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한가람 : 희망을 만드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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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법 없이도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지나다니는 차 한대 없던 한적한 거리에서 교통법규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종종걸음으로 돌아 친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꽁초를 버릴까 전전긍긍하며 맨손으로 담배꽁초를 수거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법 없이도 살 것 같았던 이 소년, 서른을 넘자 법 없이는 살수 없는 변호사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한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게이 변호사가 되었다.

서른 네 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인 한가람 변호사이다. 지난 여름 늦은 오후, 서대문 근처에 위치한 그의 오피스텔 옥상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저는 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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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서른 네 번째 인터뷰 주자로 낙점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꽤 오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커밍아웃 인터뷰에 응하게 된 동기는요?

가람 : 인터뷰 하게 된 계기요? 재우형(주 : 코러스보이. 다섯번째 커밍아웃 주자, 현 인터뷰 진행자.)이 하라고 해서. (웃음)

 

코러스보이 : 제가 하라고 안했으면 안했을 건가?

가람 : 원래 저는... 그냥 술 먹으면서 그냥 얘기하는 그런 것들은 할 수 있겠는데 뭔가 이렇게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는 이런 말들은 되게 부담이 되잖아요. 책임도 따라야 되는 것 같고. 저는 좀 무서워요.

 

코러스보이 : 혹시 나중에 정치하실 거예요?(웃음)

가람 : 아뇨. (웃음) 아유. 정치하려면 이런 거 좋아해야죠. 잘 해야 하고. 저는.... 살면서 마디들이 하나씩 있잖아요. 학생이었다가 교사로 살다가 뭐, 로스쿨 다니다가 이제 변호사가 되었는데, 이제야 막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시점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약간 좀 경력이 쌓이고 뭔가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자신감이 붙고, 성과도 있고 했을 때 홍보도 하고 얘기도 하고 싶었던 욕심? 솔직히 말해서 좀 더 멋있게 보이고 싶은 욕심? 이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진짜 신입변호사니까.

 

코러스보이 : 저는 오히려 지금 막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홍보도 할 겸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어서 추천했는데요, 사실 그런 비슷한 이유 즉 외적으로 내세울 게 없다며 인터뷰를 사양하거나 미룬 분들이 종종 있어요. 제가 볼 때 당신은 역대 누구보다 스펙이 좋은데. 그렇게 겸손하게 말하면 읽는 사람들이 참 재수 없다고 욕할 거 같은데요?(웃음)

가람 : (웃음)왜에~ 광수형(주 : 스물 세번째 커밍아웃주자 김조광수)도 한지 얼마 안 되었잖아요.

 

코러스보이 : 광수형은 섭외했을 때 흔쾌히 승낙한 걸로 아는데.(웃음) 이름과 나이, 직업 소개부터요.

가람 : 이름은 한가람. 나이는 79년생 서른 넷입니다. 하는 일은 변호사고요, 희망법이라고 ‘희망을 만드는 법’이란 곳에서 공익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어릴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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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희망법이라는 단체가 뭔지 공익인권변호사가 뭔지 설명해주신다면?

가람 : 사실 많은 변호사들이 공익과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희망법) 같은 경우는 전업으로, 비영리로 그렇게 활동을 하고 있죠. 시국사건과 관련된 변론이라든가, 공익과 인권과 관련된 정책에 자문도 하고 교육도 하고, 법률인권교육 이런 것들도 하고요. 상담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하죠. 그러니까 (저는) 유의미한 공익소송들, 뭔가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진보적인 사회가 될 수 있는 그런 소송과 정책과 자문과 교육을 하는 걸 전업으로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거죠.

 

코러스보이 : 사람들이 변호사를 선망하는 이유가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있습니다. 공익변호사라면 수입이 적을 건데 그런 길을 택한 동기는?

가람 : 사실 뭐, 일단은 원래 사실은 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친구사이에서 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가졌는데 사실 욕심이 좀 난거죠. 대학 때 법학을 전공했었고 뭔가 어쨌건 주변에 변호사나 법조인으로 일하고 있는 분들이 있었고, 변호사 타이틀을 갖고 활동을 하면 좀 더 넓은 일들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진짜 이건 욕심인데, 진짜 어떤 중요한 일들 그리고 좀 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들 어떤 권력지향적인 것들이 현실적으로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뭐 저의 조건이, 우리 집이 중산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공부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있거나 하진 않았고 집에 돈을 많이 갖다드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고 해서... 조건이 좋았던 게 있었죠.

