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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가족, 공동체(I) #1] '당연한 결혼식' 1주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014-09-26 오후 13: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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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당연한 결혼식’ 1주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인터뷰

 

 

 

“어머니, 사과 보내주신 거 잘 받았어요. 감사히 먹을게요 어머니~”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로 한 날, 친구사이 사무실 현관문 너머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승환씨 어머니께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집으로 사과를 보내셨단다. 승환씨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김조광수 감독에게 바꿔주면, 광수형이 전화를 받아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부부이자 가족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작년 9월 7일, 청계천 광통교에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공개결혼식을 올렸다. ‘당연한 결혼식’이라 이름붙인 이 결혼식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존재로서 행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누렸다. 천여 명이 넘는 하객 가운데 필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들뜬 얼굴들, 중간에 난입해 지_보이스에게 오물을 끼얹은 호모포비아의 난동, 그래도 결국 아름답게 치러진 장면까지 모두가 아직도 생생하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큰 행사인 만큼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도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또한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 사회는, 1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피부로 느끼는 변화와 그들이 생각하는 아직도 바뀌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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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거”

 

 

두 사람이 함께 한 기간은 11년째이지만, 서로와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기간은 얼마 안 된다. 6년 동안의 주말부부를 거쳐 2009년 가을부터 동거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살면서 이미 하나가 된 부부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 힘든 점은 없었을까.

 

 

김조광수 감독이 동거를 결심한 당시를 추억했다. “생활비를 좀 줄여보고자 제가 승환씨 집에 들어갔어요. 승환씨 부모님이 자주 집에 오셨는데, 그냥 세 들어 사는 선배처럼 인사하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나중에 커밍아웃하며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자리를 피하고 후배 집을 전전했죠.” 승환씨 아버님은 뒷조사(?)로 유명하셔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2011년에 승환씨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광수형이 제 집 근처 부산까지 와서 응원해준 덕분에 용기를 내 커밍아웃했는데, 공교롭게도 일주일 뒤에 광수형 인터뷰를 한 기자가 저희의 공개 결혼 이야기를 쓴 거예요. 한동안 포털싸이트 검색어 순위 1등 하는 거 보면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겠다고 생각했죠.”

 

 

처음 결혼 준비는 속전속결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제일 큰일이라 김조광수 감독이 먼저 승환씨를 부모님께 소개했다. 반면 승환씨 가족은 재작년까지만 해도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설득 끝에 결혼을 준비하게 된 두 사람. 그것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작년 이맘때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소한 것으로도 서로 다투곤 했었어요. 그냥 실내에서 조촐하게 했으면 훨씬 행복하게 준비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까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이 사람한테 많이 미안하기도 했죠.” 김조광수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래도 결혼을 했고, 어느새 1년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습관에 대한 건 별다를 게 없는데, 감정적인 부분이나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싸우고 의견이 안 맞을 때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넘어갔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 1년이 다 된 요즘은 이제 상대와 왜 다른지 점차 이유를 알기 시작한 거예요. 어느 정도 이해를 하면서 다름을 인정하게 되니까. 매일 30분 이상 서로 대화하면서 많이 풀게 되요.” 서로 간의 감정 변화를 얘기하는 승환씨의 말에 김조광수 감독은 가족의 달라진 점을 보탠다. “그 전에는 그냥 아들의 남자친구라는 생각을 하셨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이제 가족이라는 걸 느끼시는 것 같아요. 한번은 승환씨 아버지께서 서울 출장을 오셨는데, 저랑 둘이 있었을 때 승환씨 누나의 이사 문제를 의논하셨거든요. 가족의 작은 일도 상의하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가족들이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도 크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저에 대해서만 안부를 물으셨는데, 이제는 함께 물어보세요. 서로 잘 지내니, 승환이는 아프지 않니, 추석 땐 같이 오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점점 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 또한 사회적으로 동성결혼을 포함한 가족구성이라는 이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도 탄생한 것 등을 놓고 보면, 분명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 또한 달라진 느낌이라고 김조광수 감독이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걸 보면 결혼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1년이 지난 지금도 결혼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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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죠. 또 다른 가족과 함께할 공동체를 위해서”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두 사람은 아직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다. 결혼 후 혼인신고를 했지만 담당인 서대문구청에서 "당사자 간의 혼인 합의가 없다"라는 이유로 불수리한 것이다. 이에 올해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두 사람은 혼인신고 불수리 보복 소송을 냈고 변호인단을 꾸렸다. 요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민법 어디에도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는데, 해당 구청에서 오해하여 위법하고 부당한 것으로 본 거죠. 부부라는 개념을 자녀 재생산이 가능한 결합으로 보고, 가족이라는 것도 부모와 자녀가 있는 집단이라는 거예요. 참 어이없는데, 결국에는 '법의 언어'로 재판을 해야 하니까 당사자들이 많아야 되는 상황이에요. 동성결혼 입법화를 진행한다고 할 때 사회적 이슈는 있지만 욕구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가구넷 안에 당사자 모임도 진행하고 있구요. 연말까지 10커플 이상 모으는 게 목표예요. 언론에 공개할 필요 없이 사례랑 이름 정도만 있으면 돼요."

