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혁상 : 종로의 강적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네 명의 게이들의 커밍아웃을 다룬 다큐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부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후, 그와 영화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여요. 지난 이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듬직한 체구에 늘 카메라를 짊어지고 다니던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기쁜 마음에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더군다나 동갑 친구라 모처럼 반말 인터뷰로 진행할 수가 있었네요. 그럼 그의 체구의 비밀과 종로의 기적을 한번 맛보실까요.^^



라이카 : 자, 그럼 소개를 좀 부탁한다. 이왕이면 채팅용으로.(웃음)

이혁상 : 진짜? 나 그런 거 잘 안하는데.(웃음) 저는 망원동에 사는 37살 178에 90이라고 해야 하는데 요즘 살이 좀 더 쪄서.

라이카 :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세 자리 숫자 돌파도 가능하겠다.(웃음)

이혁상 : 안 돼.(웃음) ‘종로의 기적’ 편집하고 부산영화제 가기 전까지는 살이 쫙 빠졌다가 그 후로 다시 찐 거 같다. 성향도 말해야 하나?(웃음)

라이카 : 그건 신비주의를 위해 남겨두자. 그럼 핵심 질문 들어가겠다. 살은 언제부터 찌기 시작한 건가?

이혁상 : 앗! 난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이 비율(?)이 계속 유지가 되었던 거 같다.

뚱계의 원빈


라이카 : 이 질문을 왜 하냐면 요즘은 웰빙바람이다 뭐다 해서 살 빼고 몸매 가꾸는 게 대유행인데 뚱계에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는 경우를 봐서 그렇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살을 찌우기 위해 밤마다 라면과 통닭을 먹는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 경우도 있다. 당신도 식성을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건가?

이혁상 : 나는 그렇지는 않다. 어렸을 때부터... 그럼 나 소아비만인건가?(웃음)

라이카 : 뚱계의 ‘원빈’이라는 소문이 살짝 돌았다. 본인이 퍼트렸다는 설이 있던데?(웃음)

이혁상 : 아니다. 그럴 리 있나.(웃음) 그 얘기를 처음 들었던 건 ‘친구사이’ 사무실에 갔을 때였는데 상근하시는 분이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얘가 뚱계의 원빈이에요.”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냥 ‘친구사이’ 단체 내에서만 도는 말인 거 같다. 사실 뚱계를 나가보면 예쁜 언니들이 얼마나 많은데.(웃음)

라이카 : 내가 뚱 식성은 아니지만(웃음) 일본 야동에서 많이 본 듯한 형색(?)이다. 잘 생겼다는 얘긴데, 본인이 인기가 있다는 건 인정하나?(웃음)

이혁상 : 음, 솔직히 그런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웃음) 실제로 데쉬를 받거나 실감이 날만한 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해라면 오해고 사실이라면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내가 연애를 길게 하지 않고 쿨한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진 것 같다.

라이카 : 왜 그런 불행이 있었을까?

이혁상 : 음, 사실 연애를 할 때 공교롭게도 연애에 대한 판타지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사귄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로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였는데 연애에 환상 같은 것이 좀 있었고 생활 같은 연애를 꿈꾸는 나와는 좀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보니 나에게 상처를 좀 받았던 거 같다.

라이카 : 그럼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어떤 연애관을 갖고 있나?

이혁상 : 오래 만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부분도 있고. 그러나 오랜 연애에 대한 환상은 없다. 게다가 내가 얼마 전에 다큐 ‘종로의 기적’을 찍으면서 연애에 실패하지 않았나? 그 일을 겪으면서 힘이 좀 들었고 기운이 많이 빠져서 당분간은 연애를 위해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라이카 : 가장 길게 만나본 게...(웃음)

이혁상 : 물론 한두 달의 짧은 연애도 있었지만 이 년, 일 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만난 분들도 있었다. 일 년 정도 만났던 형도 내가 다큐 ‘3FTM’의 촬영과 편집을 할 때 만났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작업 막바지로 갈수록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게 되니까 그 형이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 형은 연애에 좀 집중하는 타입이었는데 나를 이해하면서도 외롭고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그래서 헤어지게 됐는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든 생각이 아, 다큐 작업을 할 때에는 연애를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라이카 : 안타까운 얘기다.

