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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6 : 도리
2023-03-31 오후 16:43:10
451 0
기간 3월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친구사이 구성원 인터뷰입니다.

(기획의도 등은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page=2&document_srl=620205 참고)

인터뷰 대상은 친구사이(소모임, 사업팀 등 모두 포함)에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퀴어 당사자 모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께서는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인터뷰 신청 링크: https://forms.gle/h2BsEmMNBsoQko2e7

 

 

[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6

: 도리(가진사람들)

 

1. 들어가며: 도리를 찾아서
2. 게이로서의 자각과 20대 일본 생활

3. 30대 첫 크리스마스와 HIV 양성 통보
4. 감염 이후의 생활: 동료 PL들, 연애, 직장
5. 나의 커뮤니티: 친구사이와 가진사람들
6. 마무리

 

 

  2023년 첫 인터뷰 대상자는 가진사람들(친구사이 내 HIV 감염인 자조 모임-작성자 주)의 공동운영자를 올해부터 맡고 있는 도리님이다. 도리님과는 작년 12월에 있었던 제3회 친구사이 에이즈 영화제를 준비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말수가 적지만 꼭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PL(HIV 감염인) 당사자로는 유일하게 에이즈 영화제에 참여해서 꼭 알아야 할 의견을 제시하곤 했다.

  함께 행사를 준비하며 단편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올해부터 가진사람들의 운영을 맡은 그는 단체의 거대한 비젼과 포부(...)를 말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처음엔 거절했으나, 개인적인 얘기를 진솔하게 풀면 된다는 말에 인터뷰에 응해주기로 했다.

 

 

1. 들어가며: 도리를 찾아서

 

 

플로우(질문자, interviewer)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도리(답변자, interviewee) 안녕하세요. 저는 도리라고 합니다. 닉네임을 ‘돌이’로 들으시면 무슨 돌인가? 하고 들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리’인데, ‘니모를 찾아서’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그 도리입니다. 

 

플로우 나중에 ‘도리를 찾아서’도 나왔잖아요. 

 

도리 네 맞아요. ‘니모를 찾아서’가 먼저 나왔을 때, 한창 물 속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많던 때였어요. 영화도 워낙 재밌게 봤고. 거기서 도리가 기억력이 몇 초 안 가는 물고기로 나오는데, 제가 기억력이 되게 짧거든요. 그래서 도리라고 닉네임을 지었습니다. 91년생이고, 일을 하고 있고요. 

 

플로우 주쉬직(주말 쉬는 직장인)이시고요.

 

도리 네 그렇죠. 그리고, 게이고요. 사귀는 사람 같은 좀 애매한 사람이 한 명 있어요. 

 

플로우 (웃음) 어떻게 애매한 관계인가요? 최근에 시작된 건가요? 

 

도리 아, 네. 최근에 좀 만나기 시작한 미국 분인데 그분이 곧 출국을 해야 해서. (플로우: 아(탄식)) 어차피 알고 만나는 거라 괜찮아요. (그분의) 출국 전까지 알차게 만날 생각입니다. 

 

플로우 출국은 언제 하시나요?

 

도리 3월 1일이요(인터뷰 날짜: 2월 3일).

 

플로우 2월 한 달은 (그분께) 전념하셔야겠네요. 뭔가 아쉽지는 않으세요? 

 

도리 어차피 알고 시작한 거니까. 그리고 만났을 때 잘 맞아서 좋아요. 감정 소모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주말마다 그분과 함께할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저는 일본에서 좀 오래 생활하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HIV 양성이고요.      

 

플로우 쭉 소개해 주신 내용을 보니 여쭤볼 게 많을 것 같네요. 차근히 하나씩 얘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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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이로서의 자각과 20대 일본 생활

 

 

플로우 먼저, 게이로서 남자한테 끌리는 마음을 처음 자각하셨던 건 언제신가요?

 

도리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는 알고 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넘어가던 때였나? 그땐 게이라는 단어도 몰랐어요.  그때는 감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관심 있는 남자애들을 괴롭히고, 집적대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앵기고, 같이 놀자고 하고. ‘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 누가 저한테 호모라고 놀렸는데, 그게 뭔 말인지 몰랐고 찾아볼 생각도 안 했고요. 

 

플로우 학교 다니면서 연애를 하신 적도 있나요?

 

도리 아뇨. 없었어요. 제가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다니고 대학을 일본으로 가게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입학 전에 6개월간은 한국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는 기간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남자랑 섹스를 했던 것 같아요. 이반시티 이런 것도 모르고 앱 같은 것도 제가 몰랐던 때였는데, 어쩌다 같이 술 먹게 된 친구랑 잤어요. 그 친구는 바이였고요. 그때 게이가 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운 책들도 막 찾아보고.

 

플로우 그렇죠. 어려운 말 써가면서 설명하는 책들도 많죠.

