밍아웃을 하고 섹슈얼리티 실천을 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혐오와 차별 때문일 텐데요. 혐오세력들은 흔히 동성애가 HIV/AIDS의 원인이고, 특히 항문섹스로 인해 HIV/AIDS에 감염된다며 비난을 서슴지 않죠. ‘항문섹스도 인권이냐’라는 말이 특히 충격적이었는데요. 이렇게 조작된 낙인과 공포 등이 개인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요?

- 항문섹스는 인권 맞죠. (웃음) 일단 최근에 관련된 네트워킹이 형성 됐어요. 친구사이랑 나누리플러스, 알, 행성인 등 여러 단체가 모인 네트워킹이 생겼거든요. 성소수자와 PL 등이 포함돼서 관련된 이슈에 대해 담론화시키고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네트워킹을 통해 우리가 성소수자로서, 특히 게이들은 HIV/AIDS와 떼어 놓으려야 그럴 수 없는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잘못 대응하지 않았나는 얘기를 하는 중이에요. 생각을 해 보면 사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이 94%, 여성이 6%밖에 안 되는 실정이고 그 중에 대부분은 남성 동성애자일 것임을 추측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부인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거기서 수정을 하고 싶은 건 남성 동성애자가 아니라 MSM(Men Sex with Men)인 거죠.

 

실제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을 말씀하시는 거죠?

- 네 그렇죠. 이성애자임에도 MSM인 사람이 있고,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고 한 건데, 암튼 MSM이 96%라는 얘기겠죠. 그래서 만약에 MSM, 그 중 남성 동성애자가 더 많다고 인정을 한다면 우리가 취약그룹이고 위험하다는 걸 알면 거기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지, 남성 동성애자가 사라져야 한다는 식의 얘기가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은 거예요. 오히려 공격을 하고 존재를 부정한다면 음지화가 될 거고 초기 감염인을 발굴하는 것, 즉 스스로 검진을 받도록 해서 초기에 발견을 하고 치료를 받게 하는 게 가장 좋은 예방 중 하나인 건데요. 요즘은 오라퀵도 있고, 각 보건소에서 검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게이들은 종로 아이샵에서 얼마든 검진을 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왜 검진을 잘 안 받을까요. 그게 제일 포인트인 거거든요. 본인이 감염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만약 성관계를 한다면 그게 가장 위험한 부분이에요. 잠재적 PL이 검진을 받게끔 유도를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런 혐오조장 세력들이 계속 공격을 하고 AIDS는 뭐 위험한 질병이다, 게이들 때문에 걸린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음지로 더 숨고 검진을 안 받으려고 할 텐데. 그게 과연 좋은 예방 활동일까라는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계속 인권 얘기가 나오는 게, 정말 PL 인권이 보장되어야 그런 사람들이 검진을 받고 확진을 받는다고 해도 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을 테니 오히려 검진을 통해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거예요.

 

그럼 네트워킹은 곧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거예요?

- 아, 아직 이제 만난 지 2번 밖에 안 돼서 좀 더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구요. 최근 국제 정책포럼 갔다와서 이슈 관련 얘기를 했고, 그 중에 하나로 PrEP(HIV 사전예방약) 관련 논의를 했어요. 네트워킹 자체가 형성된 건 되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동안은 성소수자 인권이랑 PL 인권을 따로 놓고 활동했다면 이제는 같이 만나서 서로 얘기를 하고 서로 Win-Win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해서 생긴 네트워킹이라 의미가 있죠. 사실 그런 네트워킹들이 다 사라지는 날이 와야 제일 좋은 건데. (웃음)

 

그래도 지금은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정말 반가운 소식이네요. 아까 사실 낙인 관련해서도 말씀하셨지만, MSM은 리스크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그것은 곧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로 인한 것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찌 보면 그런 낙인이 오히려 HIV/AIDS 감염 위험을 높인다는 얘기도 많더라구요. 또한 내년에 PrEP가 들어온다는 얘기도 있던데.

- 내년에 도입된다는 건 아직까진 소문이고요. 도입이 되어야 한다고 AIDS학회에서는 계속 주장하고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아직 현실적으로 되게 많은 문제가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는 공공보험 체계가 있다 보니, 이걸 공공보험 적용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문제, 그리고 만약 보험 적용을 한다면 이게 국민에게 부담이 될 것이냐의 문제, 그리고 보험 적용이 안 된다면 접근성이 많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게 효율성이 있는 것인가 등 많은 고민들이 남아있는 거죠. 그리고 PrEP이 만능약이 아니거든요. 만능약처럼 얘기가 되고 있는데 사실 PrEP 이전에 ‘트루바다’라는 치료제가 있는데, PrEP 역시 한번 복용을 시작하면 이것도 평생 해야 하거든요. 계속 병원 가서 내성이 생겼는지 검사 받고, 그래야지만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약인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AIDS라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는데, 이건 사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약이에요. 도입 자체보다는 도입이 되고 나서가 더 큰 부분인 거죠.