이혁상 : 그래서 그 뒤로는 사람을 만나도 좀 선을 긋고 만나게 되더라.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캐주얼한 관계만 원하고 연애는 잘하지 않는 애’. 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내가 한 게이잡지에 인터뷰를 하면서 ‘욕망에 충실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한 부분이 확대 재생산 되면서 가끔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그런다. ‘니가 그렇게 벅차다며?’(웃음) 그 뒤로 사람들을 만날 때, 난 일 땜에 바빠서 시간이 안 나는 건데도 ‘너는 원래 벅찬 얘였어.’ 이런 반응이 나오는 악순환이 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바닥에서 벅차지 않은 사람이 대체 어디 있나? 윽, 나 너무 막나가나?(웃음)

연애의 목적


라이카 : 나이가 점점 차니 사람을 만나기가 정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앞으로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면 좋겠나?

이혁상 : 지금은 진짜 연애 생각은 없다. 이러다가 맘에 드는 사람 나타나면 바로 들이댈지도.(웃음) 자유로운 현재 상황이 좋기는 한데 앞으로 다시 연애를 한다면 내가 좀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은 내가 보살핌을 더 베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나도 좀 보살핌을 받고 싶다구.(웃음) 그냥 나를 한 발짝 옆에서 지긋이 바라보면서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라이카 : 멍석 깐 김에 하드웨어도 짚고 넘어가자.(웃음)

이혁상 : 음, 우선 내가 늘 부르짖는 게 있다. 인생은 팔십 킬로부터.(웃음)

라이카 : (웃음) 여기저기서 팬들이 살찌우려는 소리가 들린다. 자 몸무게는 80이 넘어야하고. 또?

이혁상 : 나는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팔뚝이 우람한 사람에게 끌리더라. 체형은 미친 갑바 이런 거보다는 그냥 듬직한 체형이면 좋겠다.

라이카 : 얼굴은?

이혁상 : 솔직히 얼굴은 뭐라 말을 못하겠다. 예전에는 기준을 정해서 난 이런이런 얼굴이 좋아요. 하고 얘기하곤 했는데 지나고 보니 꼭 그런 사람들하고만 만난 건 아니었더라. 그냥 키나 몸집이 나보다 많이 적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체형도 체형이지만 말이 통했으면 좋겠다.

라이카 :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뜻인가?

이혁상 : 솔직히 말하면 한나라당 지지자는 좀 곤란하고 종교적 근본주의자도 좀.. 그리고 문화적이지 못한 사람도 나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더라. 그런데 예전에는 절대 용납되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많이 누그러지기도 한다.

라이카 : 동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혁상 : 과거에 이성애자 선배 한명, 그 후에 후배 한명과 같이 살아본 경험이 있는데 둘다 아주 안 좋게 끝났다.(웃음) 동거는 사랑이라는 감정만 가지고 쉽게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인 거 같더라. 그런데 이번에 ‘종로의 기적’ 다큐가 끝나고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 사람의 온기가 있었으면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이 아 이래서 동거를 하는구나 하고 짐작은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개를 키워볼까 생각중이다.

라이카 : 전에 어디서 보니까 데뷔(?)가 서른 살이라고 되어 있던데 생각보다 늦은 감이 있다.(웃음)

이혁상 : 사실 뻥이다.(웃음) 그게 아니고 연애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게이커뮤니티에 나오게 된 게 서른 살 즈음이다. 사실 95년 즈음에 ‘친구사이’에 가 본 적이 있다.

라이카 : 헉! 빠른데.(웃음)

이혁상 : 내가 대학을 연영과를 가고 싶었는데 그 때 부모님과 선생님이 반대를 너무 심하게 하셔서 무역학과에 가게 되었다. 그러니 학과는 뒷전이고 바로 영화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내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세미나를 하자고 의견을 제시했고 이때구나 하고 ‘친구사이’ 사무실에 갔었다. 그 때는 게이가 아닌 척 자료를 구하러 왔다며.(웃음) 그러다가 뉴욕으로 배낭여행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게이거리도 가보게 되고 퀴어채널에서 해주는 다양한(웃음) 퀴어 관련 영상물들을 보면서 내가 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거 같다.