 

코러스보이 : 어릴 때는 변호사가 꿈이 아니었어요?

가람 : 어릴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변호사로서의 저의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어요. 법대에 진학했으면서도. 교사로서의 전망이라든가 교사로서의 미래의 나의 모습은 보이는데 저건 너무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혀 생각이 없다가 친구사이에서 활동을 하고 공익인권을 전담으로 하는 공익변호사들 공감변호사들도 보고 하니까 전망이 보인거죠. 모델이 생겼었던 거고 그 모델과 비전이 있었으니까 길을 가게 되었던 것도 있었죠.

 

코러스보이 : 그럼 어렸을 때 법대는 부모님이나 주위의 권유로 가게 된 건가요?

가람 : 네. 그런 셈인데. 집에서 가라고 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부모님의 뜻대로 진학을 했었고... 법대를 졸업하면서 국어교육과 학사 편입을 준비해서 졸업하자마자 바로 학사편입을 하고 군대를 갔죠. 그리고 제대를 하고나서 학교를 졸업했죠.

 

코러스보이 : 중간에 국어교사를 했었어요?

가람 : 네. 일 년 동안 했었어요.

 

코러스보이 : 집에서 많이 놀랐을 거 같은데요? 전공을 바꿔서 선생님이 될 때도 그랬고 변호사 되고서 희망법에 간다고 할 때도 그랬을 테고.

가람 : 희망법 시작할 때는 뭔가 서민과 힘없는 사람을 위한 작은 사무실을 꾸리고 싶다는 이야기는 했었거든요. 근데 부모님들은 그거에 대해서 나무라거나 놀라지는 않으시더라고요. 그냥 ‘돈을 벌 생각이 없구나.’ 하고 크게 반대는 없었고요. 그 전에 제가 국어교육과 갔을 때는 많이 놀라셨죠. 반대를 했었고. 군대 가려고 제주도 갔을 때는 군대 가지 말고 고시공부하자 (그러시면서.)

 

# 후원회원 가입해주시면 제일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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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희망법 활동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은요?

 

가람 : 역시 재정이죠. 저희가 여섯 명의 변호사와 일이 너무 많아 상근자 한분을 모셨는데 가장 큰 비용이 인건비고요. 인건비만 있어도 적자고 그 외 사무실 운영하는 비용이나 활동비 사업비가 많이 드는데 시작할 때도 빚도 내고 각자 돈을 내면서 시작을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1월부터 풀타임으로 일했었는데 삼월 말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때 마지막 출연을 하면서 그 다음날 월급이 들어왔어요. 이만~큼 내고 요만큼 받았죠. 근데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코러스보이 : 월급은 계속 나오나보죠?

가람 : 네. 근데 계산을 해보니까 올해 말이면 우리가 그동안 모아둔 돈들도 다 떨어지겠다, 이런 계산이 다시 나오더라고요

 

코러스보이 : 주 수입원은?

가람 : 후원이 제일 크죠. 그 외 자체적으로 기금이 나오는 소송이라든가, 그리고 공익변론기금, 공익소송기금 이런 것들이 있거든요. 근데 그게 많이 소진되고 있어서 우리가 독점할 수도 당연히 없고.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런 사건이 없었는데 우리가 승소할 수 있는 사건인 경우에는 변호사 비용을 상대측에서 받아낼 수가 있거든요. 소송비용확정재판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대법원규칙이 정하고 있는 일정 정도 비용을 상대방으로 받을 수 있고요. 의뢰인한테서는 받는 돈은 하나도 없죠. 소송을 하더라도.

 

코러스보이 : 다른 공익변호사 그룹들도 후원으로 운영이 되나요?

가람 : 네. 후원이 대부분이고 다른 기금 받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독립성의 도그마 일수도 있는데 우리가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하고 그런 일들을 하다보니 큰 기업이나 대형로펌으로부터는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할수 있는 일을 하자, (기금을 받으면) 겉으로 외부에 휘둘리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고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러스보이 : 인터뷰 보는 사람들에게 후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면?

