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노라노>후기
2013-11-14 오전 09: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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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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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외한의 글이다 보니, 패션(업)과 디자이너들에 대한 오류와 오해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양해하기 바란다.

 

 

 

 

 

딱 보면 알듯, 난 옷을 못 입는다. 물론 세상 모든 게이가 패션의 선구자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소위 ‘사내다움’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자유롭고 또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려는 사람이 보기에 난 완전 패션 테러리스트다. 가령 겨우내 (추워서) 골지 굵은 골덴 바지를 (숏다리라서) 동동 걷어 입고 다니니, 웬만한 게이는 물론 차림새에 신경 쓰는 이성애자 남자 기준으로도 빵점이다. 옷은 가릴 데 가리고 편하고 깨끗하면 된다는 기능주의 탓에 서른 넘도록 집에서 사준 옷만 입었고(돈은 술·담배와 책에 썼다), 지금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손 대는 게 귀찮기 짝이 없어 화장품도 데오드란트, 로션, 선크림, 립밤밖에 안 쓰니, 모태 패션 파괴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쁜 걸 싫어하는 건 또 아니다. 성별을 막론하고 남의 머리, 옷, 신발, 장신구, 가방은 눈에 잘 들어오니 말이다. 하지만 잘 꾸미려면 그만큼 관심 갖고 눈썰미 키우고 시간과 돈 모두 투자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부담부터 밀려온다. 결국—적어도 자신의 몸단장에 있어선—안목도 노력도 부족하달까.

 

 

 

이런 내가 최근 개봉한 다큐 <노라노>를 봤다. 이 영화는 LGBT 3부작인 <3 x FTM>,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종로의 기적>뿐 아니라 직전에는 용산 참사에 대한 <두 개의 문>을 만든 ‘성적 소수 문화 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 치마’의 작품이다. 그간 소재와 분위기는 달라도 사회적이고 묵직한 다큐를 만들며 인권 운동을 해온 ‘연분홍 치마’가 한국 패션 디자이너 1호라는 노라노를 찍는다니,의복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소재와 화려한 그 업계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고, 예쁜 옷이 많이 나오면 눈이 호강하겠다 싶어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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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노. 1967년에 가수 윤복희가 입은 미니 스커트로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은 ‘옛날’ 디자이너로만 알았지, 아직도 생존할 뿐 아니라(만 85세다) 현역이라는 데 놀랐다. 게다가 그녀는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단 3년 뒤인 1956년에 국내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으며, 그녀의 옷은 그 후 한국인 최초로 『보그』지 표지와 미국 유명 백화점 1층 쇼윈도 전체를 장식하고 입점까지 했단다. 오랫동안—특히 외국에까지—이름난 국내 디자이너라고는 앙드레 김밖에 몰랐기에 더 놀랐다(그녀가 일곱 살 위다). 지금도 분야를 막론하고 ‘대한 민국 최초’라면 대서 특필하고 ‘국위 선양’을 부르짖는 판에,여러모로 선구적이었던 그녀는 어쩌면 그리도 쉽게 잊혀진 것(처럼 보)일까.

 

 

 

본격적인 다큐 얘기에 앞서 노라노의 일생을 돌아보자. 일제 시대에 가정이 유복했을 뿐 아니라 부모가 전문직 종사자였다는 점에서(아버지는 방송인, 어머니는 아나운서) 그녀의 성장은 대다수 한국인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둘 다 일본에 유학했고 이미 그 시절에 맞벌이였다는 점에서 그녀의 부모는 더 성 평등적이고 자유로우며 외국 문화에 개방적이었을 공산이 큰데, 그래서인지 노라노는 여고까지 졸업했다. 하지만 순탄하던 그녀의 삶도 식민지라는 상황은 피하지 못한다. 군 ‘위안부’ 동원을 피하려 부득불 결혼하는데, 전쟁터로 끌려간 군인 남편에게서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전사한 것으로 짐작되자 시부모는 애꿎은 그녀를 탓하며 이혼까지 강요한다. 해방 후 남편이 살아 돌아와 그녀를 데려가지만, 사과하기는커녕 여전히 못 마땅해하는 시부모를 보고 그녀는 결국 자유를 택한다. 그러면서 솜씨를 살려 당시에는 생소하던 의상 디자인을 하기로 결심하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 때 그녀가 고른 여권상 이름은 본명 ‘명자’가 아닌 ‘노라(Nora)’, 즉 서양 이름일 뿐 아니라 바로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이름이다. 자식마저 버리며 억압적인 가정에서 벗어나는 인물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노라노 본인의 처지와도 겹치고 매우 파격적이었다고 하겠다. 그녀는 과거를 털고 새 사람으로 거듭 나고자 한 것이다. 그 뒤로 한국 전쟁 중 명동에 의상실을 열고, 이번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온다.