라이카 : 그 뒤로도 본격적으로 게이커뮤니티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혁상 : 그런데 내가 이성애자는 아니지만 또 동성애자만은 아닐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에 잠시 빠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중주체니 뭐니 철학도 공부하고.(웃음) 그러다 학부 졸업하고 부산영화제에서 3년 정도 일을 한 후, 영화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못다 한 공부를 제대로 더해보자 싶어 영화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대학원에 게이선배 한분이 계셔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나오고 연애도 시작한 게 서른 살이었던 거다. 그 뒤로 파란만장한 연애사가 시작이 되었고.(웃음)

동생이 그럴 줄 알았다며.


라이카 : 그런데 LGBT 영화제나 종로의 기적 관련 행사에 남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걸 봤다. 집에는 다 얘기를 한 건가?

이혁상 : 남동생한테까지만 얘기를 했다.

라이카 : 어떤 계기로 이야길 한건가? 남자형제들끼리는 컴퓨터 등으로 인해 걸리기도 하던데.(웃음)

이혁상 : 동생하고는 세 살 터울이 지는데 사실 동생하고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종로커뮤니티를 자주 나오기 시작한 후, 삼촌이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그 때 장례식을 마치고 동생과 데면데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동생이 갑자기 형 어디가냐고 물어보더라. 여자 만나러 가냐고. 그래서 그냥 얼버무렸더니 동생이 대뜸 “형 여자 별로 안 좋아하지?”라고 물어보더라.

라이카 : 당황했겠다.

이혁상 : 그런데 그 순간 그냥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뭔가 알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래서 지하철임에도 불구하고 “그래 나 남자 좋아해”라고 얘기했더니 동생이 손뼉까지 치며 그럴 줄 았았다며.(웃음)

라이카 : 어떻게 알게 되었다고 얘기하던가?

이혁상 : 예전에 내 방에 반전상징으로 피스마크가 새겨진 일곱색깔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하다 온 동생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내 방에 인사하러 와서는 그러는 거다. 저거 동성연애 깃발이라고. 그런데 내가 거기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니야, 퀴어 무지개는 6가지 색이야”라고 말해버렸다.(웃음) 그때 눈치를 좀 챈 모양이더라. 그리고 결정적이 사건이 있었는데 동생이 내 디카를 빌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 내가 그 당시에 사귀던 애인하고 모텔에서 나오면서 찍은 인증샷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생이 그걸 보고는 확신을 해서 게이 사이트들도 들어가보고 하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라이카 : 멋진 동생을 두었다. 그럼 그 뒤로 더 친해졌겠다.

이혁상 : 그 일이 있은 후로 오히려 확 친해진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동생이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하더라. 그러던 놈이 ‘종로의 기적’이 부산에서 상을 받으니까 부모님께 영화 얘기를 해버린 모양이더라.

라이카 : 헉! 그러면 개봉에 맞춰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려야겠다.

이혁상 : 사실 이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맘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슬슬 준비를 하고 있다.(웃음)

라이카 : 그럼 친구들도 두루두루 다 알고 있는 건가?

이혁상 :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만나는 친구 여섯 명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잘 알고 있고 남은 건 고등학교 친구들인데 앞으로 ‘종로의 기적’ 상영회 때 부를 생각이다.

라이카 : 이 영화가 참 좋은 기회가 된 거 같다.

이혁상 : 무슨 영화인지는 얘기 안 하고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센 영화고 예상치 못한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고만 얘기해 뒀다.(웃음)

라이카 : 아까 잠시 뚱 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내가 보기에는 다른 신체유형 가운데 뚱 문화가 유독 많게 느껴진다. 독자적인 술집이나 사이트, 카페들도 있고. 뚱 커뮤니티만의 독자적인 특징이 있을까?

이혁상 : 글쎄. 그런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식성끼리 모여서 노는 것 아닐까? 몇몇 코드들은 있겠다. 지금이야 그렇게 하고 다니면 촌스럽다고 하지만 폴로셔츠에 카고바지 모히칸 스타일의 짧은 머리에 수염 정도.

