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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여 살아온 이들의 인권도 정부가 챙겨야"

[프레시안 2006-01-13 16:48]  


[프레시안 김경락/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발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인권 NAP) 권고안에는 중요성으로 보나 시급성으로 보나 우리 사회가 오래 전에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지만 그동안 공론화가 미흡했던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인권위가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인권정책 방향의 청사진을 그렸다"고 설명한 것이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권고안 중 제2부는 바로 이런 사안들을 11개 부문으로 나눠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인이나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룬 내용이 눈길을 끈다. 국가기관에서 이런 이들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HIV/에이즈 감염인의 인권 개선방안
  
  HIV/에이즈 감염인의 인권 문제를 다룬 권고안 제2부 7장을 펼쳐 보면, 먼저 감염인들이 처해 있는 인권의 현실과 그들의 인권 보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권고안에 따르면, 현재 HIV에 감염됐다는 이유만으로 감염인들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보건의료시설 이용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감염인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에서 매우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인권침해로 볼 소지가 충분한 법률 조항도 다수 지적됐다. 한 예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들어 있는 강제검진(제8조)이나 취업제한(제18조) 조항, 출입국관리법에 들어 있는 강제출국(제11조) 규정 등은 HIV/에이즈 감염인을 차별하는 대표적 반인권적 법조항이다.
  
  인권 NAP 권고안은 또 의료기관이 직장 단위로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를 사업주에게 통보하는 과정에서 HIV 감염 사실이 공개되기도 하고, HIV 감염을 이유로 고용상 차별하는 일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HIV/에이즈 감염의 '추상적 위험'에 기초하여 감염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즉 HIV/에이즈 감염자들은 감염의 위험성이 과장된 탓에 생겨난 사회적 오해와 편견에 짓눌려 숨죽인 채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제도 차원에서도 기본적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고안은 다소 포괄적이라는 한계는 있으나 법제도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권고안은 특히 △HIV/에이즈 감염인의 의료보건시설 이용을 보장하고 이들을 위한 전문 의료기관 지정의 지역적 편향을 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과 출입국관리법 등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것을 핵심 추진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권고안은 △의료기관이 직장 건강검진 결과를 통보할 때 HIV 감염 사실을 본인에게만 알려 그 비밀이 유지되도록 하고 △HIV 감염을 이유로 고용상의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HIV/에이즈 감염인의 인권 문제에 대한 이런 권고는 국제기준보다 앞서 나간 것이 결코 아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이미 1997년에 'HIV/에이즈와 인권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을 채택하는 등 HIV/에이즈 감염인들이 처해 있는 부당한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에 유엔이 채택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HIV/에이즈 인권 권고안'은 구체적으로 HIV/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강제검사나 강제출국 등을 금지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인권 개선방안
  
  성적 소수자를 다룬 권고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권고안은 성적 소수자의 인권 개선을 위해 7가지 핵심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성적 소수자가 재화, 용역,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나 정보이용권 및 정보접근권 등에서 차별을 해소하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군형법,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 시행령, 군인사법 시행규칙 등 관련 법령의 폐지 또는 개정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권고안은 △성전환자 및 동성 간 성폭력 피해자를 강간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간죄의 구성요건 중 객체와 범죄행위의 내용을 보다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법제도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커녕 명시적으로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는 형법 조항(제297조)과 성적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군형법(제92조)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객체는 부녀로, 범죄행위는 성교행위로만 한정하고 있어 사실상 동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는 강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고 있다.
  
  군형법에서는 동성 간 성행위를 '계간(鷄姦)'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권고안은 지적하고 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기준이나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적 고려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뒤처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지난 1997년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암스테르담 조약' 을 체결했고, 특히 프랑스는 2004년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가장 강력하게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유럽 인권재판소도 2003년에 영국 공군이 동성애자의 장교 임용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동성애자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결했고, 그 후 영국 공군은 동성애자도 장교로 임용하기 시작했다.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하면 이번에 인권위원회가 인권 NAP 권고안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 보호방안을 제시한 것은 오히려 다소 뒤늦은 감이 있다.

김경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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