 

도리 맞아요. 결국 그냥 사람을 좋아하는 건데, 항문 섹스를 한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위험한, 뭔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인터넷 찾아보면 그런 거 많잖아요. 뭐 (동성애 하면) 에이즈에 걸리네 어쩌네, 어느 동성애자의 고백, 이런 종류의 무서운 영상들도 많고요.

 

플로우 그거 주로 그런 영상 아니에요? 나중에 기저귀 찬다, 뭐 이런 내용. 

 

도리 맞아요. 그런 거. 잘 모르고 보면 정말 무섭긴 하잖아요. 그때(20대 초반에) 게이에 대해서 알아보고, 게이 바 같은 게 있다고 해서 이태원에 가 봤어요. 근데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했어요. 저기 가면 이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고. 막 여기저기서 나를 건드릴 것 같고. 사실 전혀 그런 데 아닌데 말이죠. 

 

플로우 대부분 눈만 부지런히 굴리잖아요. 말 안 걸고.

 

도리 맞아요. 여하튼 그땐 무서웠고, 또 트랜스젠더 바도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거기도 무서워서 그냥 지나치고. 그렇게 좀 하다가(겉돌다가), 제대로 뭘 해보지도 않고 일본으로 가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게이 생활이 거의 없어요.

 

플로우 (웃음) 게이계의 보아네요. 한국에서는 빛을 많이 못 보고 일본 가서 화려하게 데뷔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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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 대학을 일본으로 진학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그런 결정을 하셨나요?

 

도리 저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어요. 과학자가 꿈이었고 연구하는 게 꿈이었어요. 해외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한국은 연구 환경이 안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상황이 별로 안 좋다더라. 한국 대학에는 노벨상 받은 사람도 없고. 뭐 그런 거요.그때는 왜 그렇게 과학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어요. (응용 학문인) 공학보다는 순수 과학 연구를 엄청 하고 싶었어요. 물리학, 화학 이런 거요. 

 

플로우 지금은 (순수 과학을) 별로 안 좋아하시나요? 

 

도리 지금은 좀 바뀐 것 같아요. 여하튼 그때는 좀, 막 근본 찾으면서 순수한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해외를 가고 싶은데, 미국은 언어가 돼야 하잖아요. 일본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일본어가) 한국어랑 비슷하다고 하고 1년간 언어 교육도 시켜준다고 하고, 1년 일본어 배우면 학교 수업도 따라갈만 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갔던 것 같아요.

 

플로우 보통 유학을 생각하면 미국이 제일 정보도 많고 학교도 많을텐데, 특별히 일본이었던 이유는 없었나요? 

 

도리 저도 뭐 그때 생각이 많았던 건 아니에요. 학교에서 우연한 길에 (일본 유학 기회를) 알게 됐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조건도 좀 좋았어요. 장학금도 나오고, 생활비도 나오고 그런 기회였어요. 미국은 그 정도 조건으로 갈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었을 거예요. 일본에 막 엄청 관심이 많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집이 막 그렇게 유복하고 이런 것도 아니라서, 미국으로 가면 생활비 감당이 안될 것 같기도 해서요.

 

플로우 그렇게 일본으로 대학을 가시고 20대 게이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는데, 어떠셨어요?

 

도리 일본에서 학부 다닐 때는 게이 바 가서 노는 정도였고. 석사 다닐 때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돼서 그때 좀 길게 사귀었어요.

 

플로우 일본인이었나요? 

 

도리 아니요. 중국 사람이었어요. 한 5년 정도 만났어요.

 

플로우 어떤 게 좋아서 만나셨어요?

 

도리 뭐...... 얼굴이죠. (웃음) 처음 봤는데 엄청 귀여웠어요. 만나면서 두근거리고, 데이트할 때 간지러운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런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몇 번 만나다가 그분이 사귀자고 했고요. 그분 누나(중국인)가 일본 남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었어요. 제 당시 애인도 그 집에서 살면서 공부를 할 생각이었고요. 그런데 누나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남동생이었던) 제 애인도 살 집이 없어진 거죠. 공부는 계속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때 제가 살고 있던 집이 좀 커서 그냥 우리 집 들어와서 살라고 했어요. 그렇게 동거를 시작하고, 그러면서 더 좋아졌어요. 성격도 잘 맞았고, 크게 싸우는 일도 없었어요.

 

플로우 동거하면서 보통 싸우는데, 오히려 안정감을 찾으셨나봐요. 

 

도리 맞아요. 처음 사귀기 시작하고 한 두 달 정도는 일주일에 한번씩 싸우고 울었어요. 뭐 때문이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사소한 서운함 같은 거 였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다투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사회생활이랄 것도 딱히 없이, 학교 사람들 몇몇 만나는 거 빼고는 애인과 시간을 보냈어요.

 

플로우 그렇게 잘 맞는 분이었는데 어쩌다 헤어지게 되셨어요?

 

도리 사실 제가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서 헤어졌어요. 헤어지고 나서도 잘 지내고 있어요.

 

플로우 

 

도리 맞아요. 

 

플로우 여전히 그분은 일본에 계시나요? 

