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스케치] 나의 퀴어퍼레이드 참가기
2016-06-20 오후 13:54:48

[활동스케치] 나의 퀴어퍼레이드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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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갔다.

 

친구사이에 처음 나온 지는 10개월(정회원이 된지는 이제 막 4개월), 책읽당 당원으로 6개월, 소식지 회원으로 3개월 째 삶을 살고 있다. 취준생이고 지방에 사는지라 엄청 대단한 활동을 하진 못하지만 친구사이에 나오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아직 퀴어퍼레이드의 여흥과 감동 그리고 피곤함이 다 가시질 않았는데 이렇게 참가기로 들뜬 마음을 정리해 본다.

 

나는 읽고 쓰는 게이들의 일원으로 이번 퀴퍼에 참여했다, 사전 준비과정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해서 팀원들에게 많이 미안했고, 그래서 퀴퍼 당일 할 일이 생기면 열일해야지라는 각오로 있었는데 퀴퍼 전날 소식지 팀장 크리스 형이 연락을 했다. 홍보팀 인원 결손이 생겼다고 홍보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답장을 했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았다. 처음으로 광장에 나간다는 설렘, 그리고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하는 걱정(후훗. 이미 알고 있단다, 중기야) 때문이었겠지. 새벽이 다 지나갈 때 겨우 잠에 들었다.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잠에서 깨어나 부랴부랴 서울로 가는 준비를 했다. 나름 준비한 새 옷을 입고, 새 가방을 들고, 선글라스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가 선선한 게 예감이 좋았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11시 전에 서울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미리 도착한 회원들이 부스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지만(머...멋져!).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던 시청 하늘은 적당히 흐렸고, 그래서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이젠 축제를 즐길 일만 남았다!

 

 

2. 보라. 게이득 축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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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퀴퍼에 친구사이에서는 친구사이 사무국, 지보이스(지보이스-위켄즈), 읽고 쓰는 게이들(책읽당+소식지) 이렇게 세 팀이 두 개의 부스를 함께 운영했다. 사무국에서는 단체 안내와 친구사이 후원을 위한 홍보를, 지보이스에서는 지난 베를린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위켄즈’의 홍보와 따끈따끈한 앨범과 여러 상품들 판매를 주로 했고, 읽고 쓰는 게이들은 홍보와 함께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아 낸 소식지 ‘스물 셋’과 두 권의 문집, 그리고 ‘섹시한’ 얼음물을 판매했다! (얼음물을 챙겨서 집에 가져왔어야 했는데...시무룩)

 

난 이욜형과 함께 디자인팀이 만든 몸자보(팔리고 싶어요)를 두르고, 부스 안내가 적힌 예쁜 명함을 챙겨 광장을 돌며 부스 홍보를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는 게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웃으면서 명함을 받아주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점점 쉬워진 것 같다. 물론 넉살좋은 욜형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우기도 했고. 우리가 홍보를 할 무렵에는 아직 광장이 가득차기 이전이라 욜형과 함께 부스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홍보를 할 수 있었다. 게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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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스를 돌아보진 못했는데, 몇 군데에서는 작은 행사에 참여하고, 판매하는 상품들도 뒤적거려 보고, 구매도 하면서 홍보를 했다. 작년에 정말 열심히 들었던 퀴어팟캐스트 ‘게성시대’, 항상 감동을 주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책읽당과 인연이 깊은 ‘이야기 채집단’, 젊음과 열정이 부러웠던 여러 대학의 성소수자 동아리 부스와 멋진 훈남들이 가득했던 여러 나라의 대사관 등등 퀴어퍼레이드답게 정말 다양하고 멋진 부스들이 가득했다. 부스를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같이 홍보를 했던 욜형과 많은 얘기도 하고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더 친해지고 끈끈해진 느낌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욜형과의 홍보를 마치고 다른 팀원들과 교대를 했다. 우리 부스 앞에서는 지보이스 멤버들이 짧은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아직 광장이 가득차지 않았던 때에도 이 공연에는 구름관중이 모였다. 지보이스 형들의 섹시한 댄스... 이건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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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졌다. 예상된 소나기였지만 조금 원망스러웠다. 바로 개막무대 공연이 시작됐고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준비된 공연은 이어졌다. 지보이스는 단독 공연도 하고 아는 언니들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뒤풀이에서 현식 단장님은 준비한 만큼 못 보여준 것 같아 속상해 하셨지만 비 오는 와중에도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 지보이스에게 박수를!! 그리고 비가 오는데도 꿋꿋하게 무대를 바라보며 응원해줬던 사람들도 멋졌다. 역시 축제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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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는 행진한다.

