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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1 : 류준환
2022-08-31 오후 12:37:04
1013 3
기간 8월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친구사이 구성원 인터뷰입니다.

(기획의도 등은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page=2&document_srl=620205 참고)

인터뷰 대상은 친구사이나 그 주변(소모임, 사업팀 등)에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퀴어 당사자 모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께서는 언제든 신청(링크: https://forms.gle/h2BsEmMNBsoQko2e7)해주시면 됩니다.

 

 

 

 

 

[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1

류준환(지보이스, 회원지원팀)

 

 

1. 첫 발걸음: 지보이스와 친구사이
2. 목사 아들 게이의 자기부정
3. 커밍아웃 이전: 음악, 동아리, 물에 뜬 부평초
4. 둑 터지듯 커밍아웃
5. 커밍아웃 이후: 쉽지 않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해
6. 마무리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의 첫 손님은 지보이스(친구사이 내 합창 소모임)와 회원지원팀에서 활동하는 ‘류준환’님이다. 2022년 7월 29일, 금요일 저녁에 각자 일을 마치고 종로에 있는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급하게 섭외를 한 터라 미안한 마음이 있어 히비스커스 티를 한 잔 사갔다.

    고맙게도 그는 인터뷰를 기다렸다고 했다. 딱 1년 전쯤 커밍아웃을 처음 했고, 1년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왔다고 했다. 벽장 안에 갇혀있을 때 친구사이의 커밍아웃 인터뷰와 소식지에 실린 회원 인터뷰를 수도 없이 보았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숱하게 보고 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그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것도 본명으로.

 

 

1. 첫 발걸음: 지보이스와 친구사이

 

 

플로우(질문자, interviwer) 안녕하세요. 준환 님. 저는 소식지팀에서 친구사이 회원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플로우라고 합니다. 첫 인터뷰인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류준환(답변자, interviewee) 안녕하세요. 저는 35살 류준환이고, 1년 전쯤 커밍아웃을 하고, 굉장히 오들오들 떨다가, 지보이스부터 시작하게 돼서 친구사이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플로우 친구사이에 나오신 거로 추측할 수 있는 거긴 하지만, 성 지향성은 게이이신 거죠?

 

류준환 네. 시스젠더(타고난 성별과 스스로 느끼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작성자 주) 게이입니다.

 

플로우 지보이스와 친구사이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류준환 둘 다 거의 동시에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굉장히 디나이얼(denial; 성소수자임을 스스로 부인하는 상태, 작성자 주)이 심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커밍아웃하고 난 다음에, ‘나도 게이 커뮤니티를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반시티(성소수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옛날부터 가입했었는데, 거기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약간 야생 같은 거예요. 정모는 나가본 적도 없고. 글만 보는데 되게 무섭고......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도 있겠죠. 어쨌든 제가 보기에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고, 괜히 가기가 두렵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디 좀 적절한 데가 없나 찾다가, 제가 합창을 진짜 좋아해서 국내 합창단 관련 자료들은 되게 많이 알고 있는데, 옛날에 우연히 지보이스를 제가 예전에 한 번 검색했던 기억이 났어요. 당시에는 제가 극심한 디나이얼이라서, ‘어우, 이런 데도 있어? 게이들이 노래를 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이제 커밍아웃하고 나와서 커뮤니티 찾다가 게이 합창단이 생각이 난 거죠. 다시 검색을 해보니까 지보이스가 이제 유튜브에도 막 나오고, 지보이스 사람들의 인터뷰도 나오고 위켄즈 영화도 보고, 마침 타이밍이 좋게 또 ‘빛은 무지개’ 다큐멘터리도 나왔어요. 그래서 나오기 전에 사실 지보이스 영상이라는 것들은 다 찾아보고 나왔어요.

   지보이스가 친구사이 산하 소모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친구사이 홈페이지도 들어가보게 됐죠. 홈페이지를 보니까 여기는 게이 인권단체라니까. 약간 뭔가 믿음 주는 그런 게 있잖아요. 그래도 조금 안전하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약간 운동권 느낌 냄새도 나고. 대학교 때는 약간 그런(운동권의) 느낌이 나는 단체들 제가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는 좀 알겠다 싶었죠. 그래서 일단 지보이스에 연락을 취했어요. 코로나 때라서 사실 별로 기대를 안 했어요. ‘코로나 시국에 무슨 합창이야’ 했던 거죠. 지보이스 카카오 채널을 찾아서 거기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는 거예요. ‘여기 망했나 보다. 코로나가 여럿 합창단체 다 죽였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오기가 생겨서 인스타를 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SNS를 원래 안 했는데 이걸 위해서 인스타 가입까지 했고, 거기서 지보이스를 찾아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바로 답장이 오더라고요. ‘마침 다음 주인가 다다음 주에 다시 재개를 하니, 관심 있으면 오시라.’ 는 거죠. 그렇게 시작한 거죠.

 

플로우 그게 2021년인 거죠?

 

류준환 네. 2021년. 아마 10월인가, 11월인가 나왔어요. 

 

 

2. 목사 아들 게이의 자기부정

 

 

플로우 극심한 디나이얼 기간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 주셨어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 못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류준환 일단은 제 아버지가 목사고요. 

 

플로우 아....... (탄식)

 

류준환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가족한테 커밍아웃 다 했거든요. 아버지를 물론 목회자로서도 존경하고 아버지로서도 존경합니다. 저도 신학과를 졸업했고요. 이런 환경에서 저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성적 도착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남자를 좋아한다니, 그러면서 시선은 계속 뭔가 남자의 몸에 가 있고. 저는 제 인생의 최초 기억부터 항상 교회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계속 교회의 가르침을 계속 듣고 자랐으니까, 뭔가 성소수자들은 온당하지 않은 어떤 죄인들 같다고 느꼈죠. 사실 (커밍아웃 후) 지금은 그런 가르침에 대해서 정말 할 말이 많죠.
또 한 가지는, 후천적으로 (성적 지향이) 생겼다고 할 만한 일도 있긴 했어요. 제 기억에 유치원이었나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교회 어떤 형한테 좀 성추행 비슷한 걸 당했어요. 그게 어린 나이니까 너무 뭔지 몰랐어요. 뭔지는 모르는데 어른들한테 알리면 혼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커밍아웃 다 하고 나서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니까, 그 와중에 또 (그 상황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어쨌든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혼돈스러웠고, 사실 어린아이일수록 사실 더 잘 알죠. 이게 알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거를요. 