가람 : 포털에서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고 치면 홈페이지 블로그가 있어요. 들어오시면 후원하기 코너가 있어요. 후원회원 가입해주시면 제일 고맙죠. 풀뿌리 후원으로 가입해주시면 저희가 정말 열심히 잘 해나갈 수 있죠.

코러스보이 : 일곱 명이 12월이 지나면 월급도 못 받는다 이거죠?

가람 : 근데 이분들 진짜 열심히 하는 분 들이예요. 저희가 1월부터 풀타임으로 일을 했다고 했잖아요. 정식 개소는 3월이었고요. 제가 변호사 시험을 1월6일인가 토욜날 끝났는데 그 전에 목요일인가 연락이 왔어요. 시험 보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기존의 변호사들이 ‘토요일 시험 끝나면 일요일부터 출근 하시겠어요 월요일 출근 하시겠어요?’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웃음) 내가 완전 경악해가지고. 이게 뭔가 마치 월요일 출근도 엄청 배려하는 것처럼 고마운 것처럼 느껴지게 말을 하는 거예요. 뭔가 속은 것처럼 (웃음). 항상 열심히 헌신적이고 되게 재미있고 코믹하기도 한데 열정적이고. 그렇게 주관이 뚜렷하고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그런 분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되게 좋아요. 도와주시면 저희가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차돌바우(사진) : 캄캄해졌어.

코러스보이 : 집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할게요.

 

그의 집은 두 남자가 살기에는 조금 비좁은 듯 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북서울의 전경 하나만은 일품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그의 애인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큰 책상이 인상적이었고 공간의 1/3은 그나마 동반묘 고양이를 위한 살림살이로 채워진, 좋게 말하자면 그야말로 공존의 가치를 최대한 살린 가정이었다.

 

# 문자로 커밍아웃한 년은 네가 처음이라고 막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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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고양이 가리키며) 쟤는 뭐예요?

가람 : 고양이, 우리 어진이. 고양이 보호협회에서 데려왔어요. 우리 디오가 재택근무를 하는 친구라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 그렇게 크게 생각한건 아니고 기회가 딱 되어서 고양이 보호협회에 있는 친한 직장동료가 어떻겠냐고 해서. 되게 젠틀해서 수컷들한테 맨날 치이고 장애 암컷묘들 잘 보살펴주는 애라고 착해보여서 데리고 왔어요. 너무 이뻐. 세상에서 젤 이쁜 거 같아.

 

차돌바우(사진) : 디오보다?

가람 : 아니 고양이 중에서 (웃음)

 

코러스보이 : 이제 진짜 커밍아웃 이야기를 할 텐데요. 준비됐나요?

가람 :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약간 무섭다고 했잖아요. 뭔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두렵고 직접 자기 자신의 내밀한 속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렵고...

 

코러스보이 : 여태까지는 가식적으로 살았다는 이야기?

가람 : 그렇지 (웃음) 난 가식적으로 살았나봐요.(웃음) 첨에 누나한테 말했을 때는 그때 형들이랑 술을 먹고 있었어요. 옛날에는 친구사이 회원들끼리 연말연초에 술을 먹으면서 ‘새해 소원이 뭐야?’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뭐, ‘새해에는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라든가, ‘세계 평화를 꼭 이루고 말거야.’ 라든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좋았던 이런 이야기들로 재밌었는데. (그때도)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누나한테 형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광수 형이 그런 건 지금 해도 내일해도 되는 거라고 했고 나도 ‘그러게요.’ 하면서 약간 술이 반쯤 취한 상태에서 누나한테 문자를 보낸 건데 ‘누나 나 게인데 너무 행복하고 좋아. 친구사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좋아.’ 라고 이런 이야기를 했죠. 광수 형이 나중에 문자로 커밍아웃한 년은 네가 처음이라고 막 그랬는데, 그때 되게 무책임하게 간접적으로... 전 직접적으로는 잘 못하는 거 같아요. 제가 커밍아웃한 순서를 보니까, 처음만난 사람들이 제일 빠르고 편하고 그다음이 오래 알았던 대학 때 친구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 친구들한테는 (커밍아웃한 지) 정말 몇 년 안 되었고 그런 식으로 나를 아주 오래 알았던 사람한테 가장 마지막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누나 형한테 하게 되고나서 올해 정말 나를 가장 오래 알고 있는 부모님한테 하게 되었는데... 저는 이상하게 저에 대한 엄격한건... 엄격한건 아닌가? 콤플렉스인가? 아니 뭔가 있는 거 같아요. 일종의 거짓말을 한 거 잖아요. 어떤 이성애자로 살아왔고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표현해 본적이 없고 그래서... 그런데 나 말 정말 길게 한다.(편집자 코멘트 : 사실 이 문단도 많이 편집한 것임^^) 근데 부모님이 알게 되신 거는 희망법 만들어질 때 인터뷰를 하면서 친구사이 대표라는 것도 이야기 나왔고 부모님이 신문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죠. 예 . 저는 사실 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보셨더라고요. (웃음) 이게 생각보다 빨리 보셔가지고 부모님이 힘든 시간을 보내셨죠.

