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종걸 : 벅차게 육탄공세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이번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은 이종걸님입니다. 현재 친구사이 상근간사이자 인권팀장, 회원지원팀을 맡고 있고 무엇보다 친구사이에서 미모가 돋기로 유명한(?) 게이코러스 모임 G-Voice(이하 지보이스)의 단장이기도 하지요. 하는 일이 워낙 많다보니 늘 일에 파묻혀 있고 그래서인지 연애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든 친구입니다.^^

라이카 : 출근하자마자 굉장히 바빠 보이네요.(웃음) 요새 가장 바쁜 일은 뭔가요?

이종걸 : (웃음) 그런가요? 아무래도 10월 16일로 공연 날짜가 잡힌 지보이스 공연 관련 준비가 가장 시급한 일이구요, 그리고 부산영화제에 진출한 ‘종로의 기적’(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가 공동제작한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관련된 일들이 좀 있네요.

라이카 : 워낙에 거물급(?) 인터뷰 주자라 뭐부터 질문을 던져야 할지 조심스러워요. 우선 역대 커밍아웃 인터뷰 처음으로 사이즈를 공개하고 시작하지요.(일동 웃음)

이종걸 : 음, 키 173에 몸무게 86!

라이카 : 이 질문을 왜 하는지는 본인이 알 것 같은데.(웃음) 내가 종걸씨를 처음 보았던 2003년 겨울부터 지보이스가 첫 공연을 했던 2006년까지는 굉장히 날씬했던 걸로 기억해요.

이종걸 : 그 때는 65정도 나갔던 거 같아요.

라이카 : 그럼 한 2, 3년 사이에 20킬로 이상이 쪘단 계산이 나오는데 혹시 날씬해서 안 팔리니 베어계를 노리고 일부러?(웃음)

이종걸 : (웃음) 그런 건 아니구요, 쉽게 말하면 내가 관리를 안 한거죠. 게이로서 감각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너무 편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여러 활동들을 즐기면서 한거죠. 게다가 2008년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그때 본격적으로(?) 살이 붙더군요.

베어가 된 사연


라이카 : 왜 이런 질문을 했냐면, 살이 붙고 나서 베어 커뮤니티에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을 살짝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종걸 :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요. 살이 붙고 나서 인상이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구요.(웃음) 하지만 메이저(?) 베어 커뮤니티에 등장한 적은 없어요. 제가 베어 타입을 좋아하는 건 또 아니거든요. 메이저라고 하면 베어가 베어를 좋아해야 하는 건데 전 그렇지는 않으니까 그냥 살짝 실리를 취하는 거죠.(웃음)

라이카 : 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친구사이 회원들에게 당신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부분이 저 친구, 혹은 형은 너무 순하고 유해서 도대체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 난무(?)했어요. 그런 성격이 살과 연관이.... 혹시 이것도 편견일까요?

이종걸 : 글쎄요. 제가 성격이 날카롭지 못하고 싫은 소리 못하는 건 맞는 거 같은데 그건 그냥 그게 편해서인 거죠. 딱히 화를 내야 할 필요를 모르겠는 거. 살하고는 잘 모르겠네요. 걍 내가 안 움직여서 찐 게 맞는 거 같네요.

라이카 : 나도 종걸씨가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럼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이종걸 : 화가 날 때도 물론 있죠. 요즘은 가끔 풀기도 해요. 당사자에겐 못하지만 편한 사람에게 살짝 이야기하기도 하고.(웃음) 그래도 감당 못할 정도로 화가 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분출했던 적은 없었지요.

라이카 : 내가 보기엔 종걸씨의 그런 성격은 활동 영역에서 장단점을 모두 보이는 것 같아요. 우선 장점은 여러 사람들 속에서 완충 작용을 한다는 점이고 반면에 단점이라고 한다면 활동을 하다보면 정말 싸움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못 한다는 게 아닐까요? 혹시 활동을 하면서 그땐 정말 삔을 꽂았어야(?) 했었던 때가 있었다면?