 

이후 소나기는 내리다가 멈추다가를 계속 반복했고, 퍼레이드 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늘이 조금씩 갰다. 그리고 드디어 다가온 퍼레이드.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정말 심장이 쿵쾅쿵쾅 너무 떨렸다(쿵쾅 우워우워). 집회 행진 때나 걷던 서울 거리를 게이라는 이름으로 걷게 된다니! 게이로 정체화를 하고 나서 퀴퍼를 생각하면 서울 도심을 행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 순간이 정말 다가오다니! 괜스레 뭉클했다. 행진에는 ‘행이’와 함께 참여했는데, 우리는 초반에 친구사이 트럭을 놓치는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가서 명동성당을 지나서야 친구사이 대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지도를 찾아보니 이미 행진의 1/3이 지난 후였다!!)

 

친구사이에서는 퍼레이드를 위해 보라색으로 예쁘게 꾸민 트럭을 준비했다. 완야형, 카노형, 오웬님, 싸게가 트럭 위 무대를 꾸몄다. 땀흘려 도착한 친구사이 트럭 뒤 대열에서 우리는 행진했다. 이미 대열에 있던 친구사이 회원들은 멋진 글귀가 쓰인 판넬을 들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같이 땀을 나누며 행진했다. 트럭에서는 달궈진 몸을 더 뜨겁게 하는 신나는 음악들이 흘러나왔고, 무대 위 댄서들은 아찔한 춤으로 행진 대열을 열광시켰다. 정말 더웠고,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했는데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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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찰들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행진을 이어갔다. 차도 위의 우리, 경찰띠, 그리고 인도 위의 시민들. 뾰로통한 일부 시민들의 표정에서는 마치 우리가 특이한 구경거리라도 된 느낌이었는데, 명동을 지날 때쯤이었나? 명동 거리에서부터는 도로를 향해 손 흔들어 주는 시민들의 응원과 호응이 점점 많아졌다.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거나 차도 위에서 울리는 음악에 같이 리듬을 타는 시민들. 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가슴 속에 뜨거운 게 올라오곤 했다. 언젠간 우리 사이에 있는 경찰띠도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중간중간 혐오세력들이 인도에서 우리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지만... 무섭지도 짜증나지도 않았다. 잘 안 들려서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훨씬 수적으로 많다고 느껴서 그랬을까? 우린 지금 이렇게 신이라도 나지. 저 사람들은 얼마나 덥고 짜증날까, 생각하면 그냥 조금 안쓰럽고 불쌍했다. 그리고 참 노오력한다는 생각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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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 정도의 퍼레이드를 마치고 시청 광장으로 돌아왔다. 회원들과 물품 판매를 마무리하고 부스를 정리했다. 중간에 내린 몇 번의 소나기로 불필요한 쓰레기들이 생겼지만, 퀴퍼 주최 측에서 마련한 분리수거장을 이용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역시 우리는 매너남들!)

 

정리를 마치고 광장 무대에서 이어진 ‘낙시스’팀의 축하 무대를 봤다. 3명의 게이와 한명의 MTF 트랜스젠더로 이루어진 낙시스.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몇 번 볼 수 있었는데 그동안 흘린 땀이 아깝지 않게 정말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무대였다. 실물만큼 카메라에 잡힌 모습도 멋졌다는!!

 

정해진 일정을 마치고 종로에 모여 친구사이 회원들과 다 같이 뒤풀이를 했다. 술 한 잔에 오고가는 많은 얘기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자기의 재능과 시간을 보태서 이 날을 꾸몄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모두가 서로의 노력에 더 박수를 보냈고 격려했다. 친구사이에는 멋진 사람들이 참 많다. 촌놈 아니랄까봐 긴장해서 더 열심히 놀지 못했던 아쉬움도 조금은 남지만, 처음으로 게이라는 이름을 걸고 거리를 걸었고, 같이 땀 흘리면서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도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p.s. 그럼에도 나는 그래야만 한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축제의 열기만큼 뜨겁지 못했고, 그래서 더위의 짜증보다는 주인공이 된 기쁨이 더 컸다. 일생을 죄라도 지은 듯 가면을 쓰고 살던 사람들이 오늘 하루라도 가면을 벗어 던지는 큰 결심을 하고 광장으로 나왔다. 우리들의 이 멋진 외출 한 편엔 여전히 혐오세력이 있었다. 이렇게 특별한 날 우리를 반기는 게 고작 이런 사람들이라니. 이건 옳지 않다.

 

그럼에도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었다.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일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이 연대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까? 퍼레이드 대열을 향해 손 흔들던 시민들도 우리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축제는 끝났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때다. 뭔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면, 이 감정은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들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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