 

 

 

이런 디자이너로서의 출발은 남다른 배경에도 힘 입었겠지만, 강제 이혼 후 친정에 안주하지 않고 정신적·물질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노라노는 ‘신여성’이었다. 가령 같은 독신이라도 게이와 레즈비언간의 고용·임금 격차에서 드러나듯 지금도 여성의 사회·경제적 자립이 쉽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면, ‘현모 양처’를 당연시했으며 여성에게 직업 선택이 극히 적던 시절에 ‘이혼녀’라는 낙인이 찍힌 채 자기 일을 시작하고 유지하기란 몹시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옷 만들기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 역할과 맞기는 했지만, 전후 피폐했던 이 나라에서 ‘패션 디자인’이라는 새 길을 개척하는 고충은 적잖았을 것이다. 다큐에 나오듯, 그 후 1960년대의 국가 주도 근대화로 사회가 다시 급변할 때 박정희 정권이 그녀를 ‘요주의 인물’로 착각해 정보 기관으로 끌고 가기까지 했다(이 때 그녀는 아주 당차게 대응한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회적 약점을 무릅쓰고 경제적 독립과 자아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녀는 ‘일하는 여성’의 모범이며, 근대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영화는 작년에 열린 노라노 60주년 기념전 준비를 따라가며 그녀의 일생과 일도 보여준다. 전시 주제와 방식을 놓고 총감독인 서은영 스타일리스트와 노라노간에 은근한 기 싸움이 벌어지는데, 개성이 특히 중요한 직종이어서인지 근 40년의 나이 차이도 아랑곳 않고 둘 다 고집을 세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본인은 한 시대를 풍미하며 대중에게 꿈을 심어주고 또 드러내준 자신의 회고전을 원하지만, 서은영은 젊은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패션계 후배들조차 잘 기억 못하는 노라노가 ‘지금 여기’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살피려 한다. 전자가 과거 지향적이고 완결적이라면 후자는 미래 지향적이고 개방적이랄까. 하지만 이런 대결 구도는 단순화한 도식일 뿐, 결국 서로 이해하며 원만히 행사를 치른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건 다큐에서 드러나는 그 의도와 과정이다.

 

 

 

물론 맞춤옷도 만들었지만, 노라노는 1966년에 역시 국내 최초로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을 만큼 기성복을 중시해온 디자이너다. 가격대는 매우 넓더라도 지금은 기성복이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옷이란 (돈 없으면) 집에서 해 입거나 (돈 있으면) 가게에서 맞춰 입는 것이었다(1970년대까지도 ‘브라더 미싱’이 혼수 품목 1호였단다). 그런데 군사 정권의 적극적인 산업화 정책과 국민의 강력한 빈곤 탈피 의지로 인해 여대생과 함께 공장, 병원, 회사 등에서 일하는 ‘직장 여성’이 생기고 늘면서, 한복보다 관리하기 쉽고 활동적이면서 저렴한 옷이 절실히 필요하게 됐다. 양장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노라노의 기성복, 즉 ‘공산품’으로서의 옷 생산은 사회적 수요에도 부응하고 사업도 확장할 수 있는 발 빠른 결정이었다(단 그녀가 만든 건 제복이 아니라 외출복과 평상복이었다). 이 때 그녀는 맞춤옷을 만들며 축적한 신체 치수를 활용해 당시 한국인에 맞는 표준 규격을 정하는데, 양장이라는 외래옷을 자국화하는 동시에 산업 표준을 세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디자이너의 옷이 오로지 화려한 ‘파티복’이나 기발한 ‘패션쇼옷’뿐일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녀는 실용적이면서 혁신적이었다고 하겠다.