라이카 : 조심스런 질문이기는 한데 뚱이 뚱을 좋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이혁상 : 나는 내가 대학 시절에 여자를 못 만나는 게 게이여서가 아니라 뚱뚱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카 : 뭐야, 그럼 지금은 인생역전이네?(웃음)

이혁상 : (웃음) 그만큼 사회가 뚱뚱한 사람들에게 갖는 편견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뚱한 사람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많으니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고 뚱뚱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영향을 조금은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작년에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뚱 게이 친구들이 병문안을 많이 왔었는데 같이 병실을 쓰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화들짝 놀라더라.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찾아오는 분들이 다 듬직하냐고. 그리고 찾아오는 분들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 친척같다고.(웃음)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라이카 : 혁상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단체가 바로 ‘연분홍치마’이다. 언제 발족한 건가?

이혁상 : 정식으로 발족한 거는 2004년도였고 정확한 단체명은 ‘성적소수 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이다.(이하 연분홍치마)

라이카 : 연분홍치마가 처음 커뮤니티 즉, 성소수자운동 진영에 등장했을 때 참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단체명도 그랬고 운동을 펼치는 방법도 그 때 성소수자진영에서는 본격화되지 않았던 미디어를 들고 나온 것도 그랬고.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건가?

이혁상 : 사실 내가 초동 멤버는 아니다. 대학원에 들어갔더니 지금 연분홍치마의 멤버인 김일란(3FTM 감독) 누나가 있는 거다. 일란 누나는 학부 때 서울지역 영화 연합 모임에서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같은 대학원 선배로 다시 만나게 된 거였다. 그런데 일란 누나가 몇몇 사람을 중심으로 여성주의를 중심으로 한 섹슈얼리티를 연구하는 스터디모임이 있으니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그게 연분홍치마의 전신이 된 거였다.

라이카 : 그럼 빠른 시간 안에 주축 멤버가 된 건가?

이혁상 : 솔직히 처음에는 열심히 활동하지 못했다. 그 때가 내가 막 연애 시작하고 정신없을 때라서.(웃음) 암튼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실제 활동을 해보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연분홍치마’라는 단체명도 그 즈음에 만들어진 거다. 우리 스스로는 여성주의에 기반 한 성적소수 문화환경을 위한 활동이라는 맥락을 잡게 되었다.

라이카 : 자세하게 설명을....

이혁상 : 그러니까 성적소수자를 지금의 개념보다는 크게 본 거였다. 남성 중에서는 청소년이나 노인도 소수자가 될 수 있듯이. 그러다가 각자의 전망을 고민하는 과정에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고 더군다나 공부만 하던 사람들이 활동을 하려니까 막막한 부분도 있었다. 여기저기 남의 사무실에 얹혀 지내다가 2006년도에 연분홍치마 멤버인 지유 씨의 집을 사무실로 같이 쓰면서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았던 거 같다.

라이카 : 아 영화 ‘3FTM’에 단체 사람들 다 모여서 회식하던 그 집?

이혁상 : 맞다. 그 때부터 개인의 삶과 단체의 활동 공간이 연결되기 시작했고 그 시스템은 독특한 연분홍치마만의 문화로 자리잡은 거 같다.

라이카 : 그럼 그런 구조가 그 이후로 계속 되었다는 말인가?

이혁상 : 그렇다. 지유 씨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고 그 때 마침 나도 전에 살던 집을 나와야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사무실을 같이 쓰는 상황을 물려받았고 지금의 망원동까지 오게 된 거다.

라이카 : 옆에서 보기엔 연분홍치마는 대표나 운영진이 따로 있는 것 같지 않은 구조다.

이혁상 : 내가 대표다.(웃음) 그게 아니라 비영리단체 명의상으로는 내가 대표로 되어 있지만 연분홍은 대표나 운영진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라이카 : 운영하고 유지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이혁상 : 음, 일단 단체에 소속된 인원수가 다섯 명으로 적고 그리고 서로 알아온 시간이 길다. 연분홍을 하면서 새로 알게 된 친구도 있지만 서로 서로 교차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모이게 된 거고. 그리고 연분홍을 시작한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이제 이 다섯 명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라이카 : 안 그래도 무슨 행사 때 보면, 서로 굉장히 각별해 보인다.

이혁상 : 가끔 우리끼리 그런 말도 한다. 이제는 애인은 없어도 살지만 연분홍 언니들 없으면 못산다고.(웃음) 생활을 거의 같이 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가족같다는 느낌이 들고 그런 동력이 연분홍의 가장 큰 특징이 되어가는 것 같다.