 

도리 아뇨. 지금은 캐나다에 있어요. 

 

플로우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도리님이 게이인 걸 알고 계신가요?

 

도리 네. 아버지는 더 이상 만나지 않으니까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고, 다른 가족들은 알죠. 어머니한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말씀드렸는데, 진지하게 듣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곧 바뀔 거야’라는 말을 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동생한테도 말했는데, 동생은 처음엔 충격을 좀 받더라고요. 나중에는 서포트를 잘 해줬어요. 그 이후엔 가족들이랑도 그냥 별로 그런 얘기 안 하도 지내다가, 한국 돌아오고 HIV 감염됐을 때, 뭔가 다시 (가족한테) 제대로 커밍아웃을 했던 것 같아요. 난 정말 게이다. 이젠 HIV까지 걸린 게이다(웃음).

 

플로우 난 진성 게이다(웃음). 아니 무슨 자격증도 아니고. 

 

도리 그 왜, 기독교에서 맨날 말하는 거 있잖아요. 동성애하면 에이즈 걸린다고. 그게 바로 나야(웃음). 

 

플로우 (웃음) 내가 바로 그 사람이야. 난 다 갖췄어.

 

도리 뭐 여하튼, 시간이 걸리긴 했는데, 점점 가족들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긴 해요. 작년 지보이스 공연도 가족들이랑 같이 보러 갔고. 제가 가자고 했는데 다들 와줘서, 제 공연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고마웠어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긴 한가봐요. 아니 왜, (커밍아웃 듣고 나서) 아들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잖아요. 

 

플로우 그렇죠. 자식이 게이라고만 해도 연 끊는 부모들도 많다는데.

 

도리 감염인인 거 얘기했는데 정말 (자식이랑) 연 끊고 그런 부모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사귀었던 사람하고 같이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헤어지고 나서는 혼자 살게 되면서 좀 비싸게 월세를 주고 있어요. 저희 엄마가 얘기했던 게, 다른 사람 빨리 만나서 월세 아끼라고(웃음). 

 

플로우 (웃음) 너는 동거도 안 하고 뭐하니! 빨리 연애해서 돈 아껴라! 

 

도리 그러니까요. 조금씩 바뀌시는 것 같아요. 

 

플로우 정말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나봐요’.

 

 

3. 30대 첫 크리스마스와 HIV 양성 통보


플로우 그렇게 일본에서 20대를 보내면서 긴 연애도 하셨고,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셨나요?

 

도리 한국으로 돌아온 건 2020년이었어요. 막 코로나 시작했을 때요. 군대 문제때문에 들어왔어야 했어요. 

 

플로우 아까 지나가는 말로 한국 돌아오고 HIV 감염되셨다고 했는데, 군대에 계실 때 감염되신 건가요?

 

도리 네. 군 대체복무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기간에 HIV 감염이 됐어요. 대체복무라 (겉으로는) 회사 근무 중이었지만, 어쨌든 군생활 중에 감염이 된 거죠. 근데 HIV 감염이 되면 군대 면제를 받을 수 있어요. 복무 도중에 감염되면 의가사 제대도 돼요. 

 

플로우 그렇군요. 처음 안 사실이네요. 대부분 의가사 전역을 하나요? 

 

도리 어떤 사람들은 복무 중에 감염되면, 굳이 말 안 하고 계속 생활하다가 만기전역을 하는 편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문서로 기록을 남기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니까요. 근데 저는 군대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국가에 말을 했고, 자유의 몸이 됐죠(웃음).

 

플로우 그게 꼭 현역병이 아니더라도 바로 전역 처리를 해주는군요. 

 

도리 네. 그리고 예비군도 안 가요. 심지어 전쟁이 나도 (감염인들은) 복무를 안 해요. 사실 이건 좀 차별이라고 볼 수 있죠. 저는 (군대 안 가는 게) 좋긴 한데, 아예 직업이 군인이신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완전 차별이죠. HIV 감염됐다고 해서 (전쟁 나면) 못 싸우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약만 잘 보급되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까요.

 

플로우 그러니까요. 군 복무 중에 감염되셨다고 짤막하게만 얘기해 주셨는데, 감염 전후의 상황과 그때 마음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신다면요? 

 

도리 처음에는 어쨌든, 큰 병에 걸린 거니까 충격을 받았죠. 감염 전에도 주기적으로 (HIV) 검사를 받기는 했어요. (섹스할 때) 최대한 콘돔을 쓰긴 했어도, 안 쓰는 경우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그리고 검사 받는 것 자체가 재밌기도 했어요. 

 

플로우 감염 전에도 받으셨다면, 일본 계실 때부터 계속 검사를 받으셨던 건가요? 

 

도리 그렇죠. 검사가 무료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한국은 외국인들이 검사 받기에는 좀 나쁜 것 같더라고요. 아이샵(iSHAP:  Ivan Stop HIV/AIDS Project의 줄임말로, 사단법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서 운영하고 있는 성소수자 에이즈예방센터-작성자 주)에서는 한국어를 못 하면 검사를 받을 수가 없어요. 또 코로나 때문에 검사가 잘 시행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받을 수 있거든요.