 

플로우 생존 본능이죠. 

 

 

01. 유치원1.jpg    02. 유치원2.jpg

 

어린시절의 준환(본인 제공)

 

 

류준환 그렇죠. 이거는 어른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 특히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알면......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제가 부모님한테 받았던 교육이, ‘네가 목사 아들로서 정말 똑바로 올바르게 처신하고 살아야 아버지 목회가 잘 된다’라든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같은 말들이었어요.

 

플로우 아, 머리 아파.

 

류준환 그런 말 엄청 들었어요. 모범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것도 그런 영향이 있던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성 지향성에 대해서는 정말 솔직해지지 못했죠. 그래서 저는 한동안 오히려 포비아(phobia, 공포와 그에 기반한 혐오-작성자 주)적인 태도를 강하게 갖고 있었어요. 막 ‘어우, 게이들 더러워’ 이러면서. 

 

플로우 스스로 그런 게 있기 때문에 더 그러셨던 거군요.

 

류준환 그렇죠. 오히려 (성소수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거나 그랬으면, 공부해서 용어를 정확하게 알았으면 좀 그 기간이 짧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도 해요. 그런데 그때는 LGBT에 관련된 거를 찾아보는 것 자체부터가 (성소수자인) 나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아예 찾아보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웃긴 게 또, 이제 성적인 그런 것들은 참을 수가 없어서, 이반시티는 고등학교 때 가입했어요.

 

플로우 가입할 때도 되게 떨리셨을 것 같아요. 

 

류준환 제 주민등록번호로 안 하고 엄마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커밍아웃 다 하고, 엄마 거 다 탈퇴해버리고 제 주민등록번호로 그냥 다시 가입했거든요. 

 

플로우 그것도 뭔가 의미가 있네요.

 

류준환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했던 생각이, 아빠는 목사니까 아빠 걸로 기록이 남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엄마 아이디로 들어가서,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죄책감이 막 쌓이고. 다시 회개기도하고. ‘진짜 아니야. 이건 성적 도착이야.’ 이런 괴로움이 있었어요. 
또 한 가지는, 한창 사춘기 때 애들이 뭔가 친구들이 보여주는 성적인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주로 남자애들이 이거 보라면서 감탄하는 부분이, 저는 전혀 아닌 거예요. 얘네들이 보는 포인트가 내가 보는 포인트가 너무 달라요. 걔네들이 보는 건 주로 여자인데, 난 남자가 보이는데. 그래서 혼자서 그쪽(게이) 영상들도 찾아보고. 그러다가 의무적으로 이성애 야동도 계속 보고. 왜냐하면 게이만 너무 보면 죄책감이 너무 드니까. 그러면서 ‘나 (이성애자로) 교화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 거죠.
어쨌든 많이 횡설수설했는데, 디나이얼이었던 이유는 이 성적 지향성이 후천적이었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어릴 때 그 형한테 당하지만 않았으면, 내가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살 수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동성애적 성향은) 나한테는 해결해야 할 원죄 같은 거고,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형과의 성적인 장난 이전에도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던) 기억도 있고, 이건 선천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쨌든 이렇게 꾹꾹 눌러놓고 살았던 거죠.

 

 

3. 커밍아웃 이전: 음악, 동아리, 물에 뜬 부평초

 

 

플로우 그러면 성적인 욕구나 지향을 꾹꾹 눌러 놓고는 주로 어떤 걸 추구하셨어요? ‘나는 뭐가 돼야겠다’라든가, 직업적으로 이루고 싶었던 게 있었다든가

 

류준환 저는 원래 음악을 하려고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좀 쳤어요. 원래는 부모님 교회에서 반주자로 차출되어서 친 거라 재미가 없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학원에서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작품다운 작품을 치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도 대회 나가서 상도 탔어요. 그 이후론 중학교 때부터 하루에 한 12시간 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선생님도 예고 가라고 추천도 해 주시고요. 

 

 

07. 중학교 피아노연주회 단체1.jpg

 

청소년 시절 나갔던 피아노 대회(맨 오른쪽이 준환, 본인 제공)

 

 

류준환 그런데 그때 고민이 뭐였냐면, 우리 가족은 돈이 없다는 거였어요. 장남이라 그런지 그런 걱정을 알아서 한 거죠. 우리 아버지는 시골 교회의 가난한 목사였는데, 서울에 어디 있는 예고를 가려고 하면 레슨비며 뭐며 돈이 엄청나게 들 것 아니겠어요. 이거를 우리 가족이 감당하게 하기엔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그때 선택지도 있었던 게,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공부도 웬만큼 잘 했거든요. 학업이냐 음악이냐를 고를 수 있었어요. 대학 가서 음악은 취미로 하고 일단 학업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름 좋은 대학에 갔어요.

 

플로우 대학 가서는 원하시던 대로 음악을 하셨어요? 

 

류준환 대학교 1학년 때는 또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학교도 잘 안 가고, 학사경고도 연달아 두 번 먹고 한참 방황했어요. 그러다가 22살에 대학교 합창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혼성 동아리였는데, 진짜 열과 성을 다해서 충성을 다 바쳤어요. 거기서 뭔가 위안을 찾은 거죠. 
‘원래 내가 공부 말고 좋아하는 게 음악이었는데, 합창이 생각보다 너무 재밌네. 와, 이런 재밌는 세계가 있었어?’ 거기(합창 동아리)서는 내가 좀 나답게 있을 수 있다고 느꼈어요. 교회에서는 항상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는데, 거기서는 내가 목사님 아들로서도 아니고 그냥 내 자신일 수 있었어요. 노래 부를 때 마냥 재밌고 즐거웠던 거죠. 그렇게 합창에 중독이 된 거예요. 
그 시점에 어떻게 먹고 뭘 하고 살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악을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 ‘내가 이 합창단을 이게 좋아했던 이유가 내가 음악을 하고 싶어서였구나’ 하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합창 지휘를 배워서, 나는 지휘자로 가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죠. 그렇게 음대 입시도 준비해봤는데, 잘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생각은 있고, 대학원으로든 어떻게든 (진학해서) 나중에 이루고 싶은 목표 중에 하나예요. 

