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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담론팀 기획토론 #3 : 동성결혼 제도화와 시민권
2015-04-29 오전 06: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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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 
친구사이에서는 단체 발기 20주년을 맞이하여 게이인권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담론팀을 조직하였습니다. 반년간 팀 내에서 축적된 논의 끝에, 2015년 상반기에는 총 4차의 기획토론이 계획되었고, '혐오'를 주제로 한 제1차 기획토론과 'HIV/AIDS'를 주제로 한 제2차 기획토론에 이어, 지난 3월 20일에는 '동성결혼 제도화와 시민권'을 다룬 제3차 기획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호주제 폐지를 기점으로 가족 개념의 재규정을 고민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이성간 결혼을 통하는 것 이외의 다양한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를 키워나갔고, 이에 2006년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이 창단되었습니다. 한편 2013년 9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광통교 동성결혼이 행해지면서 이 이슈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후 동성부부 혼인신고에 대한 소송 등의 제도화 투쟁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최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에 의해, 동거 커플에게도 법적인 동반자 자격을 주고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이 입법 준비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여년간 진행되었던 가족구성권과 동성결혼에 대한 연구 및 운동과 관련하여, 그간의 활동을 개괄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환기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2013년 동성결혼의 주인공이었던 김조광수 감독(청년필름)을 비롯, 더지(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김원정(가족구성권 연구모임), 황두영 비서관(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 등 다양한 단체에서 오신 활동가 분들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아래는 기획토론 때 언급되었던 내용 중 일부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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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 당시의 정황과 회고
 
먼저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9월 7일,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공개 동성결혼식에 대해, 당시의 정황과 함께 당사자 및 각 운동단체들이 취했던 입장을 들어보았습니다.
 
 
1) 당시의 정황
 
ㄱ. 여성주의 단체
먼저 언니네트워크 등의 여성주의 단체들은 이른바 '비혼 운동'를 위시하여, 결혼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혼 운동은, 여성을 딸이나 아내라는 가족 안의 위치로부터 탈출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여성들을 독립시키고 사회적으로 한 개인으로 보게 만드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깁니다. 이 과정에서 원론적으로 기존의 '결혼'에 비판적인 견지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김조광수·김승환 동성결혼식을 앞두고 위 단체들의 입장은 어느 한 방향으로 뚜렷이 정리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부적으로 동성결혼도 기존 결혼제도의 연장선에서 비판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비혼 운동과 동성결혼 운동 지지는 별개라는 입장이 양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식 직전에 위 단체들이 연명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명의의 동성결혼 축하 논평이 나온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후자의 입장으로 느슨하게 정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ㄴ.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한국의 가족구성권 논의를 일찍부터 조형해나갔던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은, 당초부터 '동성결혼'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 나갔다기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가족구성권'이란 개념을 통해,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이성결혼을 포함한 한국의 가족구성 양상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에 착안하여,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십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김조광수·김승환 동성결혼식에 즈음해서는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주최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이들의 동성결혼식이 갑자기 튀어나온 "갑툭튀"가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이 개진해온 가족구성권 실천과 연결되며, 이성애 정상가족 규범에 들어가지 않은 대안적 가족 실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내용의 발제를 진행하였습니다. 헌데 당시 토론회의 플로어에서는, 발제자들이 동성결혼 제도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인지 부정적인 입장인지 뚜렷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었고, 페미니스트들을 주축으로 '결혼'의 형태가 아니라 보다 여성 주체적인 대안적 가족구성권에 대해 별도로 논의하자는 이야기도 대두되었다고 합니다.
 