 

 

 

노라노가 시작한 기성복은 곧 뿌리 내려 다른 디자이너와 기업들도 만들게 됐으며 의류 산업의 성장에도 기여했는데, 그녀의 옷이 의미 있는 건 대량 생산 덕에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고생스러운 바느질·재봉질이나 번거로운 가봉과 며칠의 대기 없이 즉석에서—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참신하고 예쁜 옷이었다는 점이다. 즉 새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된 여성들의 실용적 필요는 물론 아름다움과 유행에 대한 욕구, 여가와의 연관성 또한 잊지 않았으며, 그런 수요와 욕망을 대중화했기에 ‘민주적’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지금은 밖에서 민망하게도 나와 똑같은 옷 입은 사람을 마주칠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되다 못해 획일화의 상징으로까지 느껴지지만, 당시 기성복은 많은 이에게 손쉽게 개성을 추구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던 것이다.

 

 

 

‘패션’이라면 우선 아름다움과 유행부터 떠올리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노라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미니 스커트를 뺄 수 없다. 물론 그녀는 이 옷을 창안하지 않았지만, 본고장인 서구에서조차 선정적이라며 비난 받기 일쑤이던 미니 스커트를 국내에 적극 도입했다는 점에서 복식사, 문화사, 사회사적으로 중요하다. 실제로 이 작은 옷의 여파를 전달하는 영화상의 언론 보도, 자료 화면, 단골 손님들의 증언은 생생하고도 황당하다. 경찰관이 가위와 자를 든 채 거리에서 남자의 장발과 여자의 미니 스커트를 일일이 단속·처벌한 건 알려져 있지만, 특정 의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놀이개감”, “혐오감”, “민족 반역자” 운운하는 기사에 이르면 정부가 얼마나 국민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려 했고 또 한국 사회가 얼마나 남성 위주이며 성적으로 보수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여성에게만 혼전 순결이 당연시되고 성 희롱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그 시절, 맨다리를 드러내며 신체 곡선을 강조하는 미니 스커트를 만들고 입는다는 건 엄청난 도발이자 모험이었던 것이다(흥미롭게도 다큐는 앙드레 김이 당시 이 옷을 비난한 사실을 언급하는데, 그에게는 디자이너로서의 동료 의식보다는 남자로서의 도덕 의식이 중요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5년생인 한 고객이 말하듯, 아가씨들은 물론 “어머니들”도 이 발칙한 옷을 그야말로 신나게 입어제꼈다. 인습에 대한 반항이자 국가, 강자, 남성에 맞선 개인, 약자, 여성의 신체적 자결권 주장과 자기 표현이었으니, 통쾌하기 그지 없다. 반전, 환경, 민권 운동과 함께 흑인, 여성, 동성애자 등 약자의 인권 운동이 본격화된 1960년대 지구촌의 상황을 기억하면, 미니 스커트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전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성 평등에 대한 욕망까지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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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눈을 뜨게 해줬으니, 실제 구매 여부와 무관하게 그 때 여성들에게 노라노의 옷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노년이 돼 강연과 자축 패션쇼에 모여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의 의상을 직접 입고 뽐내는 여성들은 마치 동경하는 스타를 만나거나 화려한 무대에 선 소녀처럼 눈이 반짝이고 입에 웃음이 감돈다. 60주년 기념전의 핵심은 바로 노라노가 평생 만든 옷을 선보이는 것인데, 수 십 벌에 달하는 그 의상 대다수는 오랜 고객들—아니, 팬들—에게서 빌렸다. 설령 ‘맞춤옷’이 아니라 ‘공산품’이더라도 몇 십년 동안 고이 간직했다 창작자의 회고전에 기꺼이 내놓은 그 많은 사람의 마음이 이해되면서 찡하고 감탄스러웠다. 비록 ‘연분홍 치마’의 의도와 약간 달리 노라노 본인에게 여성주의자로서의 확고한 자각까지는 없었던 것같지만, 여자로서 아름다움과 유행도 자유롭게 추구하고 표현하며 근대 시민으로서 사회에도 진출해 경제력도 갖고 자아도 실현하려는 자신과 대중 모두의 욕구를 충족해줬다는 점에서 그녀의 일생과 작업은 ‘전복적’이었다고까지 하겠다. 바로 이 점에서 <노라노>는 ‘전기 영화’, ‘패션 다큐’, ‘시청각 문화사’뿐 아니라—수적으로는 인구의 절반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약자인—여성 대중에 대한 기록이자 헌사가 된다. 실제로 옷을 많이 보여주지만 세부 사항에 치중하지 않고, (비록 외국의 극 영화라는 차이는 있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섹스 앤 더 시티> 등에 등장하는 ‘눈요기’와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진짜’ 패션 다큐가 아니며, 그래서 색다르고 더욱 뜻 깊다.

