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이호림 : 고시소녀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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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차돌바우

서른 두 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손님 역시 레즈비언이다. 그는 아직 학생이고 꽤 젊다. 인터뷰이와는 안면만 겨우 익힌 사이라서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기대반 불안반.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안방처럼 생긴 찻집을 인터뷰 장소로 정했는데 의외로 깐깐한 표정의 주인 아주머니가 신경 쓰인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답시고 내던진 몇 마디의 썰렁한 농담도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하고. 이럴 때는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 아, 나 너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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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인터뷰 응해주셔서 고맙고요, 어떤 계기로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는지?
이호림 : 사실 옛날에 친구사이 홈페이지에서 (커밍아웃 인터뷰들) 열심히 읽었어요. 게이 중심인 친구사이의 인터뷰니까 제가 섭외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은 안했는데, 작년에 친한 언니 통해서 섭외가 왔을 때 ‘아, 나 너무 하고 싶어요. 그 프로젝트 너무 좋아했어요.’ 그랬어요.

코러스보이 : 아, 너무 오래 기다리셨군요. 죄송합니다. (인터뷰이 주 - 사실 처음 섭외가 되었던 것은 작년 이맘때이고 친구사이 사정상 인터뷰 대기기간이 길어졌다.) 누구 것이 재밌었어요?
이호림 : 활동하는 사람들 얘기는 아는 사람이라 재밌었고 모르는 사람들 것도 예를 들어서 영수씨 것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는 사람 중에 재밌었던 건 강정현씨 인터뷰요. 일 년쯤 전에 퀴어문화축제 같이 준비 하면서 정현님이랑 친해졌잖아요. 근데 그 인터뷰한 건 정현님 되게 어렸을 때라 그게 재밌었어요.

코러스보이 : 그 두 개 인터뷰 조회수가 다시 올라가겠네요. 본격적으로 신상소개 들어갑니다. 이름은요?  
이호림 : 호림이요. 이호림.

코러스보이 : 나이가?
이호림 : 스물 여섯이요.

코러스보이 : 앞 인터뷰 주자들에 비해 갑자기 확 젊어졌어요. 지금 하는 일은요?
이호림 : 저는 7년째 학생이요.(웃음) 대학원 준비하고 있어요.

코러스보이 : 어떤 공부하시는 지 물어봐도 되나요?
이호림 : 학부는 법대였는데 대학원은 사회복지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코러스보이 : 그렇게 방향을 전환하는 게 쉽지는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이호림 : 원래는 고시준비를 했는데요, 실패하고 뭘 할까 생각하다가... 원래 입법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사회복지 정책에 관심이 있어서 사회복지학과를 가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코러스보이 : 다 연결이 되긴 하네요. 요즘 특히 관심을 갖는 정책은요?
이호림 : 요즘에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플러스랑 동인련 HIV 인권팀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관련된 정책에 관심이 가요.

 

 

# 고시를 그만두면서 우울해서 활력소가 될 일이 뭐가 있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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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나누리 플러스 활동은 언제부터 했나요?
이호림 : 작년 아이캅(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 끝나고부터. 얼마 안 되었어요. 사실 제가 거기에 가게 된 건 (LGBT) 영화제에서 작년부터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는 HIV/AIDS를 주제로 한 영화를 틀었었어요.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번역도 하고 영화 보면서 HIV/AIDS 문제에 관심도 많아지게 됐고, 그래서 아이캅에도 가게 되었어요. 제가 원래 낯을 잘 안 가려요.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서 가서 일을 막 하고 그러다가 나누리랑 동인련에서도 활동을 하게 된 거고요.

코러스보이 : 그럼 그 전에 LGBT영화제 일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된 거죠?
이호림 : 그것도 다 연결되는데(웃음) 고시를 그만두면서 그때 너무 우울해서 ‘나한테 즐겁게 활력소가 될 일이 뭐가 있을까.’ 이랬어요. 그때 축제 측에서는 기획단에 들어올 사람들을 찾고 있었고 영화제 팀에 들어가서 활동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들어갔어요.