 

코러스보이 : 부모님 첫 반응은?

가람 : 어머님이랑 통화도 못했고 아버지는 격렬하게 뭔가. 음... 격렬하게 싫어하시더라고요. 그랬는데 일주일 이주일 후인가부터 굉장히 그냥 전화도 오시고 하고 그러면서 좀 많이 풀렸죠. 생각보다 되게 많이 풀린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격렬하게 싫어했다는 게 어떤 거?

가람 : 이거 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웃음) 아버지 같은 경우는 ‘이제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이제는 연을 끊는거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코러스보이 : 커밍아웃 했을 때 부모님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흔한 반응인데?

가람 : 부모님이 보시면 싫어하지 않을까 해서. 요즘 통화하거나 할 때 보면 아버지가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힘든 상황에서 그래서 그런 말 했던 것 때문에... 미안해 하시는 거 같기도 하고 좀. (웃음). 그래서 다시 리마인드를 하게 되는 거 같아서 좀 미안한.

 

코러스보이 : 더 심하신 분들도 많은데요. 뭐. 그래도 일주일만에 많이 좋아지셨다는데?

가람 : 아버지는 그때 갑자기 희망을 만드는 법에 후원회원으로 가입을 하신거야. 그 통화를 한지 얼마 안 되었나. 화해의 제스츄어였던 거죠. 후원회원으로 가입을 해주시고.

 

코러스보이 : 아버지랑 성격이 닮은 거 같아요. 욱하는 성격도 그렇고 금방 가라앉는 것도.

가람 : 엄청 닮았어요. (웃음) 어머니한테 맨날 ‘아 왜 자식한테 좋은 거 좀 물려주지.’ 해요.

 

코러스보이 : 어머니는 어떠세요?

가람 : 어머니는 여전히 되게 좀 안타까워하시는 거 같아요. 저는 지금 재밌고 잘 살고 있는데, 뭔가 안타까운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시는 거 같아서요. 좀 잘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거 같아요. 예전에 우리 디오를, 우리 관계를 모를 때는 ‘애가 너무 괜찮다. 중매를 서고 싶다.’(웃음) 그런 말씀 하셨는데 이제 뭐 그때 이후로는 디오를 잘 못 보시겠는 거 같더라고요. 저번에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미안하다 어머니 마음이 조금 더 열리면 그때 내려와서 같이 밥 먹자고.’ 예. 뭐, 그 정도까지.

 

코러스보이 : 부모님들 완전 괜찮으시구만요. 다른 부모님들 중에서는 쪽팔려서 얼굴을 들고 못 다니겠다 이런 말씀 스스럼없이 하시는 경우도 꽤 들었어요.

가람 :네. 훌륭한 부모님이라고 생각해요.

 

코러스보이 : 삼십대 넘긴 또래들 중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이런 건 언니들이 안 알려준 거였는데 나만 아는 노하우야 라든가?

가람 : (웃음) 문자로 커밍아웃 하는거? 신문을 통해서 하고.(웃음) 그때 부모님이 알게되신 후에 되게 마음이 힘들어하실 때 제가 편지를 보냈었거든요. 근데 편지가 도착한 이후에는 조금은 나아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형이나 누나도 힘들었던 거 같은데 그 이후에 좀 풀린 거 같았고. 편지를 쓸 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내 마음이 어땠었고... (웃음). 세상에는 저와 같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파리 시장도 베를린 시장도, 아이슬란드 총리도.” 뭐 이런 뭔가 유명한 사람들 이야기를 썼는데... 이미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 지 오래 됐다는 것도. 그런 정보가 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더라고요. 항상 올바른 정보가 워낙 부족하니까 그래서 그런 정보를 적었었는데 그런 편지를 썼던 게 저는 되게 좋았던 거 같아요.