 

 

 

<노라노>는 기성복 수급과 미니 스커트 논란에서 그 시절의 경제·사회를 읽어내는 것 말고도 초기 패션 디자이너들이 1960년대부터 활성화된 TV와 영화에 기여한 바를 보여준다. 지금은—특히 외국—유명 상표의 의상 ‘협찬’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기성복 산업과 내수 시장뿐 아니라 대중 문화도 걸음마 단계이다 보니, 노라노는 영상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 연예인의 옷을 그 때마다 제공했다.그것도 아예 대본을 받아 인물 성격과 상황까지 파악하며 만들었으니, 요새 영화 의상 담당자의 선배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다큐에는 194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의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의복과 머리 모양은 물론 연기 방식과 사회상의 변화까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그녀가 은막과 브라운관을 통해 선보인 의상은 역으로 유행을 만들어냈으니, 문화적 파급력이 적잖았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노라노에게 톡톡히 신세 졌기에 최은희, 엄앵란 등 왕년의 스타들은 60주년 기념전을 위해 기꺼이 포즈를 취하고 화보 사진을 찍는다.

 

 

 

비록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앙드레 김은 노라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면서도 성격과 느낌이 많이 달라, 비교하며 보면 더 재미있다. 물론 이런 차이는 일단 그가 화려한 고급 맞춤옷 위주였으며 매체 출연이 더 잦다 보니 그만큼 대중적 이미지가 확실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게다가 그는 한결같은 흰 옷, 비범한 화장과 말투 등 코미디 소재가 될 만큼 개성이 강했으며 풍부한 감성을 극적으로 표현해, 마치 연예인같았다. 반면에 노라노는 긴 속눈썹을 붙이는 것 말고는 외양이 ‘특이’하지 않으며, 자료 사진과 화면에서 보이는 젊은 날의 다채롭고 대담한 치장에 비하면 옷차림도 검은 롱드레스 위의 가디건 등 ‘수수’한 편이다. 간간이 엿보이는 장인으로서의 깐깐함을 빼면, 언행 역시 차분하고 ‘실무적’이다. 오히려 인상적인 건 요새도 의류 상가에서 옷감을 찾아 다니며 주름진 손에 연필, 가위, 바늘을 들고 옷을 만드는 그녀—즉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짧은 머리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안경도 안 낀 채 작업하는 노라노는 다름 아니라 그녀가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고 옷을 만든, 힘겨워도 생업 전선에서 뛰며 자긍심을 갖던 여성 대중과 겹친다. 독립적인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평생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바로 이런 창작자와 일반인간의 동질성, 그리고 이들이 세월을 초월해 만들어낸 공감대 덕에 이 영화는 단순한 성공담에서 벗어나 더 큰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일상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저렴해 일반인의 폭발적 인기를 얻은 노라노의 옷이, 특히 그 성격상 부유층 위주일 수밖에 없었을 앙드레 김의 옷과 달리 언제부터인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같다는 인상)은 점은 반어적이면서 서글프다. 위에 언급한 성격과 매체 노출 빈도의 차이까지 겹쳐, 친선 대사 역할도 많이 맡았으며 문화 훈장까지 받은 그와 달리 그녀는 인물로서도 잊혀진 것처럼 보인다. 문외한으로서 짐작할 뿐이지만, 이런 망각의 이유로 ‘패션 = 화려하고 특별한 옷’이라는 대중의 인식, 그리고 그녀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를 놓쳤을 가능성과 함께—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약점인—‘여성’이라는 점을 꼽아본다. 지금도 패션은 ‘계집애같은’ 일로 치부되기 쉽지만, 바로 그래서 앙드레 김이 처음부터 이 업계에서 ‘청일점’으로서 돋보인 면도 없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물론 그의 재능과 노력은 부정하지 않는다).

