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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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2005-01-13 23:35:06
+2 1437


오랜만에 박완서 작가의 초기 작품을 읽었다.(물론 반 강제적인 이유로ㅜㅜ)

‘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녀가 불혹의 나이에 등단한 사실을 배경삼아 막연히 그녀의 작품들이 모성애에 기초한 따뜻한 감성류들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그런 예상들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작품(꿈꾸는 인큐베이터)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그녀가 가진 날카롭고 냉소적인 세상인식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정서적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역시 마흔이 넘어 등단한 은희경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가진 얄짤없는 시선으로 세상 베기도 장난이 아니었긴 하다.


이 작품도 70년대 결혼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한 장편 소설이다.
초희, 우희, 말희라는 세 자매와 그 부모들.

세 자매의 결혼과 그 후의 일상을 동정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암울한 결말.

여느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심정적인 선인이나 어쭙잖은 대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을 이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시대와 제도의 희생물이자 가해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성애자들의 결혼 제도를 둘러싼 냉소적인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묘한 쾌락과 ‘니들이 별 수 있어?’ 류의 유치한 감정이 동하는 것은 나만의 속 좁은 생각이려나?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연 제도나 상황과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들.

아무튼 꾸준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박완서 작가의 창작열과 성실성은 본받을만한 일이지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오정희 작가의 새 작품들도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노래 : 봄 (이소라)

퀴어아케이드 2005-01-14 오전 00:01

몇년 전인가 번개를 했었습니다. 상대방은 여러대학에 계약직으로 강단에 서는 사람이었죠..일년전 즈음에는 인사동에서 도예전도 하더군요..도예를 전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이사람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박완서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사람이기때문이죠..박완서의 소설 주인공과 비슷해서? 아니면 그녀의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그와 만난 저는 가까운 서점엘 갔습니다. 그는 박완서의 소설 한권을 들고 오더니 저에게 페이지를 몇장 넘기고 무언가 읽어 주더군요..내용은 대략 투병중인 어떤 여자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었지요..그 사람이 말하길 그 투병중인 사람이 자기 어머니라고 하더라구요..
전후사정 다 따져보니 맞는것 같았습니다. 전 박완서 소설 읽어 본거라고는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정도 뿐인데..그래도 박완서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그 도예가입니다.

행인1 2005-01-14 오후 20:12

은희경은 30대 초반에 동아일보 중편으로 데뷔하고 곧이어 문학동네 소설상으로
(새의 선물)로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은희경과 박완서의 냉소는 본질이
많이 다른 듯 해요. 은희경의 냉소가 댄디즘에 입각한 사뭇 도회적인 것이라면,
박완서의 냉소는 뭐랄까... 삶에 대한 깊이있는 모색과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가차
없는 통찰력이라는 점에서 무섭습니다... 은희경이 그 나이를 먹는다해도 박완서처럼
쓸 수는 없을 듯 해요. 스타일의 문제라기보단 세상을 조망하는 시선의 확장과 깊이,
그릇의 차이라고 말 하는 게 더 정확할까요. 제 개인적으로 박완서를 능가하는 작가는
오정희라고 생각하는데, 혹자는 '나를 잉태한 적 없는 나의 어머니' 라고, 말 하기도 했
지요. 작가들의 순위를 정하자는 건 아니었구요. ^^
친구사이 게시판 눈팅만 하는 처지인데, 회원분들께서 다들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본으로 갖추신 듯 해요. 매우 즐겁게 보고 있다가 말참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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