라이카 : 그럼 궁금한 점이 있다. 외부의 누군가가 연분홍에서 활동을 하고 싶다고 가입의사를 밝히면 단체원으로 받아들이는데 특정 절차가 있나?

이혁상 : 그게 좀 문제긴 하다. 우린 스스로 항상 열려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지금 다섯 명의 이런 공고한 구조 속에서 새 멤버가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우리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라이카 : 좀 민감한 부분인데 단체 유지는 어떻게 하나?

이혁상 : 나와 일란 누나, 영희 씨는 강의를 뜨문뜨문 나가고 있고(웃음) 성희 씨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논문을 쓰는 중이다. 그런데 우리가 후원인이 있어도 정기적으로 많은 금액이 들어오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분이 늘 문제긴 하다. 그래서 안타까운 부분이 쓸데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경우인 거 같다.

라이카 : 아, 촬영 아르바이트?

이혁상 : 그래도 지금은 연분홍치마가 운동 쪽에서 좀 알려지면서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정말 별의별 영상을 다 찍어본 거 같다.(웃음) 암튼 지금은 연분홍치마 활동비 명목으로 두 명에게 활동비가 지급되고 있는데 밀린 지가 좀 오래됐다. 그래서 CMS 제도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재정 안정화에 대해선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박타다가 걸린 사연


라이카 : 아무리 가족같다고는 해도 당신은 사무실과 집을 같이 쓰고 있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

이혁상 : 불편한 점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 너무 흉허물이 없다보니 (귓속말로) 얘네들이 노크를 안 하고 들어와.(웃음) 근데 이제는 서로 못 볼 거 볼 거 다 봐서 그런 불편함은 없는 편이다.

라이카 : 박타다 걸렸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웃음)

이혁상 : (웃음) 그 때가 명절 기간이었는데 명절 때는 연분홍사람들이 사무실에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당시 파트너와 맘 놓고 방에서부터 옷을 벗어가며 욕실에서 밀회를 만끽하고 있는데 일란 누나가 덜컥 들어온 거다. 잠시 당황해서 일단 나부터 나온 후 자연스럽게 일란에게 인사한 후 뒷수습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일란 누나도 다 알고 있었다며.(웃음)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런 얘기를 한다. 나중에 여성주의적 성적소수자를 위한 미디어 센터를 지어서 프로그램도 계발하고 대관도 해 주며 우리의 운동과 생활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 내자고.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연분홍 최대의 목표이다.(웃음)

라이카 : 그럼 작품들 얘기를 좀 해보자. 연분홍의 첫 작품은 기지촌 성매매여성의 실태를 다룬 ‘마마상’이다. 첫 작품이라 각별하겠다.

이혁상 : 다른 연분홍 활동가들에게는 각별했지만 나에게는 좀 그렇지 않았다.(웃음) 사실 우리가 처음에는 실태조사를 시작한 거였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던 와중에 다큐라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 거였다. 그 때 나는 촬영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성매매에 대한 고민이 좀 얕다보니 촬영하는데도 한계가 있었고 연분홍으로써도 첫 작품이다 보니 혼란이 좀 있었던 거 같다.

라이카 :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연분홍치마의 존재를 알린 건 아무래도 김일란 감독의 다큐 ‘3FTM’이 되겠다.

이혁상 : 그렇다. 여성영화제에서 주는 옥랑상을 받아 상금을 제작비에 보태기도 했고 다음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할 수도 있었으며 연분홍치마 제작의 첫 개봉작이기도 했다.

라이카 : 좀 난처한 질문인데 수익은 얼마나...

이혁상 : 한 500만원정도 벌은 거 같다. 그런데 개봉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자 활동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수익보다는 개봉이 가지는 의미가 더 컸던 거 같다. ‘3FTM’ 같은 경우에도 하다못해 팜플릿을 한 장 돌리더라도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알리는 캠페인의 효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라이카 : 트렌스젠더 이야기를 다루자고 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조합이 있었을 것 같은데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한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로 가닥을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이혁상 :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생물학적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체화한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즉 우리사회에 공고히 자리잡은 남성주의의 모순을 꼬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다.