 

 

 

한편 영화가 깊이 다루지는 않지만 흥미로우면서도 반어적인 건, 노라노와 앙드레 김 등 1세대 디자이너들이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한복이 대중의 일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노라노가 초기에 주한 외교관 부인들을 위해 한복을 응용한 ‘아리랑 드레스’를 만들었듯, 이들이 양장에 주력했다고 해서 전통 의상을 무시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은 공업화와 농어민의 도시 이주, 정부의 생활 개량 운동, TV와 영화의 보급, 외국 문화의 유입과 함께 한복을 ‘일상복’에서 ‘예복’으로 밀어낸 흐름에 기여했다. 일제 시대부터 거듭 제기된 ‘활동성’의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몸을 과하게 조이지 않아 편한 옷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구닥다리’가 돼버린 것이다. 물론 그 뒤로 전통 문화에 대한 재평가 덕에 개량 한복과 생활 한복도 나왔고 이젠 각종 (퓨전) 사극 덕에 다시 주목 받는 듯하지만, 2011년의 신라 호텔 사건에서 드러나듯 한복은 더 이상 누구나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특정 상황(돐, 명절, 혼례, 상장례, 외교 행사), 성별(주로 여성), 연령대(유년, 중노년), 직업군(요식업, 관광업, 연예계, 종교계, 전통 예술계, 패션계, 정관계), 이념(민족주의, 민중주의), 종교(무속, 불교, 유교, 신흥 민족 종교) 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외국인에게는 ‘고유 문화’라며 자랑하지만, 내국인끼리는 자주 입지도 않을 뿐 아니라 특히 젊은이가 공공 장소에서 입으면 ‘코스프레’로까지 비쳐지기 십상이다. 북한과 조선 총련계 재일 동포가 일상에서 한복을 더 많이 입는 것에 대한 남한 사회의 반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남녀 노소가 평상시에도 기모노를 즐겨 입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정작 다큐에 별반 나오지도 않는 한복 얘기를 잔뜩 늘어놓은 건 의복 등 전통 문화 대부분이 단절되거나 ‘박물관 전시물’로 전락한 것같아 아쉽기 때문만은 아니다. 패션 디자인과 패션지 편집을 두루 경험해 이론과 실기 모두 잘 알 서은영이 말하듯, 이 작품의 동기 중 하나는 ‘우리는 왜 코코 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외국의 디자이너와 상표만 알고 떠받드는가?’ ‘현대 한국 패션의 출발점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등 국내 패션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노라노라는 유능하지만 잊혀진 (듯한) 초기 (양장) 디자이너를 재조명함으로써 한국의 패션 산업뿐 아니라 대중 문화의 정체성을 밝히고 그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기도 하다. 바로 그래서 서은영은 ‘원로 사은회’로서뿐 아니라 현재 한국 패션계의 ‘뿌리 찾기’로서 60주년 기념전을 기획한 것이다.가령 기성복과 미니 스커트가 이제는 ‘당연’한 건 1세대 디자이너들이 빈곤과 편견 등의 어려움에 맞섰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과정과 공로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게 그녀의 뜻이다. 그런데 양장이 애초에 외국옷인 이상, 노라노와 앙드레 김 등 초기 디자이너뿐 아니라 현재 활약 중인 후배들도 서구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한계일 수 있다. 한편 문화란 물감 탄 물처럼 쉽게 섞이고 흐르게 마련인 데다 특히 교통·통신의 발달로 일반인도 지구 반대편의 유행과 상품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지금, ‘외래’와 ‘토착’을 가르는 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복도 중국옷, 몽골옷 등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천 년이 넘게 이 땅의 사람들에게 가장 잘 맞게 변해왔듯, 이제는 그 자리를 차지한 양장이 외국의 유행과 상표를 맹종하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 사는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담을 방법은 없을까. 의식주가 상당 부분 서구화된 현재, 지역적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창조가 패션 디자인에도 적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원래 ‘패션(fashion)’과 ‘모드(mode)’라는 말이 ‘방식’과 ‘유행’ 모두 뜻하는 데서 드러나듯, 패션이란 옷 등으로 자신을 꾸미고 드러내는 방식과 그것의 유행을 가리킨다. <노라노>는 현대 한국의 양장 디자인·산업을 다루지만, 아름다움과 유행의 추구와 표현이라는 점에서 ‘패션’이란 인류가 잎으로 몸을 가리고 진흙으로 얼굴에 선을 긋기 시작한 때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물론 교복과 군복 등에서 드러나듯, 옷에는 신분과 직업 등 소속을 나타내는 기능도 있지만). 결국 몸이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하나씩 주어져, 가장 직접적이고 손 쉬우며 늘 휴대·이동 가능한 자기 표현 수단이니 말이다. 더구나 사람마다 인종, 성별, 체격 등이 다르며 이런 신체 특징은 연령, 직업, 건강 상태 등으로 인해 평생 계속 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록 경제력이라는 제약은 있지만 바로 그런 몸뚱이에 맞춘 패션이란 개인의 욕망, 취향, 삶이 제일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場)인 것이다.