ㄷ.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그렇다면 동성결혼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속해있는 친구사이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친구사이는 2006년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이 생기던 무렵부터 이미 가족구성권 관련 사업들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2006년 가족구성권 관련 세미나에는 김조광수 감독이 사회를 보기도 했고, 퀴어문화축제 때 "예쁜가족 선발대회"를 개최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대안가족의 형태를 가시화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때도 동성결혼보다는 가족구성권 차원에서 사안을 강조했던 것은 공통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의 동성결혼식에 이르러서는 결혼식 준비단 측과 친구사이가 공식적으로 연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선 실무적 부하가 무척 큰 일이었기 때문에 주저했던 부분도 있었고,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동성결혼의 찬반에 대한 입장을 조기에 정리하지 못했기에 공식적인 연대가 어려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단체 차원에서의 신념이나 이론적인 부분에서의 지지보다는, 개인적인 '축하', 혹은 지_보이스의 결혼식 축가 지원 등 비공식적인 지지의 형태로 귀결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ㄹ. 김조광수 감독 당사자
다음은 동성결혼식의 당사자였던 김조광수 감독의 술회입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동성애 운동 진영에서 이 결혼식이 '사고'에 가까웠다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당사자로서는 2013년 초엽부터 이 결혼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계획했던 운동단체와의 연대가 끝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결혼식은 결국 '연대운동'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인권단체에서 이 동성결혼식을 어떻게 받아안아야 할지 입장정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식이 진행되었던 측면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결국 결혼식의 인권운동적 측면보다는 문화운동적 측면에 입각하여, 문화연대와 연대하는 방향으로 식 준비가 진행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성결혼식은 단체가 아니라 '개인'의 결혼식이라는 인상이 강해지게 되었고, 그 한계를 끝까지 안고 갔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결혼식 당일에 즈음해서는 여러 단체에서 '논평'의 형식으로 축전을 보내오기는 하였습니다만, 이 결혼식에 대한 찬반지지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길 원했던 당사자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남의 집 잔치에 흠집내지 말자"는 정서가 공유된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일종의 "잔치"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오히려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쟁의 가능성을 역으로 가로막았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합니다.
 
 
2) 회고의 정리
 
ㄱ. '사고'로서의 결혼, 미완의 의미부여
위와 같은 회고들을 종합해보면, 동성결혼식의 준비과정이 나름 길었다는 것을 제하더라도, 적어도 운동단체에게는 이 결혼식이 어떤 던져진 '사고'와 같았던 부분이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또한 이 결혼식이 가진 대내적, 대외적 의의에 대해 단체들이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어떻게 전유해야 할지에 대한 입장을 조속히 정리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점도 확인됩니다. 따라서 이 결혼식은 현재도 여전히 '사고'의 위상에 머물러 있고, 그렇기에 추가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즉 결혼식의 의미가 아직 부여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측면이 있는 셈입니다. 
 
ㄴ. 논쟁이 생각보다 적게 되었던 측면
동성결혼에 대한 원리적인 반대와 찬성 논리 가운데에서, 앞서 언급되었듯 당시 이 결혼식에 대한 단체의 입장정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론에 참석한 어떤 분은 "성소수자 운동이 생각보다 굉장히 단일한 운동"이었던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불어 성소수자 운동 내부적인 입장 차이가 있을 때, 그것을 정리된 운동의 형태로까지 전개한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가부장제 싫어, 가부장제 결혼 싫어", 이 이상의 담론이 없는 상태에서 동성결혼을 맞닥뜨린 것 같았다는 감상도 피력되었습니다. 
 
 
<'당연한 결혼식' 관련 논평 목록(시간순)>
 
 
<'당연한 결혼식' 전후 개최된 토론 및 관련 활동>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동성결합의 실천과 <당연한 결혼식>의 의미", 2013.9.4.(수), 19:30, 인권중심 사람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출범,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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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결혼식'과 관련한 최초의 인권단체 논평. (동성애자인권연대, 2013.5.16.)
 
 
 
2. 동성결혼 및 제도화 운동에 대한 의견들 
 
다음으로 대안적 가족구성권의 고민에서 출발한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에 대한 소개와 함께,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실질적인 필요성, 아울러 제도화 투쟁 및 운동으로서의 동성결혼을 재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 동성결혼 이전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고민과 "생활동반자법"
 