이종걸 : 음, 특별한 에피소드가 떠오르지는 않는데요, 아무래도 화를 못 내다보니 안 해도 되는 일까지 떠맡는 경우가 간혹 있긴 했죠.(웃음)

무대 본능이 폭발하다.


라이카 : 그럼 본격적인 친구사이 활동기를 들어볼게요. 2003년 겨울에 종걸씨를 처음 보았을 때 참 순해 보이고 착해 보였던 반면에 문득문득 굉장한 용기를 보여주었던 걸로 기억해요.  예로 지보이스가 만들어지고 바로 장충체육관에서 인권콘서트가 열렸는데 처음으로 게이들이 무대에 올라 홍석천씨 하리수씨와 함께 노래를 했었죠. 그 때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맨얼굴로 무대에 올랐어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튀어나온 건가요?

이종걸 : 그냥 무대 본능이랄까?

라이카 : .........

이종걸 : (웃음) 그냥 쉽고 편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예전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었기 때문에 커밍아웃 이런 생각보다는 큰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한다는 감동이 더 컸었던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모두 어우러져 노래를 할 때 생각보다 큰 울컥한 감동이 있었고 그 감동이 친구사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동력이 되었던 거도 사실이구요. 또 그 때 사람들하고 많이 친해지기도 했구요.

라이카 : 물론 활동을 많이 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유독 발이 넓어 보여요. 친구사이도 이젠 규모가 제법 커져서 정모를 하면 50명 이상이 모이기도 하고 나이차도 상당히 벌어진 것도 사실인데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 같은데요.

이종걸 : 아무래도 회원지원팀이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라이카 : 그런데 유독 까탈을 부리는 부분이 연애인 거 같아요.(웃음) 지금까지 봐온 성격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의 말도 연애를 굉장히 잘 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의외로 연애를 자주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오래 하는 걸 본적이 없어요.(웃음) 혹시 솔로 생활을 즐기는 타입인가요?

이종걸 :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거.

라이카 : ...........

이종걸 : (웃음) 이제는 완성된 무언가가 필요하단 거죠. 뭐, 복잡한 게 아니라 그냥 나에게 맞는 사람을 아직도 계속 찾고 있는 중인 거예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구요.

라이카 : 많은 예술의 주제가 그것이기도 한데, 내 사람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그게 혹시 습관이 되지는 않을까요?

이종걸 : 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 때 좀만 더 잘 해볼걸, 너무 성급했구나 하는 후회가 들었던 사람은 한 명 정도이지 싶네요.

라이카 : 그럼 가장 오래 사귄 기간이...

이종걸 : 커뮤니티에 나온 초기에 6개월 정도가 가장 길었네요.

라이카 : 그럼 친구사이에 나오기 전에도 커뮤니티 활동을 했었나요?

이종걸 : 친구사이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시기에 나왔던 거구요, 그전에는 특별한 활동이라기보다는 제대 후 고향인 순천에 있을 때 그 지역 동갑 모임에 좀 나갔었구요, 복학해서는 학교 커뮤니티에 잠깐 나갔었는데 아무래도 본격적인 활동은 친구사이를 통해서인 거죠.

외국 게이코러스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라이카 : 아까 인권콘서트 얘기도 했지만 종걸씨를 처음 봤을 때 인상 깊었던 부분이 닉네임이었어요. 처음에는 영화 캐릭터를 따와서 ‘기즈모’(영화 ‘그렘린’에 나오는 귀여운(?) 생명체) 였다가 어느 순간...

이종걸 : ‘기즈베’로 바꿨죠. (웃음)

라이카 : 참신하게 느껴졌었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고 주저하는 분위기였잖아요. 그래서 그때 유행하던 닉넴들도 대부분 땍땍함(?)을 강조하는 부류들이 많았고. 그런데 누가 봐도 ‘여성성’이 흠씬 묻어나오는 닉네임으로 떡하니 갈아 탄거죠. 혹시 자신감이었나요? 나 이런 닉네임으로도 팔릴 수 있다는?(웃음)

이종걸 : (웃음) 그건 아니구요, 그 당시의 친구사이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겼던 거 같아요. 이런 닉네임을 써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같이 재밌어하는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닉네임을 바꾸게 된 계기였던 거죠. 그게 내 이미지를 깎아먹는다는지 하는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거 같아요.