라이카 : 그 다음이 홍지유, 한영희 감독의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를 거쳐 드디어 화제작(웃음) ‘종로의 기적’이 탄생되었다. 연분홍의 연혁이나 당신의 활동 경력을 봐도 첫 연출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탄생 ‘종로의 기적’


이혁상 : 나는 처음에는 극영화 쪽에 관심이 더 많았고 다큐를 고민하고 나서는 게이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친구사이’에서 게이다큐를 기획하고 연분홍치마에 제안해 주었고 연분홍 내부에서 회의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내가 연출을 맡게 된 거다. 사실 나는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역사를 다루는 다큐는 내가 좀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있지만 커밍아웃을 다루는 것 자체가 나 또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한편으론 이성애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게이 문화를 다루는 어설픈 영상을 넘어서서 게이가 다루는 게이다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연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라이카 : 이젠 제작을 마치고 개봉시기를 잡고 있지만 제작 기간이 엄청 길었다.

이혁상 : 2008년 6월부턴가 시작을 했으니 2년이 훌쩍 넘긴 했다.(웃음)

라이카 : 주인공이 30대 게이 네 명인데 그렇게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혁상 : 처음에는 다섯 명이었다가 한 분이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는데 다섯 명이었으면 한 세 시간짜리 영화가 나올 뻔 했다.(웃음) 처음 제의를 받고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있는 커밍아웃 인터뷰를 살펴보던 중에 소준문 군이 눈에 띄었다. 영화 감독을 하고 있어서 다른 분들하고는 차별화되는 매력적인 이야기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정욜 군과 장병권 군이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주자로 선정되어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활동의 일환으로 다큐를 찍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해 주었다. 물론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라이카 : 그럼 모두 흔쾌히 승낙을 한건가?

이혁상 : 지금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나도 몰랐고 그 친구들도 몰랐던 거 같다.(웃음) 그러다 마지막으로 최영수 군이 캐스팅이 되었는데 영수 군은 ‘친구사이’에서 추천을 해 주었다.

라이카 : 영수를 뺀 나머지 주인공들하고는 친분이 있었는데 영수는 처음 보는 사이라 좀 어색했겠다.

이혁상 : 물론 그런 면도 있었지만 나머지 세 명과의 관계도 그 전에는 좀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였었다. 촬영 초반에는 그냥 ‘안녕’하고 인사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이 년 이상을 같이 지지고볶다보니(웃음) 이제 이 친구들하고는 평생을 같이 가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영수의 경우는 낮을 가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초반에 좀 힘들었는데 거기다가 카메라까지 들이대면 영수가 더 움츠러들고 어색해했었다. 영화를 보면 영수의 가게에서 영수가 나물을 무치며 지금이 자신의 게이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말하는 장면을 찍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서로 어색한 사이라서 중간에 종걸(이전 커밍아웃 인터뷰 주인공)이가 항상 같이 있었는데 그날은 일찍 가야한다는 거다. 그랬더니 영수가 갑자기 당황하면서 역시나 말도 없이 설거지만 주구장창 했던 기억이 난다.

라이카 : 그러면 그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깰 수 있었나?

이혁상 :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친구사이’ 사람들과 여러 명 모인 술자리에서 영수와 거의 독대를 하며 술을 완전 떡이 되게 마신 적이 있었다. 영수가 그 때 당시 짝사랑 문제로 좀 힘들어 하던 때였던지라 이야기가 좀 진전될 수 있었던 거 같다. 게다가 웬만하면 내가 잘 안 그러는데...(웃음) 오버해서 와방 끼를 부렸다. 그러면서 서로의 본모습(웃음)을 좀 보게 되고 하면서 벽이 좀 허물어지고 영수는 카메라 앞에서도 편해졌던 거 같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촬영을 하는 날일 것 같으면 영수가 메이크업을 하고 오는 거다.(웃음) 어쩌다 촬영을 안 하면 기껏 메이크업을 하고 왔더니 촬영 안 하냐고 타박이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자연스럽게 육두문자도 튀어나오게 되었다.

