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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쓰는 '퀴어문화축제_무지개2005' 일기  >
      - 박기호 조직위 사무국장이 전하는 전시회 부터 퍼레이드까지  
  
                               박기호(퀴어문화축제조직위)  

아래의 내용은 ‘제6회 퀴어문화축제_무지개2005’를 준비하며, 이번 축제가 이렇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쓴 글입니다. 많은 이들이 동참하여 이 글이 미리 쓴 글이 아닌, 축제 후 쓴 글처럼 될 수 있기를 콩닥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6월 3일, “바쁘다 바뻐”


영화제 개막이다 바쁘다 바뻐... 너무도 미안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자원활동가들을 소집했다. 아침밥을 대부분 거르고 나왔다. 맛난 토스트라도 사주고 싶지만 나가는 말은 곱지 않다. "야 이 짐 들고 가야해".



행사장엔 아침 일찍부터 다른 단체에서 주관한 기자시사회가 있어 그 기자들을 상대로 홍보를 했다. 기자들의 관심은 단연 한국단편들로 모아 진다. 탐폰의 다양한 용도를 재치발랄하게 설명한 영화, ‘탐폰 설명서’의 성새론 감독의 신작인 ‘이 만큼만 가져갈께’와 비교적 어린 나이의 감독들이 만들고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이는 ‘나와 인형놀이, 핼멧’ 등이 주목을 받았다.


또 먼 이국에서 성소수자를 바라본 한국 젊은이의 시선이 돋보이는 ‘제이슨과 웨이나의 이야기’와 지금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동성애를 차별하는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반검열’, 그리고 일군의 여성감독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과 조심스레 조우한 ‘내가 사랑하는 그녀’, ‘난 듬직하지 않아’, ‘띵똥!’ 그리고 ‘진이신이 이야기’도 관심을 받았다. 

외국 영화중에서는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작품들에 일반 대중들의 관심이 몰렸다. 일본의 나이 많으신 어른들의 로맨스를 퀴어 감수성으로 풀어간 ‘백합의 향연’과 일본에서도 살기가 가장 비싼 동네인 동경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퀴어들의 일상을 다룬 ‘급행열차를 탄 퀴어들’에게도 많은 호감을 보였다. 더군다나 이 영화들의 감독들이 직접 한국에 와서 관객과의 대화도 참여하고, 퍼레이드에 직접참여하다고 하니 많은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또 오래 전에 제작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법도한데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는 ‘장미의 행렬’에는 퀴어 관객들이 열렬한 호응을 보여주었다. 눈에 띄게 풍성해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자리를 잡아가는 이번 영화제는 어느 해 보다도 활기찬 자원활동가들과 다양한 작품들 때문에 더 기대된다.


6월 4일, 우리들의 공간에서 우리를 보여 준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다. 홍대 마녀에서 문을 열었던 전시가 이제 종로에서 문을 닫는다. 축제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지만, 마지막 날이 되서야 아차 싶어서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지금 시간 오후 6시, 1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다. 매일 오후 2시부터 열었는데, 내 게으름을 탓해야겠지...

이번 전시회는 마음속으로 참 많은 기대를 했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기존에 ‘작가’라고 불리우던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대신 일반 퀴어 대중에게 작품을 공모 받았다. 그들의 성원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부분을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을 많이 응모해 주었고, 우리는 행복해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몇몇의 작품을 선별한 기억이 난다.




사진 공모를 진행할 때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주제를 3가지로 정했다. ‘섹스’만을 연관지어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 준비한 ‘내 몸에 얽히는 퀴어의 시선’과 너무 힘들어도 내가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준비한 ‘세상과 얽히는 퀴어의 시선’,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욕망을 당당히 표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한 ‘욕망 속에 얽혀있는 패티쉬’가 그것이다. 더군다나 갤러리 등의 전시공간이 아닌 성소수자들이 쉽게 출입하는 성소수자대상 업소에서 전시회 진행함으로써, 그들이 특별한 용기를 내어 전시회를 보러가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이성애자 등 전시 업소와 친밀하지 않았던 친구들은 아마도 그 업소를 찾는 데는 애를 먹으리라. 그렇지만 퀴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 내 친구들의 작품들을 수다 떨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리고 은밀한 눈빛을 교차시키면서 작품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리나케 달려가 그 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도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찾아왔겠지.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고 관람을 시작했다. 얼굴을 과도하게 클로즈업해서 잡거나 힙과 엉덩이 등 시선 자체를 시험하는 사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당당히 카메라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며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는 친구들의 작품들이 좋았다. 노동하는 퀴어 그리고 섹스하는 퀴어 등 그들의 솔직함이 빛나 보였다. 내 년에 그들이 작가가 되어 또 다른 소통을 시도하리라. 더디긴 하지만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약하지만 한 발을 더 내딛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일 있을 퍼레이드 리허설 때문에 급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사진 속에 그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6월 5일, 그 뜨거운 태양아래서 더 뜨거웠던 퀴어들


태양이 떴다. 정말로 반가운 태양이 떴다. 2004년이 생각났다. 정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속에서 걸었다. 퍼레이드 행렬 앞에서 속도를 조절하느라 정신없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엄청난 비속에서도 정말로 많은 친구들이 퍼레이드 행렬 속에서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도 내리는 비는 미웠다. 그런데 올해는 너무도 강렬한 태양이 화난 듯 미소지고 있다. 너무 고마웠다. 태양도 고맙고 분주히 자신들의 일을 찾아 뛰어다니는 자원활동가와 스탭들도 고마웠다. 그들의 노력이 성소수자들이 진정 즐거워하는 퍼레이드를 지켜준다.



‘끼스런’ 춤과 율동으로 퍼레이드를 빛나게 해준 ‘친구사이’ 라인댄스 팀, 형형색색의 피켓으로 성소수자들의 소망을 표현한 ‘동인련’ 친구들, 여성들의 다양한 음성을 듣게 해준 ‘언니네’ 언니들이 퍼레이드를 지켜주고 빛내준다. 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당당히 드러내고, 자신들의 음성을 들려준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용기를 가지고 내년에도 참여할 것이다. 소중한 날 소중한 시간을 퀴어문화축제에 허락해준 친구들이 너무도 고마웠다.난 오늘 성소수자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한 때를 보았고, 성소수자로 살아갈 수 있는 자존심을 얻었다. 난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이며, 난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이며, 난 한국에서 2005년 6월 5일, 오늘을 특별히 기억하는 한 명의 동성애자로서 앞으로는 세상과 사람들과 당당히 만나는 동서애자로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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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