 

 

05. 합창단1.jpg

 

예술의 전당에서 합창단 공연을 하고 있는 준환(본인 제공)

 

 

준환은 대학교 합창동아리에서 음악을 향한 열정을 되살려냈을 뿐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얻었다. 그러나 연애 감정을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류준환 예전부터 여러 사람이 어울려 있을 때도 잘 노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또 갑자기 사이드로 빠져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인싸이고 싶은 마음에 애들하고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한쪽에 살짝 빠져서 또 혼자만의 시간을 계속 갖고 세상 다크하게 침잠하고 있는 나. 두 가지가 공존하는데, 내가 왜 이런 습관이 있는지, 왜 가끔씩 세상 잠수를 타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죠. 

 

 


03. 대학생_쭈굴.jpg

 

찌그러져 있고 싶었던 대학생 시절 준환(본인 제공)

 

 

류준환 어떤 지점에서는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거세되었다고 느꼈어요. ‘내가 소시오패스인가’ 싶기도 했죠. 대학교 합창동아리 애들한테 진짜 심한 말들 많이 했어요. 특히 연애하는 애들에 대해서요. 연애 감정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합창단에서 자기들끼리 안에서 사귀다가 중간에 깨지면 분위기가 싸해지는데, 저는 뭔가 합창단 임원으로서 조직을 우선시하는 입장이었어요. ‘아주 그냥 이 년놈들이 호르몬 장난에 취해서, 이 단체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이 나쁜 연놈들.’ 막 이렇게 욕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제 성애를 폐절했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이유를 계속 찾으려고 했던 거예요. 조직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습. 그리고 내 꿈을 향해서 달려가는 모습. 계속 자기 발전을 추구하는 모습 같은 거로 내 안의 결핍을 채운 거죠. 
그때는 그렇게 했던 애들한테, 이제는 커밍아웃 한 다음에 ‘야 미안하다. 내가 정말 몰랐다.’라고 사과했어요. 애들 반응이 ‘형, 이제 알았어?’ ‘오빠 쓰레기였던 거 이제 알았어?’라고 해요. 커밍아웃하고 나서 제가 (남자와) 연애를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 애들의 그 지랄들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왜 애들이 그렇게 사랑 노래를 듣고 이별 노래를 듣고, 그렇게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이제 너무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죠. 사랑이니 두근거림이니 하는 노래 듣는 인간들이 단체로 미쳤나보다 생각했고, 조금 더 이런 (고차원적인) 가사의 노래를 들어야 하지 않나, 괜히 혼자서 상위문화와 하위문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내가 사랑을 모르니까,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막 그렇게 했었던 거죠.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준환은 비로소 고상하고 지루하고 의무감으로 가득한 천국에서 해방되어 땅으로 내려온 듯하다. 짜릿하고 지저분하고 강렬한 인간의 연애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커밍아웃 직전에 그의 마음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류준환 계속 그렇게 (연애감정과 성욕을 외면하면서) 살다가, 저는 작년에 커밍아웃 하기 직전에는 죽으려고 했었어요. 왜냐하면 세상이 별로 재미가 없는 거예요. 친구들이랑 너무 재밌게 놀고, 일도 열심히 하고 살다가도 혼자서 집에 왔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이 있는 거예요. 모든 희로애락이 다 예상되고요, 즐거움도 다 예상이 되고요. 어떤 값을 넣으면 함수값이 딱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인 것 같아서 모든 게 전혀 새롭지 않어요. ‘진짜 죽어야겠다. 이제 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죽어야겠다.’ 그래서 유서도 한두 번 썼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내 성적인 것들을 전부 폐절을 했으니까, 그런 것 때문에 (이런 공허감이) 온 건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 (성적인) 생각을 하는 회로 자체를 의식적으로 차단시켰어요. ‘그냥 나는 애초에 마음이 좀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내가 좀 정신이 약한가 보다’라고만 생각했죠.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제 삶의 프로그래밍 된 정언 명령 같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신물 나게 들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든 생각이, 정작 내가 제일 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거짓말만 해온 인생이 전부니까 모든 게 무가치하게 느껴진 거죠. 플로우님도 플로우님을 기억하는 어떤 사람들이 각각 다 다를 거 아니에요. 여러 집단에서의 플로우님이 각기 다른 모습이 있을 거고, 그 모든 (타인의) 기억들을 다 시그마 리밋
(모든 것을 극한까지 모아서 전부 다 합친다는 뜻. 준환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작성자 주) 해버리면, 플로우라는 인물에 수렴할 거 아니에요.

 

플로우 그렇죠. 

 

류준환 저는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류준환의 모습을 다 조각 모음을 해도 그게 나한테 수렴하지 않겠구나 싶은 거예요. 내 제일 큰 부분을 가족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니까요. 저는 비밀 없이 진짜 친한 친구한테 힘든 일 있으면 다 얘기하는 사람이고, 똑같이 친구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면서 사는 사람인데, 정작 가장 중요한 내 부분은 가족도 친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거죠. 스스로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나, 수경재배가 되는 느낌이다. 뿌리는 땅에 내릴 수 없고, 땅에 살려면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럼 나 죽어야지’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09. anchora imparo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_존재입증의 미련함).jpg

 

ANCHORA IMPARO('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라는 뜻)

죽기 직전까지 존재 증명을 위해 계속 뭔가를 배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그림

 
 

 

4. 둑 터지듯 커밍아웃

 

 

스스로 부정하며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던 준환은 1년 전에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정확히는 아웃팅과 커밍아웃의 경계가 애매한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절친한 친구와 관계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류준환 커밍아웃을 처음으로 하고 그 친구와 관계가 그렇게 되고(끊어지고) 나서, 조만간 어딘가 가서 생을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저히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원래 아무리 거지 같은 일이 있어도 잠은 잘만 잤는데. 잠도 안 오고 입맛도 없고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처음 커밍아웃한 친구와 엮인 친구들도 많은데, 그들과도 대부분 만날 수 없게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코로나 와중인 것이 차라리 잘된 일 같아요. 핑곗김에 만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계속 밤에 잠을 못 자다가 어느 날 결정했어요. ‘나 다 얘기해야겠다. 이건 진짜 이거 다 얘기 안 하면, 다른 인간관계도 다 박살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먼저 시작했어요. 저를 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부터 시작했어요.