 

또한 결혼 당시 약속한 '신나는 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축의금에 일부를 보태 만든 자본금과 그것에 더해 센터를 준비하는 '신나는 재단'도 설립할 전망이다. 승환씨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상담을 위해 모신 정혜신 선생님과 함께 하는 치유밥상도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 진행할 예정이에요. 또한 연분홍치마와 함께 하는 40대~60대 성소수자 생애사 인터뷰를 통한 영상기록도 하려고 합니다."

 

1주년이 다가오는 요즘 부부는 작년부터 결혼식을 준비하고 진행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막바지 제작 중이다. 제목은 <마이 페어 웨딩>. 존재해왔고 욕구는 있었지만 이제야 드러내는, 서로가 하나가 되는 과정들을 로맨틱하게 그려냈을 법 한데... "부제는 '사랑과 전쟁'이에요."라는 김조광수 감독의 농담에 승환씨가 웃으며 답한다. "내부 모니터 시사회를 했는데, '커플 테라피' 같다는 얘기가 제일 많았어요. 두 사람이 정말 다른 사람이고, 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혼을 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다큐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뒷이야기를 접하고 이슈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뷰 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에 대해 어떤 게 궁금한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이 '아이 입양'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란 의미를 부모-자녀 구성으로 보는 것 같아 아쉬우면서도, 이제는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부부로 보는 느낌이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결혼 전 기자회견에서 했던 얘기 그대로였다. "내 나이를 생각하다보니 아이가 독립하기 전까지 키우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요." 승환씨도 아직 진지하게 얘기해보진 않았다. "LGBT커플이 키우는 아이들이 문제없이 자란다는 해외 사례도 있고 저도 잘 키울 자신은 있는데, 아직 이 사회에서는 많이 조심스러워요. 제 눈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아이가 있으면 어떨지… 사람들이 너넨 결혼한 지 1년이 다 됐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냐고 짓궂게 물어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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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누구나 결합을 선택할 수 있길 바라죠”

 

 

두 사람의 결혼과 부부 생활을 봐오면서 필자도 연인과 함께 단순히 동거를 넘어서 결혼까지, 아니면 꼭 결혼이 아니어도 함께 가족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7%가 파트너와의 결혼·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연인과 동거 중인 성소수자 중 80.9%가 공동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욕구와 의지는 분명 큰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부부에게 향후 동성결혼이나 이와 비슷한 가족, 공동체 구성을 꿈꾸는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저희처럼 공개적으로 하지 않아도 결혼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내가 힘들거나 아플 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게 참 의미 있는 거죠. 서로에 대한 태도나 가족들이 우리를 대하는 자세도 바뀌고. 결혼식을 하신다면 저희가 적극 도와드릴게요. 많이 꿈꾸세요. 그리고 굳이 왜 결혼이냐는 얘기도 나오는데, 저희가 무리하게 공개적인, 그것도 결혼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행사를 치룬 것도 결혼에 대한 평등권과 자유권을 위해서이거든요. 누구나 원한다면 결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파트너 또는 배우자와 결혼제도가 아닌 또 다른 결합제도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김승환)

 

 

"꼭 누구나 다 결혼을 해야 하거나 짝을 이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를 이뤄 함께 하는 게 좋은 것도 많을 거예요.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지만 우리가 한 결혼은 실질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에요. 가족 간에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만, 명절이나 제사 때 각자 집에 가고,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죠." (김조광수)

 

 

꼭 내가 결혼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는 결혼을 원한다면, 그를 위해서 결혼을 선택할 권리는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당연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서 지내면서 바라는 이들의, 또한 우리들의 소망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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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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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2016-04-03 오전 08:02

"누구나 원한다면 결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파트너 또는 배우자와 결혼제도가 아닌 또 다른 결합제도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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