 

맞는 말씀이고, 사실 지금 HIV 검진 자체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과연 처방전을 떼고 PrEP을 구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고 감염인분들이 얘기하기도 하시더라고요. 이 또한 또 다른 낙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 그래서 이 약을 어떻게 유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거죠. 어찌됐건 지금 PL들은 감염내과를 통해서 진료를 받고 있고 병원은 지정돼 있는데 그 병원에서만 받게 할 건지, 아니면 여기저기서 처방을 받게 할 건지가 걸리구요. 약값도 장난이 아니거든요. 한 알에 거의 만 원 정도 되는 약인데, 이게 한 달이면 거의 30만원이죠. 1년에 360만원씩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도 그렇고, PrEP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그 신분(계급)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구요. 누구는 돈이 없어서 PrEP를 못 먹는 현상을 어떻게 할지. 국제적 제약회사의 가장 큰 돈벌이가 HIV/AIDS관련 약이에요. 암튼 도입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은데, 도입되고나서가 문제인 거죠.

 

 

 

인권포럼(소리).jpg

LGBTI 인권포럼에서 발언 중인 소리님 (사진: 터울)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PL의 섹슈얼리티

 

 

다음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PL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얘기하려고 해요. 소리님은 현재 KNP+ 회원이시고, ‘알’에서도 활동하시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러한 커뮤니티 활동이 소리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 사실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최근엔 되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오래 활동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는데요. (웃음) 저도 회사 그만두고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서 그 기간 동안 바쁜 운영지기들 대신 제가 하게 되고, 처음엔 그냥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들이 확 넘어오더라구요.

 

어떤 커뮤니티든 비슷하군요. (웃음)

- 그렇죠. 내가 이러려고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닌데 자괴감 들고 막. (웃음) 농담이고 사실 하고 싶은 활동이었어요. 회사 다니는 동안 바쁜 와중에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는 시간이 됐고, 때마침 ‘알’ 운영지기 제안이 들어와서 투지를 가지고 ‘난 해보겠어!’라고 시작을 했는데요. 재미반 호기심반으로 시작을 했다고 하면, ‘알’ 같은 경우에는 상훈님이랑 저랑 거의 활동을 담당하고 있구요. 의무랑 책임이 좀 더 커진 것 같긴 해요. 또 KNP+ 활동을 하면서 되게 많은 걸 배웠어요. 현재 우리 인권의 위치라든가, 어떤 문제점이 크게 도사리고 있는지 등을 배웠고, 그런 문제점을 인식을 하고 해결해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소위 ‘인권병’이라고 하죠. (웃음) 복학하고 나니 막말하는 교수들이 쓰레기 같다고 얘기하고, 그러면 옆에서 상훈님이 ‘어후 저 인권병’이라고 하는데. 뭐 인권병이 나쁜 건 아니지만요.

 

절절히 공감이 가네요. (웃음) 근데 친구사이나 행성인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는 PL도 활동 중인데, 소리님이 그러한 커뮤니티가 아닌, PL로 구성된 모임에서만 활동하시는 목적이 있을까요?

- 일단 저도 PL이기 때문에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게 제일 크죠. 근데 사실 활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활동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친구사이의 간부급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제가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친구사이와 행성인의 운영진들은 다 알거든요. 서로 얼굴도 알고 제가 PL이란 것도 알고 있구요. 특히 행성인 같은 경우 워낙 예전부터 저희 ‘알’이랑 같이 프로그램 기획도 하고 HIV/AIDS인권팀이랑 얘기도 많이 해서 거기 팀원들은 다 알아요. 그래서 표면적으로 막 나서서 활동하지 않는 것뿐이지 사실상 관련된 이슈나 인권 같은 경우에는 같이 활동하고 있죠. 또 지금은 KNP+랑 ‘알’ 활동하는 것도 버거워요. 정모도 꾸준히 계속 열어야 되고, 대외활동도 하고 있구요. 관련 이슈가 있으면 교육이나 세미나도 듣고, 발제 요청 오면 발제도 하고, KNP+는 연합체라 따로 또 활동을 하기 때문에 할 일이 있어서 두 개만 해도 바쁘네요. 거기에 친구사이나 행성인까지 활동하면 음… 생활비도 벌어야 하거든요.

 

그렇군요. 실은 저희 친구사이 내에서 PL임을 밝히고 활동하시는 분도 있지만, 아직 드러내지 않고 지내시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직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PL에 대한 시선 때문이라든지, 소통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른다든지 등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PL들이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요.

- 우스갯소리로 하는 건데, ‘게이 생활 끝날까봐’죠. 한 마디로 정리가 됐나요? (웃음) 저희 운영지기들끼리 하는 얘기도 항상 그래요. 저희가 어디 인터뷰를 나가거나 세미나를 가거나 하는 경우에는 웃고 넘어가는 식으로 저렇게 얘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얼굴이 팔리니까 애인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많은 제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손쉽게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고, 사실 시스젠더 이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레즈비언들보다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차별이나 낙인이 더 심한 것 같아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혐오세력들이 특히 공격하는 것 중 하나가 ‘동성애자=HIV/AIDS감염인’이라는 주장인데, 그것 때문에 자기들이 욕먹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파보이면 농담으로 ‘너 AIDS 걸렸냐’고 하기도 하고, 술잔 나눠 마시면 ‘어후 AIDS 걸려’ 이런 농담도 들었어요.

