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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어울림’ #2] 우리 모두가 '다문화'다 - 다양성과 인권을 위한 제언
2016-06-18 오후 18: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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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6월 

[커버스토리 ‘어울림’ #2] 

우리 모두가 '다문화'다 - 다양성과 인권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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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사람은 다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은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 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회적 그룹에 속하여 살아간다. 각 사회적 정체성들은 또 그마다 특권그룹, 경계그룹, 억압그룹으로 나뉘게 되며 각각의 그룹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 사회적 정체성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개인이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개인의 노력이나 성과 등과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들이 많다.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은 모든 개개인이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정체성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다.

 

 

2. 우리는 모두 특권그룹과 억압그룹에 속해 있다.


모든 사람은 여러 사회적 정체성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 그룹에 동시에 속하게 되는데, 그 중 어떤 정체성에서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다른 정체성에서는 '억압'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여성, (일시적) 비장애인, 시스젠더**, 이성애자로 정체화하는 사람은 성별 영역에서는 억압 그룹에 속해 있지만 장애, 성별정체성, 성지향 영역에서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특권과 억압은 그 개인이 속한 시대와 환경, 또한 물리적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유학을 가기 전 모든 사람들이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한국에 살 때는 스스로를 동양인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한국인이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나였고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백인 위주의 사회인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그냥 내가 아니라, 갑자기 ‘동양인’이 되고 ‘한국인’이 되었다. 인종이라는 사회적 정체성 영역에서 내가 가진 정체성이 억압그룹에 속하게 되는 사회로 옮겨갔더니 나는 갑자기 ‘유색인종’이 되고 ‘소수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특권그룹이 가진 특권 중에 하나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사회적 정체성 중 그것에 대해서 평소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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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적 소수자’는 숫자에 의한 정의가 아니다.


각 정체성마다 억압그룹에 속하여 있는 사람들을 ‘사회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라고 한다. 이 때, 중요한 부분은 '사회적'이라는 점이다. 소수자 그룹의 사람들은 실제 비율로는 소수가 아닐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성비는 거의 50:50 이다. 더 정확히는 최근 여성이 약 51%로 남성의 인구 수를 넘었다. 그러나 '여성은 사회적 소수자'라는 말은 실제로 숫자가 적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는 실제로 물리적인 힘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라는 말은 사회적인 차별과 구조적인 억압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억압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특권 그룹'의 사람들에 비해서 부, 명예, 네트워크 등의 사회적 자원에 다가가기 어렵다. 그 결과, 이들은 사회적으로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는 기회, 의견을 말 할 수 있는 기회, 결정할 수 있는 기회, 자신의 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 기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등을 박탈 당하게 된다.

 

 

4. ‘다문화’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현재 매우 제한적인 의미로 ‘다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종과 민족에 국한시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들과 이주결혼여성들 그리고 난민들 등의 외국인들을 ‘다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이 이룬 가정을 ‘다문화 가정’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다문화 아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제력이 좋은 국가나 백인에게는 ‘다문화’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처음 ‘다문화’라는 용어를 만들었을 때는 분명 좋은 뜻이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 새롭게 유입되는 사람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든 새로운 용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문화’라는 용어가 오히려 사람들을 구분 짓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제노포비아)가 유지되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 전반 그리고 특별히 사회복지계에서 사용되는 방식 때문에 굉장히 시혜적이고 동화정책적인 측면이 발생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장애 차별, 성 차별, 외국인 차별 등 모든 종류의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내가 더 우위에 있기 때문에 너를 도와주겠다’라는 시혜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동등한 사람이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 어떤 사회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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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사람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 다양성의 사회가 되었다. 계속해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고 주체와 객체를 나눠서 차등적으로 차별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우리 사회 속에서 적응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필자는 ‘다문화’라는 용어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확장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나 이방인, 나그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항상 특권그룹 또는 억압그룹 어느 한 쪽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평소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도 연대하고 지지하고자 하는 마음과 ‘우리 모두는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다문화’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 다르지만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 존중, 배려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나답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면서 타인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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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체성에는 성별(젠더), 장애유무, 인종, 민족, 성지향, 성정체성, 지리적 위치, 군 경험, 일 경험, 교육수준, 수입, 가족의 형태, 혼인 상태, 자녀 유무, 부모님의 상황, 신념(정치, 종교, 세계관, 가치관) 등이 있습니다.

 

**시스젠더(Cisgender)란 스스로의 사회적•심리적 성별(Gender)을 생물학적인 성별(Sex)과 같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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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양성연구소  / 김지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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