 

# 눈물을 터뜨리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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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친구사이 이야기를 좀 할게요. 활동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가람 : 제가 국어교육과 복학해서 다닐 때였는데 제대하고 다시 학교모임 활동을 했는데 친구사이와 단체들과 대학모임이 공동으로 주최하던 청소년인권학교가 있었고요, 그때 학교에서 스텝을 관례적으로 한두 명씩 파견을 해야 되는데, 사람들이 사범대에 다니는 네가 가라. 그래서 그럼 내가 한번 가보지 해서 일단 갔는데 재밌더라고요. 회의 끝나면 뒷풀이 합류해서 같이 노는데 세상에 이렇게 웃긴 코미디 집단이 다 있나? (웃음)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어떤 그런 분위기? 그래서 경악하면서 너무 좋다 이러면서 열심히 나왔죠.

 

코러스보이 : 그 때 사귀던 애인 때문에 열심히 나왔던 게 아니고?

가람 : 저는 그때 희일이 형(주 :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를 시작했으며 첫 번째부터 일곱번째까지 커밍아웃인터뷰의 진행자 이송희일)이나 라이카 형 광수 형 다 같이 술 마시면서 사람들이 너무 좋고 분위기도 너무 좋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거 같아요. 가입서를 쓴 것도 아니었고. 뭔가 저는 친구사이의 모습이나 회원들이 너무 좋았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잘 맞았고 되게 편안했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그런 것들이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쫄쫄 잘 따라다녔어요. 술 먹자고 하면 옳다구나 하면서 그때 살던 어디 산골에 박혀있는 동네에서 종로까지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한걸음에 가서 술 먹고.(웃음)

 

코러스보이 : 친구사이 안에서 꽤 많은 직함을 거쳤죠?

가람 : 2005년부터 사무국장 3년을 했었고 당시 대표였던 차돌바우 형이 뜬금없이 전화 와서 “사무국장 해라.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가끔씩 대표가 낮에 행사에 못갈 때 학생이니까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럴 때 대신 나가달라 다른 건 아무것도 할 것 없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차돌바우 : 나도 속았어 그 때. 가람이가 일 다 하고 난 아무것도 할 거 없을 거라고 해서.(웃음)

가람 : 근데 사무국장 되자마자 뜬금없이 우리 국가인권위원회 사업 한번 해보자. 그렇게 처음으로 기금사업을 했었는데... 기획서 한번 써봐라 해서 청소년 사업 기획을 했는데 덜컥 용역사업에 됐고, 그걸 수행하느라 일 년 동안 되게 힘들었는데 하면서 되게 재밌었어요. 주도적으로 하나의 프로젝트사업을 기획하고 끝까지 마무리 한다는 게 되게 좋은 경험이고 기회잖아요. 그렇게 하고 사무국장 삼 년 했었고 대표를 그 후에 2년 하고 교육팀장도 하고 감사도 하고 그랬던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그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업은?

가람 : 아, 원래 처음이 가장 기억이 남잖아요. 2005년에 했었던 청소년 동성애자 차별방지 프로그램. 이걸 일 년 동안 하고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교사지침서를 의욕적으로 만들었고, 지금 보면 낡은 면이 있는데 근데 지금 보더라도 굉장히 괜찮은 지침서야.

 

코러스보이 :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가람 : (웃음) 아니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지금 봐도 너무 괜찮아. 그렇지 않아요?

코러스보이 : 그렇게 물어보면...(웃음) 그 무렵 생긴 걸로 아는데 눈물의 여왕이란 별명은 어떻게 생긴 거예요?

