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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성정체성에 대해서 자긍심을 느끼던 시기였고,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저는 곁에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느낀 것이 커밍아웃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급작스럽게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충격을 받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님인 만큼 자식으로서 죄를 짓는다거나 불효를 한다는 생각들은 이반들이라면 저마다 한번씩 해보았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성정체성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 죄를 짓거나 말 못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고 .. 평소에도 자식이 행복하게 살면 부모 마음도 행복해진다는 아버지의 말씀도 있어서 .. 조금의 기대는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나 동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나 언론매체, 도서, 영화 등을 어머니와 함께 보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 '내가 만약 동성애자라면 어떨것 같냐.' 라는 식의 충격을 줄여주는 질문을 종종하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가 남자인데, 남자를 좋아한다더라 ..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냐." 라는 질문이라던가, "내 친구가 내가 좋다고 고백을 했는데, 나는 이성애자여서 미안하지만 사귈 수 없다고 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 "나는 동성애자들은 아주 문란하고, 나쁜 사람들일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 "나에게 고백한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착한 친구라서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것이다." 같은 .. 부모님들이 동성애자에게 갖고 있는 두터운 편견도 해소할 수 있도록 ..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을 주기적으로 썼습니다. 15살에 시작한 커밍아웃 준비기간은 3년 동안 계속적으로 지속되었고, 17살이 되던해. 저는 어머니께 먼저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처음에 어머니는 많이 놀라신 얼굴이었고, 한동안 서먹하게 지냈습니다만 .. 먼저 말을 붙이고, 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점,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을 뿐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 했더니 .. 어머니와의 관계는 예전처럼 좋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커밍아웃 이후에 제가 '사춘기라 그렇겠지.' 하셨지만, 커밍아웃 이후에도 끊임없이 성소수자와 관련된 대화주제로 대화를 시도하였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를 함께 보는 시간도 갖었습니다. 제가 동성애자인 것을 믿지 않으려던 어머니에게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 "엄마, 우리 애인 잘 생겼지?" 했더니,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어머니는 "니가 좀 아깝네." 하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순간에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조금은 눈치를 채고 계셨는데, 어머니가 아버지께 말씀을 하시면서 자연스레 커밍아웃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나는 유리가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누굴 사랑하던지 상관없다."라고 철저히 못박으셨던 점 .. 아버지는 아직도 제가 게이인 것을 믿으려 하지 않으시지만 .. 앞으로 더 많은 노력으로 저의 성정체성이나 저의 사랑 또한 인정받고 싶습니다.

커밍아웃을 천천히 준비해가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나 자신이 성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의 혼란과 시간들의 2-3배쯤 되는 노력을 상대방에게 쏟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커밍아웃 하는 '나'는 어느정도 준비되어 있지만, 나의 성정체성 여부를 받아들일 상대방은 무방비 상태인 만큼 .. 적절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커밍아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커밍아웃 이후에도 끊임없이 커밍아웃 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더 당당해지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상대가 나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 때때로 그것이 상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게 겁이나고 두렵다고해서 .. 자신의 삶을 숨기며 살아간다거나,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제가 인권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부모님은 별 말이 없으시고, 가끔 격려해주시기도 합니다. 이제는 오히려 제가 어떤 일을 인권단체에서 하는지, 왜 하게 되었는지 등을 먼저 물어봐 주시기도 하는 .. 지난 3년간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인권모임을 갖고 모임을 하게 되면서 커밍아웃을 자연스레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봅니다만, '가족에게 알려져도 괜찮다.'는 그 생각 덕분인지, 더 당당해질 수 있는것 같습니다. 커밍아웃 성공 이후에 오는 자유는 ..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이 자유, 해방감 .. 여러분도 꾸준히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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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저와 제 동생, 제 애인이 한 자리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도 했고 .. 지금은 사촌누나, 이모가족들도 제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교시절 300명의 친구 가운데, 299명을 잃고 .. 저를 항상 지지해주는 이성애자 친구 1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커밍아웃은 아직도 -ing 입니다.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6-15 20:44)

움파룸파 2012-10-11 오전 02:36

진짜 멋잇으세요.. 앞으로도 화이팅 하셨으면 좋겠어요 ㅎㅎ

사무국 2007-05-25 오후 22:10

참 현명해 보입니다. 유리님!! 좋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짝짝짝!!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