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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2014-02-15 오후 12: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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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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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바야흐로 '유병장수' 시대다. 급성질병에 의한 조기사망이 심각한 문제였던 과거에 비해, 질병으로부터 오는 후유 장애가 더 두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를 겨냥한 보험 광고까지 등장했다. 병든 노후에 대비해 보험 가입으로 유병장수를 든든히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은연 중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날이 발달하는 의학기술 덕택에 병에 걸렸어도 생명은 길게 유지할 수 있지만, 병을 '예방'하는 방법보다 '치료'하는 방법들이 더 많이 개발되고 있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병에 걸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그 병에 맞서 싸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게다가 사회가 발달하면서 더 많은 병이 생겨났다. 저자의 언급처럼 예전에는 결핵, 매독, 암 등이 대표적인 병이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에이즈, 성인병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에 방송되고 있는 공익광고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에이즈는 현대 사회에서 무섭고 위험한 질병이 되었을까. 무엇이 에이즈를 그런 병으로 인식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일이다.

 

 

정확히 말해서, 에이즈 - '후천성 면역 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 는 전혀 질병의 이름이 아니다. 에이즈는 특정한 의학적 조건, 즉 결과적으로 질병이 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다. 에이즈에 들러붙는 이미지와 은유 대부분의 원형을 제공해준 매독이나 암과 대조적으로, 에이즈를 정확히 정의하려면 또 다른 질병, 이른바 치명적인 감염과 악성 종양이라는 질병의 존재가 필요하다. (p.142)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의 지적처럼 '에이즈' 자체는 질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에이즈란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에 감염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이에 따르는 질병들이 고통을 주고 치료해야 하는 것이지 에이즈 자체를 질병이며 치료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부분이다.

 

현대 사회에서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는 어처구니없게도 에이즈 예방 광고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몇 가지 광고 사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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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히틀러를 등장시킨 독일의 에이즈 예방 광고(2009) /

<우>프랑스 반 에이즈 단체인 'AIDES'의 에이즈 퇴치 캠페인 포스터(2005)

 

 

위 두 가지 에이즈 예방 광고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에이즈는 마치 히틀러를 찬양하고 전갈과 몸을 섞는 것처럼 끔찍한 죄를 저질렀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가. 마치 에이즈를 본인이 원해서 죄 지은 사람이 걸리는 악마 같은 존재로 알린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에이즈가 무분별한 성 관계에 의해서만 걸린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하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비난받아도 마땅하다는 식의 인상을 오히려 불러일으킨다. 그야말로 에이즈를 예방하자고 알리는 광고가 오히려 에이즈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낳아버린 '페르소나의 역설'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저자가 정확히 지적한 부분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주로 성 관계로 감염이 이뤄지는 전염병은 성적으로 왕성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며, 바로 그런 생활에 대한 처벌이라고 쉽사리 간주되기도 한다. 난교뿐만 아니라 부자연스럽다고 간주되는 특정한 성 '행위'가 에이즈를 불러일으킨다는 소문이 퍼진 이래로, 이런 생각은 매독이 그렇듯이 에이즈에 관해서도 더욱 더 옳은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성 행위를 통해 에이즈에 걸린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p.153-154)

 

 

더 심각한 점은 에이즈에 걸리는 사람이 주로 동성애자, 그것도 '무분별한 섹스를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임을 광고해 차별을 더 부추긴다는 점이다. 다음의 두 광고를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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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미국 질병관리본부 'CDC'의 에이즈 예방 광고(2011) /

<우>캐나다 단체 'One Life'의 에이즈 예방 광고(2009)

 

 

 

광고에 나오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게이로 보이고, 이 광고의 이면에는 '에이즈에 걸리는 원인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게이 간의 섹스이며, 그 중에서도 문란한 성관계를 가진 게이들이 대부분이다'라는 은유가 은연 중에 깔려있다. 이처럼 에이즈에 걸리는 다양한 원인 - 산모로부터의 유전, 수혈 등 - 은 무시한 채 '동성애자=HIV 보균 위험자'라는 발상에 기인한 에이즈 예방 광고는 참으로 유감스러우며, 그 생각에서 등장한 광고들로 인한 역차별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당신의 욕망을 주시하라, 스스로를 돌봐라, 너무 나아가지 마라 등등. 그 뒤로 오랫동안 건강의 이름으로, 이상적인 육체적 외형의 창조라는 이름으로, 특정 욕망의 탐닉에 맞서 한계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 즉, 자발적인 한계가 자유를 행사하는 일종의 방법이 된 것이다. 에이즈가 재앙을 불러오자 한계, 즉 육체와 의식의 한계를 둘러싼 필요성이 곧바로 등장했다. (p.220)

 

 

이쯤에서 필자 또한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받은 에이즈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두려웠던 마음.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에이즈에 걸리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두려움보다는,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았을 때 받게 될 것 같은 시선, 편견, 차별이 두려웠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어찌 보면 전부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나는 당신들과 똑같이 살 수 있어, 그러니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자신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 사회를 두려워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이제는 필요하다.

 

더 이상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충분히 관리하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유병장수' 시대를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질병에 속하지도 않는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은유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자. 현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예방과 대처법을 실천한다면 우리에게는 두려움보다는 담대한 희망이 더 자리할 것이다.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1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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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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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킹 2014-03-01 오전 06:32

사정상 모임에는 참가를 하지 못했었지만 책은 읽었었는데.. 에이즈에 대한 이상한 편견과 두려움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너무 당연하게 들어가 있는 것을 더 제대로 느낄 수가 있던 책이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여. 막상 에이즈에 걸린 사람도 너무 태연하게 관리하며 잘 살아가는 모습도 보이는 반면에요. 어찌됐든 질병이기 때문에 조심하고 예방할 필요는 당연히 있는 것이지만 마치 예전의 흑사병, 나병을 보는 것과 같은 그런 시각들은 확실히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용.

-P.S-
언니.... 글솜씨가.... 말도안되여....최고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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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D 2014-03-02 오후 18:41

꺅!!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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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 2014-03-03 오전 03:51

나도 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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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_233987 2014-03-07 오전 03:32

안대를 쓴다고 세상이 가려지는 건 아닌뎁 ㅎㅎ
어쨋든 에이즈 보단 검사갔을 때 최근에 성경험있냐고 묻는게 더 두렵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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