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title_Marine
어제는 내가 2년간 짝사랑해온 군대 한 기수 선배의 결혼식 날이었다.

지난 목요일이었던가? 아니면 금요일이었던가?
그 선배한테서 제대 후 두번째로 전화가 왔었다.
결혼한다고 와서 축하해달라고 한다.

잔인한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했는데...

이미 그를 접기로 한지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일부러 그가 제대하는 날 보고 싶지도 않은데다가 그 당시 꼬일데로 꼬여서 풀기 힘든 사업을
맡고 있었기에 자진해서 출장을 갔다.
그가 제대하기 위해 다시 부대에 들어와 있는 4-5일간 모두를...
하지만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더만...
그는 사람이 워낙 좋아서, 나는 워낙 발이 넓고 모임 주선을 잘하다보니,
게다가 근 2년 반을 같은 사무실에 있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서로 교차 하게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독할 때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남에게 대해서도 지독할 정도로
독해진다.
학교 다닐 때도 남들 3학점 듣는 설계관련 수업을 한꺼번에 9학점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시간은 모자르고, 잠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번은 숙제가 세과목이 모두 주말에 한꺼번에 몰아서 나왔었다.
결국 난 2박 3일 정도를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물만 마시고 화장실만 두어번
다니면서 숙제를 모두 해서 제출하고는 뻗어서 14시간 정도를 내리 잠만 잔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별 쥐랄을 다해도 선배들도 나한테 학을 떼기도 했는지 별 말도 없고 더 친해지기도 했었다.

어쨌든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으면서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와의 거리를
철저히 유지해왔다.

그런데 역시 정에 움직이는 것이 사람인지...
그의 결혼식 소식을 들으니, 그것도 그 사람의 육성으로 전해들으니,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전까지는 그가 그런 전화를 하면 욕을 퍼붓던지, 매몰차게 대해야겠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축하한다는 말, 시간이 난다면 가보겠다 는 말뿐이었다.
어찌나 우울하던지...
그나마 친구사이 수영모임의 형들이 게시판에 올린 나의 넋두리를 듣고는 나를 위로해 주려고
긴급 번개를 소집해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ㅋㅋ
덕분에 그날 밤 그를 까맣게 잊고 좋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제...
망설임을 뒤로 하고 저는 그저 집안 정리를 하고, 볼일을 보고,
수영장에 갔다.
한 두시간 정도 운동을 하다 보니 머리에 잡생각은 하나도 없어지고, 그저 운동이나
해야겠다는 생각만 더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락카에 들어와보니 제 전화에 수십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그와 나의 관계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왜 안오냐고 전화를 걸은 것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엑스맨 2...
워낙 SF물을 좋아해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하지만 보고 나니 단순히 할리우드 액션 영화로 보기에는 나와 우리의 처지가 오버랩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마치 집에 돌아가 자신이 돌연변이임을 밝히는 장면은 우리가 커밍아웃하는 장면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수에 대한 다수의 핍박, 횡포, 편견이 야기하는 갈등...
분명 헐리우드의 엄청난 돈이 만들어낸 영화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이것 저것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휴 잭맨두 너무 섹쉬하고...

집에 들어오니 이미 9시가 넘은 시간...
만약 군대 사람들끼리 피로연을 갖던, 그저 술자리를 갖던 일요일에 나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난 친구들 덕분에 그의 결혼식을 이렇게 쉽게 지나칠 수 있었다.

그저 그들에게 고맙고, 그저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편하게 넋두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데 내가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건...
노가다 카페랑 함 미팅이나 할까? ㅋㅋ
아줌마를 비롯해서 앤있는 사람은 빠지구~~

차돌바우 2003-05-13 오후 18:10

마지막 문단 아주 맘에 들어~ ^^
좋아~ 좋아~ 굿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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