 

플로우 누구에게 커밍아웃을 할지 계획을 세워서 하신 편인가요? 

 

류준환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죠. 처음에는 말하기 진짜 어려웠어요. 중학교 친구들의 경우에는, (그 친구가) ‘너 나를 혹시 그렇게(성적으로) 생각했니’라고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걔네 중 몇몇한테 호감이 있던 것도 사실 맞긴 해요. 우정 이상의 감정도 있어요. 근데 걔네는 너무 확실한 이성애자고, 심지어 결혼한 애들도 많으니까(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말할 때는 전화로 ‘정말 중요한 할 말이 있어.’라고 하면서 덜덜 떨면서 얘기했죠. 몇 번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그냥 ‘나 게이야.’가 그냥 나오더라고요.
작년 7월 초부터 시작해서 처음엔 한두 명 정도한테 하다가, 대학 때 친구들한테도 점차 커밍아웃을 했어요. 이젠 제가 커밍아웃한 친구들로 합창단을 꾸려도 될 정도로 많아요.
친구들의 반응이 전부 다 긍정적이었어요. ‘우리 이제 보지 말자’ 이런 애들은 한 명도 없었고. 그냥 뭐, ‘그래, 달라지는 거 없어. 그냥 (너에 대해) 새로운 사실만 알게 된 거야.’ 또 어떤 친구들은 ‘그동안 형은 어떻게 살았어, 도대체. 그 마음을 어떻게 (참으면서), 너무 고생 많았다.’ 이런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내가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주변에 뒀었구나 싶었죠. 그러면서 이제는 부모님한테도 다 (말해야겠다). 가족이 제일 힘들긴 했어요. 아버지한테 말하고, 여동생한테 말하고 그다음에 엄마한테 말했는데. 

 

플로우 말씀하신 그 순서대로 하셨어요? 한꺼번에 모아놓고 하신 건 아니고요?

 

류준환 네 순서대로 그렇게 했어요. 가족한테 하는 건 정말 의미가 다르더라고요.

 

플로우 아버지가 대개는 끝판왕인 경우가 많잖아요. 게다가 (준환님 아버님의 경우) 목사님이시고. 근데 어떻게 아버지한테 먼저 말하실 결심을 하셨어요?

 

류준환 저희 가족은 아버지가 굉장히 이성적인 성격이고 엄마가 굉장히 좀 감성적인 성격이세요. 아빠한테 고민 말하는 건 사실 어렵지 않거든요. 저는 아빠랑 관계가 나쁘지도 않아서, 아빠는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말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죠. 아빠한테 말할 때, ‘내가 남자를 좀 더 좋아하는 바이인가 봐’라고 했어요. 
그때가 한창 (여성분들) 소개팅이 들어올 때였어요. 저는 의무감으로 계속 나가고 있었어요. ‘그래, 나는 여자한테 끌려야 해 끌리는 게 마땅해’라고 하면서요. 막상 나갔는데, 정말 좋고 매력적인 분들인데도 아무런 느낌 없는 거예요.  

 

플로우 나가서 대화도 되게 잘하셨을 것 같아요.

 

류준환 대화는 재밌게 하지만, 무엇보다 그분들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아무것도 별로 잘 안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한테 ‘나는 결혼 못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죠. 아버지가 왜냐고 물으셔서, ‘나 사실 여자가 별로 안 좋아’라고 했고 이것부터 시작해서 이야기가 주르륵 나오게 된 거죠.

 

플로우 그러면 원래 그날 (아버지께 커밍아웃) 하려고 생각하셨던 건 아닌 거예요?

 

류준환  네. ‘언젠가는 얘기해야겠다’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긴 했죠. 제가 한번 결정하고 나면 미루지 않고 딱딱 처리해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숨길 게 뭐 있나 싶었고, 이미 친구들이 나이스하게 받아주니까 탄력도 받고 자신감도 생겼던 거죠. 한 삼십몇 년간 고민하던 것, 30년 묵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터뜨리니까 너무 속이 후련한 거예요. 
아버지는 들으시고는 일단 ‘그래’라고만 하셨어요. 충격이 크셨겠지만 덤덤하게 뭔가 받아들이려고 하나 보다 싶었죠. 한 일주일 정도 뒤에 여동생한테도 (커밍아웃을) 했어요. 동생은 울더라고요. 내가 사랑한 오빠가 그런 아픔이 있는지도 자기도 모르고 살았다고 하면서 엄청 울었어요. 저희 집은 저 빼고 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예요. 동생도 마찬가지여서, (나중에는) ‘오빠가 달라질 수 있는 게 있을 거다. 한번 상담을 받아봐’라고 권유했어요. 저는 이미 이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을 지었지만. 동생 체면을 봐서 몇 번 나가보긴 했어요. 
마지막으로 엄마한테는 전화하다가 얘기했어요. 아빠랑 동생도 아는데 엄마가 나중에 알면 배신감 느끼겠지, 그냥 오늘 말하자, 싶어서 말했어요.

 

플로우 동생분한테 얘기하고 나서 (어머니께 말씀드린 시점이) 시간 차가 많이 났나요?

 

류준환 두어 달 정도 뒤에 얘기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그날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확실히 커밍아웃은 (결과라기보다는) 과정이고, 여러 번 해야 하는 거라고 느껴요. 나는 분명히 정말 덜덜 떨면서 얘기해서 ‘이제 알아들었겠지’ 했는데, (부모님은) 마치 그 얘기는 들은 적이 없던 것처럼 ‘너 결혼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것 때문에 너무 화가 났고요. 그래서 진짜 심한 말도 막 했어요. ‘아들 죽은 셈 쳐라, 나도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서로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자.’라고까지 말헀어요.
아버지는 제가 바이라고 생각하시니까, 

 

플로우 그러니까 결혼도 할 수 있다는 거죠?