코러스보이 : 고시실패가 다 사단이 되었군요.
이호림 : 네.(웃음)

코러스보이 : 그 전에 퀴어 커뮤니티 활동은?
이호림 : 없었어요. 저는 이십대 초반까지 남자를 만났어요. 근데 지금 애인을 만나서, 그러니까 정체화를 되게 늦게 했죠. 첨 연애를 하면서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안했는데, 고시준비를 끝내니까... 또 고시 이야기가 나오는데(웃음) 친구가 필요한 거예요. 일반 친구들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되잖아요. 그래서 커뮤니티 친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커뮤니티 일도 하고 싶고, 그래서 시작했어요.

코러스보이 : 영화제나 퀴어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본인이 변화하는 부분이 있던가요?
이호림 : 저는 사실 부모님이 지역에서 운동을 하시기 때문에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그게 정체성과도 연결이 돼서 이런 일을 하는 데도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영화제 활동이 영화제로서의 성격이 더 강한가요? 아니면 LGBT 커뮤니티 운동이라는 성격이 더 강해요?
이호림 : 반반이지 않나. 김조광수 감독님이 집행위원장이 되면서 영화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진 건 맞는데 누가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했으면 좋을까, 이게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하는 걸 볼 때면 커뮤니티 행사가 맞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작년엔 게이들이 영화를 보러 잘 안 왔다고 들었는데요...
이호림 : 왜 그럴까요?

코러스보이 :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웃음) 평범한 게이 대중이 보고 싶어 할 영화가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호림 : 네. 그런 평가도 듣긴 했어요. 근데 원래 예전 영화제 때는 게이가 많았는데 작년에 L(레즈비언)이 많아져서 농담처럼 우리 오히려 L을 노리자 그런 이야기도 했었고요.(웃음) 올해 개선점으로는 홍보할 때 시놉시스를 좀 더 매력적으로 쓰자 그런 이야기는 있었어요. 

 

 

# 우리 안의 소수자 문제인데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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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나누리나 동인련에서 하는 활동 소개를 좀 해주시면요?
이호림 : 나누리는 'HIV/AIDS 인권 연대 나누리 플러스' 고요, HIV 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법정책 관련해서도 활동하고 있고 실태조사나 이런 것도 하고 있고, 원래는 연대  이었는데 지금은 관심 있는 개인들이 모인 단체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고요.동인련 에이즈 인권팀은 같은 주제지만 커뮤니티의 문제로 포커스를 맞춰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코러스보이 : 상대적으로 레즈비언 같은 경우에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게 인상적인데요.
이호림 : 영화가 크긴 컸던 거 같아요. 근데 원래 저는 ‘질병’이라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있던 사람이고, 그리고 HIV 에이즈 감염 사실을 커뮤니티 안에서도 드러낼 수 없고 이런 게 LGBT가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 그래서 많이 몰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코러스보이 : 외국에서도 HIV 운동하는 사람들 중 비감염인들과 레즈비언, 여성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사자들이 나서주면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혹시 지금 활동하는 단체에서 커밍아웃하려는 감염인들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호림 : 그렇진 않죠. 그 사람들이 우리 활동의 동력이잖아요. 근데 게이들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감염인들은 (아웃이 되면) 사회적인 삶 뿐 아니라 게이커뮤니티에서의 삶 자체가 힘들 것이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죠. 그래서 ‘한번 나오세요.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을 해 주세요.’ 하고 푸쉬는 못하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친구사이도 초창기에는 HIV/AIDS 관련 활동을 많이 하다가 주체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들이 있어서 약간 지치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이호림 : 친구사이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잖아요. 이런 인터뷰처럼 커밍아웃을 해도 축하해주고요. 그래서 결국 언젠가는 친구사이가 그런 감염인과 함께 하는 활동을 더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코러스보이 : 그렇겠네요. 호림님 인터뷰를 읽으면서 다들 한 번 더 고민을 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이캅 이야기 잠깐 하셨는데요, 울면서 끌려가고 누워서 시위하고 그랬었죠? 그 상황 때문에 더 결집하는 계기도 되고 이슈화되고 그랬는데요.
이호림 : 맞아요. 사실 저는 영화 때문에 관심이 있어서 갔지만 활동 같은 거에 대해선 큰 관심은 없었어요. ‘공부하러 가야지. 혹은 부산이니까 놀러가야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날 또 웃겼던 게 장변호사님(장서연 변호사. 공감)이랑 ‘우리 오늘 저녁에 술 마시자. 게이들은 범일동에 간대.’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그날 끌려가시는 거예요. ‘어, 저 분 끌려가면 안 되는데, 나는 어떡하지.’하면서요. 그리고나서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력이 필요했는데, 제가 영어를 좀해서 외국 활동가들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고 그래서 갑자기 일을 더 하게 되었죠.

