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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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당당한 미소가 아름다웠던 故 변희수를 기억하며
– 트랜스젠더, 여군, 그리고 변희수
| 그녀는 단 하루도/ 죽음을 떠올리지 않은 적 없었다/ 평생 동안 사랑해온 단 한 명을 대하듯 했다/ 그녀의 방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그녀가 조용히 슬리퍼를 끌고/ 먹을 것을 챙겨 먹으며/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 시를 썼다/ 약간의/ 약간의/ 아주 약간의 웃음 속에서/ 맹렬히/ 맹렬히/ 거의 모든 것과 맞서다가/ 그 방에서/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이대로 고요히 사라지고 싶다고 혼잣말을 했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뱅글뱅글 파고들고 파고들고 파고들다가/ 그것이/ 사랑을 시작하는 얼굴이란 걸/ 알아챌 때도 있었다 – 김소연, 「이 느린 물」,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2023. |

▲ 2022년 2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고(故)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 문화제, 출처: 연합뉴스.
1.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만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사람이요. 말 한번 나눈 적 없어도 소설을 읽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요. 그 사람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릴 때마다 미안함이 밀려오면서도, 그가 꿈꿨던 미래를 촉진하리라는 믿음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나게 해주는 사람이요. 저에게는 변희수 하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2020년 1월, 희수씨가 “성별 정체성을 떠나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되겠다.”라며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저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젠더 다 좋은데, 왜 하필 군인이야.’라고 무심히 넘기며, 당시 희수씨가 감당했을 세상의 무게를 외면했었어요. 사회의 근본 모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얄팍한 정의로움이, 한 사람이 삶으로 이끌어낸 용기를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였고, 고작 ‘군사주의’로 곡해했던 것이지요.
그때의 저는 서른을 넘겼어도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어플을 까는 것도, 종로에 나가는 것도 두려워했어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무지함이 누군가의 꿈을 외면하는 힘으로 작동했던. 참으로 무례하고 미련한 겁쟁이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희수씨를 다시 만난 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마음먹고 생애 처음으로 퀴퍼에 나갔던 2022년 7월이었습니다. 누가 알아볼까 두려워 모자에,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섰던 시청 광장 한편에는 희수씨를 기억하는 부스가 차려져 있었어요.
저는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지나서야 그녀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했어요. 대다수 기사에는 “트랜지션-강제전역-죽음(순직)”으로 희수씨의 삶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기획 기사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료, 활동가들의 인터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혼란과 고독 속에서도 끊임없이 결심을 세우며 삶을 밀고 나갔던, 그리고 책임감만큼이나 다른 생명에 다정했던, ‘변희수’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 글은 우리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 기자회견의 한 장면이 아니라, 숱한 결심 끝에 우리 앞에 섰던 ‘변희수’로, 그리고 또 다른 결심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2.
1998년 6월 11일, 희수씨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희수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별)정체성을 고민했고, 대다수의 퀴어들과 비슷하게 ‘신에 대한 원망’과 ‘전생을 탓’하며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특히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남성)과 본인이 인지하는 성(여성)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갈등과 위화감인 ‘젠더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성별위화감·성별불일치)’를 경험하였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겪었을 정도로 자기 몸을 거부하였지만, “기왕이면 의미있는 곳에 이 한 몸 희생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청소년 시기에 사회운동에 나섭니다. 중학생이 된 희수씨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거리에 욱일승천기를 깔아놓고 밟는 캠페인과, 북한인권법 제정 등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본인도 밝혔듯이 다소 ‘국수주의적’인 활동이었죠. 경찰에 붙잡혀 갈 만큼 희수씨는 청소년 시절을 ‘강성 운동권’으로 보냅니다.
사회운동을 통해 키워온 애국심은 곧 군인이라는 꿈으로 영글어졌어요. 희수씨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한 주변의 뜻을 물리치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도 멀리 떨어진 전남 장성의 부사관 고등학교(삼계고)에 진학합니다. 전쟁사와 병기를 설명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서, 고교 동창들에게 ‘군대 위키백과’라고 불렸던 희수씨. 꿈에 가까워질수록 열정을 불태웠던 고등학생 희수씨는 “정체성의 문제를 느낄 틈이 없었”을 정도로 군인이 되겠다는 목표 하나에 전념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도 전인 2016년 9월, 희수씨는 입대했습니다. 이후 2017년 3월 1일, 육군 6군단 5기갑여단 전차 조총소수 부사관으로 임명되었어요. 40: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본인이 바라던 군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타고난 군인’이라고 언급됐을 만큼 군 생활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어요. 소속 대대 하사 중 유일하게 자신의 주특기인 전차조종에서 A등급을 받았고, 공군이 주최하는 UCC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공군 참모총장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군인-되기에 몰두하면서 남겨두었던 숙제인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더욱 깊어졌어요. 희수씨는 꿈을 이뤄 나갔던 이 시기를 “마음 또한 무너져 내렸던” 나날로 회고합니다. 남성성의 원리를 규범으로 삼는 초남성 조직인 군대에서 희수씨는 이성애를 바탕에 둔 성별 이원화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거울 속 자기 몸을 보기 싫었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졌고, 부정의 정동이 희수씨가 그토록 바라던 꿈마저 집어삼켰습니다. ‘군에 남을 것인가, 자신의 성(性)을 찾을 것인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집요한 물음에, 희수씨는 과감하게 자신이 바라던 두 개의 ‘-되기’ 모두를 이루리라 결심합니다. 어느 하나 포기할 이유 없는, 그 자체의 ‘변희수’이기 때문입니다.