 

플로우 애초에 감염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주기적으로 검사하다가 알게 되신 건가요?

 

도리 한국에 오고 난 뒤에 주기가 돼서 검사를 받은 건 맞는데, 그걸로 알게 된 건 아니에요. 그때 검사만 받고 결과지를 찾으러 안 갔거든요. 그때 검사지를 받았으면 제가 언제 감염이 됐을지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 거예요.

 

플로우 그러면 그 뒤에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증상이 있으셨나요?

 

도리 네. 그 검사 받은지 얼마 안 돼서 열이 엄청나게 났어요. 열이 거의 40도에서 42도까지 올라갔어요. 코로나가 유행할 때라 코로나에 걸린 줄 알았죠. 그런데 코로나는 음성이라고 하고, 다른 병원을 가도 안 받아주는 거예요. 어쨌든 그때는 열이 나면 병원 출입이 안 됐으니까요. 결국 병원 응급실에 갔어요. 해열제 먹고, 어디가 아픈지 조사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뭐 때문인지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셨었어요. 목이 많이 부었다고만 하더라고요. 그렇게 퇴원을 했는데, 병원에서 다음 날 다시 연락이 와서 놓친 검사가 있다면서 오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검사인지는 얘기를 안 하고요. 나중에 들으니 그게 HIV 검사였고, 거기서 양성이 나온 거예요. 근데 병원이 원래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검사인지 정확하게 말을 해줘야 해요. 여하튼 무슨 검사인지 모르고 검사를 받았고, 그해(2020년) 크리스마스날 전화를 받았어요. HIV 양성이라고. 그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플로우 아...... 하필이면 크리스마스에. 

 

도리 그때 가족들하고 같이 있었어요. 엄마가 옆에 있었거든요. 전화 끊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엄마한테 바로 말했어요. 

 

플로우 반응이 어떠셨어요? 

 

도리 바로 반응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그 뒤로 갈등이 좀 있긴 했어요. 문란해서 (HIV) 걸린 거다, 이런 말도 많이 들었고요. 뭐, 제가 문란하기도 했겠지만(웃음), 그게 그런 게 아니잖아요. 운이 나빴던 거고. 또 약간 슬펐던 건, 면역 관련된 증상이 엄마한테 나타나면, 엄마가 ‘(HIV) 너한테서 옮았나 보다’라고 하는 거예요. 

 

플로우 아, 아니, 그게...

 

도리 근데 또 검사받으러 병원 가는 건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라퀵(HIV 양성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구강점막 간이 검사 키트-작성자 주) 같은 거 사주고 그랬어요. 물론 (양성이) 아니었죠.

 

플로우 당연하죠. 옮긴 뭘 옮아요. 옮기 얼마나 어려운 바이러슨데.

 

도리 그러니까요. 여하튼 좀 슬펐던 것 같아요. 

 

플로우 그러면 어머니께 그때 말씀드리고, 또 다른 분 누구한테 (감염 사실을) 말하셨어요?

 

도리 동생한테 말했고, 친한 친구 한 명한테도 말을 했어요. 그렇게 막 말하고 다니진 않았던 것 같네요. 

 

플로우 바로 가족들한테 말하고 나서도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도리님 혼자서는 이 충격을 어떻게 소화하셨어요? 

 

도리 뭐, 처음엔 콘돔 안 쓴 거에 대해서 후회도 많이 하고 했어요. 그런데 다른 감염인들에 비해서 심하게 자책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차도 건널 때 무단횡단 많이들 하잖아요. 그게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닌데, 무단횡단하다 어쩌다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운이 나빠서 당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플로우 그렇죠. 심지어 나는 무단횡단을 안 하고 인도에 있었어도 차가 인도로 맘대로 진입하면 나는 치이는 거잖아요. 아무런 잘못한 게 없는데 그냥 감염될 수도 있는걸요.

 

도리 맞아요. 그런 사람도 있죠. 여하튼 (감염 직후) 처음 한 달 정도는 불안증 같은 게 조금 있었는데 그 후에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플로우 어떤 게 주로 불안하셨어요? 

 

도리 제가 원래 스트레스가 심하면 공황장애 증상이 좀 있었어요.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가끔 증상이 나타났는데, 감염되고 나서 그 증상이 다시 생겼어요. HIV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처음엔 곧 죽는다고 생각했었죠. 안 죽는 병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주변에 팜플렛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거를 그냥 스치듯 봤던 것 같아요. 자세히 안 읽어보고.

 

플로우 그런 증상이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나요?

 

도리 네.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일단 안 죽는다는 걸 알게 되고. 또 좋은 정보를 잘 걸러서 보면서 불안한 건 많이 없어졌어요. 인터넷에 이상한 정보들도 많거든요. 안 죽는다는 걸 안 뒤부터는 치료를 어떻게 받는지가 좀 걱정이 됐었는데, 관련 단체를 검색하니까 쉽게 나오더라고요. 거기서 또 올바른 정보들을 얻기 쉬웠었고 그래서 괜찮았던 것 같아요.

