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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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드라 2003-11-15 00: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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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열풍의 사회 문화적인 맥락을 해명하려면 몸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우리 육신은 오랫동안 집단의 것이었다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개인의 소유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런 육신의 사유화 현상은 풍요의 시대 상징이다.개발 시대 동안 개인의 몸은 사회적 이념이 만들어낸 목적을 위해 마모되어야 할 '도구'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이나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노동했던 근육질의 육신을 상상해보면 된다. 육신은 여기저기 상처가 나더라도 근력만 유지되면 큰 문제가 없었다. '죽어서 구더기 먹이가 될 몸'이 소모될수록 국가와 개인의 번영은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풍요의 시대를 맞은 우리는 몸에서 지긋지긋한 국가주의를 털어내는 데 성공하고 나아가 개인의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방법까지 익혔다. 그런 증명의 기법은 최근 수년 동안 압축적으로 개발 및 전파되었는데 이를테면 웰빙족을 선언하거나, 다이어트를 시도하거나, 성형수술대에 누우면 자기 미학에 맞게 육신을 개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섭생과 피부 마사지와 피트니스클럽은 개조된 육신을 근사하게 유지-보수하도록 돕는다. 문신과 피어싱은 육신에 고유의 브랜드를 부여하는 최종적인 사유화 작업이다.

타인의 멋진 육신은 선망의 대상우리가 되찾은 육신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는 CF 몇 편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웬만한 남자 배우는 상반신을 드러내고 카메라 앞에 나서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건장하다. 로션 하나를 바꿨을 뿐이라는 꽃미남마저도 거친 캐릭터의 남자 배우에 밀리지 않은 부피의 대흉근을 갖고 있다. 전 세대의 터프가이를 대표하는 최민수도 신예 스타에 비하면 이두박근이 볼품없는 수준이다. 멋진 근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기를 먹었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러닝 머신의 발판을 무의미하게 회전시키는 그들의 노동이 비생산적이라고 평하면 틀림없이 비웃음을 살 것이다. 정신의 숭배자요, 육신의 박해자라고 조롱을 받고도 남는다.

육신 숭배가 시대 정신이요,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되었다. 다듬어진 육신은 당연히 노출을 열망한다. 배꼽과 허벅지와 팔뚝은 다들 햇살이나 조명 아래로 나서고 있다. 반대로 타인의 멋진 육신은 열망의 대상이며 교과서가 된다.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싶고 타인의 것을 보고 싶어 안달이다. 이런 욕망은 노출증과 관음증 등 낡은 시대의 어두운 개념에 착 들어맞지 않을 만큼 충분히 정당화되어 있다. 어쨌거나 육신의 사유화 시대의 노출 및 관찰 욕망이 누드 열풍의 배경이고 에너지인 것은 분명하다. CF와 잡지 화보와 무대 위와 인터넷 속에서 육신 숭배의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런 모범답안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전례없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명 여성 연예인들이 누드 촬영에 나섰다. 언론이 누드 열풍 현상을 거듭 기사화한 것도, 그리고 대중이 누드 열풍을 현실로 믿게 된 것도 그들 여성 스타 덕분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도박을 하는 것 같았다. 여성 스타에게 누드 촬영은 자살골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누드 촬영 필름을 둘러싼 김희선의 사투가 그 증거였다. 그런데 엉덩이와 가슴 등 세칭 '속살'을 수십 만 명에게 노출한 후에도 여배우들은 보수적인 안방극장에서 캐리어를 지속할 수 있다. 더러는 없던 탄력도 받는다. 이런 행복한 환경은 당연히 사회적 금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금기가 왜 약해진 것인가. 금기를 무력화시킨 변수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 중 잘 언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포르노그라피의 번성이다.

여성 연예인들이 안심하고 누드를 촬영 배포할 수 있게 된 것은 포르노가 그들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포르노가 관용의 폭을 넓혀 놓은 셈이다. 누구나 실감하듯이 인터넷 강국화는 유례없는 외설적 풍속화를 연출한다. 받은메일함이 포르노 광고 메일 즉 스펌 메일(sperm mail)의 화수분이 된 지 오래다. 청와대와 산간마을에서도 교회와 시장에서도 포르노 스팸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일상사이다. CEO부터 경리사원까지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스펌 메일을 폐기할지 클릭할지 결단한 후에야 업무를 개시할 수 있다. 삶의 새로운 패턴을 관철해낸 포르노는 우리의 모던한 환경인 셈이다. 빌 게이츠 등 정보통신의 선구자들이 우리의 손끝에 열어놓은 세상은 성기와 오르가슴과 정액(스펌)으로 얼룩져 있다.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검지에 힘을 주면 그곳에 빛의 속도로 다다를 수 있다. 그런데 반복은 감각의 감퇴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강한 자극이 반복될수록 무감각해지고 마는 역설적인 감각의 제국이 열린 것이다. 암수 성기 한두 번 보나, 연예인 몰카 한두번 보나, 연예인 누드가 대수가 될 수 없다. '하드코어'에 이미 무감각해진 감성 여성 연예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으며 대단한 모험을 감행한다고 착각한다. 토크쇼 진행자들은 그들의 용기 있는 남자친구를 고무하고 공감과 존중을 표한다. 하지만 그들이 프런티어를 개척한 적은 없다. 포르노의 관용정신이 금기의 경계선을 멀찍이 물렸고 그 바탕에서 몇몇이 경계 쪽으로 가볍게 몇 걸음 옮겼거나 흥행사들에 의해 밀려난 것뿐이다.

남자 스타이건 여자 스타이건 아니면 트랜스젠더 연예인이건 그들의 누드는 저수위 고휘발성 이벤트여서 하드코어에도 무감각한 세상 사람들은 진득하게 주목시키지 못한다. 촌스럽게 누드 촬영의 이력을 비난할 이유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안전한 비즈니스 모델이니 누드 촬영은 연예인들에게 유혹적일 것이다.

그들이 촬영을 기피한다면 그것은 위험해서라기보다는 진부하거나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여성 연예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근래의 누드 열풍은 본류가 아니다. 그것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휩쓸어버린 포르노그라피라는 장강의 지류일 뿐이다. 누드로 돈과 명예를 얻은 이들이 감사해야 할 대상은 유연실(1992년)-이승희(1996년)-서갑숙(1999년) 등 누드의 선구자들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인 포르노그라피를 축복해야 할 것이다.

누드 현상은 복잡한 숙제를 내놓는다. 관용해야 할 외설의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국회의원 등 엘리트들이 모여서 규정을 뚝딱 만들어낼 수도 없어 여러 모로 곤란하다. 그렇다면 낡은 것부터 골라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외모 지상주의, 여성의 상업화,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노출증이나 관음증 같은 개념의 유효성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포르노그라피가 번성한 우리 세상을 구원할 비판적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이영재[문화평론가-컬티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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