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챠밍스쿨]강좌13 : 시각예술의 역사와 동성애


챠밍스쿨 13번째 강좌는 '시각예술의 역사와 동성애'입니다. 오늘, 미술에서의 동성애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놓고 이정우 평론가와 함께 새롭고 도발적인 시각 세계와 조우해보시기 바랍니다.

강사 : 이정우(임근준) | 미술·디자인 평론가, 무크 [디자인|텍스트] 동인
일 시 : 3월 14일(일) 일요일 오후 다섯시

별도의 참가비는 없습니다.

장 소 : 문예아카데미(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1강의실
약 도 : 맨아래 참조


강좌 발제 자료 중 '들어가며'


시각예술의 역사를 고찰하는 다각적인 노력의 하나로, 시각예술에서 동성애자라는 정체와 동성애라는 욕망이 어떻게 표현되고, 재현되고, 활용되어왔는가를 살핀다면, 그 작업의 의의는 무엇일까? 최근의 미술사 및 시각문화연구에서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다루는 빈도가 높아진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말처럼 타자들이 '바보들의 배(Stultifera Navis)'에서 해방되어 정상성의 영역으로 되돌아오는 탓일까?

시각문화연구와 미술사에서 동성애를 연구하는 일은 동성애자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의 일환으로 봐야 하나? (오늘날에도 게이·레즈비언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이성애자 미술사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니면 동성애와 동성애자는 그저 이성애와 이성애자의 모습을 비추는 타자의 거울로 활용될 뿐일까? (낸 골딘(Nan Goldin)류의 사진 전시들이 구사하는 "나는 당신의 거울이 되겠어요(I'll be your mirror)"류의 전략은 어딘지 모르게 '엉클 톰'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게이·레즈비언 관련 작업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굳이 '이성애자에게 효용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차별 기제의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각문화연구와 미술사에서 동성애를 연구하는 일에 언급한 바 이상의 과학적/미학적 의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포스트-휴먼 이론의 주요 논자 가운데 한 명인 캐서린 해일즈(Katherine Hayles) ― 그는 이성애자다 ― 는 자신의 이론적 여정에서 '동성애'가 중요한 축을 이뤘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해일즈의 자가-해명에 해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현대미술사학회의 제4회 학술 심포지움에서 우리가 '동성애'를 키워드로 미술사 연구를 시도하는 데에는 어떤 배경과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오늘, 미술에서의 동성애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강좌 참가시 무료로 발제문을 배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