 

류준환 그렇죠. 근데 저는 바이라는 건 (처음 할 때) 핑계였고, 나중에 확실히 (게이로) 정체화해서 말씀드리긴 했거든요. 바이 성향이 약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거는 학습된 것 같아요. 근데 아버지는 생각이 (다른 거죠.) ‘너는 그래도 여자랑도 (연애가) 된다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셨는데, 제가 게이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신 거죠. 
사실 아버지가 전반적으로 관점은 되게 열린 분이시거든요. (전형적인) 보수 기독교인도 아니고, 사실 굉장히 진보적인 분이신데,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타협이 안 되셨나 봐요. 어머니는 제가 여전히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고 계세요. (웃음) 어느 날은 아침에 (어머니에게서) 카톡이 와 있는데 여성분들의 사진이...... 누구는 어느 회사 다니고 몇 살이고. 그래서 내가 이런 분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게이를 만나나 싶어서, 어머니께 카톡 그만 보내라고 했어요. 아마도 어머니 아버지가 어디 놀러 가셨는데, 그 나이 또래 지인들 만나면서 ‘그 집 아들 아직 안 갔어? 이쪽 딸도 아직 안 갔는데. 우리 한 번 연결시켜볼까?’ 대충 그런 대화를 하다가 저한테 (사진을) 보낸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신경도 쓰이고, 여러 번 크게 화도 냈어요. ‘진짜 이 가족과 연을 다 끊고 싶다. 진짜 나는 그냥 어디서나 객사해도 찾지 말아라.’ 그런데 사실 제가 (스스로) 그럴 수 없는 거 알거든요. 저 가족 너무 좋아하고, 너무 사랑해요. ‘너에게 가는 길’ 영화 보면서 펑펑 울고, 커밍아웃 스토리 책 읽으면서 또 계속 울고.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시고, 힘들게 일하시고 뭐 하고 그런 것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불쌍한 거예요. 부모로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도 연민이 생기는 거예요. 자식이 그런 (게이인) 게 이 사람들한테 얼마나 아픔일까 싶은 거죠. 
근데 또 나로서는, 그래도 부모인데 자식이 30년을 넘게 이런 걸 갖고 있다는 걸 알아봐 주지 못해서 조금 나도 복수하고 싶기도 하고, 배신감도 느끼고요. ‘엄마 아빠면 이런 걸 다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누구보다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도 있고 그때 또 한창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오는, 그러니까 조금 이제 그걸 받아들이시는 부모님들 모습이 너무 쿨하고 멋있고 그런데, 우리 부모는 그러지도 않은 것 같고.

 

플로우 (‘너에게 가는 길’에 나온) 나비 님, 비비안 님 이런 분들 보면,

 

류준환 너무 멋있다. 이런 생각 들죠. 

 

플로우 우리 엄마도 좀 저랬으면 싶고요. 

 

류준환 그렇죠. 그래서 한창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서, 그때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한번 나가봤어요.

 

플로우 (일단) 혼자서 가신 거죠?

 

류준환 혼자서 갔죠. 부모님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거예요. ‘부모님들은 과연 성소수자 자식들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가 궁금했어요. 신청 열리자마자 바로 신청해서, 따로 메일까지 보내면서 꼭 가고 싶다고 해서 갔어요. 
거기서 (성소수자 부모님 중 한 분께)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도움 됐던 게 뭐냐면, ‘부모들이 영악해서 찌를 자식한테 찌른다’라고 하셨어요. 그게 너무 공감되는 거예요.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자기들이 이렇게 반응하면 얼마나 펄쩍펄쩍 뛴다는 걸 알면서도 찌르는구나. 그런데 저도 똑같거든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우리 엄마 아빠 뒤집어지는 거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해요.
제가 존경하는 동생이 한 명 있어요. 군대 동기였는데 정말 생각이 스마트해요. 부모님께 커밍아웃한 다음에 한창 힘들어할 때 그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형, 세상의 모든 갈등은 (서로) 생각의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형도 형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냐. 거의 30년 걸렸고, 지금 받아들이고도 정말 힘든데. 주변 사람들은 형이 말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 속도가 (사람마다) 시간차가 있을 거다. 형이랑 템포가 비슷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거 좀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템포를 기다려줘라. 부모님도 그러실 거다.’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위로가 되더라고요. 
‘나도 삼십몇 년 고민해서 결국 이렇게 나왔는데, 부모님은 기껏해야 몇 개월 알았는데 그 몇 개월 만에 자식이 그런 거 이해해달라는 게 정말 쉽지 않겠다.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구나, 그리고 부모님은 부모님, 나는 나, 이렇게 분리해가는 과정이구나’ 싶어요. (물리적으로) 독립한 지 오래돼서 부모님의 욕망을 내가 욕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그래도 다행인 점이에요.

 

 

5. 커밍아웃 이후: 쉽지 않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해

 

 

플로우 한바탕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친구사이에 나오셨는데, 커뮤니티에는 순조롭게 정착하셨나요? 

 

류준환 글쎄요. 순조로웠던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도 많았어요. 지보이스를 처음 나가기 전, 가족에게 ‘빛은 무지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내드리면서, 나 이제 이 단체에 나가보려고 한다고 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굉장히 노발대발하셨어요. 이건 일방적인 통보고, 가족에 대한 배신이라는 식으로.

 

플로우 아버님이 커밍아웃을 잘 받아들여 주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었네요.

 

류준환 네 그때의 상처가 지금도 가끔 아파요. 그날 아버지가 자기의 신념을 말하시는데 ‘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지 못하겠구나. 내가 가족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날은 먼 미래거나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저도 화가 나서 날 받아주지 못하는 가족과는 연을 끊겠다고 선언하고 한동안은 연락도 안했어요. 지금은 아버지도 그 일에 대해 미안함을 표현하시긴 했지만, 모르겠어요 여전히 그 신념이 바뀌시진 않았을거라 생각해요. 
여튼 지보이스에 나오기 직전 가족의 맹렬한 반응을 겪고 나니 내가 과연 이곳에 나와도 될까 한번 더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살고 싶어서 나왔어요. 저에겐 새로운 마음의 고향이 필요했거든요. 첫 연습이 끝나고 같이 뒤풀이를 가는데, 전 게이술집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별게 없기도 했고, 오히려 그 주변에 뒤집어지게 놀고 있는 수많은 게이들을 보고 ‘아니 이렇게 게이들이 많아? 그동안 난 뭐한 거지?’ 싶었어요.

