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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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5-06-07 08:10:05
+1 2515
어제 한겨레 신문에 정희진의 재밌는 사설이 실렸다.

여관의 정치경제학
http://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5/06/001000000200506051801018.html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관들이 있는 나라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 밖의 여관에서 섹스와 사랑을 은밀히 나누고 있음에도, 이혼율이 세계 3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의 집 밖 사랑이 결국엔 가족주의를 긴밀하게 유지시키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는 글이다.

여관이 많다는 건 곧 한국인들의 사랑 방식이 '가족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과 반대로 가정을 온존시키는 순기능을 지닌다는 것의 역설적 재미.

짧은 칼럼이기에 지면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정희진 씨의 글 속엔 '여관'만 있지 '정치경제학'은 빠져 있다. 왜 여관이 많을까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하지만 한국에서 여관업이 번창하는 실제 이유는, 가정이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과 늦은 성년과 관련 있는 것 같다(자녀들이 나이 들어서도 부모랑 같이 살기 때문에, 자식도 부모도 마땅히 성생활을 할 ‘룸’이 없다)."라고 현상적 분석에 멈추고 있지만, 여관의 정치경제학을 논하기 위해선 한국의 급속한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성 모럴이 이중적으로 분열되며 진화해왔는지, 노동인구의 이동 속도가 어떻게 여관업과 링크되어 있는지 등을 보다 더 심도높게 다룰 필요가 있다. 누군가 이 부분에 천착해 연구를 하고 책을 내도 재밌겠다는.

한편, 게이들에게 여관은 무엇을 의미할까? 종로. 친구사이 사무실조차 여관 건물을 개조한 빌딩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여관들 사이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겉벽이 붕괴된 누누모텔이며, 스카이 모텔이며, 앞뒤로 모두 여관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문만 열어도 게이들의 섹스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의도하지 않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게이들이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를 만나 섹스를 하며 자아를 구성해왔던 종로의 여관과 여관 사이 한 점에 존재하는 위상학적 의미.

한국의 이성애자들이 가족주의에 복무하며, 가족주의를 뛰어넘는 사랑을 여관에서 구현해왔다면,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여관에서 사랑과 가족의 형태를 구성해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동성애자들의 사랑이 이 여관이라고 하는 '길 밖 사랑'에 정처없이 부유하며 머문다면, 그건 보이지 않는, 무정형의, 비제도적인 감정 형태로 여관이라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 게토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이의 사랑이 여관 벽을 넘어 남실남실 범람하는 것, 길밖으로 흘러나와, 동성애자라는 존재론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이제 초과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더욱 밀도높게 확장되는 것.

그것이 게이의 여관을 바라보며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지 않을까? 어제 여관 천지인 종로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친구사이 퍼레이드를 쫓아다니며 이리저리 사진 찍다가 문뜩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p.s
누가 뭐라든, 어제 언니들 너무 멋있었어요. 식성 안 되고 안 예쁜 애들, 그렇게 자주 멋있어지기를.



David Byrne | Dirty Hair

나도가고시퍼 2005-06-08 오전 00:01

어제 술자리에서 화제에 올랐던 문제의 그 사설이군요. 멋지다, 정희진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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