3.
희수씨는 국군수도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부대 상관에게 두 개의 꿈이 포개진 트랜스젠더 여군이 되겠다는 결심을 알렸습니다. 다른 이들이 회피하는 최전방에 배치되더라도 군복무를 수행하고 싶다고도 밝혔습니다. 이 결심을 밝혔던 때가 2019년 7월쯤이었습니다. 부대 동료들은 물론 지휘관들까지 희수씨의 결심을 응원했어요. 동료들의 응원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우며, 군 어딘가에도 자신의 꿈을 실현할 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라기에 충분했을 거예요.
10월 8일, 희수씨는 의료수술을 목적으로 국외여행 허가 신청을 냈고, 일주일 뒤 여단장은 이를 승인합니다. 여단장과 군단장 모두 꽤나 위험한 수술을 받을 희수씨의 건강을 걱정했고, 무사히 회복하여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희수씨는 11월 29일 태국 라즈부라나 종합병원에서 트랜지션 수술을 마쳤고, 12월 23일 귀국하여 국군수도병원에서 ‘현재 여성의 외부성기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군은 스스로 존재를 규정하고 성원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희수씨에게 강제 전역을 명령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전역심사위원회를 연기할 것을 권고했지만, 2020년 1월 22일 육군본부는 끝내 희수씨를 ‘심신장애 3급’(음경훼손 5급, 고환적출 5급을 종합한 결과)으로 분류하여 전역 결정을 강행했습니다. 군은 군 직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성전환 후의 신체에 대해 ‘심신장애’로 판정했습니다. 군의 결정은 남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을 장애로 간주하고,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군복무를 봉쇄한 부당한 처사였습니다. 즉,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사회적 배제의 중심에는 대한민국 군대가 자리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강제 전역이 결정된 그날, 희수씨는 기자회견 석상에 섰습니다. 본래 예정되지 않았던 신상공개였지만, 당사자가 나서야 문제 해결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희수씨의 뜻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초조함과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몇 차례 울먹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거쳐 온 시간과 그때마다 세웠던 결심이 그녀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심을 지켜줬던 동료들에 대한 믿음으로, 희수씨는 군의 부당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자기 안의 위화감을 떨쳐내기 위해 싸워온 희수씨는, 이제 자신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배제하려는 차별과 폭력에 맞섰습니다.
희수씨는 기자회견 이후 전역처분 취소 인사소송과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의 꿈이자 믿음을 지키고자 투쟁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숙명여대 입학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그녀가 겪을 비난과 혐오를 걱정했고 “반드시 살아남아” 사회의 변화를 함께하자는 위로도 건넸습니다. 희수씨는 자신의 문제를 넘어 차별 없는 군대를 만들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마다 경멸과 조롱으로 벼린 말이 희수씨를 겨냥했지만, 그녀는 당찬 모습으로 우리에게 화답했습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하하”
▲ <한겨레>가 공개한 변희수님이 숙명여대 A님에게 쓴 손편지. 출처: 변희수.
4.
희수씨가 숨진 채 발견된 날은 2021년 3월 3일이었습니다. 2월 27일까지 지인과 연락이 닿았지만 그 이후 끊겼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활동가들이 급하게 청주로 내려갔습니다. 군은 희수씨의 죽음을 군인의 신분인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의무복무 전역 이후인, 즉 민간인 신분에서 사망을 의미하는 3월 3일을 사망시점으로 고수했습니다. 희수씨의 전역 예정일이 2월 28일이기 때문입니다. 희수씨가 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반성하기보다, 재빠르게 죽음의 시점을 왜곡하여 기필코 그녀를 세계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잔인한 시도가 전개되었습니다.
시민사회는 사망시점을 둘러싼 논란에 맞서 희수씨의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수계를 결정하며 법정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도 청주상당경찰서는 희수씨의 사망시점을 2월 27일 17:43~21:25로 발표했습니다. 10월 7일, 대전지방법원은 희수씨를 대상으로 한 군의 전역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해를 넘겨 6월 24일 한국의 첫 트랜스젠더 여군인 희수씨의 자리가 국립대전현충원 충혼당 106-614에 마련되었습니다.