 

플로우 그러게요. 진작 나올 걸 싶기도 하고요. 지보이스 분위기는 적응할 만하던가요?

 

류준환 합창단 생활은 원래 익숙해서 연습이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어요. 물론 지보이스만의 다른 분위기도 있었고 거기에 적응하는게 쉽지만은 않았죠. 운이 좋게도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지보이스 안에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헤어졌지만요. 그 사람 덕분에 제가 게이임을 더 확신할 수 있었어요. (헤테로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억지로 끌어내는 연애 감정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그런 연애였어요. 다만 전 너무 불안한 사람이었어요. 연애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처음이라 낯설고 서툴렀죠. 그리고 게이 커뮤니티에 잘 적응하고 친구도 많이 만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낯을 가리게 되더라고요. 이 커뮤니티에 흐르는 서사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마치 군대 신병처럼 얼타고 있었죠. 저 친구들은 서로를 알아 온 긴 시간이 있는데 제가 그 시간을 뛰어넘고 친해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죠. 
제가 어디 속해있는지가 갑자기 너무 불분명해지더라고요. 분명 내 제일 친한 친구들은 이성애자들이고, 그들과의 우정은 정말 소중한데, 그들이 절 거부한 적이 없음에도, 커밍아웃 이후에 제가 갑자기 그들에게 거리를 두곤 했어요. 오히려 게이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짧게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더 열리지만 한 편에선 또 그게 싫은 이상한 감정이었어요. 정확히는 이 커뮤니티에서 친한 사람들이 생기는 게 예전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여하튼 제 이런 모습이 (애인에겐) 너무 불안했을 거예요. 그래서 연애도 끝이 났고, 전 첫 이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플로우 보통 그러면 단체를 떠나는 경우도 많은데, 계속 머물면서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신기하네요.

 

류준환 저는 지보이스 왔을 때 놀랐던 점이, 단원들이 예전에 사귀고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보이스에 계속 남아있었다는 점이었어요. ‘아니 뭐야 여기 섹스 앤 더시티야 뭐야, 너무 아메리칸 (스타일) 아니야?’

 

플로우 평생을 기독 보이로 살아온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류준환 맞아요. ‘그래 나도 저 그 선배들의 어떤 그런 걸 본받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야지’ 생각했는데 웬걸, 헤어지고 나서 나가는 첫 연습 때 걔 마주치는데 얼굴부터 못 보겠고, 인사도 못 하겠는 거에요. 마음이 계속 불편한 상태로 나오니까 즐거울 리가 없죠. 마침 일적으로 바쁘기도 해서 한 달 정도 쉬었어요. 쉬다가 원래는 영영 떠나고 지보이스와 친구사이엔 두 번 다시 발붙이지 말아야겠다 싶었죠. 사람들 연락처도 다 지워버리고. 그러다가 이쪽 축구 모임을 나가보기도 했어요. 그곳도 참 좋은 곳이고 잘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근데 계속 지보이스가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처음 나온 곳에서 이렇게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한 달쯤 쉬니까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도 있고. 결국 다시 나갔죠. 

 

플로우 다시 나오셔서는 어땠나요?

 

류준환 불편한 부분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했어요. 아 여기가 어느새 고향이 되었나보다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제서야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내가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모두와 친해질 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 의기소침하고 남의 눈치를 봤을까. 여기서마저 거부당하면 내가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게이임을 어렵게 인정하고 나왔는데 게이들한테서 거부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어요. 나도 그들과 같은 게이인데 내가 어떻게 해야 그들과 섞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들을 좀 털어내게 되더라고요. 사실 게이임에 앞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이미 전부 첨예하게 다른데, 그게 게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끼가 맞는 사람들과 덜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인데 너무 진지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맞아요. 게이 이전에 사람이죠.

 

류준환 네. 이제는 다행히 좀 더 마음을 나누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끼가 맞는 게이 친구들이 있어요.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해요. 마음 편히 가서 쉴수 있는 이쪽 단골집들도 생겼고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요. 덕분에 처음으로 연애 해봤네요.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했었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전히 불편한 것도 미운 것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저도 좀 더 편히 나답게 있을 수 있어요. 

 

 

커밍아웃 이후 준환에게 일어난 또다른 변화는, 자신의 과거를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땐 왜 그런지 몰랐던 자신의 말과 행동의 원인을 하나씩 밝혀내고 있다.

 

 

류준환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했던 말들에 다 (실마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난 독신주의로 살 거야’라고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말했거든요. 

 

플로우 어렴풋이 (성향을) 알고 있었던 거네요.

 

류준환 알고 있던 거죠. 그러니까 영악하게 난 독신주의니까, 나중에 받을 충격을 지금부터 줄이려고 했던 거죠. 그리고 그때 애들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왜냐하면 마음속에 (아이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괜히 (멀리하고), 아이들은 칭얼거리고 피곤하게 하고 징징거리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조카가 태어나고면서 애들도 너무 예쁘고,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생들도 보고 있으면 얘네들을 낳은 부모들은 얼마나 얘네들을 애지중지할까 막 그런 것도 느껴지고, 얘네 하나하나가 다 귀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플로우 조카가 생기고, 커밍아웃을 하면서 내가 내 존재를 받아들이니까 뭔가 괜히 어그러졌던 (아이들에 대한) 인상도 풀렸네요. 

 

류준환 내가 왜 (나도 모르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가 좀 규명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억지로 짜 맞추는 것도 있겠죠. ‘커밍아웃하기 전에 이전에 나는 뭔가 되게 의기소침한 존재지만, 커밍아웃으로 완전해졌다.’라는 서사를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사람은 사실 알고 싶잖아요. 뭔가 내가 이래서 이랬다.

 

플로우 그렇죠. 뭔가의 원인을 자꾸 찾고 싶어(하는 거죠).

 

류준환 찾고 싶죠. 저는 심지어 뭐, ‘내가 사이다를 왜 좋아하는가?’ 이거도 누구한테 남한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돼요. 내가 사이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시큼한 계열의 (음료를) 좋아하고, 사이다는 좀 그런 맛이 더 느껴져서, 약간 이런, 명확한 근거가 다 있어야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플로우 선생님 기질이 확실히 있으시네요. 진짜.