가람 : 그것도 2005년도에 프로그램 할 때 였는데 막상 하는데 어느 순간 나 혼자 하고 있었던 거예요. 다 같이 할 거다, 도와 줄 거다 해서 했는데... 단체 사업이고 단체 회원들이 개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좀 없지 않나. 해서 그때 전 대표들을 중심으로 형들을 주욱 모았죠. 한번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려고 모셨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리가 이걸 왜 해. 우린 청소년 회원들도 거의 없잖아.’ 뭐 이런 사람도 있었고, ‘우리가 이걸 하고 있었어?’ 이런 반응도 있었고. 하면서 멘붕이 된 거지. 우리가 정말 소통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구나 하면서. 난 되게 서운했었고, 난 정말 죽어라 하고 있는데 학교 다니면서 하고 있었는데 그런 반응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눈물을 터뜨리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갔지 흑 하면서... 그러면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형들끼리 웅성웅성하면서 그 안에서 뭔가 같이 하자 이런 이야기가 된 거 같고. 그러고 나서 내가 들어갔고. 그래서 쟤는 울어서 사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코러스보이 : 그동안 친구사이에서 누가 젤 괴롭혔어요?

가람 : 글쎄요... 2005년에는 차돌바우가 괴롭혔고. 글쎄 별로 괴롭혔던 사람은 없네.

차돌바우 : 결론적으로 나네 그럼.(웃음)

 

가람 : (웃음) 오히려 내가 많이 괴롭혔죠. 난 특히 기즈베(주 : 스물여섯번째 커밍아웃 주자 이종걸) 형한테. 황당하게 오히려 나보다 활동도 많이 하고 나이도 많은 선배인데 내가 막말 할 때도 있고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형이 책임지라고 이런 식으로 얘기도 하고. 말하고 나서 아이 씨, 흥분해갖고... 젤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코러스보이 : 욱하는 성격 땜에 사람들이랑 몇 번 싸운 적도 있잖아요?

가람 : 많죠. 몇 번이 아냐.

 

코러스보이 : 그중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가람 : (웃음) 이거 다 오프더 레코드지? 기호형(주 : 스무번째 커밍아웃 주자 박기호) 정남이형(주 : 첫 번째 커밍아웃 주자 천정남) 다 형들이었던 거 같아.

 

코러스보이 : 형들이랑 그렇게 붙으니 동생들은 감히 무서워서 덤빌 생각을 못하나봐. 나미푸(주 : 현 지_보이스 단장) 정도나 되면 몰라. (웃음)

가람 : 형들이랑 붙었던 경험이 있어서 애들이랑 붙을 때는 뭐...

 

코러스보이 : 근데 요즘 사회생활하면서 욱 하는 게 많이 줄었더라고요.

가람 : 맞아요. 되게 웃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친구사이 활동을 오래하고 좋은 거는 조금 더 첨보다는 잘 참는 거 같아.

코러스보이 : 예전에는 회의할 때도 의견대립이 있으면 목소리가 빨라지고 떨리고 그랬는데.

가람 : 지금도 그래요. 우리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가람 저거 또 바르르 한다면서... 사실 적어진 게 이거야 (웃음)

 

#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이야기 속에서 철학이 보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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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친구사이에서 나이대가 중간 정도 되잖아요. 나름 언니들이랑 동생들이랑 두루두루 다 잘 지내는데요. 동생들 중 같이 활동하고 싶은 좋은 친구들도 있죠?

가람 : 많죠. 지_보이스 후배들도 너무 훌륭하고 음...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친구사이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지금 상근자도 있고, 진석이(주: 서른 세 번째 커밍아웃 주자 서 진석) 같은 경우도...

 

차돌바우 : 누가 젤 이쁜데?

가람 : 디오가 젤 예쁘지.

코러스보이 : 애인 이야기는 안 적을 거예요(웃음).

 