언론은 희수씨의 학교생활기록부에서 ‘군사적 지식 습득’, ‘전쟁이나 사상 관련 독서를 많이 함’에 주목했지만, 저는 유독 “현실에 안주하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기 보다는 늘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의 작은 힘이 보탬이 된 것에 뿌듯해”한다는 문장에 눈이 향했어요. 이성애와 정상성으로 완강하게 결속된 이 세상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 나섰던, 취약한 스스로를 인지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자 마음을 나눴던 희수씨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연구하는 루인은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이 사회에서 미래의 어떤 가능성이나 재화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지배 규범적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구성할 자격 조건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에게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트랜스젠더와 퀴어의 삶이 비참하다는 의미이기보다, 시시때때로 존재 이유를 부정당하는 이들에게는 비극 속에서도 타오르는 생명의 의지가 있음을 일러줍니다.
쏟아지는 혐오와 멸시 속에서도 기자회견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하며 웃던 희수씨. 자신을 부정하고 좌절을 안겨준 군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그 군을 아꼈고, 아낀 만큼 군의 인권 개선을 위해 역할을 찾고자 했던 희수씨. 강제 전역을 앞둔 2월 중순에, 희수씨는 함께 생활했던 고양이 키엘의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다시금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취약하지만 일상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희수씨의 삶과 겹치는 대목입니다. 2월 27일 그 자정 또한 그녀에게는 삶의 하루였을 것입니다. 분명 불화하겠지만, 끝내 정당함이 깃들리라 믿었을 그녀의 결심에 다가가봅니다.
*‘변희수’, 당신의 이름을 들었어요. 80년 오월광주와 91년 강경대가, 그리고 백남기, 김용균이 호명되는 그 광장에 나란히 당신의 이름이 불렸어요. 그리움으로, 미안함으로, 기억으로. 젠더깃발을 두른 몸들이 흘러갑니다. 당신의 용기를 빌려 온 몸들이 당신이 바라던 꿈을 광장에서 되새겨요. 더 이상 나를 잃지 않겠다고, 나의 동료를 지켜내겠다고, 취약성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폭력을 멈추겠다고, 오히려 그 취약성이야말로 부끄러움도 모른 채 폭주하는 남성성을 거부할 유일한 감각이라고.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당신에게 약속한 미래였어요. 당신과 닮아있는 용기로, 차별과 혐오에 맞섰던 당신에게, “Me-too” 그리고 “With you”로 응답합니다.

▲ 2024년 6월 23일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故변희수 하사 순직 결정 및 대전현충원 이장 시민추모대회> 현장.
* 참고자료
- 단행본
김엘리, 「여성 징집 그 논란의 연대기」,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동녘, 2021.
김형남, 「그녀가 군을 믿은 이유 –트랜스젠더 군인 고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사건」, 『군, 인권 열외』, 휴머니스트, 2022.
루인 외, 「죽음을 가로지르기: 트랜스젠더퀴어, 범주, 그리고 자기 서사」,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여이연, 2018.
우지안, 「미투, 살아남은 자리에서 말하기 : '꿘 배제'와 연대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95, 문화과학사, 2018.
- 기사
<[전문] 공개석상에 나온 성전환 하사 “육군에 돌아갈 때까지 싸울 것”>, 《한겨레》, 2020. 1. 22.
<[전문] 변희수 하사와 숙대 합격생이 서로에게 쓴 손편지>, 《한겨레》, 2020. 3. 17.
<“기갑의 돌파력을 그런 차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하”>, 《한겨레》, 2020. 3. 20.
<“사법·입법·행정부 모두 변희수를 외면했다”>, 《경향신문》, 2021. 3. 21.
<변희수, 그녀에 대한 오해(PD수첩)>, 《MBC》, 2021. 4. 13 (youtube, 2021. 9. 30)
<완벽한 승리였다, 변희수 하사가 그 자리에 없던 것을 빼면>, 《한겨레21》 1384, 2021. 10. 16.
<[변희수, 그 후 1년①] ‘유쾌한 고집쟁이’, 평등의 최전선에 영원한 여군으로 서다>, 《경향신문》, 2022. 2. 28.
<“‘여군으로 복무’, 그런 트랜스젠더는 희수가 처음이었다”>, 《오마이뉴스》, 2024. 2. 28.
<‘500만 조회’ 부산 집회 여성 “변희수 하사님 돌아가셨을 때 너무 가슴 아팠다”>, 《한겨레21》 1544, 2024. 12. 21.
<죽은 자와 위태로운 삶이 만났다, 남태령 이곳에서>, 《한겨레》, 202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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