 

류준환 아무래도 수학을 가르치다 보니까 생긴 습관 같기도 해요.

 

 

게이 커뮤니티에 정착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커밍아웃 이후 준환은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기다움을 찾았던 그는, 이쪽 세계에서도 같은 열망을 품고 활동하고 있다.

 

 

류준환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은, 엘리트 스포츠 같은 음악보다는 생활 스포츠 같은 음악이에요. 합창이 위대한 이유가, 성격, 가치관,  종교관, 인종, 성적 지향, 이런 거 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목표로 같이 노래 부르는 그 감정 자체가 정말 힐링이 되는 거예요. 너무 좋고 따스하고, 그게 중독되는 거예요. 진짜. 그런 공연들을 많이 서보니까 더 그렇고요.
또, 합창만큼 민주주의를 알기에 좋은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어요. 합창은 소리의 밸런스를 정확하게 잘 맞춰야 하고, 내 소리를 내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 목소리도 들어야 하고. 이런 모든 (합창의) 메커니즘이 정말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합창에 한 번 빠지면 정말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장담하는데, 사람들은 왜 그럼 합창을 접할 기회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일단은 지휘자가 구리거나 합창단이 별로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합창을) 접했던 과정이 안 즐거웠을 수도 있겠죠.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러면 나는 이런 과정이 즐거울 수 있도록 하는 지휘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목표를 갖고 이제 지휘를 공부하려고 준비했는데 (아직까지는) 안 된 거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마음은 유효해요. 그래서 언젠가 대학원을 가지 않을까 싶고요.

 

플로우 이쪽에 나오실 때도 지보이스에 먼저 나오신 게 당연한 순서였던 거네요.

 

류준환 지금 지보이스에서는 테너 단원이에요. 여기 나왔을 때 제일 좋은 게, 일단은 다 게이들이어서 너무 편했어요.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이죠. 같이 노래부르는 것도 당연히 좋지만, 이 커뮤니티 자체가 너무 재밌고 즐겁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지보이스에 있으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여러 활동 중에) 가장 재미있을 수 있는 곳에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는 지보이스만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퀴어 플러스(Queer+) 합창단을 하나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게이들만이 아닌) 퀴어들과 앨라이들이 모인 혼성 합창단이요. 그런 걸 하나 우선 프로젝트성으로 만들고 나중에 좀 어떻게 좀 (상설적으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거는 제 인생의 목표 같아요. ‘이거 하려고 사는 거겠구나’라고 생각해요.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에 더 명확해진 목표예요.
또, 음악 감상 소모임을 하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모임명은) 가칭으로 ‘개소리(게소리)’라고 정했는데, 게이 소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아무 소리나 낸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열 개(開)’자를 써서 ‘열린 소리’라는 의미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플로우 열린 소리, 뜻이 너무 좋네요. 

 

류준환 저는 친구사이에서 했던 프로그램 중에서 좋았던 거는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행사들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지를 들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거든요. 저는 어떤 주제를 놓고 얘기하는 게 좋은데, 음악에 대해 얘기를 해 보고 싶은 거죠.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씩 선곡해 와서 얘기하고, 다양하게 우리의 음악의 어떤 (취향을) 서로 교류하고 이러면 참 좋지 않을까 싶어요. 폴 맥카트니가, ‘음악에 대한 차별은 인종 차별보다 나쁘다.’라는 명언을 했는데, 모임의 캐치프레이즈로 따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준환은 친구사이 회원지원팀 팀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회원지원팀은 친구사이의 응접실 같은 곳이다. 새로 친구사이를 찾아온 사람들을 환영하고,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류준환  회원지원팀을 하고 있는 것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정말 오래 참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일찍부터 나와 데뷔하셔서 뒤집어지게 놀고 있는 분들은 계속 뒤집어지게 재밌게 노시면 되죠. 제 관심사는 ‘덜덜 떨고 있는’ 사람들, 덜덜 떨다가 겨우 한 번 나온 사람들이에요, (게이 생활을) 어디서 시작하는지도 되게 중요한데, 나왔을 때 거부의 경험을 먼저 겪어버리면, 어렵게 나온 사람들이 도리어 상처받고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게이 문화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아 역시 게이 문화는 이렇다’라고 실망해서 더더욱 벽장 안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게 그 사람의 정신건강에 더 안 좋을 수도 있고요.
회원지원팀 팀원으로서 (아직 벽장 속에 있는) 그분들한테 말하고 싶은 건, 정말 나와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새로 나온 분들에겐 나와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고 한번 안아드리고 싶어요. ‘20대 때 너를 보면 무슨 말을 할래?’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저는 20살 때 류준환을 보면 뺨 한 대를 싹 때린 다음에 같이 붙잡고 엉엉 울고 싶어요. 그때 당시에 같이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때 왜 내가 울고 싶었는지를 이제는 알겠어요. 
갑자기 생각나는게, 여기 나오기 5년 전에 단성사 옆에 있는 보석집에서 아침에 청소 알바를 했어요. 여기(친구사이 사무실)에서 50m 떨어져 있어요. 1년에 10m씩 온 셈이죠. 그때도 거기 사장님이 (이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게이 술집들이다, 게이들 득실거린다’라고 하셨어요. 그땐 제가 엄청 겁을 먹고 저쪽으론 절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5년 뒤에 여기서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

 

플로우 그러네요. 50미터 오는 데 5년 걸렸네요. 

 

류준환 어쨌든 용기 내서 나온 사람들한테 ‘잘 나왔다, 고맙다.’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어딘가에 있을 예전 류준환들한테 하는 얘기죠.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그러면서 내가 위로를 받는 것이기도 하고요. 

 

플로우 타인을 위로하는 동시에 과거의 나를 위로하는 일인 거네요.

 

류준환 그런 것 때문에 회원지원팀에 들어온 것도 있죠. 

 

플로우 커밍아웃하고 나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많아지셨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성욕은 폐절했고, 함수값처럼 예측되는 즐거움밖에 없고, 심지어 그냥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거(성 지향성)를 열어놓으니까 지보이스도 재밌고 퀴어 합창단도 만들고 싶고, 새로운 사람들 환영도 해주고 싶고. 

