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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모던보이 2005-04-06 02:17:09
+1 4077



69

기억해 보니 무라카미 류의 '69'는 그의 소설 중 그나마 가장 담백했던 것 같다. 난 그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 어떤 지겨움을, 그리고 '피어싱'에선 어떤 무례함을 읽었다. 물론 그 이후 그의 소설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문체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울러 거의 보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아, 오디션은 영화로 봤군.  

하지만 그의 '69'는 하루키가 가지지 못한 어떤 아련함이 있었던 것 같다. 전공투 세대의 끝물의 풍경에서 묻어나는 씁쓸함. 사건과 현실을 키치화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하루키처럼 그가 비록 전공투와 우드 스탁의 이미지를 뒤섞어 편린들을 나열할 뿐 전공투 세대의 치열함을 사유하는데 실패했더라도, 문학이 곧 국외자의 시선인 것처럼 그 역시 69년도, 바로 일본에서 가장 치열했던 정치적 과정의 끝물, 어느 조그만 시골 마을의 고삐리 시선을 빌려 스스로를 주변화하는 것을 나는 책장을 덮으며 충분히 용인했던 것 같다.

이상일 감독의 영화 '69'는 훨씬 더 세속적이고 키치적이다. 영화 속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분산하는 솜씨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어떤 때는 쓸데없는 사족들과 곁가지들이 끼어 들어와 이야기의 에너지를 갉아먹기까지 한다. 일본의 집단주의에 대해 심하게 알러지가 있는 무라카미 류의 에너지는 희석되는 느낌.

그럼에도 난 영화적 완성도로 보자면 두어 단계 더 높이 쳐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보다 이 영화가 더 좋다. 68 혁명의 여운을 다루고 있는 이 두 영화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프랑스에서 이미지로 언급되는 '고다르'와 먼 아시아 나라에서 문화적 현상으로 언급되는 '고다르'가 같을 리 만무할 터. '몽상가들'의 자기 변명과 '난 이런 걸 보았지' 따위의 자기 회한에 스스로 갇힌 옹알이가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 몽상가에 쏟아지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듣고 있자면, 영화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아니라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게다가 '몽상가들'의 형식적 완성도가 아트 하우스 관객의 눈높이를 올려줬냐 하면 솔직히 그것도 아니잖는가.

설령 과도하게 설정된 만화적 캐릭터 때문에 깊은 맛이 떨어지는 게 흠이긴 해도, '69'는 베르톨로치 식의 이미지 속의 젊음과 공분이 아니라 현실 속 젊은이들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치기어림이 담겨 있다.

그나저나 이제는 회고만 남은 걸까?


츠마부키 사토시 (Satoshi Tsumabuki)

일본에서 요새 가장 이쁜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와 안도 마사노부가 이 영화에 나온다. 화자는 사토시다. 공교롭게도 사토시는 일본 우익과 집단주의를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69'를 찍고 나서 지금 일본 박스 오피스에서 한창 주가를 달리고 있는 우익 성향의 영화 '로렐라이'를 찍었다.

이러나저러나 이쁜 배우. 그는 예전에 '조제...' 때문에 한국에 왔다가 기회가 닿으면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단다. 기회 닿으면 한 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은.


P.S
심지어 사토시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냐면 일본 축구 선수 나카다를 놓고 한국 게이 팬클럽 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사이 동남아 특파원인 만리녀와 함께 머리끄댕이 싸움을 벌인 지 어언 몇 년째였는데, 엊그제 과감히 만리녀에게 나카다를 양보하고 사토시를 택하고 말았다.


우... 사토시 상.



69 테마곡/MV(화질이 넘 안 좋군요. 음악만 들으세요.)

모던보이 2005-04-06 오전 02:35

서둘러 간판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흑...
더 늦기 전에 보세요.
http://www.69movie.co.kr/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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