라이카 : 그렇게 친구사이 활동에 가담하면서 내가 또 한번 놀라게 된 건 나온 지 2년여 만인 2006년도에는 그 하기 힘들다는(?) 친구사이 대표가 된 점이에요. 대표를 맡아야겠다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이종걸 : 자신감이죠.(웃음) 농담이구요, 전임 대표의 꼬임도 조금 영향을 미치긴 했는데  내가 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냥 내가 해야되나보다 생각했던 거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구나 싶은.(웃음)

라이카 :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한창 취업 준비로 바쁠 때였어요. 그래서 대표 수락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종걸 : 그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기간이었던 거 같아요. 내 스스로를 공부시켰던 기간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말하면 이기적인가요? 그래도 꽤 잘 해 내지 않았나요?(웃음) 무난하게 역할을 해냈다는 생각은 들어요.

라이카 : 더군다나 2년을 해냈어요! 그 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1년씩 하던 거를 당신의 의지(?)로 인하여 2년을 하게 되었고 그 케이스가 다음 대표부터는 관례화되는 추세가 됐죠.(웃음)

이종걸 : 가장 큰 이유는 해왔던 일들이 있는데 갑자기 끊어버릴 수는 없는 거였고, 솔직히 마땅히 맡길 사람도 없었고(웃음) 1년 해보니 한 해는 더 할 수 있겠다 하는 느낌이었던 거죠.

라이카 : 그렇게 2006년 2007년 대표를 역임하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친구사이 상근간사를 하고 있고 지보이스 단장도 겸임하고 있어요. 흔히 말하는 취업 적령기와 겹쳐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상근간사를 맡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 직업(?)에서는 한 발짝 벗어나는 일이기에 더 신중했을 거 같은데....

이종걸 : 앞에서도 몇 번 이야기를 했는데 내 스타일 자체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웃음) 이 일을 하는 거는 단순하게 생각해서 활동하는 게 너무 좋기 때문이죠. 오히려 이 일을 하는데 있어 부단한 공부가 필요한데 그것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지 않는 하는 반성이 들어요. 활동은 의욕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은, 즉 바탕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 과연 그게 있나 싶어요. 그런 바탕들이 쌓이면 뭔가 창조적인 활동들도 가능하게 되겠죠. 지금 저에게는 그 부분이 가장 부족한 것 같네요.

라이카 : 친구사이에 상근간사 시스템을 도입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어요.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종걸 : 아무래도 상근자에게 일이 좀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웃음) 내가 언젠가 상근을 그만 둘 상황이 되었을 때, 다른 친구사이 회원이 그 역할을 하게 될 텐데, 나의 모습이 다른 회원들에게 과연 상근을 하고 싶다 라는 의욕을 주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친구사이에서 나의 위치가 회원 활동가와 활동비를 받는 상근자의 양쪽 입장이기 때문에 일을 하다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간혹 있구요.

라이카 : 아까 활동 쪽으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건가요?

이종걸 : 문화운동 쪽인데 대중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소수자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재밌고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것 정도예요. 그리고 영어를 더 잘하고 싶구요.

라이카 : 영어? 아까도 영어로 장시간 솰라솰라 상담 통화 잘 하던데요?(웃음)

이종걸 : 솔직히 하고 싶은 것 중에 빠른 시일 내에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한 1~2년 정도 머물면서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소수자 단체에서 직접 활동을 하고 싶기도 하고 또 규모가 큰 외국 게이코러스에도 가입해서 그 발전 상황을 배우고 싶기도 해요.

라이카 : 좋은 아이디어네요. 맡고 있는 많은 직책 중에 회원지원팀도 하고 있는데 저번 달 정기모임에 드디어 참가 회원수가 50명이 넘었어요. 친구사이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요 근래 갑작스럽게 회원 수가 불어난 느낌이 들어요.