코러스보이 : 예전의 친구사이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강하면서 잘 모이면서 놀았다고 생각되는데 이삼 년 전부터 서서히 그런 분위기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조직이 성장해서 이젠 핵가족이 아니라 대가족처럼 바뀌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가람 : 저도 똑같이 생각해요. 저는 친구사이 성격이 되게 많이 변한 거 같아요. 회원 수도 늘었고, 기본적으로 정기모임에 참여하는 숫자가 적으면 사십 명 많으면 육십 명 이런 게 예전에 뭐 열 몇 명 안팎일 때와 시대가 변했고 친구사이도 조금 더 시스템이 갖춰졌고, 옛날에는 동아리 같다는 비아냥도 있었는데 아 물론 동아리 같은 장점도 많았다고 생각은 하거든요. 근데 이제는 규모가 작지 않은 단체로서 하다보니까 조금 더 서로의 관계가 식구같은 관계라기보다는 일하는 관계, 회원과 운영위원의 관계? 친한 사람들끼리 그룹이 많이 만들어졌잖아요. 기존에 있던 언니들도 그룹이 된 거 같은 느낌? 그래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이제는 언니들끼리 모여서 부녀회를 해도 그게 친구사이 모임이라기보다는 친구사이에 속하는 언니들 중 한 그룹의 모임 이렇게 되잖아요. 그게 나쁘진 않은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예전에 비해 사람이 뒤로 밀리고 일이 앞선다는 느낌도 있다는데?

가람 : 맞아요. 그래서 나이 차이도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 있고 곧 오십대도 있게 될 텐데 저는 이제 그런 뭔가 경험도 차이가 나고 나이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세대 간의 소통?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거든요. 시스템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고 사람간의 관계인 거고, 형들의 경험을 어린 친구들이 경청하고 궁금해 하고 물어보고, 그걸 통해 배우고 나름의 생각을 갖게 되고... 어린 친구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좋은 생각이고 노력이 훌륭하고 이렇게 이야기 해주면서 보상을 해주면서, 심리적으로 서로서로 보상을 하고 서로서로 경청을 하는 분위기. 이런 것들이 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저는 특히 언니들의 경험들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이러는 게 첨에 너무 재밌었거든요.

 

코러스보이 : 근데 (언니 입장에서는) 지금은 그런 이야기 하면 할수록 더 내가 나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고 ‘저 언니, 또 옛날 이야기 하네.’ 이럴까봐 점점 안하게 되는 것도 있어. 더 많이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꼰대처럼 보일까봐. ‘왜 언니들은 항상 옛날 이야기로 우리 입장을 꺾으려고 하느냐.’ 하는 얘기도 있고... 근데 내가 인터뷰 당하는 거 같아.(웃음)

 

가람 : 저는 그걸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요, 회의에서 말하는 의견 이런 부분들 보다는 오히려 에피소드들. 그러니까 ‘그거 옛날에 해봤는데 실패를 했다.’ 아니면 ‘네가 했던 생각이 옛날에 안 해본 게 아니다.’ 라든가 이런 것들보다는 옛날의 어떤 에피소드들, 그러니까 친구사이가 발전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나 관계의 문제들 이런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는 것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뒷다마 할 때도 있고. (웃음) 언니네트워크에 얼마 전에 단체방문 갔는데요. 흑역사를 공개하는 것이 새로운 사람한테는 조직의 문화라든가 정체성이라든가 알려주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하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구사이가 너무 좋아졌고 그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이야기 속에서 철학이 보이는 거예요. 9각스캔들(편집자 주 : 2004년 친구사이 회원들 중심으로 있었던 여러명이 얽힌 러브스캔들. 자세한 내용은 생략^^) 이런 거. 거기서 이 단체의 정체성과 철학과 지향성과 전망이 보이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9각 스캔들에 우리 단체의 철학이 보인다고?(웃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가람 : 그니까 아니 스캔들 말고(웃음) ‘옛날에 엠티를 가서 어떤 일이 있었고 찌라시를 나눠주러 종로에 탑골공원에 가서 이런 일이 있었지.’ ‘옛날에 인권캠프 가서 운동회를 했는데 이랬지.’뭐 이런 이야기들이 재밌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참. 며칠 전에 퀴어문화축제 관련 단편 다큐를 만드는 친구를 만나서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도 헷갈리기 시작하고 내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한다는 걸 느꼈어요. 중요한 사건을 내가 잘못 이야기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기억하기 시작하고... 기록으로 남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역사 기록이 참 중요하다 싶었는데.

가람 : 기억의 양이 많아지니까 헷갈리죠 그래서 나도 기록은 정리하고 글로 적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례들과 에피소드들, 형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을 필요가 있다고.

 

코러스보이 : 궁시렁이 지보이스를 주제로 쓴 논문(주 게이남성합창단의 문화정치학.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 문화학 전공 배재훈)을 보면서도 나는 많이 놀랐는데 이걸 말 안하고 넘어갔음 몰랐겠구나.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 시각에서 신입회원들이 우리를 보는구나 하는... 근데 우리 자꾸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어.(웃음)

가람 : 회의하고 있어. 우리 둘이 이야기하니까 그래.(웃음).