ㄱ.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가족구성권에 대한 고민의 시초는 앞서 언급한 대로, 여성단체의 노력에 의해 2003년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족의 법적 등록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가족을 재규정할 것이냐의 고민이 대두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안적 가족구성권이 논의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2006년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이 발족되어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처럼 이에 관한 논의는 '동성결혼'이 특별히 주목되었다기 보다는 '가족구성권'의 차원으로 고민되었고, 이러한 양상이 2013년 동성결혼식 당시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동성결혼식 이후 가족구성권에 대한 연구모임에 더하여 연대 운동단체로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2013년 12월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발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ㄴ.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2014년 9월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에서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의 입법을 준비하였습니다. 법안의 골자는 2명의 성인이 합의하에 거주를 같이 하고 부양의무를 약속하는 경우에 가정법원에 등록하여 법적으로 권리·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기존에 결혼한 부부에게만 돌아가던 복지 혜택을 동거 커플에게도 적용하는 제도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법안의 구성은 어떤 관계를 어떻게 등록하느냐는 본법이 있고, 임대주택·의료·건강보험·국민연금 등 실제로 살면서 부양에 필요한 경제적 문제, 사회복지적 문제, 권리 등을 부여하는 추가 법률안이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령 공직선거법상의 의무는 공직자가 될 때 배우자의 재산공개 의무를 부여하는데, 여기에 '생활동반자'로 지정된 동거인을 포함시키는 것이 한 예입니다. 이렇게 아동복지법, 국가인권위법 등, 타법의 일부 조문 개정과도 연계되어 입법이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동 준비 법안에서 상속, 육아에 대한 권리는 부여하지 않았고, 민법상 친족이 아닌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춘 법안임이 주목됩니다.
 
즉 이 법은, 특별히 동성애자 동거 커플을 염두에 두었다기 보다는 비혼,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거 커플을 위한 법으로 고안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법의 성안이 알려지게 되면서, 다양한 가족의 측면보다는 유독 '동성결혼'과 비견되는 법안의 부분에만 관심이 주목되는 등, 의제들이 깔때기처럼 '결혼'에 수렴되었던 측면은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법안 준비 과정에서, 결혼제도가 아닌 어떤 다른 가족구성 관련 제도가 구상되고 있는지를 검토하였으나, 단순한 주장을 넘어 그에 관한 구체적인 대안이 고민된 레퍼런스는 찾기 어려웠다고 회고한 점이 주목됩니다.
 
 
2) 결혼 및 가족에 대한 필요성과 제도화의 음영
 
ㄱ. 생애주기에서 결혼에 준하는 관계의 필요성
다음으로 종종 당연하다고 생각되거나, 쉽게 부정되고는 하는 결혼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가족구성에 관한 고민은, 내가 앞으로 늙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이라는, 생애주기에 대한 상상 및 실천과 서로 긴밀히 연관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결혼제도가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의견이 오갔습니다.
 
첫째로, 관계에 대한 판타지의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결혼만큼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세레모니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환상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통틀어 일정 부분 존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둘째로, 친밀성에 대한 욕망의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울릴 수 있는 - 혹은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그렇게 줄어든 결과 고정된 배우자와 깊이 교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셋째로, 결혼은 생존의 필요조건을 뒷받침하기도 합니다. 혼자서의 노동으로 살아남기 힘든 현실 속에서, 배우자 간의 경제적 부양은 노년으로 갈수록 인간의 삶에서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런 필요성 위에서, 가족구성의 방법으로 가장 대중적으로 친숙한 것이 아직까지는 결혼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결혼이 주는 억압 못지않게, 그 제도가 주는 안정감과 편함, 유익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한 결혼은 제도임과 동시에 문화이며, 사람들이 결혼에 따른 부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는 데에는, 결혼을 함으로써 그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편익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결혼제도는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오갔습니다.
 