 

 

4. 감염 이후의 생활: 동료 PL들, 연애, 직장

 

플로우 감염 이후 여러 정보들을 찾으면서 다른 감염인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도리 그렇죠. 감염되고 또 걱정됐던 게,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만나지? 연애를 어떻게 하지?’ 이런 거였고, 또 다른 감염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필요한 의학 정보들도 굉장히 많고요. 약 부작용이라든가, 보험 관련된 문제라든가, 그런 정보가 많이 필요해요. 그런 정보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 다 가봤던 것 같아요. 

 

플로우 커뮤니티에서 만난 다른 PL분들은 어떠셨나요?

 

도리 저희 어머니는 제가 PL 친구들을 만나는 걸 굉장히 싫어하세요. 뭐랄까, 무분별한 섹스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만나보면 정말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저도 은연중에 (PL들 중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웃음) 나야 운이 없어서 걸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막 진짜 문란해(웃음). 지금 생각하면 웃기죠. 어쨌든 처음에는 좀 무서웠던 것 같아요. 

 

플로우 실제로 만나보니까 어땠어요? 

 

도리 막상 만나보니까, 다들 그냥 게이 바나 술번개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어떤 분은 정말 콘돔을 잘 써왔는데, 애인하고만 안 쓰고 하다가 애인이 감염자여서 자책감과 배신감 때문에 힘들어하셨던 분들도 계시고요.또 좀 슬펐던 건, 더 이상 섹스를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자기가 감염을 시킬 것 같아서요. 법적으로 (처벌받는 것) 무서워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심지어 오랄섹스를 받을 때도 콘돔을 끼고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플로우 그건 법(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ㆍ매개 금지 조항)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하네요.

 

도리 맞아요. 또, 약(치료제) 부작용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전 별로 부작용이 없었는데, 어떤 분들은 악몽을 꾼다든가, 갑자기 피부에 뭐가 난다든가, 이런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계속 약 먹다 보면 좀 괜찮아지긴 해요. 약을 안 믿는 분들도 꽤 있어요. 본인은 다 나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치료를 하다 안 하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정말 위험해요. 약을 먹다 안 먹으면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되는데, 그때는 바이러스들이 (기존에 썼던 약에 대해서) 내성이 있는 상태로 나오나 봐요. 제가 의사는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여러 약을 섞어서 쓰면서 바이러스의 변이를 차단하는 방식이라고 알고 있는데, 바이러스가 내성이 생겨버리면 (약의) 조합을 또 다르게 해서 먹어야 하고, 그러다 또 (복용) 중단해서 그 약에도 내성이 생기면 다른 조합으로 약을 처방해야 하고... 이게 계속되면 점점 쓸 수 있는 약이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정말 약이 없어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플로우 정말 면역력이 떨어지는 단계로 가게 되는 거군요.

 

도리 네 그래서 약은 정말 꾸준히 먹어야 해요. 또 마음 아픈 건, (감염인들 중에) 자살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이 병이 약을 매일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 빼고는 사실 별 거 아닌 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자살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병 자체보다 차별이 사실 더 큰 해악인 거죠. 자살이지만 사실상 타살 같다고 느끼고요.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버린 건데. 꼭 자살처럼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더라도, 감염 이후에 1-2년 정도 장기간 은둔 생활로 들어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원래 (사회생활을 하던) 상태로 못 돌아오시다가, 커뮤니티에 돌아와서 그나마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플로우 감염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특별히 좀 소수거나, 더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 있나요? 

 

도리 여성 감염자들, 그 중에서도 이성애자 여성분들은 정말 소수인 것 같아요. 커뮤니티도 작고, 더 뭔가 암울하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이 안에서 또 다른 소수자랄까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감염인들이 소수자인데, 감염인 커뮤니티에서는 또 게이들이 다수에요. 

 

플로우 이리저리 위치가 바뀌네요. 

 

도리 그렇죠. 전에 한 번 이성애자 여성 감염인을 만나본 적이 있어요. 그분이 아이를 낳으셨더라고요. 저는 감염인은 아이를 못 낳을 줄 알았어요. 저희가 먹는 약에 늘 적혀 있거든요. 임신 중인 분들한테는 쓰지 마라. 그리고 수직 감염이 되니까, 임신도 출산도 못하시는 줄 알았는데,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출산도 하시더라고요. 

 

플로우 그렇군요. 커뮤니티에 나오게 되시면서 당사자인 도리님조차도 갖고 있던 기존의 편견을 많이 수정하게 되신 것 같네요. 애초에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을 알고 이런 커뮤니티에 나오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떤 게 못 나오게 막는 진입장벽인 걸까요?