 

# 아, 이게 권력의 쾌감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8번 사진

 

코러스보이 : 친구사이에서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가람 : 뭔가 호모포비아 세력들이 조직화 되고 거대화 되고 그러는데, 이미 2007년부터 그랬는데 그때는 과소평가 했던 거 같고. 우리가 붙으면 오히려 저 사람들 힘만 키워준다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있었는데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거 같기도 하거든요. 사람들이 호모포비아의 논리에 대해서 막상 적극적으로 대응을 잘 못해요. ‘동성애를 허용하면 근친상간이나 수간을 허용하자는 거냐?’ 그러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걸 따박따박 ‘수간은 동물이 합의를 하지 않아. 그건 동물을 학대하는 거야.’,‘그것과 합의에 의한 관계를 구분 못하냐’고 반박하거나 하는 정교한 논리들... 그냥 유엔에서 금지한다고 하니까 그냥...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이 스스로 어디가서든 댓글을 쓰더라도 따박따박 이야기할 수 있는 정보의 틀, 논리를 개발하고 프레임을 제공하자는 이야기. 결국은 교육이라든가 우리 내부의 논리 개발, 전략의 개발, 대항프레임의 개발, 이런 것들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 친구사이가 대중적인 단체이니까 회원들 커뮤니티 대중들이 그런 대응을 할 수 있게 개발했으면 좋겠다... 결국 이건 내부적인 고민과 외부적인 교육 인거 같아요. 이런 일들이 꼭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근데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과 관련된 교육 나갔을 때 옛날부터 선생님 되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가서 뭔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뭔가 사람들이 하나라도 배워가고 변화하고 이런 것들을 보는 게 좋은 데. (웃음) 아, 이게 권력의 쾌감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코러스보이 : 권력의 쾌감? 인터뷰 제목감인데?

가람 : (웃음) 왜냐하면 저는 그런 사람이예요. 진짜 저는 뭔가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조심하고 반성을 많이 하게 되는데, 아니야 라고 부정하면 더 안 좋은 거잖아.

 

코러스보이 : 됐어. 자꾸 포장하려고 하지마. 이미 결론은 정해졌어. 가람은 권력지향적. (웃음)

가람 : 그래서 결론은 뭐냐 하면 저 강의 잘해요. 많이 불러주세요. 물론 되게 호모포비아 한가운데 가면 힘들죠. 전혀 소통가능성 없는 사람들과 그럴 생각은 많지 않은데 뭔가 이야기를 하고 참여할 기회를 주시면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있으니까. 뭐야, 뭐가 자꾸 소심해지고.(웃음) 아, 그리고 뭔가 최초로 커밍아웃한 게이변호사라는 말 꼭 적어주세요. 게이변호사.

 

코러스보이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왜 나의 매력을 이렇게 밖에 못 끌어내느냐라든가?

가람 : 글쎄요. 그러게.(웃음) 근데 되게 조심스럽다고 이야기했지만 술 먹으면서 자기 이야기는 편한데. 예. 그래서 내 커밍아웃인터뷰는 재미없을 거 같아.

 

9번 사진

 

인터뷰이는 오랫동안 같이 활동을 하며 친동생처럼 스스럼없어진 그에게 심하게 감정이입할 때가 종종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누이 결혼식장에 갔다가 울컥 한 적이 있었고, 그가 졸업했을 때는 덩달아 가슴이 벅찼으며 변호사 시험에 패스했을 때도 주제넘게 으쓱했었다. 잘 모르는 사람보다 오랫동안 알고지낸 이에게 커밍아웃 하기가 더 어려웠다는 그의 속 이야기를 내가 들어보자고 한 건 어쩌면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따박따박’ 논리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한가람 변호사 혹은 인권활동가만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던, 본인의 이야기 앞에서 수줍어하는 태도, 조심스러움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본 인터뷰만이 가지는 매력이라 우겨본다. 모쪼록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 모두가 그의 익숙한 듯 낯선 향기에 흠뻑 취해보기 바란다.

 

희망법 웹사이트 : www.hopeand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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