코러스보이 :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요?
이호림 : 사실 두 가진데요, 영화제와 관련해서는 영화제 상황이 어려워요. 세상에 좋은 영화가 많은데 그 영화를 다 틀 수 없다는 거 자체가 어렵고, 돈이라는 자원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게 힘든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에이즈운동이 LGBT 운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게 바람인데 다른 활동가들하고 갭이 있는 거 같아요.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거에 대해서요.

코러스보이 : 왜 중요한 건지 말씀해주신다면요?
이호림 : 1번은 (수적으로 감염인이) 가장 많아서 이고요 2번은 그들이 이 커뮤니티에서 조차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어서죠. 그건 LGBT 커뮤니티가 사회에서 받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우리 안의 소수자 문제인데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누리플러스는 제도적 활동을 많이 하고, 커뮤니티 내부에서 하는 터부를 깨는 활동은 동인련 인권팀에서 하고 있죠.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큰 성과가 눈에 보이는 건 없는데 계속 하려고 하고 있고 친구사이 같은 곳에서도 해주면 좋겠어요. 친구사이랑 동인련 분위기가 좀 다르잖아요. 동인련은 운동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친구사이는 우리끼리 즐겁게 논다는 분위기가 강해서 커뮤니티 일원으로 즐겁게 커밍아웃하고 즐겁게 하는 활동은 친구사이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사람이랑 잤는데 안 좋으면 어쩔까’ 그게 가장 걱정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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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연애는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이호림 : 아... (웃음)

코러스보이 :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주시면?
이호림 : 알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아우팅 될 수가 있어서. 음... 그냥 어떻게 하다가 만나게 되었는데요. 첨엔 계속 그냥 보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2009년에 노무현대통령이 돌아가셨잖아요. 그때 제가 우울했어요.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고 그러는 게. 그래서 그때 지금의 애인한테 연락을 한 거예요. 술을 잔뜩 먹고요. 그냥 외로워서 연락을 한 거였는데, 갑자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를 원래 좋아하고 있었다고. ‘아, 그러냐?’ 그랬어요. 근데 좋아하지만 나랑 사귀기는 싫대요. 자기도 바쁘고 나도 바쁠 거니까. 그래서 ‘뭐냐? 이건.’ 하면서 그날부터 고민이 시작되는 거예요. 고백은 받았는데 사귀기는 싫다니... 그러다가 제가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나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사귀게 되었어요.

코러스보이 : 그러니까 일반 이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이었군요.
이호림 : 네. 그리고 저는 초등학교 동창인 L(레즈비언)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커밍아웃 한 게 중3 때였어요. 그러니까 되게 친한 친구가 있으니까 나도 막 고민을 해보잖아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 난 이성애자인거 같애. 여자랑 잘 수 없을 거 같아.’ 상상 속에서 그렇게 정체화를 했어요. 그래서 난 이성애자 일거야 생각하고 살았어요. 근데 그런 건 있었어요. 남자들이랑 사귀면 길게 안 되더라고요. 20대 초반에 되게 많이 만났는데 한 번도 제대로 안되었어요.

코러스보이 : 왜 그랬을까요?
이호림 : 그냥 대화가 안 통하고... 저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거 같고. 근데 지금은 잘되더라고요.

코러스보이 : 남자들이랑 만날 때 스킨십 같은 건 별로 없었어요?
이호림 : 아뇨, 있었죠. 근데 다 별로 그저 그랬어요.

코러스보이 : 지금이 훨씬 좋아요?
이호림 : 예. (웃음)

코러스보이 :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만나는 분도 원래는 그냥 알던 친한 친구였다고 했는데... 고백을 받으면서 갑자기 연애감정이랄까 화학작용이 일어났어요?
이호림 : 아, 근데 이런 거 나와도 되나? (웃음) 그냥 저는 대입을 해봤어요. 제가 좋아하고 말이 잘 통하는 오빠가 고백을 하면 사귀었을 거 같거든요. 그거랑 똑같았어요.