 

도리 저는 20대를 쭉 일본에서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 HIV 감염이 되고 나서, 감염인 커뮤니티에 나오는 건 그렇게 무섭지가 않았어요. 어차피 새로운 곳이니까. 근데 한국에서 쭉 생활하신 분들은, ‘내가 (감염인 커뮤니티에) 가서 아는 사람 만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못 나오겠다고. 자기가 감염이 됐다는 건 자신과 섹스한 사람 중에 누군가 먼저 감염이 되었다는 얘긴데, 커뮤니티에 새로 나갔다가 (자신과 잤던 사람을) 마주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더 부담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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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 감염된 이후에 연애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도리 한국 와서 감염되고 나서는, 정상적으로 사람을 못 사귈 줄 알았는데 그때도 사귄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감염인이어도) 괜찮다고 해줘서 그 사람하고 만났어요. 감염 초기에는 뭔가, 누굴 만나도 (감염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앱 통해서 하루 데이트하는 사람한테도 그냥 말을 했고, 섹스하게 되면 당연히 말해야 할 것 같았고요.

 

플로우 의무감이 있으셨던 것 같네요.

 

도리 그렇죠. 그래서 어쨌든 연애했던 그분께도 감염인이라고 말했는데, 그래도 괜찮고 좋다고 해서 사귀었어요. 한 1년 정도 만났던 것 같아요. 사귀면서 점점 잘 안 맞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결국 안 좋게 끝났죠. 

 

플로우 그분이신가요? 동거했다 헤어져서 비싼 월세를 실감나게 해주신 분?

 

도리 네 맞아요.

 

플로우 직장 생활은 어떠세요? 회사에도 도리님이 PL인 걸 아는 사람들이 있나요? 

 

도리 PL인 건 일부 사람만 알고 게이인건 직장 동료들이 알아요. 모든 사람한테는 당연히 아니고, 친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말했어요. 대표 같은 인사권자들한테는 안 했어요. 뭔가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안 하죠. 근데 또 그런 분들은 나이가 조금 있잖아요. 평소에 같이 있을 때 하는 말이 좀 이상하거나 쌔하기도 있고. 

 

플로우 맞아요. 은은한 편견과 혐오의 기운. 

 

도리 그런 사람들한테는 숨기고,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한테는 기회가 있을 때 그냥 말을 해요. 물론 뭐 건강 상태에 대해서 평소에 심각하게 묻지 않으니까, 안 물어봤는데 갑자기 얘기를 꺼내지는 않아요. 

 

 

5. 나의 커뮤니티: 친구사이와 가진사람들

 

 

플로우 친구사이나 가진사람들은 어떻게 알게 되셨던 건가요?

 

도리 감염인 커뮤니티를 찾다가 ‘가진사람들’을 알게 됐죠. 처음 가게 된 건 오픈테이블을 통해서였어요. 감염인이 되고 나니까 HIV 관련 이벤트가 굉장히 많이 눈에 띄더라고요. 오픈테이블에 처음 가서 제가 양성이라고 말을 했더니, 나미푸(가진사람들 운영자)가 우리 모임 들어오라고, 그래서 들어가게 됐어요. 

 

플로우 오픈테이블 오셨던 게 언제쯤인지 기억나세요? 

 

도리 작년(2022년) 여름 쯤이었던 것 같아요. 감염되고 바로 찾아온 건 아니었고 1년도 더 지나고 오긴 했네요. 

 

플로우 사전 질문지에 체크해주신 걸 보니까 가진사람들 말고도 친구사이의 여러 소모임과 활동들을 이것저것 경험해 보셨더라고요. 여기저기 찾아다니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도리 좀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딱히 연애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커뮤니티가 필요했어요. 잭디 같은 어플에서 만나는 게 좀 소모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고, 별로 좋은 형태 같지도 않고요.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가진사람들이야 제가 당사자니까 갔다고 치고, 그 다음 간 소모임이 그림 그리는 모임(‘내그림’)이었어요. 처음에 되게 재밌었고, (리더 님이) 처음부터 차근히 잘 가르쳐 주셨어요. 

 

플로우 네. 저도 형(리더)이랑 친해서 한번 갔었는데, 진짜 잘 가르쳐 주더라고요.

 

도리 네. 근데 또 계속 가다 보니, 제가 그림을 우선 진짜 못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뭔가 그리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게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른 활동들도 찾아갔죠. 놀러와 모임도 갔고, 마린보이 갔고, 책읽당도 한 번 갔고요. 

 

플로우 어디가 제일 재밌으셨어요? 

 

도리 저는 마린보이요. 꽤 재밌었어요. 요즘에는 좀 주말에 데이트를 헤서 못 가고 있는데, 다음 달부터 다시 갈 것 같고요. 책읽당은, 돌아가면서 뭐라도 얘기해야 되는 게 좀 부담이긴 했어요. 근데 좀 더 가보고 싶긴 해요. 책을 점점 안 읽게 되는데, 누가 화두를 던져주면 책도 읽고 좀 세상에 관심도 갖게 되고. 그런 건 좋은 것 같아요.놀러와는 정기모임이랑 같은 날 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세트로 생각하고 있어요. 놀다가 (정기모임) 가야지.