ㄴ. 결혼 및 가족구성의 '제도화'와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
그렇다면 이런 관계가 법적으로 제도화된다는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결혼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진단들은 사실 이 관계의 제도화에서 비롯됩니다. 우선 제도화된 관계 속에 있으면 사회적인 안정이 크게 따라붙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화의 '강제'는 관계가 좋을 땐 좋지만, 관계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엄청난 폭력과 억압이 됩니다. 따라서 관계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제도화된 결혼의 '강제'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문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그 결혼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조처가 강구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제도화'된 결혼에 대한 비합리성이 아니라 모든 '결혼'의 비합리성으로 비춰지는 것은 비약이라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더불어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꼭 제도화를 수반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꼭 제도화된 결혼이 아니더라도, 가령 게이 동거 커플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한 끝에 '함께 사는 애인'으로 인정받았을 때, 충분한 행복감을 느끼는 예가 그것이지요. 더불어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도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가 아님을 고려할 때, 관계에 대한 법제도화의 유무보다는 양가의 가족들에게 관계를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ㄷ. 가족 단위의 복지의 음영
하지만 제도화된 결혼의 필요성에는 가족 단위로 짜여진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연루되어 있습니다. 가령 동거 커플의 배우자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법적인 배우자가 아니면 수술 동의서를 쓸 수 없는 등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의료서비스를 위시한 복지제도에서, '가족' 중심으로 혜택이 편제되고 있는 양상은 여전히 '제도화된 결혼'에 대한 수요를 낳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동성애자라 정체화한 사람이, 나이가 듦에 따라 이러한 복지제도의 혜택에 편입되고자, '이성과의 결혼'을 생존에 필요한 하나의 선택으로 고려하게끔 만드는 상황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지적도 오갔습니다. 이처럼 대안가족, 결혼, 혹은 제도화된 결혼에는 비단 성정치의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계급적인 측면도 함께 묶여있는 것입니다.
 
 
3) 운동으로서의 동성결혼
 
ㄱ. 결혼에 대한 원론적 비판의 재고
다음으로 동성결혼을 '운동'의 잣대로 평가해보자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토론에 참석한 패널분들 대부분이, "결혼=가부장제이므로 철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낡은 관점이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단순히 결혼제도가 폐지되어야 된다거나 개방되어야 한다는 논의에 그다지 실익이 없다는 것이 토론을 통해 공유된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결혼 제도 바깥에 있는 관계의 가능성, 파트너십 제도, 비혼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결혼 제도 자체의 불평등과 차별을 그 제도 안에서 그 외연을 확장하는 식으로 해소하는 것 또한 중요한 운동의 과제라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성결혼에 있어서도, 결혼의 권리가 동성애자에게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결혼의 평등권에 입각해 문제를 재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공유되었습니다. 
 
ㄴ. 동성결혼의 체제편입 우려에 대한 성찰
동성결혼 문제에 있어, 여러가지 문제가 노정되고 있는 이성애자의 기존 가족제도에 동성애자가 단순히 '편승'하는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들이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 추세를 타면서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 동성결혼 이외에 기존의 결혼제도를 공격할만한 유효한 수단이 별달리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즉, 제도화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고 그 길이 요원한 상황에서, 제도화에 대한 과잉되고 앞선 염려들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지요. 더불어 미국에서 동성결혼 제도화에 대한 폐단이 나타났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똑같이 그것이 구현되리란 법은 없으며, 따낼 건 따내면서 경계할 것은 경계하자는 의견도 대두되었습니다.
 
ㄷ. 선제적 형태의 동성결혼 운동의 필요성
헌데 문제는,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결혼식이 있었음에도 정작 동성애자 대중 스스로가 그다지 결혼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해당 욕망을 가진 대중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동이 꼭 그런 방향을 취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토론 중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운동이 어떤 대중의 욕구를 선도할 수도 있고, 따라서 대중의 요구가 무르익지 않았어도 운동은 운동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된 바, 결혼에 대한 평등권에 입각한 동성결혼 운동의 의의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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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진선미 의원 @인문까페 창비, 2013.8.8.
 
 
 
3. 동성애자에게 결혼, 가족이란 무엇인가
 
 
1) 동성애자의 생애주기와 결혼
 
ㄱ. 동성결혼에 대해 생각보다 적은 내부적 관심
다음으로 동성애자 대중 스스로가 결혼에 대해 갖는 관심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진단은 생각보다 회의적이었는데, 우선 지금은 이성애자들조차 결혼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고 있는 시기이고, 결혼이 점점 사회경제적 복지를 위한 통과의례로 생각되고 있는 양상이 환기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결혼식에 대해서도,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나도 하고 싶다"는 것보다는 그저 "좋은 일 하시네" 정도의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동성결혼이 선도적으로 제도화된다고 할지라도, 그 제도화된 관계가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대두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자들에게는 차라리 아름다운 로맨스가 현실적일지언정, 사회적·제도적 뒷받침이 수반되어야 할 동성결혼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영 현실감있게 와닿지 못한다는 것이 지적되었습니다.
 
