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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카프카의 문학은 코일로 돌돌 말아진 삼각뿔 도형과 같다.

삼각뿔은 거대한 성이며, 판결을 내리는 정체 불명의 권력의 최종 심급이고, 매혹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아버지의 법이다. 우리의 프라하의 젊은 청년은 그 코일의 선을 타고 삼각뿔을 빙글빙글 돌면서 삼각뿔 도형의 정체를 알고자 하며, 궁극적으로 그 속에 편입되고자 하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할 운명의 포로 신세다. 그는 성 바깥으로 곧장 튕겨나갈 수밖에 없는 영원한 외부자일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외부에서 내부를 끊임없이 기웃거리고 염탐하지만 도무지 내부에 편입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주변자인 것. 그의 주인공들은 그 자신이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성 내부를 염탐하는 측량기사이며('성'), 느닷없이 범죄자로 몰려 법 앞에 소환되는 소시민이고('심판'), 자유여신상이 있는 미국이란 신제국에 편입되지 못한 채 좌절을 겪는 호텔 사환 카를일 뿐이다('아메리카'). 때로 그는 가족에게조차 철저히 외면당하는 징그러운 벌레로 변신하는가 하면('변신'), 이유도 없이 병원에서 내쫓겨져 환자로 전락해버린 시골의사('시골의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보들레르의 신천옹처럼 관객들에게 농락당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절창인 단편 '단식 광대'에서 카프카는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말한다.

서커스 단장이 묻는다. '어째서 단식밖에는 못한다는 건가?"
옛 영광은 온데간데 없이 이제는 아무도 그 일수를 세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외면당하자 그제서야 자신도 일수를 잊은 채 단식을 하던 광대가, 머리를 조금 들어 키스하듯이 입술을 오므려 내밀고는 한 마디도 헛듣지 않도록 단장의 귓속에다 대고 속삭이며 서커스 우리 안에서 죽어간다.

"그건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야. 만일 찾아냈다면 아마 남의 이목을 끄는 짓을 하지 않고 당신이나 여러 사람과 마찬가지로 배불리 먹었을 게야."

카프카는 끊임없이 체계 내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다. 두 번이나 약혼을 파기할 정도로 소심하고 아버지에게 지독한 애증을 갖고 있던 그였다.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단편인 '판결'에서 카프카의 아버지에 대한 애증은 너무 치명적으로 드러난다.

약혼 문제를 놓고 아들의 자존심을 건들며 말다툼을 하던 아버지는 마침내 이렇게 외친다. "난 지금 네게 물에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그러자 아들 게오르그는 자신의 방에서 쫓겨나가 거리로 뛰쳐나간다. 그리곤 곧장 차도를 건너 다리 위로 뛰어내리다가, 난간을 붙잡고 마지막 숨을 토해낸다. "아버지, 어머니, 하지만 전 두 분을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세계와 법에 대한 애증은 그토록 혹독하다. '유형지에서'의 젊은 장교는 죽은 사령관의 고문 기계에서 법에 대한 매혹과 절망을 동시에 안은 채 솜틀 바늘로 사지가 찢겨져 죽어간다. 그 스스로 마지막 사형수가 된 것이다.

시골에 내려가 있는 동안 그의 단편들을 다시 읽었다. 여전히 충격적이다. 유태계 체코인이지만, 진화가 멈춘 빈약한 독일어로 소설을 써야 했던 카프카의 언어는 은유나 치장의 수사를 동원하지 않되, 그가 도저히 가담하거나 편입되지 못하는 세계를 단순하고 투명한 언어로 안개 부옇한 비의적 세계로 전화시키는 놀라움을 갖고 있다. 그 놀라움은 내부로 편입되지 못하는 20세기 초반 프라하 젊은 청년의 절규와 체계 바깥에서 인물들이 교환하는 애매모호한 속닥거림을 통해 더욱 증폭된다.

들뢰즈-가타리는 카프카의 문학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축조해낸 기이한 현실 세계라고 말한다.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지녔되 그 치명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들 프란츠 카프카, 프라하에 살면서 변방의 독일어로 소설을 썼던 유태계, '무희 요제피네'처럼 노동에서 해방돼 제발 소설만 쓰기를 바랬지만 노동자재해보험회사에서 일하며 사회주의적 이상향에 대해 강 건너 불빛을 보듯 심드렁하게 동조했던 노동자, 두 번의 약혼 파기 끝에 마지막 동거녀 품에서 죽어가며 자신의 소설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라는 유언을 남기며 죽어갔던 소심한 소설가 카프카는 천상 '외부자'라는 것이다.

그 점에 착안, 들뢰즈-가타리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그의 소설들이 호모-소셜homo-social적이라는 것. 그의 소설들 대부분에 등장하는 두 남자를 눈여겨보라. 성에 들어가려는 주인공 K를 돕는 시종과 보조자들은 커플을 형성하면서 시종일관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은어로 속삭이며, 서로 키득거리며, 서로 치고 패고 놀기를 반복한다. 독자들은 결코 그 보조자들의 대화에 동참하지 못한다. 성 바깥에서, 체계 바깥에서, 유형지의 고문 기계 앞에서 독자들은 동참할 수 없는 게토화된 언어, 소통불가능한 밀어로 속닥거리는 남자들의 풍경이 바로 호모-소셜의 증거라는 것.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게이 커뮤니티의 담론과 이성애적 체계와의 관계를 카프카의 이미지를 빌려 그려보면 훨씬 더 윤곽이 밀도 높아진다. 이성애적 체계의 성곽 아래에 게이들의 흩어진 '말'들이 존재한다. 이성애적 체계에 편입되려고 하지만, 그 반동의 힘으로 쉽게 편입되지 못하는 말들, 문화, 은어들. 일단 보여지는 선택지는 세 가지다. 편입하거나, 편입하지 않거나, 영원히 외부자로 남는 것. 카프카의 게이들은 편입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지만 그 욕망의 세기로 인해 결코 편입되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 외부자일 게다.

체계에는 수많은 '귀'들이 달려 있다. 그 귀로 듣고, 먹거나 해석하고, 배설하며, 토해내는 기계들의 어중간한 접합이 곧 체계의 모양새라면 체계에 편입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동조의 말들을 쏟아내는 대신, 카프카의 게이들은 체계 내부인과 외부자의 시선을 빌린 독자들조차 해독 불가능한 비의어들을 사용한다. 얼마나 침통하고 매혹적인 일인가. 속닥속닥, 서서히 벽을 허물어내는 비의어와 밀어를 토해내는 일. 체계 내부 지도를 보며 짓는 비웃음과 은밀한 속삭임, 새로운 것을 꿈꾸는 자생의 말들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일 말이다. 성곽 아래 저 등진 자들의 웅성거림은 점점 더욱 드세져 이윽고 어깨와 벽을 넘어 그 안으로 범람하게 될지도 모른다.

카프카는 다시 또 다시 읽어도 시야의 경계를 넓히는, 놀라운 문학의 세계를 웅변한다.  2005-02-14



두 번째 그림 : 카프카 드로잉

Haris Alexiou | W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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