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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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리포터 2003-11-19 19: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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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라고 할 정도로 내놓을 만한 거창한 성과물을 내보일 수 없는게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세 파트로 나누어서 첫번째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개막식 행사들. 두번째는 총회(본 회의)와 워크샵들, 세번째는 퍼레이드와 기타 이런저런 에피소드 들에 대해 간략하게 스케치해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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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다시피 ILGA 는 International lesbian and gay association 의 약자입니다. 전 세계의 350 개 이상의 단체가 소속되어 있는, 올해로 25년 째를 맞는 명실상부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적소수자의 연대조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유럽 몇 개국에서 십여 명의 게이로 조촐하게 시작했던 일가는 곧 레즈비언들이 가세하고 이제는 트랜스젠더와 바이섹슈얼, 인터섹슈얼까지 모든 성적 소수자 단체 및 개인회원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번 마닐라 회의는 일가 25주년을 맞아서 열리는 스물 두 번째 회의로 "차별에서 살아남은, 생존을 축하하는..." 이라는 평범하지만 의미심장한 슬로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회의라는 데 큰 의미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일가 회원단체들이 유럽에 많다보니 예년에 비해 참가자 수는 적었다고 합니다.
11월 11일에서 18일까지의 총 행사 중 11~12일, 12~13일에 열린 두 종류의 pre conference 와 본 회의(14일~18일) 전 기간에 걸친 '레인보우 데이즈'라는 문화행사가 있었고 친구사이에서는 13일 밤에 도착하여 16일 밤 퍼레이드 행사까지 참석하고 왔습니다.

회의장은 마닐라 시내 중심가의 제법 큰 호텔이었습니다. 변두리의 초라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샌 이튿날 졸린 눈을 비비며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전시회가 막 시작할 즈음이었고 의외로 썰렁한 분위기와 갑자기 영어 듣기시험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에 당황했었지요. 하지만 용기를 내어 등록을 마치고 준비한 간 소식지와 엽서를 놓을 자리부터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자 곧 그 테이블 주위가 각 단체들에서 가지고 온 소식지들로 꽉 차더군요.
전시회가 오픈해도 한국에서처럼 취재열기가 대단치 않았던 게 특이했고 행사 내내 아웃팅을 염려해서인지 촬영을 통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전시회 내용은 그간의 포스터와 엽서, 브로셔 등을 모아놓은 것인데 두 군데 단체에서 협조를 받아 해외에서 공수해 온 것임에도 25년의 역사를 담은 것으로 보기엔 좀 조촐한 편이었습니다.

전시장을 서성이며 분위기 파악을 하는 중 어벙하게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참가자들은 대부분 동양의 인권단체에서 온 활동가들이거나 주요 실무진들, 혹은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노련한 그들의 입장에서는 처음 참석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배려였겠지만 함께 참석한 꽃사슴님은 자기가 이뻐서 그런 거라고 끝까지 우기더군요.^^
2002년 퀴어문화축제 때 한국에서 초청강연을 했던 더글러스 샌더슨 교수도 만났습니다. 한국에 왔을 땐 잘 몰랐는데 나중에 일가 회의장에서 보니 참가자들의 열띤 박수를 받을만큼 명망있는 분이더군요. 이번에도 '국제법상의 인권과 성적소수자'라는 두툼한 레포트를 들고 찾았는데 현재 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방콕에서 활동 중이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더 초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주로 동양에서 온 다른 참가자들과 인사도 하고 명함도 교환하며 미의 사절단(?)으로서의 임무부터 수행했습니다.^^

14일 저녁에 열린 개막식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짜임새 있었습니다. 마닐라에서 제일 큰 문화공간인 필리핀문화센터(CCP) 안의 공연장에서 이루어졌는데 무대 중앙에는 벽장이 놓여 있었고 연사가 그 벽장 문을 열고 무대로 등장하는 컨셉이 감동적이었지요. 오프닝은 세계각국의상을 입은 트랜스젠더 쇼로 시작했는데 물론 한복차림도 볼 수 있었습니다. 끝나고 들은 이야기인데 필리핀의 유명한 쇼 팀에 한국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특이했던 점은 NGO 행사임에도 유별나게도 오프닝 후 바로 국민의례 같은 행사가 끼어있다는 게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기념식 답게 일가의 사무총장 중 한 사람인 필리핀인 레즈비안이 먼저 개막선언 멘트를 하고 유명인사들의 축사도 있었습니다. 필리핀 국회의원(?)인듯 한 여성도 있었는데 그간 여성단체 혹은 시민단체와 함께 열심히 일을 해왔는지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이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또한 한국과는 다른 점이더군요. (물론 토론장에서는 서로 이야기하려는 분위기였지만요) 또한 각국의 이름이 쓰여진 피켓 위에 액정을 쏘아 스크린을 만든 후 일가의 지난 25년사를 담은 짧은 영상물 상영이 있었습니다.
딱딱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짤막짤막하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용공연, 연주회, 게이코러스의 공연 등이 중간중간 끼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공연들의 수준도 수준급이었습니다.(특히나 남성무용수들의 몸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공연내내 금영님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르더군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우리 중 가장 용감한 금영님의 제안으로 곧장 출구로 뛰어나가 관객들에게 엽서를 뿌렸는데 영어 실력이 짧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선전전략이 아니었던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날 일정은 끝이 났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우리는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조그마한 지프차(필리핀에서는 큰 버스 대신 공공교통수단으로 사용)를 타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 덧붙임 1. 그 날 밤 숙소 앞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꽃사슴님이 아마도 올려주실 것이라 믿고 제 노트는 이튿날로 넘어가겠습니다. 꽃사슴님이 찍으신 사진도 곧 올려주실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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