이종걸 : 저는 회원 수가 양적으로 늘었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회원들을 어떻게 활동으로 이끄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은데 회원이 많아지면 많아지는 데로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생기는 거죠. 요새 회원 수가 늘어난 거는 아무래도 상반기에 친구사이가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TV를 보고 친구가 전화를.


라이카 : 대중매체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MBC 뉴스후플러스에 친구사이 회원들이 다수 등장했죠. 당신도 거기에 동참해서 짧지 않은 시간 인터뷰를 했는데 방송 나가고 별일 없었나요?(웃음)

이종걸 : 내 분량은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웃음) 어제 홍대로 머리를 깎으러 갔는데 미용실 스텝분이 그러더군요. “어머, 손님 티비에 나오는 거 봤어요.” 라고. 근데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기억을 못하더군요. 단지 우리 손님이 나와서 기뻤다는 거예요.(웃음) 사실 알면서도 나를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10년 정도 연락이 안 되던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만났죠.

라이카 : 고등학교 친구였나요?

이종걸 : 그렇죠. 근데 그 친구에게는 대학1학년 때 커밍아웃을 했었어요. 근데 커밍아웃한친구가 방송을 본 건 아니고 또 다른 고교 동창이 화들짝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데요. 종걸이 방송탔다고.(웃음)

라이카 : 그럼 커밍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해봐요. 친구들에게는 두루두루 커밍아웃을 한 편인가요?

이종걸 : 자주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다 한 편이에요. 대학친구들, 취업 준비 같이하던 친구들, 고향 친구들이요. 고향 친구 중에는 레즈비언이 한 명 있어요.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많이 얘기하게 된 것 같아요.

라이카 : 그럼 가족에게도?

이종걸 : 형과 누나는 알아요. 부모님은 아직 모르시구요. 형은 2005년도 쯤이었는데 같이 컴퓨터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친구사이 사이트 등에 자주 들어가니까 눈치를 채게 된 거죠.

라이카 : 형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종걸 : 별로 좋아라하진 않았죠.(웃음) 존중은 하겠는데 이해는 못하겠다고. 그 때 형이 취업 때문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좀 맘에 여유가 없었던 거 같아요. 시간이 좀 흘러서 형이 취업을 했고 맘에 여유도 생긴 후엔 또 그러더라구요. 근데 니가 꼭 전면에 나서 활동을 해야겠냐고. 그러다가 형이 결혼을 하고 나서는 조금 더 날 편하게 대하는 것 같더라구요. 결혼하기 전에 형수에게 나를 인사시키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레인보우가 들어간 광고를 보다가 문득 물어보더라구요. 근데 너희들은 왜 6색 무지개냐고.

라이카 : 게이 문화에 대해 나름 공부를 해왔단 얘기군요. 그럼 형수님은...

이종걸 : 형이 이야기를 했데요, 그리고 작년 지보이스 공연 내용이 한겨레21에 사진과 함께 나왔었잖아요? 형수가 뒤늦게 보시고 공연 보러 갈걸 그랬다며 아쉬워하더라구요.

라이카 : 아까 부모님은 모르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어디에 다닌다고 하고(웃음) 친구사이 상근을 하는 건가요?

이종걸 : 문화연대 같은 운동 단체 정도로만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부모님이 절대 데모는 하지 말라시며(웃음)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받는 활동비 액수를 알고 계세요. 그래서 자꾸 그 부분을 물어보시죠. 좀 올랐냐? 언제 변화가 있는 거냐? 시며.

아, 얼마 전에 부모님께서 오랜만에 내가 살고 있는 집엘 오셨었어요, 근데 저는 그 때 집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퀴어 관련된 뭔가를 발견하셨나 봐요. 그래서 누나한테 그게 뭐냐고 물어보셨고 누나는 별거 아닐 거라고 응수했데요. 나중에 형이 그러더라구요, 숨길래면 좀 제대로 숨기지 그랬냐고.(웃음)


라이카 : 듣자하니 느낌상 부모님께서도 전혀 낌새를 못 채진 않으신 것 같은데,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은 할 의향은 있나요?

