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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月 커버스토리Ⅱ- 지보이스의 시간
2013-03-11 오전 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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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커버스토리 <지보이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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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이스 다큐멘터리, 그 커밍아웃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많을 필요도 없겠죠. 그게 몇 사람이든, 눈앞에 낯선 사람을 두고 커밍아웃을 하는 일은 어쨌거나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진 까닭에,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는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어요. 동성애 혐오를 목격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부러 찾아보려고 마음을 먹지 않아도 종종 목격하게 되지 않나요. 차라리 요즘엔 비둘기를 목격하는 게 더 어려울 정도죠.

 

최근의 한국 사회는, 좋게 말하면 동성애에 호기심을 갖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나라처럼 문명화된 국가에서 동성애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에요. 사람들은 그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는데, 정작 그 실체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확인 가능한 몇몇 예가 있기는 해요. 많은 미디어가 동성애에 대해 다루죠. 하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게이들을 내 주변 누군가로 생각해주길 바라기엔 아직 이르고, 여전히 동성애 혐오라는 커다란 벽은 곳곳에 굳건히 존재합니다. 견고하고 단단한 벽이 눈앞에 있는데, 누가 쿠션조차 없는 저 벽으로 돌진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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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이스 역시 그렇습니다. 커밍아웃은 어려워요. 아니, 어렵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네요. 두려워요. 그래요. 두렵고 무섭습니다. 몇몇 단원들에게, 게이 프라이드라는 말은 무색하고 맙니다. 수많은 얼굴 앞에서 '게이'로 소개될 때의 기분은 두려움과 공포에 더 가깝거든요. 불특정 다수에게 내 얼굴을 노출해야 하는 공연들은 이런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언제나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죠. 싫어하지 않는구나. 받아들여졌구나,하는 안도감.

 

이러한 공포와 긴장의 경계에 서서 노래를 하는 것은 지겹습니다. 때로는 그냥 하기가 싫어요. 매번 어떤 감정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불편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지도 않고. 공연을 하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는 일을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는 단원들을 보면 맥이 빠지기도 하죠. 나조차 설득하기가 어려운데, 같이 노래하는 친구를 설득해야 하는 일은 더 고될 수밖에요. '아. 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하죠.

 

 

 

빈방에서 부르는 노래

 

지난 2009년, 지보이스는 대구의 한 게이바에서 공연할 기회를 갖습니다. 장소도 게이바였고, 게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행사였죠. 그래서인지 외부 공연이지만 부담도 크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지보이스는 공연장에 도착했어요. 연습과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고 공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공연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정된 시간. 그런데 객석엔 아무도 없었어요. 단 한 명의 관객도 찾아오지 않은 겁니다. 장소를 제공해주신 게이바 사장님과 지보이스 단원들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서글픈 공기가 가득합니다. 이 동네 게이들이 기적처럼 쏟아져 들어와 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는 의견이 오가고,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은 후에, 결국 지보이스는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반주를 틀었어요. 아무도 없는 의자들을 바라보며 공연을 시작했어요. 심지어 안무도 했죠. 그게 얼마나 뻘쭘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어떤 기적이나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노래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죠. '아. 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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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원이 그때를 회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지역 커뮤니티는 좁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잘생기고 섹시하지 않은 게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그런 문화 행사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변하지 않는 사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거에요. 아직도 어떤 게이들에겐, 게이바에서 게이들이 하는 공연을 보러오는 것조차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봐요."

 

관객이 하나도 없는 공간에서 리허설이 아닌, 본 공연을 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잘 상상이 가지 않을 테지만, 혼자서 하늘이나 먼 허공을 향해 노래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대상이 없음으로써 대상을 초월하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추측하건대, 아마 그때 지보이스는 <벽장문을 열어>를 노래하며, 자신들이 가진 내면의 두려움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벽장 문을 극복하지 못한 모든 게이들에게 말을 건넸을 것입니다.

 

 

 

'종로'의 기적을 넘어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이렇게 우울한 것은 아니지요. 사실, 지보이스의 정기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글이 더욱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공연은 분명 신이 나거든요. 단원들 역시 '내가 게이다!'하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무대 위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노래로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 방법입니까. 비관적 상황에서 그 응어리를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단원들이나,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로 전해질 테지요. 지보이스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드러낼 수 있기까지 지보이스가 가졌거나 가지게 될, 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무대 밖에서의 지보이스를 들여다 볼 기회가 되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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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알고 있는 게이의 표준은 그 폭이 넓지 않습니다. 사실, 표준이라는 것을 몇몇 유명인에게만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요. 게이들은 너무 많고 모두가 다른데, 누가 이 거대한 집단의 표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연분홍치마와 친구사이가 공동제작한 게이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이 이미 그 역할을 잘 해주었다면, 새롭게 제작하는 지보이스 다큐멘터리는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요. 아마 더 많은 게이들이 나오겠죠.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게이 타입의 물량공세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성 소수자 문화 운동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고민들에 대한 질문이 더해질 것이고, 어쩌면 그 답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겠지요. 영화 <종로의 기적>이 개인의 서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지보이스 다큐멘터리는 조직과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나 일체감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영화는, 지보이스 공연을 맛 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역이라는 공간적 한계와 일 년 중 단 하루의 정기 공연이라는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죠. 영화에 담기는 시간은 고작해야 1년 정도이고, 아무리 늘어나도 2년을 넘기지 않을 것이지만, 기록을 통해 지보이스의 시간과 노래들은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커밍아웃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위에 언급한 대구 게이바 공연의 예처럼, 어떤 상황에서의 게이들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러오는 행위 자체를 '얼굴을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해요. 이 지루하고 지겨운 '밀당'은 언제쯤 끝이 나려나요. 아마도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아무런 용기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겠죠. 영화를 만드는 과정 내내 단원들은 자신을 설득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왜 유의미한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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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의 과정을 담는 동시에 실제의 커밍아웃이 되고 마는 이 영화는, 영화에 출연한 지보이스 단원들의 용기로 인해 견고하고 단단한 혐오의 벽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솔직한 심정을 적자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고요. 그래서 동성애가 이성애와 다르지만, 더 특별한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하고, 우리가 먼저 드러냄으로써 2013년이나 되었음에도 벽장 속에서 숨 막혀 하는, 질식 직전의 누군가에게 그 숨통을 트여 줄 수도 있을 거에요.

 

세상에 마법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간혹, 마법 같은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살잖아요.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누군가 그런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면, 이 영화는 마법 자체가 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에겐 마법 지팡이 정도는 될 수 있겠죠. 그 정도면 제 몫을 충분히 다 한 것이 아닐까요. 이 욕심이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는 영화가 개봉해야 알 수 있겠지만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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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루 2013-03-12 오후 18:42

이런 형이 지금 지보이스에 같이 있다는게 참 다행이고 힘이 된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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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2013-03-12 오후 20:53

추천누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이 올해 지보이스 신임단장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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