 

 

 

그런 한편 인간이란 육신이라는 물질적이며 유한한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 어느 개인도 자신이 속한 시공간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순 없다. 의복이란 원래 자연 환경, 기술 수준, 국가 정책, 사회 구조, 종교·이념, 문화 교류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서 복합적인데다, 미적 기준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천차 만별이며 그에 대한 유행 역시 변화 무쌍하다는 점에서 보면, 개성의 표현과 추구로서의 패션이란 마치 신기루같은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현대에는 옷이 탈계급화·대량화돼 겉으로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났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이윤을 위해 수시로 만들고 바꾸는 인위적 수요와 욕구에 끌려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수동성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뒤떨어지며 결과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은—빈번히 일어나는 특정 상표와 디자인의 ‘국민복화’에서 보이듯—강박에 가까운 집단적 모방, 즉 반어적이지만 결국 개성의 포기 또는 부정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필요’와 ‘욕구’의 구별도 불분명해질 뿐 아니라 그런 욕망이 과연 순전히 자신에게서 비롯됐는지조차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햇볕, 바위와 가시, 벌레와 짐승 등 거친 자연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옷에 아름다움과 유행이라는 면이 더해지면서 ‘잉여’ 가치가 발생한 셈인데, 이처럼 ‘필수품’과 ‘사치품’의 양극단을 오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패션은 태생적으로 자기 모순적인지도 모른다. 그걸로도 모자라 ‘여성적’이라는 딱지까지 붙어버리면, 패션은 자연스럽고 당당한 ‘개성의 추구와 표현’에서 유아적이고 부끄러운 ‘허영심과 자기애의 표현’으로 전락한다. 가령 미니 스커트의 경우, 무엇보다도 자기 만족을 위해 입는데도 아직도 ‘남자 꼬시기 수단’이나 ‘성 희롱 초대장’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곤 하니 말이다(소수 사례지만, 이태리의 어느 소도시와 헝가리의 어느 대학은 각각 2010년과 2013년에 이 옷의 금지를 시도 또는 시행했다—조선 시대처럼 여성에게 너울을 뒤집어 씌우는 회교권이 아니다). 게다가 외모상 자기 표현에 대한 제약이 없는 듯한 현대에도—임부복, 속옷 등 불가피한 남녀간 신체적·상황적 차이에 의한 경우를 빼고—의복에서의 최소한의 성별 구분은 분명하고 또 무언의 규제로 지속·강화된다. 그래서 가령 남성의 경우, 동남아의 사롱과 스코틀랜드의 킬트같은 전통 의상을 제외하면 현대 산업 사회에서 공개적인 여장은 드랙쇼, 퀴어 문화 축제, 잡년 행진 등 오락이나 도발을 위한 ‘일탈’이지, ‘일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온갖 이쁜 치마와 아찔한 힐의 즐거움도 못 누린 채 죽어야 한다니…!). 더 나아가 같은 신체 활동인데도 운동은 ‘남성적’으로 보는 반면에 무용은 ‘여성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아름다움의 추구와 표현 자체가 이미—그것도 불평등하게—성별화돼 있달까. 이런 다양한 젠더화는 디자인, 생산, 구매 모든 면에서 패션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의복의 취향과 유행이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고, 개성적이면서 획일적이며, 성 평등적이면서 성 차별적이고, 필요하면서도 불필요한, 매우 복잡하고 양가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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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특히 산업으로서 패션의 이런 근본 모순은 다큐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노라노 등 1세대 디자이너들이 대중의 욕구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새로 만들고 발전시킨 기성복은 이제 입는 이의 개성보다는 구매력을 보여주는 면이 강하다. 또한 이들 국내 디자이너의 의상실이 모여 있어 해방 후 몇 십년간 멋과 유행의 1번지이던 명동이 지금은 대형 외국계 의류 제조 소매업체(SPA) 매장으로 빼곡한 영화 속 모습은 반어적이면서 씁쓸하다. 게다가 같은 기성복이라도 단골 손님들이 몇 십년 동안 정성스레 보관하던 노라노의 옷이 쉽게 사 입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으로 대체된 것 또한 역사의 역설이라 하겠다. 물론 소비자는 취향과 경제적 형편에 맞는 옷을 사 입을 자유가 있으며, 기업이 다국적화되고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이 보편화된 현재에 상품의 ‘원산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여러모로 선구적이었으며 순전히 이윤만 추구하지는 않은 듯한 노라노가 패션계에서조차 잊혀진 것(같은 인상)은 의복 (산업) 자체의 가변성 탓인가, 불도저식 성장으로‘새로움 = 좋음, 오래됨 = 나쁨’이 돼버린 한국 사회의 부박함 탓인가.

