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틀림'이 아닌 '다름'을 위한 지향 - 헤나 디, <무지개 속 적색>

by 크리스:D posted Oct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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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이 아닌 '다름'을 위한 지향

- 헤나 디, <무지개 속 적색>

 

 

 

성소수자의 인권은 의외로 간결한 원칙과 주장을 담고 있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고 정당하고 동등한 인권을 갖는다.’ 좀 더 본질적으로는 ‘성소수자도 사람이다.’라는 원칙이다. 이 간결한 원칙과 주장을 사회에 공론화하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끈질긴 노력을 해야 했다. 이 노력에는 퀴어퍼레이드 시초을 마련한 스톤월 항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뉴욕의 맨하탄에서 벌어진 스톤월 항쟁을 기점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운동 역사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학자 혹은 필진들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역사를 짚어나간다. 그리스에선 남성 동성애 행위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젊은 남성과 지혜가 쌓인 성인 남성이 육체적으로 교감하게 되면 젊은 남성에게 지혜가 전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 저서 <향연>에서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려고 했던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은 성소수자의 옹호를 위한 자료로 많이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동성애는 질병 혹은 혐오스러운 짓이 되었다. 이는 중세의 기독교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성행위는 오직 ‘생산(출산)을 위한 행위’로만 여겨졌으며, 그 이외의 행위는 금지됐다. 정절이나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에서 성은 오직 출산을 위한 수단으로 지위가 강등됐다. 성은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의제가 됐다. 성적 욕망이나 이와 관련한 쾌락은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 됐다. 그러니 동성애는 당연히 ‘이상한’ 짓이었다. 


근대도 이와 같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지개 속 적색>에서는 부르조아지 혹은 기득권층이 지속적인 노동력 창출을 위해 동성애 혹은 성소수자를 억압하고 금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꾸준한 노동력 창출과 노동착취를 위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도록 했으며, ‘성’에 대한 담론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도 이 영향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저자 해나 디는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역사를 그리스에서 시작해 독일과 러시아를 거쳐 스톤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담아내고 있다.




프라이드2.jpg 

▲1985년, 게이와 레즈비언 단체가 영국의 탄광 파업에 

모금 활동으로 참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프라이드>.

영국에서 작년 9월 개봉했으며, 국내 개봉은 미정.




<무지개 속 적색>은 제목과 머리말에서부터 사회주의적인 향을 풍기고 있다. 성소수자의 억압과 금기가  바로 자본주의와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 해나 디의 주장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에 바탕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거대 담론을 담고 있다. 사회, 정치, 문화의 문제를 하나의 의제로 끌어오기 때문이다. 그 귀결점은 바로 경제다. 생산의 증대와 이윤창출 그리고 분배, 계급논쟁으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간다. 생산 수단을 점유한 부르조아지, 그리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프롤레타리아와의 분쟁이 그것이다. 저자 해나 디는 이 안에서 성소수자의 문제를 부각시켜 그 인권의 운동을 서술해 나간다. 필자의 의견으로, 이 책은 ‘무지개 속 적색’이 아니라 ‘적색 속의 무지개’라는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마르크스주의라는 거대 담론은 성소수자의 문제도 그 안에서 논의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거대 담론은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한 권리 투쟁의 발판과 시금석도 마련해주기도 한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이론이나 혹은 운동·투쟁들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진보주의라는 물결 안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운동이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그 이론적 바탕 아래 영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마르크스주의 혹은 사회주의 계열의 영향 혹은 그 흐름 안으로 묶어내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오를 범한 것이 이 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톤월 항쟁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사회로 급격히 부상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이란 무엇인가?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논의해야 되는가?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변화되는 분자보다는 합의된 분모를 먼저 생각하자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제에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분모는 있다. 정치를 보수와 진보로, 문화를 고급과 하위로, 경제를 어떤 분열로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인정하고 있는 공통분모가 그 저변에 있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자유를, 또 다른 누군가는 해방을 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다름을 인정하되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림’과 ‘다름’은 같은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르게 태어났지만, 틀리게 태어나지 않는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해방론자의 거대 담론에서도 이는 무시되지 않는다.




[56호][서평] '틀림'이 아닌 '다름'을 위한 지향 - 헤나 디, [무지개 속 적색].jpg 

▲헤나 디, 이나라 역, <무지개 속 적색>, 책갈피, 2014.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1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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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당 회원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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