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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둔 사이의 터울 #6 : 인생의 부작용
2017-02-24 오후 16: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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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월 

1.

 

가끔 내 삶의 조건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굳이 그런 걸 생각해야 할 때라면, 삶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가 분명하다. 그럴 때 일견 굳건해보였던 삶의 조건은, 실은 금방 스러질 허약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몇 가지 의밋거리와 재밋거리들로 인생을 낙관코자 했던 날들은, 그렇게 몇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보란듯이 주저앉는다.

 

가령 게이 주제에, 직업에 대해 아무 것도 낙관 못할 대학원 공부가 새삼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나 좋은 것 하겠다고, 그게 내 인생을 더 굳건히 만들 것이라고 남에게, 또 스스로에게 강단했던 기억이 무색해진다. 이왕 힘들 것 그냥 나를 숨기고 애써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월급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복받친다. 연구용역들의 불순한 임금주기로 인해 쌓여가는 채무와, 그 채무를 갚기 위한 숱한 일거리를 꾸역꾸역 받다보면, 갑자기 병이라도 들었을 때 또 일의 능률을 갉아먹고, 그 병을 처리하기 위한 채무가 또 쌓여가는 상황을 겹겹이 마주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대체로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돌이켜보면 끝없이 무리를 해가며 이끌어오는 일상이다. 그러다보면 그간 이적진 스트레스가 몸 안으로 외화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몸이 무너지면 자연히 마음 또한 무너진다. 내 일상은 내가 선택해온 많은 무리 위에서만 온전히 돌아가고, 그것들을 앞으로 계속 끌어갈 수 있을 지는 얼른 자신이 들지 않는다. 거기까지 닿으면 아스팔트 바닥에 생살이 쓸리듯, 마음은 더는 버티기를 거부한다. 언젠가 보란듯이 살았던 내 삶의 내용이, 이제는 너무도 낯선 절벽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앞엔 엄연히 지켜야 할 마감과 일거리가 있고, 거기에는 내 밥줄과 신용이 추상같이 걸려있다. 거기에 어떻게든 부응하도록, 지친 나를 정상적인 일상으로, 정상적인 일의 능률로 다시 끌어올려야 할 때가 온다. 그러기 위해선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낼, 나를 위로할 광대버섯같이 바짝 독오른 쾌감이 필요해진다. 강력한 일상을 버티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력한 마취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눈먼 취밋거리이든, 아무렇게나 만나는 사람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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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석사논문을 탈고할 때 나는 허리디스크를 얻었다. 당시 모아둔 돈은, 학위논문 심사과정에서 생긴 트러블로 제본해둔 논문들을 전량 폐기하고 같은 부수를 다시 찍는 데 반절이 들어갔고, 나머지 반절은 허리쪽 척추에 뚜렷하게 삐져나온 추간판을 촬영하기 위한 MRI 검진비로 소모되었다.

 

배변이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던 어느 날 나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고, 당직 의사는 나에게 마약성진통제 Targin 서방정 10mg/5mg을 28정 처방해주었다. 절대 깨물어먹지 말고 통째 복용하라는 말과 더불어. 집에 와서 약을 한 정 먹으니 30분만에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고, 대신 머리가 빙빙 돌아갔으며, 약효는 12시간 지속되었다. 다음 주에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당직의가 아닌 전문의는 절대 그 약을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약에 포함된 옥시코돈은 2000년 이래 미국에서 문제가 된, 마약성진통제에 즐겨 쓰이는 옥시콘틴의 주성분이다. 과연 나는 그 후에 저 약을 얼마나 많이, 혹은 자주 복용했을까. 통째로 삼키지 않고 부수어 섭취했거나, 물에 녹여 주사기로 주입했다면, 내지는 좀더 아름다운(euphoric) 효과를 위해 다른 드럭과 혼용했거나, 주요 물질의 추출을 위해 화학적 조작을 가미했다면, 그랬다면 내 행동은 과연 합법이 될까, 불법이 될까.