코러스보이 : 성적으로 이끌리거나 하는 부분은 배제한다는?
이호림 : 아뇨. 사귀기 전에 가장 겁냈던 거는 ‘내가 이 사람이랑 잤는데 안 좋으면 어쩔까’ 그게 가장 걱정되었어요. 근데 그 걱정거리가 덜어지니까 사귄 거죠.

코러스보이 : 아. 그러니까 여자랑 해보니까 좋았다는 거구나.
이호림 : 네. (웃음) 빙빙 돌려서 물어보시니까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까 했어요.

코러스보이 : 듣고 싶던 얘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웃음) 애인이랑 지금 같이 살아요?
이호림 : 계획은 있는데 아직은요.

코러스보이 : 사귀시는 분이 그전까지 자기랑 놀다가 요즘엔 활동가들하고만 어울려 다닌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나요?
이호림 : 질투는 해요. 맨날 ‘어디야?’ 그러면 ‘종로.’ 그러고 ‘뭐해?’ 그러면 ‘누구랑 회의하고 술 마셔.’ 그러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질투도 있고, 또 애인이 바빠서 자기가 못하는 일을 내가 하는 걸 ‘훌륭해’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있긴 해요. 시간을 많이 못내니까 싸울 때도 있는데 대체로 좋아하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인터뷰 나가면 팬레터 올지도 모르는데 더 질투하실 지도.
이호림 : (웃음)

 

 

# 부모님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하고 지레 겁먹는 거 자체가 문제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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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 커밍아웃 이야기를 해볼게요. 집엔 어떻게 이야기했어요?
이호림 : 동생한테는... 아, 동생한테는 맘먹고 얘기했던 거 같아요. 같이 술 마시다가 얘기를 했어요.

코러스보이 : 동생은 뭐라고 하든가요?
이호림 : 동생은 원래 주변에 L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 누나도?’ 그랬어요.

코러스보이 : 부모님은요?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기로 결심하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이호림 : 저는 부모님이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일 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원래 부모님 성향대로라면. 근데 제가 먼저 이야기하기까지에는, 내가 이 관계에서 확신이 생긴 다음에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육개월 정도 기다리다가...

코러스보이 : 아무리 부모님이 진보적이라도 자기 자식의 문제라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호림 : 부모님하고의 관계가 어렸을 때부터 사생활에 대해선 되게 방임적이었고,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식의 평등한 관계였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여자랑 사귀는 거랑 이런 것도 ‘네 삶이 그러니까, 네 선택이니까.’ 그렇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을 했었어요.

코러스보이 : 어떤 구체적인 장면에서 커밍아웃을 한 건지 궁금해요.
이호림 :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엄마아빠가 서울에 올라오셨어요. 그래서 동생하고 넷이서 술을 먹다가 그냥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냥 했어요. 엄마 아빠가 그냥 웃으시면서 ‘아, 네가 그런 이야기 굳이 우리한테 안 해도 되는데, 네 삶이니까.’

코러스보이 : 너무 쿨하신 데, 황당했을 거 같아요. 나 주워온 자식 아냐? 이런 생각 들지 않았어요?
이호림 : 그러니까요. 조금의 놀람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코러스보이 : 그 후에 혹시 부모님 태도가 달라진 건 없었어요? 결혼이야기나?
이호림 : 결혼이야기가 좀 바뀌었죠. 처음엔 이 관계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얘는 남자도 사귀었는데. 그런 생각도 하신 거 같았는데 지금은 제가 대학원 간다고 하니까. 얘가 대학원 안가고 시집가는 거 아냐? 고는 하는데 그 대상이 남자가 아니라 지금 재 애인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거죠. 그리고 엄마아빠 부부생활이 되게 좋으세요. 그래서 저도 누구랑 파트너십을 갖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엄마아빠한테 애인 소개시킨 적 있어요?
이호림 : 만난 적 있어요. 전화할 때도 항상 안부 물어보시고.

코러스보이 : 커밍아웃할 때 애인 이야기도 같이 한건가요?
이호림 : 네. 같이 한 거죠.