ㄴ. 동성애자의 생애주기 상상의 부재와 실감되지 않는 결혼
실제로 어떤 동성애자의 경우,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동성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하게 된다고 술회했습니다. 남의 결혼식을 방문하면서 '저런 인정, 저런 축하, 저런 안정, 저런 효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언정, 그런 총체적인 '저런 것'이 동성결혼에도 포함될 수 있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을 못해보게 된다는 점이 이를 통해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동성애자의 생애주기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동성애자인 내가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해 막막한 기분이 들다보니, 그 과정에 있어야할 결혼도 제대로 그려지기 어려운 것이지요. 또한 내가 동성애자라고 성정체성을 인정했을 때, 이미 동시에 결혼을 단념하거나 포기하는 정황이 있다는 것도 지적되었습니다. 사실 동성애자로 살기로 마음먹은 다음에는, 그에 맞는 특정 직업군,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그것들이 이미 결혼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게 된다는 회고도 있었습니다. 즉, 성정체성 인정 후 동성결혼은 종종 예상 가능한 옵션이 아니며, 그렇게 결혼제도와 '이미' 분리된 형태로 동성애자들의 인생이 짜여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ㄷ. 동성애자들의 결혼 관련 욕망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
그러나 위와 같은 진단은 사실 대표성이나 통계적 유의미성이 없는,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과 그 주변인들의 경험에 의거한 일부의 사례에 불과합니다. 이에 대해 그나마 정리된 형태로 조사된 결과로는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가 있는데, 위 조사에 따르면 10-20대는 동성결혼을, 30-40대는 시민결합을 더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한 추측으로는, 10-20대는 외국의 사례를 접하는 과정에서 동성결혼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상상'해본 결과이리라는 관측과, 20대에게는 결혼이 환상일 수 있지만 30대부터는 결혼의 실체, 혹은 주위의 이혼 사례를 접하게 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만, 이것들은 그야말로 '추측'의 범주를 넘기 어려운 것입니다. 
 
즉, 성소수자들에게 결혼이란 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로 소화되고 있고 그에 대해 어떤 욕구가 있는지는 앞으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결혼이 생애주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점에 착안하여, 성소수자의 생애주기 경험과 감각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며, 이에 10-20대 성소수자들의 생애주기 상상과 더불어 40-50대 성소수자들이 실제 경험해온 생애주기에 대한 조사가 함께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2) 동성애자의 복지와 결혼 - 'want'보다는 'need' 위주의 의제 설정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의료서비스 등 제도화된 결혼·가족제도를 위주로 짜여진 복지제도 앞에서, 성소수자 스스로가 자신을 위한 복지제도의 부재를 체감하게 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령 동성애자 커플이 응급실에서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배우자의 수술동의서를 쓰기 위해 자신을 파트너의 '사촌동생'쯤으로 설명하게 될 때 느끼는 굴욕감은 그야말로 매우 생생한 것이지요. 또한 지역에 숨어사는 동성애자 커플의 경우, 동성결혼·대안가족의 제도화를 통해 새로 획득될 수 있는 기존 가족 중심 복지제도 혜택의 '확장'은, 그들에게 너무도 절박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충분한 복지제도의 부재 속에서 가족 중심의 복지가 전체 복지의 대안이 되고 있는 실정은 그 자체로 비판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런 혜택을 굳이 왜 가족 단위로 분배해야 되느냐는 원론적인 지적 말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앞서 언급했던 현실적인 절박함을 우선 염두에 두면서, 동성애자들의 욕망이 '동성결혼'이란 말로 포섭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더 유의깊은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불황이 길어지고 노동시장이 불안해지는 가운데 겪는 각자의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동성결혼'+a'에 해당하는, 동성애자에 대한 복지 혜택이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구성을 중심으로 한 고민을 넘어, 가족과 가족 아닌 부분 양자 모두에서 각각 어떤 복지의 열매를 따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 향후 과제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동성결혼과 가족구성권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해보았습니다.
 