 

그 질문들에 내가 일일이 대답할 의무는 없지만, 여기서 하나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삶이 힘들 때마다 나는 꽤 자주 저 약을 생각했다. 치사량(lethal dose)을 잘은 모르지만, 있는 걸 한번에 삼키게 되면 어쨌든 죽으리라. 또는 여남은 알을 한번에 삼키고는, 내 몸에 피어나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기전들을 찬찬히 관찰해야겠다. 약이 든 구급통이 어느 날이면 거짓말처럼 가까워보였다. 그 복잡한 심경들과 인생의 곤경들은, 어느 순간부턴 이미 투약의 유무, 합법의 유무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 너머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몇번 복용한 그 약보다 훨씬 자주, 훨씬 많은 양으로, 나는 알콜을 음용했다. 몇 해가 지난 후 내 위장과 간은 이제 그 술의 양을 더는 견디지 못한다. 어느 날 술이 과해 모종의 사고를 치고, 끔찍한 숙취에 시달리고, 극심한 감정 기복을 넘기고 나면, 갑자기 나는 꽤 건강하며, 알콜을 비롯한 약물을 나름 윤리적으로 사용할 줄 안다고 짐짓 말하고 싶어진다. 나는 내 일에 힘써왔고, 내 삶을 나름대로 잘 통제해왔으며, 따라서 천한 중독 따위는 나랑은 전적으로 무관한 일이다.

 

합법적으로 처방되는 진통제와 마약 사이,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합법과 불법과의 간격은 생각보다 가깝다. 그처럼 내가 규정해놓은, 내 삶의 정상성과 비정상성과의 관계 또한 언제나 모호하다. 별안간 내가 정상임을 그토록 강변하고 싶은 욕심이야말로, 내가 섭취해온 약물의 부작용임과 동시에, 내가 살아온 인생의 주요한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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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방지와 회복에! 게으름을 없애는(除倦) 최신 각성제,
히로뽕(ヒロポン)!

 

적응영역 :
1. 과도한 육체 및 정신 활동시
2. 철야, 야간작업, 기타 졸음 제거를 필요로 할 때
3. 피로, 숙취, 멀미
4. 각종 우울증

 

▲ 朝日新聞社体力部 編, 『昭和十八年 運動年鑑』, 朝日新聞社, 1943, 263쪽.

 

 

 

3.

 

헤로인(Heroin)은 양귀비의 꽃봉오리에서 추출한 아편(Opium)을 화학처리해 만든 물질이다. 양귀비는 기원전 34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재배되었으며, 헤로인은 1874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합성되었다. 정확한 화학명은 디아모르핀(Diamorphine)이며, 1895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Bayer)에 의해 '헤로인'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복용시 마치 영웅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데서 유래했다. 당시에는 유사한 아편계 진통제인 모르핀이 중독성이 강한 기분전환 약물(Recreational Drug)로 사용되었고, 시판 당시 헤로인은 모르핀과 효과가 유사하되 중독 증상이 적은 신약으로 소개되었다. 주로 진통제 및 기침 진정제로 처방되어 1898년부터 1910년까지 판매되다, 이후 모르핀보다 중독성이 심각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1920년 미 의회에서는 의료적 목적 외의 헤로인 사용·판매를 금지했다.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은 천식약으로 사용되었던 마황(麻黃)에서 추출한 에페드린(Ephedrine)을 화학처리해 만든 물질이다. 에페드린을 1차 가공한 암페타민(Amphetamine)은 1887년 독일에서 처음 합성되었고, 2차 가공한 메스암페타민은 1893년 일본에서 처음 합성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일본에서 병사들을 위한 각성제로 지급되었으며, 1941년 대일본제약(大日本製藥)에서 '필로폰(Philopon)', 혹은 '히로뽕(ヒロポン)'이란 이름으로 일반에 판매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Φιλόπονος(philoponus)에서 왔으며, 실제로 노동효율을 높이기 위한 약으로 공장노동자에게 시판되었다. 패전 후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1951년 일본 정부는 「각성제취체법」을 공포, 제한적 의료 및 연구목적 이외의 메스암페타민 사용을 금지했다.

 

MDMA(3,4-MethyleneDioxyMetaAmphetamine)는 사사프라스(Sassafras) 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을 화학처리해 만든 물질이다. 1912년 독일에서 처음 합성되었으며, 1968년 미국 서부에서 의료용이 아닌 목적으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들어 기분전환용, 특히 클럽 파티용 약물로 대대적으로 제조·판매되었는데, '엑스터시(Ecstasy)'라는 별칭으로 처음 판매된 것은 1981년의 일이다. 이후 남용이 잦아지자, UN마약위원회(CND)는 MDMA를 1급 마약으로 지정하고, 제한적 의료 및 연구목적 이외의 사용을 금지했다. 한편 2012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에게 MDMA를 처방한 결과, 반응률이 좋고 치료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점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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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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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7-02-24 오후 19:07

뭔가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분야라 이해도 낯설고 글 쓴이의 노고도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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