 

플로우 친구사이 소모임을 거의 한바퀴 도셨네요. 저도 생각만 하고 시도는 미처 못하고 있는데.

 

도리 근데 그런 모임들 가면서 느낀게, 이게 한국의 좀 특이한 점인 것 같아요. 뭐든 단톡방 만들고 그러잖아요. 오픈카톡방 만들고, 거기서 모여서 일단 뭔가 하나 컨셉을 잡고 노는 모임이 생기는 거요.

 

플로우 그쵸. 동호회 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도리 맞아요. 카페 문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이게 좀 재밌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는 아마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는, 오히려 좀 더 (정체성 자체에 기반한) 공식적인 모임이 많은 것 같은데.

 

플로우 동호회보다 친구사이 같은 단체가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네요.

 

도리 그렇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으로 다 일단 모이는 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또 재밌었던 게 번개, 술번개 문화에요. 잘 생각해 보면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그냥 같이 술 마시고. 일본에서는 바(bar)에 처음엔 혼자 가서, 거기서 친구 만나서 사귀고 그랬는데, 한국에서는 술번개 게시판에 글만 올리면 되니까요. 

 

플로우 아니면 오픈카톡방에 들어간다거나. 

 

도리 그렇게 해서 게이 생활하는 사람들도 거기서 친구 사귀어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재밌어요.

 

플로우 일본에서도 게이 단체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도리 제가 좀 지방에 있어서, 뭐 일본 대표 공식 단체까지 간 건 아니었지만, 제가 있던 센다이라는 곳에 이런 (친구사이 사무실 같은) 공간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벤트도 많이 했고요. 사실 일본에서는 바(bar)에서 좀 더 그런 게이 모임이 많이 열려요. 바텐더들도 그냥 바텐더가 아니라, 커뮤니티 리더 같은 거예요. 거기서 배구팀 같은 것도 만들고, 전국 대회 참가도 하고 그래요. 

 

플로우 아, 전국 게이 배구 대회가 있는 건가요?

 

도리 네, 있어요. 재밌어요. 아무튼 쉽게 갈 수 있는 게이 바가 많고, 그리고 술이 좀 비싸잖아요. 보틀 사서 킵해놓고 입장료 같은 것만 내고 좀 마시고, 그럼 자주 오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그러면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플로우 게이 바가 사랑방처럼 되는 거군요. 그런 커뮤니티 외에도, 인권운동으로서 성소수자들이 모이고 투쟁하고 바꾸기 위해 연대하는 움직임도 있나요?

 

도리 저는 못 봤어요. (웃음). 못 본 것 같아요. 그런 거에 관심이 많지 않았고, 아마, 있긴 있겠죠? 일본 어느 지역에는 완전 결혼까진 아니고 파트너십 제도가 있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 거 보면 그런 운동하는 분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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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 올해부터 가진사람들 공동운영자를 맡고 계세요.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셨나요?

 

도리 운영자를 하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없었어요. 제가 뭔가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게 진짜 성격적으로 잘 안 맞고, 뭔가 리드하고 싶은 게 없어요. 별로 뭔가 뭘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별로 안 들고 그랬죠. 근데 이전에 운영하시던 분들이 많이 지치셨는지, 후임 운영자가 나오지 않으면 모임의 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사이에서까지 PL들이 갈 길이 없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도와주는 것 정도면 할 수 있다. 내가 모든 모임에 참가는 하겠다.’라고 했죠.

 

플로우 타이틀이 뭐든, 모든 모임에 참가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죠.

 

도리 그런가요. 근데 또 친구사이는 매달 활동보고 같은 것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또 일처럼 느껴지고 그렇죠.

 

플로우 가진사람들에서 ‘이런 거를 해야겠다.’ 이런 게 있으세요? 

 

도리 구체적인 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작년 활동을 되돌아보면 그건 되게 좋았어요. 마지막에 이런 이벤트(‘낙서’ 전시)도 열었잖아요. 그러니까 친구 사이 안에 PL이 있다라고는 아마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누군지,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낙서를 해서 전시를 해 놓으니까 존재감이 보이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면서 올해는 뭐 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가고 싶은 큰 방향성은 있긴 해요. 비PL들하고 섞여서 모임을 하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근데 가진 사람들의 다른 멤버들이 그걸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일단은 매달 만나서 놀고, 술 마시고. 이 정도가 될 것 같긴 한데, 또 어떤 방식이 좋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플로우 방향이 있으면 방법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리 다른 (PL) 친구들 만나보면, 여기 말고도 모임이 여러 개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별로 안 나오게 된다는 친구들이 있어요. 너무 드러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활동도 공개적으로 해서, 그게 싫어서 안 나온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플로우 친구사이는 커뮤니티 기능도 하지만 사실 인권단체다 보니까, 활동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드러나게 되죠.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친구사이는 어쨌든 바깥과, 세상과 접촉을 계속 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있으니까, 불편한 건 너무 당연한 일 같아요.

