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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앨리슨 벡델, <재미난 집>

 

 

지난 8월에 책읽당에서 읽었던 책은 앨리슨 백델(Alison Bechdel)의 『재미난 집(Fun Home)』 이었다. 문학이라는 것은 대부분 구체적인 문화적, 시간적, 언어적 관점에 의하여 서술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퀴어라는 공통적 렌즈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워낙 독특한 구성 탓에 다른 문화권에서, 특히 번역본으로는 저자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만화적 구성이 가지는 기대감과 반대되는,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었다.


우선 원제 "Fun Home"은 한국 번역처럼 단순한 "재미"를 뜻하는 것 외에도 "장례식장"을 뜻하는 "Funeral Home"의 줄인 말로, 작가의 부모가 종사했던 장례식장에 얽힌 작가의 기묘한 어린 날의 추억들을 "Fun"이라는 단순하고 다소 엉뚱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위트와 냉소주의의 표출이다. 또한 원제에는 부제로서 "A Family Tragicomic"이라는 표현이 붙음으로써, 비극의 "tragedy"와 희극의 "comic"을 합성하여 작가 스스로도 이 기묘한 스토리들로 둘러싸인 자서전을 쉽게 정의할수 없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한국말 번역인 "재미난 집"은 마치 작가가 자신의 과거 기억들을 "단지 재미있었다"라고 치부하는 그릇된 인상을 준다.


원제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포맷에 있어서도 이 책은 출판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소설만화 (graphic novel)라는 독특한 매개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만화(comic)라고 보기에는 문체가 굉장히 길고 난해하여, 미국 현지의 책 서평가들조차 인텔리 부모 밑에서 자라 독서광이었던 저자의 수준 높은 단어 수준에 종종 사전을 뒤적거려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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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집』에 실린 삽화 중 일부.




이 독특하고 난해한 서면체와 미화되지 않은 현실적 그림의 조화에 대해 저자는 청소년기에 시작된 자신만의 예술적 소통수단이라고 한다. 그녀는 2009년 시카고대학에서 강연하면서 자신은 어렸을때 그림과 글쓰기를 둘다 좋아하고 즐겨했으나, 예술학교에 들어가기엔 그림실력이 부족하여 낙방하였고, 창작 프로그램에서는 표현력이 부족하다며 입학을 거절당했다. 또한 반항적인 10대 청소년으로서 이미 미술적 재능이 있었던 엄마와 글쓰기에 타고났던 아빠의 뒷자취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싫어 그 두 가지를 결합한 그래픽 노블이라는 매체에 심취한 것이 자아의 독립성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재미난 집(Fun Home)』이 작가의 어린시절 자서전이라고는 하나, 이 작품은 사실상 자신의 냉철하고 모순적이었던 아빠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는 부녀 관계의 회고록이다. 작가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는 2007년 『재미난 집』을 출판한 후에, 2013년에는 『당신이 나의 엄마인가요?(Are You My Mother?: A Comic Drama) 』라는 모녀 관계에 초점을 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냉소적이고 애정 없는 은둔형 영어교사로 서술을 시작한다. 실제 자식인 엘리슨과 동생들에게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편집증적으로 빅토리안 양식의 집과 가구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은 시그먼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예술 승화설(aesthetic sublimation: 불만족스런 성적 욕구 곧 리비도를 문학이나 미술로 승화한다는 가설)”에 대입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자식들의 가정교사나, 동네 소년들과의 밀회를 제외한 일반적 부부관계에 만족을 느낄 수 없었던 그는 시와 문학 또 집안의 기괴한 가구들로 그의 내면적 공허함을 채우려 했다.


앨리슨은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것과 그의 죽음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문학 중 최고로 손꼽히는 이 작품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명예, 사회적 지위, 사랑을 통하여 인생의 궁극적 만족을 꾀하지만 다 부질없음을 깨닫고 일상의 예술과 주위환경에 감사하는 맘을 인생의 덕으로 삼았다. 앨리슨은 이 소설을 읽은 아버지가 그의 일생에는 불가능했던 동성연인과의 사랑이나 시골학교의 영향력 없는 영어교사로서의 무기력함을 위로 받고 승화시키려했다고 결론짓는다.


1960년대의 보수적인 작은 펜실베니아 마을에서 클로짓된 게이로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지는 2015년 현재 대부분 대도시에 사는 우리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가 뉴욕의 게이 네이버후드에서 느꼈던 자유와 해방감은 종로로 자주 모이는 우리와도 동질감이 전혀 없지 않았다. 이 책의 결말에 가서도 큰딸 앨리슨은 이 기묘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때론 증오하고 때론 감사하기도 했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완벽히 정리하지는 못한 채 끝낸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 명의 퀴어가 숨어 지냄으로 인한 비극을 넘어서서 이 사람의 가족과 나아가서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교란스러울 수 있음을 깨닫고, 조금 더 관용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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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벡델, 김인숙 옮김, 『재미난 집』, 글논그림밭, 2008.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8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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