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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성애자들 종묘에 나섰다 “이반의 꿈을 위해”  
      
“행복한데요.”

5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을 출발해 1시간 여 동안 종로 1~3가를 행진, 인사동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춘 ‘제6회 퀴어(Queer; 이성애 지향이 아닌 모든 성적 소수자) 문화축제 무지개 2005 퍼레이드’ 참가자의 소감이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천과 아웃팅(Outing;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공개되는 것)의 위험이 높은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붉은 리본을 각각 오른팔과 왼팔에 묶은 그는 “주변의 아주 친한 사람들 외에는 털어놓지 못한 나의 성정체성을 이렇게 대중 앞에 드러낸 경험이 처음이기에 그만큼 짜릿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꾸는 꿈은 이미 꿈이 아닌 현실이란 말이 있지 않느냐”며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꿈을 오늘 퍼레이드를 본 일반(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를 지칭하는 용어)들과 함께 꾸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

지난달 27일 개막한 ‘퀴어문화축제 무지개2005’ 열흘째 날인 5일 오후 3시.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그리고 이성애자 500여 명이 모여 서울 종로일대를 행진했다. 행진에 앞서 이들은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묘공원에 모여 풍물패 공연, 댄스 공연 등을 진행했다.



지난 2000년 처음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동성애자 스스로 자긍심을 높이고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에게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국내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이 마련한 행사다.

6회를 맞는 올해 행사에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등 20여개 단체들이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오후 1시 종묘공원, 여름의 문턱을 성큼 넘어버린 계절의 뙤약볕 아래에서 퍼레이드 준비를 위해 분장을 하는 이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공원 곳곳에 마련된 행사 부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로 귀가 따갑다. 그 중 사진촬영에 대한 당부를 전하는 행사 관계자의 목소리가 유독 크다.

“행사 사진촬영을 원하시는 분들은 프레스 부스 앞으로 와주세요. 붉은 리본은 일체의 촬영을 거부한다는 의미니 절대로 촬영해선 안됩니다. 부득이 촬영을 할 수 밖에 없는 기자분들은 보도 시 참가자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주세요.”

사진기자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매해 퍼레이드가 열릴 때마다 주최 측과 보도진 사이에 벌어지는 작은 신경전이다. 행사 관계자는 미안함을 얼굴 가득 담고 “이반(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들에게 아웃팅은 사회적 생명을 뺏기는 일과 마찬가지”라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니 사진기자들도 매해 그렇듯 결국은 긍정하고 만다.

주위를 둘러보니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목, 손목, 발목 등에 붉은 리본을 달고 있다. 거의 대다수라 해도 될 정도다.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매해 퍼레이드 이후 최소 10명 정도의 참가자가 아웃팅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생존과 직결되는 아웃팅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행진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인보 우산을 들고 행진을 준비하던 한 참가자는 “아웃팅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 이반들은 일반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사회의 편견 아래에서 언제까지나 차별받으며 혐오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냐”며 “실제로 한 해 한 해 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조금씩 긍정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색색으로 보디페인팅 위에 갈기갈기 찢긴 흰색 원피스, 털실과 사탕으로 장식한 천사 날개를 달고 행진에 나선 대학생 최연주씨는 “성적 소수자만이 아니라 일반과 이반,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기 위해 오늘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두를 연결하기 위한 도구는 분홍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털실. 최 씨는 행사 참가자들의 손에 털실을 감아주며 모두가 함께 어울리길 기도했다.



푸른색 반짝이 원피스에 통굽 구두, 노란 가발을 쓰고 등장한 또 다른 참가자는 "일반과 이반 사이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오늘 행사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 같은 복장이 더욱 이질감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주변의 아주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곤 사회에 아직 커밍아웃(coming out;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을 하지 못한 탓에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일반으로 생각하다”며 “내가 일반인 양 행세할 때 일반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진정한 나에 대해 느끼는 동질감이 아닌 어쩌면 더 큰 이질감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당신과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고, 당신이 이를 인정했을 때 이질감은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느냐”며 “오늘 나의 이러한 모양새는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커밍아웃 이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현숙 중앙위원은 행진에 앞서 무대에 올라 “차이가 차별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오늘 함께 신나게 놀아보자”며 막춤(?)으로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최현숙 위원은 무대에서 내려온 뒤 “내 성정체성을 확인했기에 드러낸 것”이라며 “그 과정이 개인적으로는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이 행사를 찾았다. 현 의원은 “두 번째 행사 참가지만 아직 솔직히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뚜렷한 해답을 갖고 있진 못하다”고 고백했다.

현 의원은 “그러나 지난 해 행사 참여 이후 1년 동안 주류 사회가 소외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주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문제들을 낳았는지 바라보게 됐다”며 “주류 중심의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태국의 트랜스젠더 공연팀 ‘Gimme Five’의 25명은 행진 직전 화려한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들이 먼저 한국의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반과 일반, 어울림의 절정을 향해

오후 3시 30분,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됐다. 이반 풍물패를 선두로 대형 무지개기와 ‘나도 학교에서 하고싶다 커밍아웃’,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권리도 보장하라’, ‘동성간 강간법 제정하라’, ‘금칙어 이반 규정한 다음, 네이버 각성하라’ 등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요구를 담은 피켓들이 뒤를 따랐다.

YMCA 노래에 맞춰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스포츠 댄스팀이 선보인 역동적인 몸짓에 시민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남미의 카니발 복장을 한 참가자들과 함께 지난 2001년 커밍아웃한 연기자 홍석천 씨가 행사 트럭 위에서 시민들을 향해 요염한 포즈와 함께 손을 흔들어 보인다. 환호 소리가 더욱 커진다.

“근데 뭐야?”, “동성애자들 같은데….”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들며 행진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시민들.

행사 관계자들이 급히 달려 나간다. “성소수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퍼레이드입니다. 죄송하지만 사진은 허가받은 사람 외엔 찍을 수 없습니다. 얼굴이 공개되는 일은 저들에겐 목숨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죄송합니다.”

알았다며 카메라를 접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관계자들의 눈을 피해 다시 카메라를 꺼내들고 플래시를 터트린다. 그저 하나의 신기한 구경에 불과하다는 듯.

“시민들의 카메라 세례와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종로 1가에 도착했을 즈음 한 참가자에게 물었다. “당연히 부담스럽죠, 하지만 작년에 비해 보는 시선들이 많이 부드러워진 듯해요. 혐오에서 신기함, 나아가 이해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 연인이 “쟤들 부모는 쟤들이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라며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을 던지며 곁을 스쳐갔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워요. 저도 그런걸요. 하지만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남이 아닌 자신의 친한 친구, 혹은 형제라고 생각해 본다면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겠죠. 늘어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고요.”

이처럼 차이를 차별하는 현실을 거부함이 아니라 긍정함으로서 사회가 던지는 모든 편견을 극복할 에너지까지 만들어 내는 퀴어들의 축제는 오는 10일까지 계속된다.

행사참고 퀴어문화축제2005 홈페이지 http://kqcf.org

김세옥(okokida@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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