 

도리 그렇죠. 불편해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 방법은 좀 더 고민해봐야겠네요. 

 

 

6. 마무리

 

플로우 늘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면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요.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 할 것 같네요. 

 

도리 근데 이거(오늘 말한 내용)로 인터뷰를 쓸 수가 있나요? (웃음) 진짜 재밌긴 했는데. 

 

플로우 (웃음) 어떻게든 다 돼요. 재밌으려고 인터뷰 시작한 거긴 해요. 저도 인터뷰할 땐 실컷 수다 떨고 항상 너무 재밌는데, 원고 정리 시작하면 딱 현타가 와요. (음성인식 앱으로) 녹취 텍스트를 딱 풀면. ‘아, 왜 이렇게 많아. 왜 이렇게 헛소리를 많이 한 거야.’ 하면서, 눈물의 타이핑을 하죠. 그런데 그 기간만 지나면 또 재밌는 글이 나오니까요. 잘 어떻게 만들어 볼테니까 편집의 마술을 한번 믿어보셔요. 

 

도리 네. 뭐 마지막 질문이... 있나요? (웃음)

 

플로우 네 공식적으로... 아 갑자기 마무리하려니 민망하네요. 앞으로 연애든, 직장인으로서든, PL로서든, 커뮤니티 활동이든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고요. 오늘 어떠셨는지도 간략히 말씀해 주세요.

 

도리 바라는 거는... 뭐 당연히 연애 하면 좋은데, 제가 감정적으로는 또 그렇게 누군가와 엮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제가 뭘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평소에도 제가 속마음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요즘엔 그게 좀 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플로우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됐어요?

 

도리 특히 일을 할 때요. 제가 (다른 사람과의) 소통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느껴요. 업무적으로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그런 걸 관철시켜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원래부터 저를 드러내지 않다보니까, 그런 요구를 하는 게 불편해요. 누구를 설득시키고 그러는 과정도 좀 소모적인 것 같고요.

 

플로우 설득하느니 그냥 내가 하고 말지, 이런 건가요? 

 

도리 아뇨. ‘그냥 (일을) 안 하고 말지.’가 되죠(웃음). (원하는대로 안 되는 상황을) 내가 참고 가야지, 뭐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적인 관계에서는 모르겠는데 업무에서는 그런 게 결국 나한테 돌아오잖아요. 그런 데서 불편하다고 느껴서, 좀 나도 원하는 걸 얘기하고 감정도 드러내고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플로우 확실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신 거군요.

 

도리 문화적인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한국에서 시작하면서 더 (스스로 표현해야겠다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일본에 있었을 때는 학생이었고, 또 일본 사회는 그런 미덕 같은 게 있어요. 굳이 속내를 얘기하지 않고 그냥 사는 거요. (일본에서) 연구실 생활할 때도 소통의 기회가 많이 없어서, 필요성을 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회사에서 팀원들끼리 토론을 하는 걸 봤어요. 되게 직설적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밖에서 보면 싸우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게 됐는데, 그런 과정이 저한테는 여전히 좀 불편한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말 안 하고 돌려서 말한다든가, 쿠션을 좀 넣어서 말하는 게 익숙해요. 심지어는 자기가 잘 아는 거에 대해서 말할 때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걸 보면 당황스러워요. 

 

플로우 원래 성격이 좀 분란 안 만들고, 그런 편이셨어요? 아니면 일본 생활을 오래 하시다보니 그렇게 된 면도 있으신가요?

 

도리 원래도 성격이 좀 그래요. 뭐 여하튼, 바라는 건 뭔가 그런 성격적인 변화고...... 다음 질문이 뭐였죠? (플로우: 오늘 인터뷰 어땠는지) 맞다. 저도 준비 하나도 안 하고 왔는데, 진짜 재밌었어요. 술만 있었으면 그냥 술자리 같은 느낌이었어요. 말을 너무 잘 들어주셔서, 진짜 재밌었어요.

 

플로우 재밌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이러려고 인터뷰 하는 거죠. 혹시 더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도리 없어요(웃음). 말 너무 많이 했어요 오늘.

 

 

   작년 에이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도 그랬고, 친구사이에서 진행된 오픈테이블에 두 차례 정도 참여하며 스스로 자각한 것은, 내가 PL들을 '잘 대하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친절하면서도 열린 태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이런 것들을 알고 배우려는 (내 기준) "선한" 마음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커뮤니티 생활을 하며 느끼는 것은 그런 정답 따위는 없으며, 그런 교오양있는 정답을 탑재한다고 한들 그것은 감염인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좋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셀프) 교양을 갖출 시간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그가 PL이든 아니든, 다정하게 대하며 재미있게 수다나 떨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리님과의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조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훨씬 즐거웠다. 감염 사실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무겁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을 삼가며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친구로, 커뮤니티의 친밀한 일원으로 함께하는 시간이어서 즐거웠다. 말이 별로 없던 그가 '말 너무 많이 했다'는 말을 하다니 매우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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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