이종걸 : 2008년도인가 한번 말씀 드릴려고 한 적은 있었죠. 부모님이 보시기에 내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걸로 보이니까 일단 순천 집으로 내려오라고 하시더군요. 밤기차를 타고 가며 이제 말씀드릴 때가 된 건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을 뵙고 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만 말했던 거 같네요.

라이카 : 당신은 여러 연대활동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데, 다양한 활동가들과 함께 하다보면 이런 가족 간의 어려운 문제도 서로 의지가 많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 온 연대활동 중에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고 동력이 생기는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이종걸 : 다 애착이 가긴 하는데 아무래도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이 가장 애착이 가긴 하죠. 2006년에 처음 발족했을 때부터 계속 함께 해온 활동이어서 그럴 거예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비혼여성, 한부모자녀,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만나면서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조건 축하를!


라이카 : 당신이 하는 다양한 활동 가운데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보이스 단장일이 아닐까 싶어요. 작년부터 단장을 맡았으니 공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시점이니까 벌써 단장으로서 두 번째 공연이 임박해있는 거죠. 예전에 그냥 단원으로 활동하던 것과 단장이 돼서 활동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나요?

이종걸 : 훨어씬 어렵죠.(웃음) 해야 할 일도 많구요. 게다가 내가 친구사이 실무도 보면서 단장도 하고 공연 기획도 하려고 하니 버겁다는 느낌도 좀 있구요. 그리고 음, 지보이스 단원들 개개인이 모두 자긍심이 강해서....

라이카 : 기가 세다는 건가요?(웃음)

이종걸 : (웃음)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단원들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 장르도 다르고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그리는 무대상도 다 다르잖아요. 그걸 조금씩 맞춰서 같이 만들어가는 부분이 조금 어렵죠. 그리고 공연 회차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전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구요.

라이카 : 그러고보니 올해로 정기공연만 5회 째고 그 사이사이 소소한 공연도 꽤 있었어요. 옆에서 보기에 올 퀴어문화축제 공연 때 당신의 인상이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종걸 : 물론 비가 많이 왔다는 핑계를 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상황과 만족할 만한 공연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곡 선정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고, 암튼 좀 힘들었던 건 사실이죠.

라이카 : 그럼 지금까지 공연 중에 가장 만족스럽고 기억에 남는 건 뭔가요?

이종걸 : 감정적으로는 1회 공연 때가 가장 기억에 남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공연 자체를 즐기지는 못한 거 같아요. 특히 상근과 단장을 하면서는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으니까 즐기기보다는 잘 해야 하는 ‘일’로 다가왔던 부분도 있구요.

라이카 : 그래서 올해 정기공연의 컨셉이 제대로 놀고 쇼하자는 의미의 ‘벅차게 Congratulations'인가요?(웃음)

이종걸 : 그런 것도 있지만 작년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약간의 불만(?)들이 있었기 때문에..

라이카 : 작년 컨셉이 뭐였죠?

이종걸 : ‘삔 꽂는 날’이라고 다 같이 액션을 취해보자는 컨셉이었죠. 그런데 일부 관객들은 이전에 우리가 보여주었던 것들, 이를테면 여느 합창단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도발적인 무대를 원하고 오셨는데 작년에는 좀 진중하고 노래로 승부(?)를 하려는 것에 좀 불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라이카 : 이제 정말 정기공연이 임박해있어요. 올 공연에서 이것만큼은 꼭 이뤄내고 말겠다는 부분이 있다면.

이종걸 : 노래를 하는 단원들이나 관객들 모두 다 같이 즐겁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공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설혹 아픔들이 조금씩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축하를 해주고 축하를 받는 상황, 즉 축하를 하고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느낌의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캐릭터로 승부를.


라이카 : 그렇다면 이번 공연의 비장의 카드를 살짝 공개해 주세요.