 

 

 

‘옷치’인 데다 심각한 ‘몸치’여서 손재주마저 없는 난 바느질이든 요리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원예든 손과 몸으로 뭔가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럽다(‘지보이스’ 노래 가사대로 “난 정말 게이가 맞을까~”). 무에서 유를 만들고 생활에 보탬까지 되는 그런 마술같은 창조는 평생 못하겠지만, 옆에서 보기만 해도 기쁘다. 창의적인 일과 그 결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존중을 담는다는 점에서 <노라노> 관람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거나 하고 싶고, 그런 일에 온몸을 바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또한 이 작품은 옷과 그것을 만들고 입는 이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와 모순을 다채로우면서도 시사적으로 보여줘, 생각할 여지를 많이 준다. 그리고 잊혀진 약자와 소수자들, 특히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창작가 본인뿐 아니라 그녀가 만든 물건과 정신에 호응한 대중을 복원하고 복권한다는 점에서 이 ‘패션’ 다큐는 ‘사소’해 보이면서도 실은 의미 심장하다. 더구나 자신보다는 식구들의 매무새에 훨씬 더 정성과 돈을 들였을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즉 그 시절 노라노의 옷에 열광한 여인들—과 손 맞잡고 이 작품을 본다면 간만에 이야기꽃도 피우고 ‘효녀’ 소리까지 들을 테니, 얼른 함께 꽃단장하고 극장에 가길…! 마침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신문 박물관(http://www.presseum.or.kr)에서 12월 15일까지 노라노 특별전을 하니, 함께 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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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정회원 / 데미지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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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er 2013-11-15 오전 08:13

저도 영화 참 재미있게 봤어요. 멋진 후기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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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카이) 2013-11-28 오후 16:37

글쿠나 전혀 몰랐던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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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2013-12-03 오전 02:04

멋져요!!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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