 

어휴 참, 얘기만 들어도 민망하네요.

- 그리고 우리나라 정책 중 하나가, 취약그룹인 남성 동성애자 대상으로 하고 있는 예방 활동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인권보다는 예방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인권과 예방을 같이 중시하는 건 소홀한 측면이 있죠. 그래서 그런지 AIDS를 ‘콘돔을 끼지 않으면 걸리는 위험한 질병’이라는 인식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콘돔을 끼는 건 많은 이유가 있을 텐데,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성병을 예방한다든지, 이성애자 같은 경우에는 피임 도구로 쓰기도 하구요. 남성 동성애자가 취약 그룹이라서 특수성이 있다는 것뿐이지 ‘콘돔이 껴야지만 니네가 AIDS에 안 걸린다’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낙인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말씀인지 이해가 가네요. 너무 치료나 예방 쪽으로만 이슈가 부각되다보니까 인권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인 거죠.

- 그래도 최근엔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해요. 저만 해도 제 주변 게이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데 큰 문제없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별 문제 없었다고 얘기하기도 하구요. 근데 사실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HIV/AIDS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 행성인 HIV/AIDS인권팀이랑 회원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분이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감염인은 만 명이 넘는데, 그 감염임의 대부분이 남성이고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면 그 만 명가량의 감염인들은 다 어디 있을까’라는 얘기를 하셨던 게 좀 소름 돋았어요. 생각해보면 수도권에 있는 게이들은 다 어디로 가겠어요. 종로 아니면 이태원이죠. 그럼 종로 아니면 이태원에 있는 게이들이 많아봤자 몇 명이겠어요. 그럼 그 만 명에 가까운 감염인들이 만약에 진짜 혐오조장세력들의 말처럼 동성애자이고, 게이면, 그러면 내가 어떤 술집에 들어갔을 때 이 많은 게이들 중에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HIV/AIDS감염인이 되게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PL일 수 있는 건데, 그거에 대해서 농담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전설 속의 동물처럼 내 주변엔 없겠지라는 가정 하에 커뮤니티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는 자체가 좀 문제가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자꾸 수면 위로 떠올려서 게이 커뮤니티 내에 위치하고 있는 감염인들이 좀 더 마음에 부담이 없게끔 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보고 있어요.

 

맞아요. 소리님 얘기 들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평소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PL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막 하고 술을 마시진 않지만, 그래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 중요한 것 같아요.

친구사이에도 ‘가진 사람들’이라는 자조모임이 있지만, 드러내놓고 PL의 성적권리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다룬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커뮤니티가 PL의 섹슈얼리티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아까 얘기한 것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자기 주변에 PL이 없을 거라는 단정을 안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 주변엔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동하는 한 부분이 숨어있던 PL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든 행동이든 좀 조심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커뮤니티가 많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커뮤니티가 열려 있고 호의적이라고 하면 PL들이 스스로 드러낼 수도 있거든요.

 

사실 여담이지만 저도 친구사이에 데뷔한지 4년 정도 됐는데, 요즘엔 그래도 친구사이 내에서 PL임을 밝히고 활동하는 분들이 좀 있어서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이 별 거부감 없이 평소대로 같이 얘기하고 어울리고 술 먹고 언니 동생 하는 게.

- 최근 친구사이에서 오신 캠페이너 분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자기는 주변에 PL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요. 그런데 같이 활동을 하던 사람이 PL임을 커밍아웃을 한 게 되게 놀라웠고 또 미안했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자기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심코 내던졌던 말이나 행동들이 그 분께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전에 생각을 못한 게 많이 부끄럽고 미안했다며 좀 더 공부하면서 많이 알고 싶다고 얘기했던 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도 또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구요. (웃음)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됐네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섹슈얼리티가 다분히 한 개인으로서의 성적 이슈이지만 사회적인 영향도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성적권리와 섹슈얼리티 실천에 대해 당사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면 부탁드려요.

- 섹스를 많이 합시다! 섹슈얼리티 관련 얘기를 하다보니까 인권이나 커뮤니티 관련해서 더 많이 얘기한 것 같아서요. (웃음) 그리고 여러분, 만약 HIV/AIDS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콘돔을 사용하시고, 자신이 감염 위험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고,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면 알아서 하시면 돼요. 자기 선택인 거니까. 그냥 섹스를 많이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아, 이것도 좀 써주세요. 애인 구함, 장소 유. 요즘 외로워서요. (웃음) 농담이에요.

 

여러분 연락주세요. (웃음) 귀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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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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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6-12-23 오후 21:49

잘 읽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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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2016-12-26 오전 07:32

잘 읽었습니다. 본문 Prep 단락에 '맞는 약'이 나오는데 '만능약'의 오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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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2016-12-26 오전 11:41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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