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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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어느날,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무기수라고 소개한 그는, 동성애자로서의 기대되는 삶을 담담히 적어낸 나의 글이 실린 책을 보고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펜을 들었노라고, 자신도 게이인데 어디에도 말할길 없는 답답함을 알리고 싶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그 편지를 읽고서, 나는 반가움과 함께 희망을 발견하였다. 누군가가 고이 엮어낸 삶의 이야기가, 때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잔잔한 파동으로 다가가 큰 울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에.

 

그/녀의 이야기, 곧 나/우리의 이야기

 

이렇게 나의 이야기가 곧 그의 이야기에 융화됐듯이, 작품 속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그네들 삶의 자락을 펼쳐내는 이야기는 곧 나/우리의 그것과 연결된다. 그것은 곧 '정체성'이라는 개념으로 대변되는데, 이야기속 인물들처럼 한 사람의 본질이자 가치관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 정체성이 주류와 다를때, 그/녀는 본의 아니게도 곧 소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인생은 다수가 쳐놓은 울타리 밖에서 맴돌게 되고, 때로는 아픔과 상처를 겪으며 더욱 단단해지거나 무참히 꺾여버린다.  

 

일반적으로 평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들의 삶을 접하면서 느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좌절하거나 소외된 마음에 슬퍼하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하는 이들도 있고, 그 누구의 말보다도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친구들도 찾을 수 있었다. 결국에는 주어진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좀 더 나은 삶을 바라며 정진하는 장면들이, 굳이 활자를 갖다붙이지 않더라도 생생한 그림으로 벅차게 다가온 것이다.

 

차별은 남의 일이 아니다

 

비단 책에서 접한 힘겨운 상황이나 소외되어 서글픈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차별은 우리 삶 곳곳에 담겨있다. 가까이는 타고난 신체적 차이에서 오는 차별부터 멀리보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관계에 의한 을의 반란까지, 차별의 모습과 폐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간 군상 속에서, 내가 먼저 차별하지 않으면 되레 차별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야기에 우리는 어떤 덧칠을 입혀 더 나은 삶을 꿈꿀 것인가. 먼저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과 애정, 그에 따른 부단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다음은 그것이 나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이며, 나아가 한 목소리로 반차별을 노래할 수 있도록 뜻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지 상관없는 상대방의 정체성, 나와는 별개의 문제로 본질을 마주하기보다는, 그/녀의 간절함이 헛된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관심과 지지가 이어질 때 비로소 변화를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귀 기울이기. 응답하기. 연대하기.

 

다수가 이성애자인 사회 속 한 사람으로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최근에서야 확고히 깨닫게 된 본인에게는 뚜벅뚜벅 자욱을 남기는 이번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깊숙이 뇌리에 박혔다. 내가 보기에는 특이할 것도 없고 유별날 것도 없음에도, 그토록 다양한 삶에서 베어나온 차별들이 그려낸 풍경은 참 아찔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그 전에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어떠한 형태로든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나/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최선의 행동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갈길은 아직 멀다. 차별금지법은 몇년째 표류 중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차별들도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는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결코 지치지 말고 응원하자. 더 많은 이야기가 울려퍼지고 더 깊은 신뢰가 쌓일수록 더 큰 힘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지 않는가, 헌법 제10조와 제11조 1항에 명시된 것처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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