이종걸 : 음, 아마 무대에서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을 거예요.(웃음)

라이카 : 그리고 이번 공연에는 전에 없었던 특별한 기획이 첨가되었다는 소문이 살짝 돌고 있어요.(웃음)

이종걸 : 몇 곡 정도를 여성객원단원을 모집해서 같이 공연을 하려고 해요. 우리가 남성의 목소리기 때문에..

라이카 : 과연?(웃음)

이종걸 : (웃음) 암튼 지금까지 남성의 목소리로만 해왔던 공연에 여성분들과 함께 하면 어떤 화음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아마 노래도 더욱 풍성해질 거구, 연대의 의미도 있는 거죠.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어쩌면 게이커뮤니티에서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짚어보는 계기도 될 거구요.

라이카 : 나도 단원으로 몇 번 공연에 참가한 경험으로 보면 공연을 얼마 앞 둔 이 시기가 굉장히 예민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올해는 유독 파트별로 혹은 프로젝트별(?)로 알아서 연습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어요. 물론 단장의 입장에서는 택도 없겠지만.(웃음)

이종걸 : 그러게요. 올해는 툭 튀는 캐릭터가 없는 거 같아요. 서로 배려하고 열심히들 하려고 하고. 특히 마지막 부분의 프로젝트성 구성이 아무래도 서로서로 자극이 돼서 열심히 하게 된 동력이 된 것 같네요.

라이카 : 아까 눈을 뗄 수 없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웃음) 2년 전 공연에서는 웃통을 깠죠. 표현이 넘 천박한가요? 고치죠. 웃옷을 벗었어요.(웃음) 설마 이번에는 단원들 아래옷까지?

이종걸 : (웃음) 이번엔 화려함과 다양성으로 승부를 내려구요. 도도, 시크, 발랄, 느끼, 천박 등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라이카 : 또 이번 공연에서는 공연 코디네이터를 하는 ‘씽씽게이프로젝트’라는 기구가 있어서 아주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이던데요.

이종걸 : 그 기구를 통해서 공연의 세부적인 기획, 홍보, 스텝 구성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스텝이 조금 더 필요한 상황이긴 하죠.

라이카 : 작년 공연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을 얘기했지만 작년 공연장(동덕여자대학교예술센터 대극장)이 400석이었는데 만석이었고 통로에 앉아서 보는 사태도 속출됐었어요. 더 큰 공연장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요?

이종걸 : 그러게요. 올해는 다들 관객 수에 대한 걱정이 없네.(웃음) 더 넓은 공연장도 잠시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그 정도 규모가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장 크기를 넓히기보다는 우리 실력을 조금 더 연마할 필요가 있겠단 생각도 있구요.

라이카 : 이번 공연 정말 기대가 돼요.(웃음) 벌써부터 공연이 끝나고 모두 벅차게 축하해주는 장면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이제 얼추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 같은데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종걸 : 음. 연애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안 되나요?(웃음)

수줍게 꺼낸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운명이란 건 우선 말없이 통하는 느낌이라고  했고, 신체는 스탠 이상이며 나이는 또래 즉, 서른살에서 서른다섯정도면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신체 중에서는 눈을 먼저 보는데 조금 처지고 쌍커플이 없는 눈이 좋으며 하얗고 깔끔한 사람이 좋고 그리고 발모양이 길지 않고 이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죠. 외모보다는 성격이 중요한데 남들이 무례하다고 할지라도 자기 주관과 원칙이 뚜렷한 사람이 좋은데 타협의 여지는 있는 사람이였으면 하고 서로의 활동 분야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오케이라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미래의 그이에게 한마디 하라고 했더니

“우리 같이 살고 싶을 때까지 연애하자.” 란 대답이 나왔습니다.

정말 운명 같은 사랑이 나타나면 결혼이든 파트너쉽이든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인정받고 싶다는 의견이었을 거구요,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또 바쁘게 일을 처리하러 자리로 이동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에게 얼릉 운명이 나타나길 기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이종걸 님의 메일 주소는 smucker@naver.com입니다.
이 인터뷰의 사진과 내용은 이종걸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