코러스보이 : 자녀들 중 한명이 커밍아웃을 하면 다른 쪽으로 부모님의 관심이 더 집중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호림씨가 커밍아웃 하고나서 부모님이 동생에게 더 신경을 쓰거나 간섭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이호림 : 없어요. 오히려 재밌었던 일은 우리 엄마한테 일어났는데요. 제가 정초에 커밍아웃을 하고나서 봄에 엄마 주변의 L(레즈비언)들 세 명이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한 거예요. (웃음) 그 중에 엄마랑 십몇 년 동안 알고지낸 L커플도 있어요. 거의 이십 년 동안. 그 언니들이랑 엄마가 저보다 더 친한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아빠가 질투하시겠는데요?
이호림 : 아빠도 같이 친해요.(웃음)

코러스보이 : 그럼, 커밍아웃하고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반응은 없었네요. 이게 너무 쉽게 풀린 이야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데,(웃음)  
이호림 : 없었어요. 친구들이랑도 처음엔 약간 놀라고 그냥 그 다음에는 뭐... 제가 약간 그런 쪽으로 눈치가 빨라요. 그래서 먹힐 거 같은 사람한테만 했어요.(웃음)

코러스보이 :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쉽고 편하게 커밍아웃을 해 오신 것 같은데요, 본인이 생각하는 커밍아웃의 노하우가 있나요?
이호림 : 그게 지현님 인터뷰에도 나왔는데 너무 분위기를 잡으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  선언적으로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주변 이야기 들으면 사실 그렇게 걱정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거 같기도 해요. 부모님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하고 지레 겁먹는 거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문제이지 않을까요. 물론 커밍아웃하고 부모님과 힘들어지는 경우의 이야기도 많이 듣지만 의외로 부모님이 보수적이셨던 분들도 어떤 과정이 끝나면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아, 그리고 제가 커밍아웃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아, 너네 집은 원래 그렇잖아.’ 그러면서 예외 취급 하는 거예요. 공짜로 얻은 것처럼요.  

코러스보이 : 그래서 서운할 수도 있겠네요.
이호림 : 네. 다른 집도 그럴 수 있는 건데. 아,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는 저희 엄마아빠는 L 커플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고요, 저번 학기에 엄마가 정욜님을 불러서 특강을 시켰는데 강의가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학기에도 부른데요. 아빠는 영화제도 오시고 작년 지보이스 공연은 엄마랑 그 앨 커플이랑 친구들이랑 다같이 봤고요.

코러스보이 : 대단한 가족이네요. 최근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 LGBT 가족모임도 생기고 있는데요, 호림씨 부모님이 오셔서 조언을 해 주신다든가 하면 좋을 거 같은데요?
이호림 : 근데, 엄마의 단점은 또래분들을 어려워한다는... 그리고 사실 엄마한테 이야기는 했었는데 ‘그런 모임은 힘들어했던 과정을 겪은 사람이 서로 지지하는 게 맞지,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도움이 안 돼.’ 라면서 지지의 역할을 본인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해주세요.
이호림 : 저 가장 걱정되는 거 하나 있었어요. 게이들은 커밍아웃 인터뷰 올라가면 리플 많이 달릴 텐데. 안 달릴까봐.

코러스보이 : 예전에 인터뷰 했던 분들 중에서도 인지도가 적은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근데 댓글이 하나씩 달릴 때마다 답글을 직접 달아서 두 배로 늘이더라고요. (웃음)
이호림 : 진짜요? 그렇게 해야겠구나.

(차돌바우:사진) 전도연 닮았어.
코러스보이 : 어 진짜. 이마랑 분위기가 비슷해요.
이호림 :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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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외모 뿐 아니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찬 태도까지. 호림에게는 어느 여배우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무엇이 있었다. 댓글이 많이 안 달리더라도 결코 기가 죽을 것 같지는 않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누구라도 그와 친해지고 싶어져서 자연스럽게 댓글 한마디씩 보태줄 것 같다.
참, 최근 그로부터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자리를 빌어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호림님의 E-메일 주소 : realfringer@naver.com
동인련 홈페이지 : http://lgbtpride.or.kr/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플러스 홈페이지 : http://www.aidsmove.net/

 

※ 이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은 이호림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