첫 무대인사에서는 너무 떨어


라이카 : 오랜 제작 기간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영화는 완성되었고 그 이후의 반응은 폭발적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만큼 좋아 보인다.(웃음) 정리를 해 보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 경쟁부분에 진출해서 상과 상금을 받았고 그 이후에 인천 인권영화제, 서울 독립영화제 등 많은 초청 요청이 있었으며 영진위에서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다. 기분이 어떤가?

이혁상 : 폭발적인가?(웃음) 음, 아직 실감도 잘 나지 않고 내가 운이 좀 좋았던 거 같다. 그리고 솔직히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내가 아웃팅이 되거나 커밍아웃하는 거는 걱정이 없는데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다보니...

라이카 : 아, 주인공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부담스럽다는 말인가?

이혁상 : 그렇다. 물론 주인공들이 출연에 동의를 했었고 개봉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모르지는 않겠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개봉으로 인해 혹시 주인공들에게 예기치 않은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라이카 : 주인공들의 반응은 어떤가?

이혁상 : 그들도 판이 이렇게 커진 것에 좀 당황하는 것 같긴 한데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제 중심의 상영만 했으니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거고. 하지만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등 듬직한 모습들을 보여서 좀 안심이 된다.

라이카 : 무대인사와 관객과의 대화도 몇 번 했는데 재미있는 일은 없었나?

이혁상 : 첫 무대인사였던 부산영화제 때는 나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두 번째였던 인천 인권영화제 때는 그래도 경험이 있다고 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그 와중에 주인공 중 한 명인 준문 군이 나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짝 하는 바람에 당황한 기억이 있다.(웃음) 그런데 주인공이 좀 많다보니 앞으로 무대인사를 할 때마다 하나씩 나의 과거가 폭로되지 않을까 하는 살짝의 긴장감!(웃음)

라이카 : 제작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감독인 당신이 가장 많이 변한 거 같다. 어떤가?

이혁상 : 솔직히 영화 제작 중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까지 올 정도였다. 그리고 제작 중간에 안 좋은 일이 있지 않았나? 그걸 견뎌내기가 좀 힘이 들었던 거 같다.

다섯 번째의 주인공


라이카 : 그래도 영화는 주인공 네 명과 더불어 감독인 당신까지 다섯 명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이 년 이상을 이 영화와 함께 동고동락했는데...

이혁상 : 그런 건 있는 거 같다.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나는 좀 개인적이고 타인에게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년간 영화를 위해서 네 명의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니 이제는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법,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은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라이카 : 이제 연애하면 잘 할 거 같은데.(웃음)

이혁상 : 아니야, 그건 아니야.(웃음)

라이카 :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인가? 그 때 얼핏 60년대 70년대의 게이역사를 다루는 다큐를 기획하고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이혁상 : 음, 솔직히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고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다.

라이카 : 왜? 영화도 잘 만들어져서 반응도 좋은데?

이혁상 : 이 영화가 내가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 연분홍 회원 모두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영화가 좀 더 빨리 만들어질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연분홍 친구들을 덜 고생시켰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를 더 빨리 만들었더라면 이 영화를 꼭 보아야할 누군가에게도 이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크다. 그래서 이 영화를 도와 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들에 대한 나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사그라져야 다음 작품을 기획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연분홍 내에서도 내 프로젝트 때문에 미루어둔 작업들이 있는데 당분간은 그 일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라이카 : 영화를 본 연분홍치마 친구들은 뭐라고 얘기해주던가?

이혁상 : 사실 나는 이전에 연분홍의 다른 친구들이 감독한 작품들은 그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평가를 내리는 데에 인색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정이 많이 연기되고 하면서 연분홍 모든 친구들이 다 참여하게 되었고 그래서 연분홍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단단해진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감독 타이틀만 가지고 있을 뿐 공동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뿌듯해한다.(웃음)

라이카 : 마지막으로 ‘종로의 기적’ 개봉은 언제로 잡고 있나?

이혁상 : 친구사이 일정과도 논의를 더 해봐야겠지만 2월 말이나 3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개봉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된 인터뷰 기간 동안 이혁상 군은 특유의 달변을 보여주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머뭇거렸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고생과 도움 속에 탄생했고 본인을 한 단계 성장시켜주었던 그 영화, ‘종로의 기적’을 많은 분들이 보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혁상 님의 메일 주소는 pugsang@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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