 
1) 현재 동성결혼 '운동'의 방향
 
동성애자 대중의 욕구가 무르익지 않았더라도, 결혼에 대한 평등권 쟁취의 측면에서 동성결혼 운동은 해나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구와 같은 제도화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에 대한 염려가 자칫 운동 자체를 폐색하게 만드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최근 대두되고 있는 혐오세력의 활동에 대한 방비의 측면에서도 동성결혼 제도화 운동은 필요하게 됩니다. 가령 혐오세력들이 결혼을 '이성간'의 것으로만 한정하는 입법 청원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더불어 가족구성권과 관련된 고민의 풍요와 사려깊음을 전제로 하더라도, '동성결혼'이 가지고 있는, 위험하지만 강력한 대중적 파급력을 운동단체들이 좀더 활발히 전유해서 자기의제화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앞서 말한 과잉제도화의 위험을 항상 염두에 두는 가운데 말이지요.
 
 
2) 제도화 투쟁에 앞선 사례의 발굴, 사회적 실체의 생산
 
'다양한 가족구성'에 갈음하는 사회적 실체의 가시화가 태부족합니다. 따라서 동성결혼 등 어떤 특정 서사의 한계에 대한 지적 이전에,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서사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 '당연한 결혼식'은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서사를 창출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제도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으로 빈약한 욕구를 위로부터 제도화하려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더 많은 가족의 형태와 가족구성의 욕구를 발굴하고 그것의 실체를 재조명하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성소수자 커플' 단위의 커밍아웃과 그들의 서사의 가시화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도화와 일정하게 구분되는, 제도화가 달성되는 이전과 이후에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질 '관계의 사회적 인정'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결혼, 가족구성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성소수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경험을 북돋는 것은 중요합니다. 생활협동조합, 퀴어타운 등 성소수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생활의 장과 지평이 더 많이 생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3) 인정 위주의 결혼담론에서 실질적인 복지의 열매를 따내는 담론으로 
 
이성애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동성결혼의 구도보다, 성소수자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을 구성했을 때 실제로 무엇이 보장되느냐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와 관련해, 가족 중심의 복지제도 가운데 그것의 부재로 고통받는 동성애자 가족의 케이스가 좀더 부각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동성애자의 행복한 삶'을 겨냥함에 있어, 어떤 단순한 행복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뼛속깊이 체감할 실질적 복지의 측면이 좀더 부각되는 형태로 동성결혼과 가족구성권 문제가 고민될 필요가 있습니다. 
 
 
4) 동성결혼 이슈를 통해 구성될 수 있는 연대 고민
 
동성결혼 운동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전제가, 이성애자의 가족과 가족제도는 매우 공고하기에 그것을 얻어야 한다는 인식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애자들도 가족 개념의 변화를 몸으로 겪고 있고, 그렇기에 더더욱 동성결혼과 가족구성권 운동은 동성애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논의되었던 성소수자 커플이 갖고 있는 문제들은, 자녀가 없는 커플, 사실혼 커플들의 현실과도 결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가족 내의 성역할과, 기존 가족 이데올로기를 흔들 수 있는 다양한 가족실천이 고민될 수 있도록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성소수자 운동의 외연을 이로부터 넓힌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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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자가 선정한 예쁜가족대회 @베를린광장, 200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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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팀에서는 제1‚2,3차 기획토론에 이어, 오는 5월 20일 "친구사이와 게이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제4차 기획토론이 예정되어있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제4차, "커뮤니티" : 친구사이와 게이 커뮤니티 (2015.5.20)
 
 
요약 및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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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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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2015-04-29 오후 19:04

길고 복잡한 간담회였는데 읽기 편하게 정리하느라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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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쿠샤 2015-04-30 오전 01:18

터울님의 담론팀 기획토론기사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정기모임에서 직접 발표 하시는 것도 들었지만 글로 보니까 더욱 이해가 잘 되네요.
워낙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 주셔서 실제 간담회에 있었던 것 같이 느껴져요ㅎ
특히 이번 기사에는 동성결혼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많은 이슈들이 정말 잘 정리되어 있네요.
읽는 데 오래 걸렸지만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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