 

류준환 요즘 사실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요. 새로 나오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하나 만들어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실 이미 이름을 붙였어요. ‘반갑다 친구야 프로젝트’라고. 사실 친구사이도 소개 리플렛 같은 건 있지만, 아직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처음 OT 왔을 때 (조직) 소개를 해도 사실 와닿지 않았거든요. 책읽당, 지보이스? 그다음에 사무국이니 뭐니 이런 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회원지원팀에서 팀장과 팀원 인터뷰를 실어 주어서 사람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이걸 하나의 가이드북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새로 나온 사람도 친구사이가 어떤 단체고 어떤 역사가 있고 이런 걸 더 잘 볼 수 있겠다 싶은 거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도 하나고 본업도 있다 보니 다 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근데 시간이 걸려도 하나하나 해나가고 싶어요. 기독교적으로 얘기하면 소명 같은 느낌이 들어요. 

 

 

 

08. 지금의 나 가장 자유로어1.jpg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본인 제공)

 

 

6. 마무리

 

 

플로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어요. 거의 인생 전반을 들은 느낌이에요. 마무리를 하기 전에 묻고 싶은 건 연애 취향이에요. 남자와의 연애 스토리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계시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좋은지? 어떤 사람하고 만나야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준환님이 꿈꾸는 연인 관계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류준환 우선 식(성적으로 끌리는 외모 취향-작성자 주)이라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식이 뭐냐는 질문이 저에겐 너무 어려운 말이었어요. 보통 식이라고 하면 일단 체형 분류가 있잖아요. 개말라부터 왕뚱 베어 슬근 스탠... 그런데 체형은 일관된 취향이 없는 것 같아요. 끌린 몇몇 사람의 체형이 다 달랐거든요. 그래도 일단 마른 사람보다는 조금 덩치가 좀 있는 게 좋아요. 그것도 사실 되게 가변적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주변에서는 연애할 때 가볍게 여러 사람 만나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가볍게 (만나는 게) 잘 안 돼요.

 

플로우 근데 뭔가 기독교 배경이 있는 분들이 또 가볍게 만나지는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제 느낌에는. 

 

류준환 저는 좀 사람을 좀 더 지켜보고, 알아가고 난 다음에 사귀고 싶어요. 너무 쉽게 사귀고 싶지 않아요. 연애하면 최선을 다하고 싶고, 그래서 지금은 사실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대화가 되는 사람인 것도 중요해요. 남의 말을 잘 듣고 자기 얘기도 할 수 있는 사람. 당당한 사람이면 좋겠고,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인 게 좋은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받은 사랑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모르겠네요. 말해놓고 보니 모호한 것 같아요. 연애는 아직도 어렵네요.

 

플로우 사랑이나 연애가 원래 좀 모호한 부분이 있죠.

 

류준환 처음에 (게이 커뮤니티) 나왔을 때는 성향이나 식을 질문하는 게 되게 뭔가 무례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한 문화라고 생각해보려고도 했는데, 막 그런 거 있잖아요. 탑이냐 바텀이냐 이런 거 묻는 게. 

 

플로우 사실 무례한 질문 맞아요. 이성애자들한테 어떤 섹스 포지션을 좋아하냐고 누가 묻냐고요.

 

류준환 그렇죠. 어쨌든 그래도 여기 처음 나와서 연애도 해보고 그러면서 내가 게이가 맞다는 건 확신했어요.

 

플로우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연애를 하시길 바라면서, 이제 마무리를 할까 싶은데요. 마지막으로 오늘 어떠셨는지 소감 말씀해 주시고 마무리할게요.

 

류준환 커밍아웃 이후 지난 1년을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정말 생각보다 많은 일 있었구나 싶어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걸 너무 많이 경험했고. 옛날의 나를 드디어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떨고 있을 누군가를 저도 안아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게 친구사이 꼭 나오세요, 하는 간증 같은 글은 아닌데, 그래도 처음 나오는 분들이 여기 나왔을 때 ‘참 따스한 곳이고 좋은 곳이다’라는 인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준환 님이 좀 그런 (따뜻한) 역할을 해 주셨지’ ‘그래도 준환 님 때문에 잘 적응했지’라는 어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모르겠어요. 교회 오래 다녀서 그런가. 

 

플로우 그렇죠. 소외되는 사람 잘 못 보고.

 

류준환 그런 것 같아요. 한 마리 양도 놓치지 않을까 싶은 거죠.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요새 커밍아웃은 너무 이제 흔한 거라서 이슈가 안 된다’라고 하는데 저는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런 게 벽장 속에 있는 어떤 성소수자에게 정말 많은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글귀.jpg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 나오는, 준환이 가장 좋아하는 글귀

 

 

 

  지면에 담지 못한 그의 이야기가 훨씬 많다. 편집하면서 걷어내기 아쉬웠던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친구사이 사무실에서만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대화하며 그의 생애사 거의 전체를 훑었다. 숨길 게 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명쾌하고 맥락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장시간 듣는 것은 인터뷰어로 나선 사람의 입장에서 희열이 느껴지는 일이다. 사무실에서 못다한 이야기는 술집에서 새벽까지 이어졌다.
  커밍아웃은 구원도 파멸도 아니다. 다만 그는 지금 땅 위에 발을 붙이고 그 과정을 겪어내고 있을 따름이다. 아들 결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님과 끈기 있게 대화한다. 아직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꽤나 능숙하게 말하고 다닌다. 그러면서도 벽장 속에 숨어있던 자신의 과거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담하게 초청한다. 벽장 밖이 천국은 아니겠지만, 훨씬 자연스러운 나로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퀴어 합창단도, 음악감상 모임(개소리)도, ‘반갑다 친구야 프로젝트’도, 오들오들 떨며 나오는 퀴어들을 품어주는 일까지, 준환이(형)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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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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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2022-09-04 오후 23:33

인터뷰 잘 봤어요! 덕분에 준환님의 삶을 한 뼘 더 들여다봤네요^^
플로우님 첫 인터뷰 데뷔도 축하축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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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flow) 2022-09-05 오후 16:53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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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환 2022-09-06 오전 00:59

고맙습니다^^ 아주 즐거운 인터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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